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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죽오’라는 집의 기문 - 1. 대나무에 관한 글을 써주지 않으려는 이유 본문

책/한문(漢文)

‘죽오’라는 집의 기문 - 1. 대나무에 관한 글을 써주지 않으려는 이유

건방진방랑자 2020. 4. 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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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나무에 관한 글을 써주지 않으려는 이유

 

 

예로부터 대나무를 찬양한 사람은 무지하게 많다. 시경』 「기욱淇燠[각주:1] 이래로 읊조리고 찬탄하는 것만으론 부족해서 차군此君[각주:2]이라 일컬으며 숭상한 사람까지 있었으니, 대나무는 그래서 마침내 피폐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천하에는 으로 자호字號를 삼는 사람이 그치지 않고 게다가 그런 호를 지은 까닭을 기문記文[각주:3]으로 적곤 하지만, 설사 채윤蔡倫[각주:4]이나 몽염蒙恬의 지필紙筆이라 할지라도, 대나무를 두고서 풍상風霜에도 변치 않는 지조라느니 소탈하고 자유로운 모습이라느니 하고 서술하는 데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처럼 사람들이 머리가 허옇게 되도록 쓴 글이 죄다 진부한 글이니, 대나무는 그래서 마침내 그 정채를 잃게 되었다. 나처럼 재주 없는 사람도 대나무의 덕성을 찬양하고 대나무의 소리와 빛깔을 형용한 시문詩文을 여러 편 지었거늘, 다시 글을 지어 무엇 하겠는가.

古來讚竹者甚多. 淇澳, 歌咏之嗟嘆之不足, 至有而尊之者, 竹遂以病矣. 然而天下之以竹爲號者不止, 又從以文而記之. 則雖使蔡倫削牘, 蒙恬束毫, 不離乎風霜不變之操, 䟽簡偃仰之態. 頭白汗靑, 盡屬飣餖, 竹於是乎餒矣. 顧以余之不文, 讚竹之德性, 以形容竹之聲色, 作爲詩文者多矣, 更何能文爲.

연암은 몹시 단언적인 어조로 첫 문장을 시작하고 있다. 서두를 어떻게 여는가에 따라 글은 그 느낌과 뉘앙스가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옛날의 문장가들은 글을 쓸 때 서두를 어떻게 열 것인가를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이 단락은 단언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첫 문장에 대해 쭉 부연 설명한 다음 맨 끝에다 그러니 대나무에 관한 글을 지어 무엇 하겠는가라는 말로 종결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이 단락은 다음 단락을 위한 복선을 깔면서, 왜 자신이 죽오에 대한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앞질러서 밝혀 놓고 있다.

대나무가 피폐해지게 되었다(竹遂以病矣)’라거나 대나무가 그 정채를 잃게 되었다(竹於是乎餒矣)’라는 말은, 대나무에 대한 수많은 시문이 쏟아져 나오면서 급기야 대나무에 대한 표현이 진부하고 상투적인 것으로 되어 대나무가 그만 무색해져 버렸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언어와 사물의 관계에 대한 연암의 독특한 생각이 깃들여 있다. 연암은 언어에 상투성의 때가 끼면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고 보았다. 사물을 표현하는 어떤 말은 비록 처음에는 그것이 새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어쩔 수 없이 점점 상투적인 것으로 되고 만다. 언어의 운명이다. 연암은 상투적인 언어는 이른바 죽은 언어로서, 사물의 생동하는 모습이나 그 내적 본질을 결코 드러낼 수 없다고 믿었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우리 한시를 읽다를 끝내다

건빵의 죽오기, 건빵재를 열다

1. 대나무에 관한 글을 써주지 않으려는 이유

2. 상투적인 언어에 생기를 불어넣는 방법

3. 양호맹의 진실한 대나무 사랑

4. 대나무를 닮아 간 사내

5. 변함없는 인간에 대한 헌사를 담아 기문을 쓰다

6. 총평

 

 

 

 

  1. 『시경』 위풍衛風 「기욱」편의 시를 말하는데, 그 중에 “저 기수淇水 모롱이 바라보니 / 푸른 대나무 무성하네(瞻彼淇奧, 綠竹猗猗)”라는 구절이 있다. 이 시는 대나무에 대한 읊조림을 담고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중국 문헌에 해당된다. [본문으로]
  2. 차군此君: 중국 동진東晉의 문인이자 서예가인 왕휘지王徽之는 대나무를 너무도 사랑하여 ‘차군此君(이 친구라는 뜻)’이라고 불렀으며, “어찌 하루라도 차군 없이 살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본문으로]
  3. 기문記文: 그냥 ‘기記’라고도 하는데, 어떤 일의 경과를 기술하든가 정자나 누각의 조성 경위 등을 밝힌 글을 말한다. [본문으로]
  4. 채윤蔡倫: 후한後漢 때 사람으로, 처음으로 종이를 만들었다고 전하며, ‘몽염蒙恬’은 진秦의 장군으로 붓을 처음 만들었다고 전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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