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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그림과 시 - 13.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③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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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그림과 시 - 13.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③

건방진방랑자 2021. 12. 5.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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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

 

 

기러기에 자신의 감정을 얹다

 

차천로(車天輅)영고안(詠孤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山河孤影沒 天地一聲悲 산하엔 외로운 그림자 없어지고 천지에 한 소리만 비장하더라.

 

날아가던 기러기의 외로운 그림자는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도 아직 시인의 귀에는 천지를 가득 메운 기러기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러기야 무슨 외롭고 말고 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깊은 밤 까닭 모를 근심에 겨워 잠 못 이루고 뜨락을 서성이던 시인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기러기라는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얹어 노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큰 기교는 졸렬해 보인다

 

대개 이러한 것이 경물과 시인의 정신이 만나 결합되는 양상들이다. 이렇듯 한 편의 훌륭한 시는 겉으로는 덤덤한 듯하지만 하나하나 음미해 보면 그 행간에 감춰진 함의가 무궁하여 말은 다함이 있어도 뜻은 다함이 없는[言有盡而意無窮]’의 경계를 맛보게 해 준다. 시인의 진실한 느낌이 없는 시는 아무리 아름다운 표현으로 휘갑되었다 하더라도 독자의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맹자(孟子)는 아무리 아름다운 서시(西施)와 같은 미인이라 하더라도 오물을 뒤집어쓰면 사람들이 모두 코를 막고 이를 지나친다[西子蒙不潔, 則人皆掩鼻而過之]고 말한 바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훌륭한 뜻을 담았다 하더라도 올바른 표현을 얻지 못한다면 읽는 이들은 외면하여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시는 본바탕의 부족함을 감추려고 덕지덕지 분을 바른 여인의 분내를 경멸한다.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는 글씨를 쓰다 남은 먹이 버리기 아까워 그린 듯한 갈필의 거친 선 몇 개로 이루어져 있다. ‘대교약졸(大巧若拙)’, 정말 큰 기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언제나 졸렬해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시인의 덤덤한 듯, 툭 내뱉듯이 던지는 한 마디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예리한 비수가 되어 독자의 의식을 헤집는다. 좋은 시는 독자에게 방심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을 준다. 이에 반해 화가의 정신이 들어가 있지 않은 어떤 그림도 이발소 그림, 목욕탕 벽화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과 똑같이 그려진 영화관의 간판은 결코 우리를 감동시키지는 못한다. 가끔 그 기교가 우리를 감탄시킬 수 있을 뿐이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그리지 않고 그리기

2. 그리지 않고 그리기

3. 그리지 않고 그리기

4. 말하지 않고 말하기

5. 말하지 않고 말하기

6. 말하지 않고 말하기

7. 장수는 목이 없고, 미인은 어깨가 없다

8. 장수는 목이 없고, 미인은 어깨가 없다

9. 정오의 고양이 눈

10. 정오의 고양이 눈

11.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

12.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

13.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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