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말하지 않고 말하기③
주변을 읊어 자기감정을 얘기하다
獨坐無來客 空庭雨氣昏 | 홀로 앉아 오는 손님도 없고 빈 뜰엔 빗 기운만 어둑하구나. |
魚搖荷葉動 鵲踏樹梢飜 | 물고기 흔드는지 연잎이 움직이고 까치가 밟았는가 나무가지 흔들리네. |
琴潤絃猶響 爐寒火尙存 | 거문고 젖었어도 줄은 울리고 화로는 싸늘한데 불씨는 남아 있네. |
泥途妨出入 終日可關門 | 진흙길이 출입을 가로 막으니 하루 종일 문을 닫아 걸고 있으리. |
서거정(徐居正)의 「독좌(獨坐)」란 작품이다. 일견 속세를 떠나 칩거하고 있는 은사의 유유한 생활을 노래한 작품인 듯하지만, 속사정을 따져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찾아오는 손님 없이 혼자 앉아 있다는 1구는, 아무도 나를 찾아올 리가 없다는 체념과, 그래도 혹시 누군가 오지는 않을까 하는 기다림의 마음이 뒤섞인 모순된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 아무도 오지 않고, 시인은 찌푸려 흐린 날씨에 빈 뜰을 그저 허허롭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3ㆍ4구에서 시인의 시선은 물고기가 흔들어 움직이는 연잎의 살랑거림, 까치가 앉았다 날아간 자리에 나뭇가지의 일렁거림을 포착하고 있다. 주변의 사소한 변화도 민감하게 포착하는 그의 반응을 통해 우리는 변화에 대한 그의 강렬한 희망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지금 서재나 마루에서 빈 뜨락을 내다보고 있다. 그러니 마당 연못, 그것도 연꽃 아래 물고기의 모습이 보일 까닭이 없다. 그러니까 ‘물고기가 흔들었다’는 진술은 시인의 추정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까치도 보지 못했으나 나뭇가지의 일렁임을 통해 상황을 짐작하고 있다. 이렇듯 전 4구는 시인이 매우 고독할 뿐 아니라 권태롭고 변화를 갈망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5ㆍ6구를 보자. 이번에는 습기를 잔뜩 머금어 눅눅한 거문고와 싸늘하게 식은 화로가 등장한다. 거문고는 비 기운에 습기를 잔뜩 머금어 소리가 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뚱겨 보니 뜻밖에 소리가 난다. 화로는 손을 대어 보니 싸늘하여 불씨가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헤집어 보니 불씨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왜 갑자기 거문고와 화로로 화제를 돌렸을까. 소리가 안 나는 거문고와 불씨가 꺼진 화로는 제 기능을 상실해 버린 상태를 의미하고, 소리가 안날 줄 알았는데 소리가 나고, 불씨가 없을 줄 알았는데 불씨가 있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쓸모없이 보여도 그 안에는 아직 쓸모를 간직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 거문고와 화로의 원관념은 바로 시인 자신인 것을 알 수 있겠다. 시인은 결국 지금 세상이 쓸모없다고 자신을 버려도, 나는 아직 가슴 속에 경국제세(經國濟世)에의 포부를 간직하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비로소 7ㆍ8구의 문맥이 소연(蕭然)해진다. 진흙탕 길이 정상적인 출입을 가로막고 있으니 나가지 않고 문을 닫아걸고 있겠노라는 것이다. 진흙탕 길은 곧 뜻있는 인사로 하여금 자신의 경륜과 포부를 펼칠 수 없도록 억압하고 제한하는 현실의 상황을 말한다. 대개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야 우리는 서거정(徐居正)의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홀로 앉아 있음[獨坐]’의 참 의미는 하수상한 시절에 때를 기다리는 오롯한 몸가짐과 기다림이었던 것이다.
인이불발(引而不發)로 용맹을 드러내다
송나라 때 유명한 화가 이공린(李公麟)이, 한나라 때 장수 이광(李廣)이 오랑캐 아이와 말을 빼앗아 적지에서 탈출하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광(廣)은 아이를 옆에 낀 채 말을 몰아 남으로 달리면서 오랑캐 아이의 활을 빼앗아, 힘껏 당겨 추격해오는 기병을 겨누고 있었다. 화살이 곧바로 발사될 곳을 보니 사람과 말이 모두 활에 응하고 있었다. 이공린은 함께 그림을 보던 황산곡(黃山谷)에게 웃으며 말하였다. “속된 자로 하여금 이를 그리게 한다면 마땅히 추격하는 기병이 화살에 맞은 모습으로 그렸겠지요.” 황산곡은 그의 이 말을 듣고 그림의 격에 대해 크게 깨달았을 뿐 아니라, 시의 원리 또한 한 가지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제모연곽상보도(題摹燕郭尙父圖)」에 나오는 이야기다.
꼭 이광(李廣)의 화살이 추격병의 가슴을 꿰뚫어야 만이 그의 용맹한 정신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의전신(寫意傳神)’의 본질을 해칠 뿐이다. 다 말하지 않고 말하기, 다 그리지 않고 그리기, 시와 그림은 이러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인용
1. 그리지 않고 그리기①
2. 그리지 않고 그리기②
3. 그리지 않고 그리기③
4. 말하지 않고 말하기①
5. 말하지 않고 말하기②
6. 말하지 않고 말하기③
9. 정오의 고양이 눈①
10. 정오의 고양이 눈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