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라져 버린 본문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 읽는다. (이하 글을 잃어버렸음) 爲文而讀之曰 缺 |
“글을 지어 읽는다”라는 말 뒤에 비로소 본격적인 제문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부분은 현재 탈락되고 없다. 아마 4언으로 된 운문이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묘지명의 ‘명’이 보통 아주 짤막한 운문인 것과는 달리 제문의 운문은 아주 길어 60구句 내지 100여 구에 이르는바 제문의 중심부분을 이룬다. 가령 연암이 그 처삼촌인 이양천李亮天을 위해 쓴 제문의 경우 4언구가 96구이며, 형수의 아버지인 이동필을 위해 쓴 제문의 경우 61구이다. 이 두 제문은 4언구를 통해 고인의 인품과 생전의 언행, 고인에 대한 연암의 특별한 추억과 애통한 심정 등을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4언구가 끝나면 ‘상향’이라는 말로 제문이 종결된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읽은 정석치 제문은 그 서론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운문으로 씌어진 본론 부분은 탈락되어 버린 것이다. 보통의 제문이라면 정석치 제문처럼 이렇게 서문이 길지 않다. 누가, 언제, 누구를 위해 제문을 지어 곡한다는 말이 너덧 구절 정도 나온 다음 제문의 본문이 시작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석치 제문은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이 이상하리만큼 확장되어 있다 할 만하다.
한편, 우리가 읽은 정석치 제문에는 주로 연암 자신의 심정이 토로되어 있고, 정작 망자亡者인 정석치에 대한 회고라든가 그의 인간적 특성이라든가 그의 업적이라든가 그의 학문과 예술이라든가, 이런 면에 대해서는 전연 언급이 없다. 이런 면에 대한 서술은 필시 탈락된 부분 속에 들어 있었을 터이다. 일찍이 위당 정인보 선생은 연암의 이 제문이 정석치의 학문과 예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고 정석치를 마치 술주정뱅이처럼 보이게 해 놓은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지만, 이는 탈락된 부분을 고려치 않은 데 따른 오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전문
인용
1. 파격적인 제문
5. 석치를 저주한 사람들
7. 진짜로 네가 죽었구나
8. 사라져 버린 본문
10. 울울하던 그날 함께 하던 벗
12.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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