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⑥
비슷하지만 좀 더 복잡한 예를 하나 더 읽어보자. 명나라 장조(張潮)가 엮은 『해낭촌금(奚囊寸錦)』에 실린 「영기(令旗)」란 작품이다. 위 그림에서 보듯 깃발 안에 49자가 적혀 있고, 정중앙의 ‘영(令)’ 자만 검게 표시했다. 이 시를 읽는 방법은 좀 복잡하다. 중앙의 ‘영’자에서 출발해서 아래로 내려와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7자씩 끊어 읽는다. 그리고 다음 구의 첫 자는 전 구의 끝 글자를 반으로 갈라서 따온다. 예를 들어 첫 구의 끝 글자 ‘명(銘)’에서 ‘금(金)’을 취하고, 둘째 구의 끝 글자 ‘쟁(琤)’에서 ‘왕(王)’ 자를 취하는 방식이다. 퍼즐을 풀면 다음과 같다.
令出功成好勒銘 | 영 내리면 공 이루어 공 새기기 좋은데 |
金戈鐵馬靜瑽琤 | 쇠 창과 갑옷 말이 고요히 쟁글댄다 |
王侯仗此安邊檄 | 왕후께서 이를 기대 변방 격서 안돈하고 |
文武憑伊致太平 | 문무가 너를 빌려 태평을 이루도다 |
一面巧排龍虎勢 | 한 면으로 용호 형세 교묘히 물리치고 |
執宮分列斗牛横 | 궁을 지켜 두우진(斗牛陳)을 나누어 벌인다네 |
黃藍紅白仍兼綠 | 황색 남색 홍색 백색 녹색마저 아우르니 |
彔隊元戎總擅名 | 좋은 부대 무기들이 온통 이름 떨치누나 |
각 구절의 끝 글자와 다음 글자의 첫 글자를 보면 절반씩 갈라 꼬리따기 식으로 접속된다. 시의 내용은 군령기의 효용과 의미를 기렸다. 그림 자체를 설명한 셈이다. 단순한 화문에 다시 하나의 파자퍼즐을 보탠 난이도가 높은 형태다.
『해낭촌금(奚囊寸錦)』에 수록된 시 한 수 더 보자. 삼각형 안에 다시 삼각형을 넣은 모습이다. 삼각형의 세 꼭지점에 ‘유석도(儒釋道)’ 세 글자를 넣었다. 제목은 「함삼위일(函三爲一)」 읽는 법은 꼭대기 ‘유(儒)’에서 시작 한 바퀴 돌아 ‘자(子)’에서 안쪽 삼각형을 돌아 처음 ‘유(儒)’에서 맺는다. 시를 읽으면 다음과 같다.
儒家萬券高於釋 | 유가의 만 권이 불가 보다 높으니 |
佛典咸通看道書 | 불전에 모두 통해 도서를 본다네 |
仙子丹藏券石內 | 신선의 단서 경전 석실 안에 간직되니 |
咸邀納子拜吾儒 | 납자를 다 맞이해 오유(吾儒)에서 절 올린다 |
세 개의 꼭지점에 나란했던 학문이 한 줄기로 회통하여 유학으로 일원화되는 과정을 내용뿐 아니라 읽는 순서를 통해서도 드러내 보였다.
인용
1. 글자로 쌓은 탑①
2. 글자로 쌓은 탑②
3. 글자로 쌓은 탑③
4.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①
5.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②
6.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③
7.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④
8.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⑤
9.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⑥
10.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⑦
11. 그림으로 읽기, 신지체①
12. 그림으로 읽기, 신지체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