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③
회문시 중에는 글자를 하나씩 밀려서 읽어도 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차 주전자에 흔히 써넣는 「다호시(茶壺詩)」이다. ‘가이청심야(可以淸心也)’라는 다섯 글자가 써 있는데, 이를 한 글자씩 밀면서 읽으면 이렇게 된다.
可以淸心也 | 마음을 맑게 할 수가 있고 |
以淸心也可 | 맑은 마음으로 마셔도 좋다. |
淸心也可以 | 맑은 마음으로도 괜찮으니 |
心也可以淸 | 마음도 맑아질 수가 있고 |
也可以淸心 | 또한 마음을 맑게 해준다. |
둥근 차 주전자에 돌려가며 쓴 글이니 사실 어느 글자로부터 읽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아무 글자부터 읽더라도 뜻이 통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것을 ‘자자회문시(字字廻文詩)’라고 한다.
이인로(李仁老)는 『파한집(破閑集)』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회문시는 제(齊)ㆍ량(梁)에서 시작되었으니 대개 문자의 유희일 뿐이다. 옛날 두도(竇滔)의 아내 소혜(蘇惠)가 비단을 짠 뒤에도 그 법이 오히려 남아 있어, 송 삼현(三賢)이 또한 모두 뛰어났다. 대저 회문시란 바로 읽어도 순조롭고 쉬우며, 거꾸로 읽더라도 뻑뻑하거나 껄끄러운 태가 없이 말과 뜻이 모두 묘한 뒤라야 좋다고 할 수 있다.
回文詩起齊ㆍ梁, 盖文字中戱耳. 昔竇稻妻織錦之後, 杼袖猶存, 而宋三賢亦皆工焉.
夫回文者, 順讀則和易, 而逆讀之亦無聲牙艱澁之態, 語意俱妙, 然後謂之工.
여기서 이인로(李仁老)가 말한 소혜의 직금이란 ‘회문선기도직금(回文璇璣圖織錦)’이 본래 이름인데, 하늘의 별자리 문양인 선기도안(璇璣圖案) 위에 가로 세로 각 29자 씩 841자를 바둑판처럼 수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841자를 수놓은 것을 돌려 읽거나 가로 세로로 읽거나 대각선으로 읽거나 건너 뛰어 읽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읽게 되면 무려 200여수의 아름다운 시를 얻을 수 있다. 중국에서는 역대로 이를 읽는 방법에 대한 논문이 여러 편 제출되고 있을 정도이다.
이후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모양의 직금도가 널리 성행하였다. 개화기 때는 아예 「소약란직금도(蘇若蘭織錦圖)」란 제목의 딱지본 소설까지 나왔다. 이후로 이를 응용하거나 변용한 다양한 형태의 작금도가 선보였다. 몇 예를 보이면 아래의 그림과 같다. 위의 두 그림은 필사본 고전소설 『옥린몽(玉麟夢)』에 나오는 삽화이고, 아래 두 그림은 『규방미담(閨房美談)』에 보인다. 이 작품들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읽어 수십 수에서 수백 수의 시를 조합해낼 수 있다. 직금(織錦)이라 한 것은 남편을 멀리 떠나보낸 아낙이 비단에 한 글자씩 수를 놓아 편지 대신에 부치곤 했던 전통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인용
1. 글자로 쌓은 탑①
2. 글자로 쌓은 탑②
3. 글자로 쌓은 탑③
4.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①
5.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②
6.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③
7.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④
8.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⑤
9.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⑥
10.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⑦
11. 그림으로 읽기, 신지체①
12. 그림으로 읽기, 신지체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