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말하지 않고 말하기②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시
다음은 두보(杜甫)의 유명한 「춘망(春望)」이란 시이다.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 나라 망했어도 산하는 그대로 봄 성엔 초목만 무성해. |
感時花溅淚 恨別鳥驚心 | 때에 느꺼워 꽃을 대해도 눈물 쏟아지고 이별 한스러워 새 보아도 마음 놀라네. |
이 시를 지을 당시 두보는 안록산(安祿山)의 난리 중에 반군의 손에 사로잡혀 경성에 갇혀 있는 처지였다. 만신창이가 된 종묘사직과 도탄에 빠진 백성의 생활은 그로 하여금 무한한 감개에 젖어들게 했다. 그는 이러한 감개를 흐드러진 봄날의 경물에 얹어 노래하고 있다. 사마광(司馬光)은 이 시를 평하여 『온공속시화(溫公續詩話)』에서 이렇게 적었다. “산하(山河)가 남아 있다고 했으니 나머지 물건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초목이 우거졌다 했으니 사람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꽃과 새는 평상시에는 즐길만한 것인데, 이를 보면 눈물 나고, 이를 들으면 슬프다 하였으니 그 시절을 알 수 있겠다[山河在, 明無餘物矣, 草木深, 明無人矣. 花鳥平時可娛之物, 見之而泣, 聞之而悲, 則時可知矣].” 즉 시인의 가슴 속에 남아 있던 태평성대에의 기억은 무참히 사라지고, 세상은 어느새 폐허로 변하여 시인으로 하여금 무한한 감개와 슬픔 속으로 젖어 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은 ‘나라는 망했지만 산하만은 남아 있다’는 것인데, 시인이 말하려 한 것은 ‘나라가 망하고 보니 남은 것은 산하뿐이다’이며,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은 ‘봄날 성에는 풀과 나무가 우거졌다’는 것이지만,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전 사람들로 붐비던 성에는 사람의 자취를 찾을 길 없고, 단지 잡초만이 우거져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것들을 일일이 다 언어로 설명한다면 여기에 무슨 여운이 남겠는가. 그래서 사마광은 윗글에 이어 “옛 사람은 시를 지음에 뜻이 말 밖에 있는 것을 귀하게 여겨,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여 이를 얻게 하였다[古人爲詩, 貴於意在言外, 使人思而得之].”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인이 다 말해 버려, 독자가 더 이상 생각할 여지가 없는 것은 시가 아니다.
평범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岐王宅裏尋常見 | 기왕(岐王)의 집에서 늘상 보더니 |
崔九堂前幾度聞 | 최구(崔九)의 집 앞에서 몇 번을 들었던고. |
正是江南好風景 | 정히 강남 땅에 풍경이 좋으니 |
落花時節又逢君 | 꽃 지는 시절에 또 그대를 만났네. |
유명한 두보(杜甫)의 「강남이구년(江南逢李龜年)」이란 시이다. 필자는 이 시를 고등학교 시절 『두시언해(杜詩諺解)』를 배우면서 처음 접했다. 그 당시 이 시를 읽고 난 느낌은 무슨 시가 이렇게 싱거운가 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왕(岐王)과 최구(崔九)의 집에서 익히 만나 알던 이구년(李龜年)이란 가수를 강남에서 좋은 봄날 또 만났다는 것이 이 시가 전달하고 있는 의미의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무슨 시적인 표현이 있는가.
안사(安史)의 난리를 겪은 당나라는 이미 전날 태평성대의 자취는 찾아 볼 길 없었고, 당시 두보(杜甫)는 “서남의 천지 사이를 떠돌며[漂泊西南天地間]” 지내다가 강남땅에 다달았을 때였다. 꽃이 분분히 지는 모춘(暮春)의 때에, 그는 길에서 우연히 장안 시절 알고 지내던 당대의 유명한 가수, 그러나 이제는 생계를 위해 거리의 악사로 전락해 버린 이구년(李龜年)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장안 시절에는 두보(杜甫)나 이구년이나 모두 당대의 귀족이었던 기왕(岐王)과 최구(崔九)의 파티에 초대받을 정도로 명성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일은 한꺼번에 변하여 버려, 이제 두 사람은 지친 피난민의 신세로 하늘가를 떠돌다 낯선 거리에서 서글픈 상봉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3.4구는 그저 평담(平淡)한 듯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실로 침통하고도 무한한 감개가 서리어 있다. 3구는 앞서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의 독법으로 헤아릴 수 있으려니와, 4구의 ‘낙화시절(落花時節)’은 그 담긴 뜻이 참으로 심장하다. 우선은 두 사람이 만날 당시가 ‘낙화시절’이라는 의미일 것이고, 이는 다시 좋은 시절을 다 보내고 난 두 사람의 '낙화시절'이기도 한 것이며, 동시에 성세(盛世)의 번화(繁華)를 뒤로 보낸 당나라의 ‘낙화시절’이기도 한 것이다. 한 층 한 층 의미가 확장되면서 울리는 여운이 길고 가녀린 파장을 남기고 있다.
인용
1. 그리지 않고 그리기①
2. 그리지 않고 그리기②
3. 그리지 않고 그리기③
4. 말하지 않고 말하기①
5. 말하지 않고 말하기②
6. 말하지 않고 말하기③
9. 정오의 고양이 눈①
10. 정오의 고양이 눈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