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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국한시사, 서설(序說) - 2. 자료의 선택 문제:『청구풍아(靑丘風雅)』와 송시학(宋詩學)의 극복③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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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사, 서설(序說) - 2. 자료의 선택 문제:『청구풍아(靑丘風雅)』와 송시학(宋詩學)의 극복③

건방진방랑자 2021. 12. 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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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소단(騷壇)이 아직까지도 송시학(宋詩學)의 영향권에 있었지만, 김종직(金宗直)은 당시의 풍상(風尙)에서 멀리 떨어져 엄중(嚴重)ㆍ방원(放遠)한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성현(成俔)용재총화(慵齋叢話)에서 김종직(金宗直)청구풍아(靑丘風雅)를 가리켜 조금이라도 호방(豪放)한 듯한 것은 버리고 수록하지 않았다[稍涉豪放者, 棄而不錄]”이라 한 것을 선관(選觀)의 편향성을 지적한 적평(適評)이라 할 수 있거니와 이는 곧 그의 시가 송시학(宋詩學)의 호방(豪放)한 기격(氣格)을 사실상 극복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후대인의 비평 가운데서도 차천로(車天輅)신흠(申欽)선사사(仙槎寺)

 

鶴飜羅代蓋 龍蹴佛天毬 ()은 신라시대의 일산에 번득이고 용()은 불천(佛天)의 공을 찬다.

 

()를 들어 그의 방달(放達)’ 또는 방원(放遠)’함을 칭도(稱道)한 것이라든가,

 

허균(許筠)신륵사(神勒寺)」【夜泊報恩寺下 贈住持牛師 寺舊名神勒或云甓寺 睿宗朝改創極宏麗賜今額

 

上方鐘動驪龍舞 상방(上方)의 종이 울리니 여룡(驪龍)이 춤을 추고
萬竅風生鐵鳳翔 일만 구멍에서 바람이 나오니 철봉(鐵鳳)이 난다.

 

홍량(洪亮)ㆍ엄중(嚴重)’하다고 하여 우주에 기둥을 받치는 구()라 하고

 

보천탄즉사(寶泉灘卽事)

 

桃花浪高幾尺許 도화(桃花) 뜬 물결이 몇자나 높았길래
狠石沒頂不知處 ()은 꼭지가 잠기어 있는 곳을 모르겠네.
兩兩鸕鶿失舊磯 쌍쌍이 나는 물새는 옛집을 잃고
啣魚却入菰蒲去 고기를 물고 도리어 수초 사이로 들어가네.

 

를 가장 높은 것이라 평하고 있는 것도 모두 그 엄중방원(嚴重放遠)’김종직(金宗直)의 시세계를 두고 한 말이다.

 

이러한 그의 시세계가 그 선시(選詩) 과정에 직접적으로 간섭하여 이룩된 것이 청구풍아(靑丘風雅)이다. 때문에 그는 웅혼(雄渾)ㆍ방원(放遠)으로 일세(一世)에 시명(詩名)을 드날린 이규보(李奎報)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와 같은 시인의 시작(詩作) 가운데서도 호방(豪放)한 것으로 정평(定評)되어 온 작품들은 선발(選拔)하지 않았으며 또한 완려(婉麗)ㆍ신경(新警)한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완려(婉麗)’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온 이규보(李奎報)하일즉사(夏日卽事)청구풍아(靑丘風雅)에는 보이지 않는다.

 

輕衫小簟臥風櫺 댓잎자리 가벼운 적삼으로 바람난간에 누웠다가
夢斷啼鶯三兩聲 꾀꼬리 울음 두세 소리에 꿈길이 끊어졌네.
密葉翳花春後在 나무 잎에 꽃이 가리어 꽃은 봄 뒤에도 남아있고
薄雲漏日雨中明 엷은 구름에 해가 새어 나와 비 속에서도 밝구나.

 

이 시()는 읽는 이로 하여금 산뜻한 기분마저 느끼게 하는 작품이며, 그의 칠언절구(七言絶句)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것으로 꼽히어 왔기 때문에 동문선(東文選)을 비롯한 역대 시선집(詩選集)에선 빼지 않고 수록하고 있지만 청구풍아(靑丘風雅)에서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다만, 횡방(橫放)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이규보(李奎報)의 시편(詩篇) 중에서 청구풍아(靑丘風雅)에 선입(選入)되고 있는 것으로는 칠언고시(七言古詩)칠월칠일우(七月七日雨)를 들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 시도 그 횡방(橫放)한 기상(氣象)에 앞서 전편(全篇)에 넘치는 부려(富麗)한 여유가 그의 안광(眼光)을 흡족하게 하였는지 모른다.

 

 

이러한 사정은 정몽주(鄭夢周)의 경우에 있어서도 같은 현상을 보여 준다. 칠언율시 가운데서도 정주중구 한상명부(定州重九 韓相命賦)중구일제익양수이용명원루(重九日題益陽守李容明遠樓), 동래역 시한서장상질(蓬萊驛 示韓書狀尙質)과 같은 작품은 모두 질탕호방(跌宕豪放)’한 작품으로 후세의 칭송을 받은 것이지만, 청구풍아(靑丘風雅)에서는 한 편도 뽑아주지 않았다.

 

후세에까지 절창(絶唱)으로 불리어 온 것 중에서 청구풍아(靑丘風雅)에 선입(選入)된 것은 강남곡(江南曲)(七絶)여우(旅寓)(五律) 정도이지만 이 작품은 호쾌(豪快)와 풍류를 함께 읽을 수 있는 명작이기 때문이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그의 시가 전혀 소()ㆍ황()에서 나왔다는 견해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며, 오히려 심울(沈鬱)ㆍ엄중(嚴重)한 두시(杜詩)에 대한 관심이 그의 시세계에 깊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보면 후대의 시선집(詩選集)에서 당()을 그 선발(選拔)의 표준으로 삼고 있는 것도 시원적(始源的)으로는 김종직(金宗直)에게까지 소급되어야 한다는 제언(提言)이 결코 무용(無用)한 것이 아니라는 근거를 여기서 찾음직하다.

 

 

 

 

 

 

인용

목차

서사한시

한시미학

16~17세기 한시사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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