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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그림과 시 - 10. 정오의 고양이 눈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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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그림과 시 - 10. 정오의 고양이 눈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5.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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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정오의 고양이 눈

 

 

안목 있는 사람의 눈엔 덧칠한 게 보인다

 

홍만종(洪萬宗)소화시평(小華詩評)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호민(李好閔)이 어느 날 소낙비가 창문을 두드리자 갑자기 시 한 구절을 얻었는데, “산 비가 창문에 떨어짐이 많구나[山雨落窓多]”라 하였다. 그리고는 이를 이어 다시 짓기를, “시냇물은 대 숲 뚫고 졸졸 흘러가네[磵流穿竹細]”라 하고, 마침내 시 한편을 이루어 이산해(李山海)에게 보였다. 그러자 그는 산우락창다(山雨落窓多)’에만 비점을 찍어 돌려보냈다.

이호민이 그 까닭을 묻자 이산해는 이렇게 말하였다. “공이 실제 경물과 만나 먼저 이 구절을 얻었을 것이다. 나머지 구절은 그 다음에 만든 것이다. 시 전편의 참된 뜻이 모두 이 구절에 있기 때문에 거기에만 비점을 쳤다.”

五峯適見急雨打窓, 忽得一句曰: “山雨落窓多.” 仍續上句曰: “磵流穿竹細.” 遂補成一篇. 寄示鵝溪, 鵝溪只批點山雨之句而還之.

五峯後問其故, 鵝溪曰: “公必値眞境, 先得此句. 而餘皆追後成之, 一篇眞意都在此句故耳.” 其詩鑑如此.

 

 

비록 속인들을 속일 수는 있어도, 안목 있는 사람 앞에서 진짜와 가짜는 금세 판별되고 마는 법이다.

 

 

 

자연스럽게 지어낸 시, 인위적으로 꾸며낸 시

 

다음은 강혼(姜渾)임풍루(臨風樓)란 시의 일련이다.

 

紫燕交飛風拂柳 제비가 짝져 날아 버들가지 날리는데
靑蛙亂叫雨昏山 청개구리 개굴개굴 비 기운에 어둑한 산

 

김유(金廋)객중우음 봉증단오문안사정령공(客中偶吟 奉贈端午問安使丁令公)시에서 이를 변용시켜 다음의 일련을 얻었다.

 

遙山帶雨池蛙亂 먼 산 비 기운 띠자 연못 개구리 어지럽고,
高柳含風海燕斜 버드나무 바람 머금어 제비는 비스듬 나네

 

한시는 7언의 경우 넉 자 석 자, 5언의 경우 두 자 세 자로 끊어 읽는다. 또 각구는 허사(虛辭)실사(實辭)로 이루어진다. ‘자연(紫燕)’청와(靑蛙)’에서 ()’()’이 허사라면, ‘()’()’는 실사이다. ! 이제 두 구절을 비교해 보자. 앞 시의 실사는 의 여섯 글자다. 이 여섯 글자를 표시해 두고, 뒤의 시에서 어떤 위치로 옮겨 가 있는지 살펴보자. 김류의 시는 강혼의 시와 비교하여 볼 때 우선 아래 위가 바뀌었고, 앞뒤의 순서도 바뀌었으며, 다만 허사를 교체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두 시의 의경을 비교해 보자. 둘 다 봄날 비 올 무렵의 경물을 묘사하고 있다. 강혼의 시를 보면, 제비가 짝져 날아 그 활발한 날갯짓이 바람을 일으켜 버들가지를 하늘거리게 하고, 청개구리가 개굴개굴 울어대자 마치 응답이라도 하듯 먼 데 산이 빗기운에 어둑해지더라고 했다. 봄날의 약동하는 흥취가 제비의 경쾌한 날개짓과 청개구리의 울음소리 속에 물씬하다. 뿐만 아니라 제비와 청개구리의 행동은 무정물인 버드나무 및 산과 상호 교감하고 있다. 그런데 김류의 시는 어떠한가. 그저 먼 산이 빗기운을 띠자 개구리도 그걸 보고 시끄럽게 울고, 버드나무 사이로 부는 세찬 바람에 제비의 날개짓도 비스듬하다는 것이니, 단어와 단어 사이의 탄력은 없고 여운도 적다. 어음(語音) 면에서도 음악미가 부족하다. 강혼이 봄날의 경치와 직접 마주하여 떠오른 흥취를 노래했다면, 김류의 시는 강혼의 구절을 가공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이미지의 사용이 거의 같음에도 불구하고 시의 격은 크게 달라지고 말았다. 말하자면 하나는 진짜고 하나는 가짜다. 그런데 그 차이는 종이 한 장 밖에는 되지 않는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그리지 않고 그리기

2. 그리지 않고 그리기

3. 그리지 않고 그리기

4. 말하지 않고 말하기

5. 말하지 않고 말하기

6. 말하지 않고 말하기

7. 장수는 목이 없고, 미인은 어깨가 없다

8. 장수는 목이 없고, 미인은 어깨가 없다

9. 정오의 고양이 눈

10. 정오의 고양이 눈

11.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

12.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

13.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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