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리지 않고 그리기②
홍일점을 그려내는 법
“여린 초록 가지 끝에 붉은 한 점, 설레이는 봄빛은 많다고 좋은 것 아닐세[嫩綠枝頭紅一點, 動人春色不須多].”라는 시가 출제된 적도 있었다.
화가들은 일제히 초록빛 가지 끝에 붉은 하나의 꽃잎을 그렸다. 모두 등수에는 들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푸른 산과 푸른 강이 화면 가득한 중에, 그 산 허리를 학 한 마리가 가르고 지나가는데, 그 학의 이마 위에 붉은 점 하나를 찍어 ‘홍일점(紅一點)’을 표현하였다. 그런데 정작 일등으로 뽑힌 그림은 화면 어디에서도 붉은 색을 쓰지 않았다. 다만 버드나무 그림자 은은한 곳에 자리 잡은 아슬한 정자 위에 한 소녀가 난간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을 그렸을 뿐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흔히 여성을 ‘홍(紅)’으로 표현하곤 하였으므로, 결국 그 소녀로써 ‘홍일점(紅一點)’을 표현했던 것이다. 진선(陳善)의 『문슬신어(捫蝨新語)』에 나오는 이야기다.
외로운 배를 그려내는 법
“들 물엔 건너는 사람이 없어, 외로운 배 하루 종일 가로 걸렸네[野水無人渡, 孤舟盡日橫].” 적막한 강나루엔 하루 종일 건너는 사람이 없고, 빈 배만 버려진 채로 가로 놓여 강물에 흔들리고 있다. 이 제목이 주어졌을 때, 2등 이하로 뽑힌 사람 가운데 어떤 이는 물가에 매여 있는 빈 배의 뱃전에 백로가 한쪽 다리로 서서 잠자고 있는 장면을 그렸다.
또 어떤 이는 아예 배의 봉창 위에 까마귀가 둥지를 튼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1등 한 그림은 그렇지가 않았다. 사공이 뱃머리에 누워 피리를 빗겨 불고 있었다. 시는 어디까지나 건너는 사람이 없다고 했지 사공이 없다고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예 사공도 없이 텅 빈 배보다는 하루 종일 기다림에 지친 사공이 드러누워 있는 배가 오히려 이 시의 무료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드러내기에는 제격일 듯싶다. 이 화가는 의표를 찌르고 있는 것이다. 등춘(鄧椿)의 『화계(畵繼)』에 나오는 이야기다.
▲ 전(傳) 김홍도(金弘度), 「춘의도(春意圖)」, 18세기, 45X30cm, 개인 소장
대낮 섬돌 위에 남녀 신발이 한 켤레씩 놓였고, 방문은 굳게 닫혔고, 사방은 고요하고 인적도 끊겼다. 노골적인 남녀의 성애(性愛)를 그린 것은 춘화도(春畫圖)라 하고, 에로틱한 분위기만 나타낸 것은 춘의도라 한다. 수십 장의 연작 중 하나다.
인용
1. 그리지 않고 그리기①
2. 그리지 않고 그리기②
3. 그리지 않고 그리기③
4. 말하지 않고 말하기①
5. 말하지 않고 말하기②
6. 말하지 않고 말하기③
9. 정오의 고양이 눈①
10. 정오의 고양이 눈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