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글자로 쌓은 탑③
개화기의 잡지 『청춘』 제 6호(1915.3)에는 매우 흥미로운 시 한 수가 실려 있다. 조판의 어려움 때문에 원래 상태로는 보여줄 수 없어 유감이지만, 바둑판 모양으로 가로 세로 14자씩 배열하여, 글자는 중앙을 향하도록 방사형으로 배치하였다. 제목은 「부벽루기(浮碧樓記)」이다. 읽는 법은 중앙의 글자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한 글자씩 차례로 늘려 읽는 것이다. 펼쳐 보면 이 작품은 1자로부터 10까지 늘어났다가 다시 1자까지 줄어드는 마름모꼴의 특이한 시형이 된다.
樓 |
樓 |
江岸 |
城頭 |
浮碧空 |
帶長流 |
壯觀四海 |
雄壓西州 |
側身窺宇宙 |
引手挽牛斗 |
仙人所以好居 |
騷客幾多來遊 |
風烟四節各殊狀 |
人事千年等幻漚 |
乙密臺邊神馬不還 |
麒麟窟裏古跡空留 |
高登雕欄頓覺逸興生 |
逈挹平原便欣塵慮休 |
丹靑曜日一杯可消百憂 |
寒氣逼骨五月疑是九秋 |
僧歸暮寺時聞響竹笻 |
客過烟浦每見倚蘭舟 |
東望香爐衆峰兀兀 |
西指京洛驛路悠悠 |
花明渡口開雲錦 |
月到波心掛玉鉤 |
靑槐遙連柳堤 |
歌曲時和漁謳 |
山川獨依舊 |
風景猶帶羞 |
名區久別 |
時序先遒 |
雖欲居 |
誠難留 |
騁眸 |
擡首 |
愁 |
愁 |
누각 |
누각. |
강언덕 |
성 머리. |
허공에 떠 |
긴물결 둘렀네. |
장하게 사해 보며 |
웅장히 서주 누르네. |
몸기울여 우주를 엿보고 |
손끌어 북두견우를 당기네. |
신선들 거처하기 좋은 곳이요 |
시인들 얼마나 많이 와 놀았던고. |
바람안개 사계절 각기 다른 그 모습 |
천년간 사람 일은 허깨비요 물거품일세. |
을밀대 곁으로 신마는 돌아올 줄 모르나니 |
기린굴 속에는 옛날의 자취만 쓸쓸히 남았네. |
채색 난간 오르니 문득 맑은 흥 일어남 깨닫겠고 |
멀리 평원 바라보니 문득 티끌 생각 사라짐 기뻐라. |
단청에 해 비치니 한잔 술에 온갖 근심 사라져 버리고 |
찬 기운 오싹 뼈에 스며 오월에도 한 가을인가 의심한다네. |
중이 저물녘 절에 돌아가니 이따금 대지팡이 소리 들리고 |
객은 내낀 물가 지나다 언제나 목란 배에 기댐을 보네. |
동편으로 향로봉 바라보면 뭇 메들 우뚝 솟아 있고 |
서쪽으로 서울 쪽 가리키면 역마 길은 아득해라. |
나루 어귀 핀 꽃은 구름 비단 펼친 듯 하고 |
강바닥에 이른 달빛은 옥갈고리 걸은 듯. |
홰나무는 멀리 버들 둑에 맞닿았고 |
노래 소린 어부가에 화답한다네. |
산천만은 홀로 변함이 없는데 |
경치는 오히려 부끄럽구나. |
이 좋은 곳 떠나려니 |
계절이 먼저 가서, |
더 머물고싶어도 |
그럴 수 없어, |
바라보다가 |
고개 들면, |
근심 |
근심 |
번역도 의식적으로 마름모꼴이 되도록 해 보았다. 이러한 종류의 문자유희는 적어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장난기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시인은 까다로운 제한을 걸어 놓고, 여기에 진중한 내용을 담아 자신의 언어구사력을 한껏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층시의 전통은 개화기 시가에서 그 편린을 보이다가 조지훈의 「백접(白蝶)」에 와서 다시 재현된다.
밤 꽃 불 슬 고 정 가 병 하 너 조 기 가 작 꽃 별 노 한
진 다 픈 요 가 슴 들 이 는 촐 쁜 슴 은 피 섬 래
가 피 히 로 에 거 얀 갔 히 노 가 葬 는 겨
리 지 운 눈 라 花 구 사 래 을 送 밤
라 눈 물 아 瓣 나 라 숨 되 譜
물 지 픈 고 잊 진 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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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를 접으면 마치 한 마리 나비 모양이다. 일부러 9자구를 생략하여 나비 날개의 가운데 부분을 형상화 하고 있다. 이밖에 시를 회화적 형상으로 나타내려는 시도는 외국시의 경우에도 흔히 발견된다.
인용
1. 글자로 쌓은 탑①
2. 글자로 쌓은 탑②
3. 글자로 쌓은 탑③
4.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①
5.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②
6.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③
7.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④
8.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⑤
9.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⑥
10.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⑦
11. 그림으로 읽기, 신지체①
12. 그림으로 읽기, 신지체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