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머리로 아는 죽음과 가슴으로 느껴지는 죽음
이 단락의 포인트는 평소 석치를 저주하던 자들에게 대한 역설적 조소에 있다고 해야겠지만, 이 단락의 가장 미묘한 대목은 석치의 죽음에 대한 도인의 반응을 언급한 구절이 아닌가 한다(世固有夢幻此世, 遊戱人間, 聞石癡死, 固將大笑, 以爲歸眞, 噴飯如飛蜂, 絶纓如拉朽).
이런 도인은 『장자』라는 책에 허다하게 등장한다. 『장자』는 이런 인물을 내세워 삶이란 한낱 꿈에 지니지 않는다는 것, 삶과 죽음은 결코 분리되지 않으며 죽음이야말로 삶의 근원이라는 것, 따라서 죽음이란 특별한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니며 자기의 원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단락 끝 부분에서 도인이 보여주는 태도는 이런 생사관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생사관은 그야말로 아주 높은 정신적 경지로서, 석치의 유족들이나 먼 친인척들이나 친구들이 그의 죽음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슬퍼하는 태도라든가 적대적 인물들의 고소해하는 태도와는 전연 다른 차원의 것이다.
연암은 이 단락의 맨 마지막에서 굳이 죽음에 대한 이런 태도를 언급함으로써 죽음이란 사실 슬퍼할 일이 아니다, 그건 장자가 말한 대로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일이다, 석치의 죽음도 결국 그렇게 봐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했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죽음을 반성적으로 관조케 함으로써 연암의 마음을 잠시 위로해주었을 수 있다. 그건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 않을까?
이 구절을 가만히 음미해보면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사람이 석치가 죽었다는 말을 듣는다면 껄껄 웃으며 ‘진眞으로 돌아갔구먼!’이라고 말할 터이다(聞石癡死, 固將大笑, 以爲歸眞)”라고 끝냈으면 좋았을 것을, 왜 그 뒤에 사족처럼 “하도 크게 웃어 입안에 머금은 밥알이 벌처럼 날고 갓끈은 썩은 새끼줄처럼 끊어질 테지(噴飯如飛蜂, 絶纓如拉朽)”라는 말을 덧붙였을까? 비통한 심정을 담은 이런 제문에서도 연암은 유머러스한 표현을 즐긴 것일까? 하지만 그런 추론은 사리에 통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일까? 그냥 재미있으라고 그렇게 과장되게 표현한 걸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연암의 글은 퍽 용의주도하여, 쓸데없는 말이나 이유 없는 말, 하나마나한 말은 일체 않는 게 특징이다. 더군다나 이 글은 장난삼아 쓴 글이 아니고, 제문이지 않은가.
나는 이 과장된 서술 속에 연암의 미묘한 심경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연암은 머리로는 『장자』의 생사관을 떠올리며, 그래 죽음이란 본시 그런 거야, 그러니 슬퍼할 건 없어, 슬퍼한다는 건 뭘 모르고 그러는 거지, 하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가슴으로는 여전히 슬프다. 좋다, 석치가 ‘진’으로 돌아갔다고 치자. 하지만 그딴 게 뭐가 중요한가. 그런 것하고는 관계없이 나는 지금 석치가 말할 수 없이 그립고, 석치의 부재가 애통하기만 하고, 그래서 여전히 울고 싶어진다. 이런 마음이 도인의 웃음에 대한 묘사를 왠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과장된 쪽으로 이끈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이 대목의 과장된 표현에는, 죽음이란 마땅히 돌아갈 곳으로 돌아가는 현상이기에 슬퍼할 일이 아닌 줄 번연히 앎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슬픔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는 연암의 심경이 역설적으로 투사되어 있다고 할 만하다.
▲ 전문
▲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인용
1. 파격적인 제문
5. 석치를 저주한 사람들
7. 진짜로 네가 죽었구나
8. 사라져 버린 본문
10. 울울하던 그날 함께 하던 벗
12.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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