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정석치 제문 - 9. 너무나 인간적인 나의 친구 본문

책/한문(漢文)

정석치 제문 - 9. 너무나 인간적인 나의 친구

건방진방랑자 2020. 4. 18. 08:26
728x90
반응형

9. 너무나 인간적인 나의 친구

 

 

탈락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그리고 혹 그 부분에 대한 보충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여기서 잠시 연암과 정석치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정석치의 인간적 특성과 재예才藝에 대해 조금 언급해두기로 한다.

연암과 정석치는 언제부터 알게 된 걸까? 과정록초고본에는 이런 기록이 보인다.

 

 

아버지는 임진년(1772)과 계사년(1773) 사이에 가족을 석마石馬(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돌마 일대)에 있는 처가로 보내고 늘 홀로 서울의 전의감동 집에 거처하셨다. 홍담헌 대용, 정석치 철조, 이강산李薑山 서구書九와 때때로 서로 왕래하셨고, 이무관 덕무, 박재선朴在先 제가齊家, 유혜풍 득공이 늘 아버지를 좇아 노닐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연암이 정철조와 알게 된 것은 적어도 1772년 이전이다. 한편 홍대용과 정철조는 지금의 남양주시 북한강변에 있던 석실서원의 미호 김원행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다. 두 사람은 나이도 비슷하고(정철조가 홍대용보다 한 살 위임), 천문학과 수학 등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홍대용이 연암과 처음 만난 것은 1766년경으로 추정된다. 홍대용은 중국여행에서 돌아온 그해 자신이 편찬한 책 중국인 벗들과의 우정(會友錄)의 서문을 받기 위해 연암의 집을 찾았고 이것이 둘의 첫 만남이지 않을까 짐작된다. 홍대용과 정철조의 관계를 생각해본다면 정철조는 빠르면 이때쯤, 늦어도 1770년대가 시작되기 전에는 연암과 교유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위에 인용한 과정록에 의하면 연암이 1772년 무렵 가장 가까이했던 사람은 홍대용, 정철조, 이서구,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이 다섯 사람이다. 앞의 세 사람은 문벌이 있는 양반이고, 뒤의 세 사람은 서얼이다. 한편 이서구는 그 문벌과 훗날의 지위 때문에 홍대용 등과 함께 묶여 거론된 것으로 보이지만 연암보다 17세 연하로서 연암의 문생에 해당한다. 서얼 출신의 세 사람은 주지하다시피 모두 연암의 문생들이다. 이렇게 본다면 연암과 동급의 친구란 홍대용과 정철조 단 두 사람이다.

홍대용과 연암이 얼마나 가까웠는지에 대해서는 앞에서 누차 언급했으므로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연암이 키가 크고 거구였으며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였음에 반해 홍대용은 몸이 호리호리하고 성격이 단아했다. 한편 연암이 불우한 중년기 이래 술을 좋아하여 말술을 불사했음에 반해 담헌은 술을 하지 못했다. 요컨대 연암이 문인형이라면 담헌은 학자형이었던 셈이다. 두 사람은 사뭇 다른 면모를 지녔지만 서로를 존중해 처음 만난 이래 끝까지 서로 공경하는 태도를 잃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정철조는 평생 천문학과 지리학에 전념하면서 천문 관측기구를 직접 제작하기도 하고 지도를 만들기도 하는 등 학자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홍대용과는 달리 아주 술을 좋아했으며 주량이 크기로 유명했던 것 같다. 지도를 제작하고 천문학에 전심한 것을 보면 정철조의 성격은 꼼꼼하고 치밀했던 게 틀림없다(지도 제작에는 대단한 세심함이 요구되는바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소탈하고 호방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런 성격은 그의 예술가적 기질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정철조는 당대 1급의 자연과학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빼어난 화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성대중의 문집에 의하면 그는 술에 대취하여 영감이 이르면 그때 붓을 휘저어 그림을 그리곤 하였다. 호방하고 술을 몹시 좋아하며 예술가적 일탈을 일삼았다는 점에서 정철조는 연암과 기질적으로 너무나 잘 통하는 둘도 없는 벗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연암은 홍대용과 마주해서는 점잖은 말로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정철조와는 술이 거나해지면 때로 광태狂態를 연출하면서 흉허물 없이 지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파격적인 제문

2. 일상 속 빈자리를 통해 너의 부재를 확인하다

3. 자유분방하게 감정을 토로하다

4. 천문학ㆍ수학ㆍ지리학 등 학문에 뛰어났던 그대

5. 석치를 저주한 사람들

6. 머리로 아는 죽음과 가슴으로 느껴지는 죽음

7. 진짜로 네가 죽었구나

8. 사라져 버린 본문

9. 너무나 인간적인 나의 친구

10. 울울하던 그날 함께 하던 벗

11. 파격적인 제문을 쓸 수밖에 없던 이유

12. 총평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