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자유분방하게 감정을 토로하다
(A) |
(B) |
살아 있는 석치라면 이러이러할 텐데, |
그럴 수 없는 걸 보니 석치가 진짜 죽었구나. |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A)의 가정문은 절묘하게도 두 가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 하나는 이를 통해 연암과 석치의 개인적인 특별한 관계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석치의 죽음을 도무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연암의 감정 상태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연암은 일상 속 석치의 부재를 통해 ‘석치가 진짜 죽은 게 맞긴 맞구나!(今石癡眞死矣)’하고 석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처럼 이 단락은 가정문 (A)와 그에 이어지는 단정문 (B)를 통해 친한 벗 석치의 죽음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연암의 심리 상태 및 그럼에도 결국 석치의 죽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슬픈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다. 좀 어려운 말을 쓴다면, “살아 있는”에서 시작하여 “죽었구나”로 종결되는 이 단락의 문장은 이러한 심리적 상황을 잘 ‘구조화’해 놓고 있다고 할 만하다. 이 단락의 문장이 몹시 짧고 촉급한 호흡을 보여주는 것은 이 글을 쓸 당시 연암의 이런 심리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 단락에는 “함께 모여 ~하고(可會哭可會吊, 可會罵可會笑)”라는 말이 네 번이나 반복된다. 이는 예전에 함께 모여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 그런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 점에서 “지금 석치는 진짜 죽었구나”라는 이 마지막 어구만이 아니라 “함께 모여~하고”라고 반복되는 말 속에도 연암의 깊은 슬픔이 담겨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연암은 당시의 사람들이 점잖고 고상한 말만 주워다 써야 훌륭한 글이 되는 줄들 아는데 그건 천만의 말씀이라는 투의 말을 여러 곳에서 한 바 있다. 연암은 문장이란 아름다운 말과 고상한 말만 쭉 나열한다고 해서 훌륭하게 되지 않으며, 추한 말이나 비속한 말도 적절히 잘 쓰면 진실하고 훌륭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요컨대 연암은, 글에는 못 쓸 말이 하나도 없으며, 중요한 것은 진실성이라고 했다. 고상한 말만 잔뜩 늘어놓아서는 진실한 글은커녕 진부하고 뻔한 글이 되기 십상인바 그런 글은 죽은 글이며, 속담이나 비속한 말이라도 잘 살려 쓰면 생기를 발하는바 살아 있는 글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연암은 언어의 아속雅俗(고상함과 비속함)을 기계적으로 구분하던 당대 사대부의 문학론에서 탈피해 글쓰기에서 언어와 표현의 영역을 확장시키면서 문학의 진실성을 회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단락이 보여주는 언어와 표현은 퍽 비속하여 당시 점잖은 문인이나 사대부가 이 글을 봤다면 필시 눈썹을 찌푸리거나 혀를 쯧쯧 찼을 것이다. “맨몸으로 서로 치고받고(相臝體敺擊)” “마구 토해서(歐吐)” “속이 뒤집혀(胃翻眩暈)”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그만둘(幾死乃已)” 따위의 말은 점잖은 신분의 사대부를 형용한 말치고는 지나치게 상스럽고 적나라하다.
게다가 이 글은 소설이나 패설류稗說類도 아니고 명색이 제문이지 않은가. 제문이란 정통 한문학의 한 문체로서, 그것대로의 족보가 있고 관습이 있으며 규범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연암은 굳어 있는 격식이나 상투적인 언어를 따르지 않고 파격적이고 자유분방한 글쓰기를 통해 석치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대담하고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 결과 이 글은 의례적인 글이 아닌 연암의 진실한 마음이 속속들이 배어 있는 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 전문
인용
1. 파격적인 제문
5. 석치를 저주한 사람들
7. 진짜로 네가 죽었구나
8. 사라져 버린 본문
10. 울울하던 그날 함께 하던 벗
12. 총평
'책 > 한문(漢文)'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석치 제문 - 5. 석치를 저주한 사람들 (0) | 2020.04.18 |
---|---|
정석치 제문 - 4. 천문학ㆍ수학ㆍ지리학 등 학문에 뛰어났던 그대 (0) | 2020.04.18 |
정석치 제문 - 2. 일상 속 빈자리를 통해 너의 부재를 확인하다 (0) | 2020.04.18 |
정석치 제문 - 1. 파격적인 제문 (0) | 2020.04.18 |
형수님 묘지명 - 11. 총평 (0) | 2020.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