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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서사한시 스터디 - 조선의 시인들이 농부의 말을 담는 이유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서사한시 스터디 - 조선의 시인들이 농부의 말을 담는 이유

건방진방랑자 2020. 5. 2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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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시인들이 농부의 말을 담는 이유

 

 

올해 스터디가 저번 주부터 시작되어 첫 스타트를 끊었다. 올해는 서정적인 필치로 쓰여진 일반적인 한시를 벗어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서서한시를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공부하게 된 내용은 공교롭게도(아니 매우 치밀한 계획대로?) 두 편 모두 농부의 열심히 살아도 살 수 없는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두 번째로 카페에서 진행되는 스터디. 기대된다.  

 

 

 

서거정이 담아낸 농부의 말

 

처음으로 본 한시는 서거정토산촌사록전부어兎山村舍錄田父語라는 시다. 이 시는 서거정이 불암산 아래에 살고 있는 농부의 말을 듣고 그대로 기록한 시다. 과연 어떤 사연을 담고 있는지 들여다보도록 하자.

 

 

我家佛岩下 傍隣三四屋

1. “우리집 불암산 아래에 있어 이웃엔 3~4집뿐.

地薄皆荒田 耕治半沙礫

2. 땅 척박해 모두 거친 밭이라 경작할 때 반절이 자갈밭인데도

去歲官沒田 吏胥右豪猾

3. 작년에 관가가 밭을 몰수해버렸고 아전과 서리는 호활한 이들만 편들어

貧家無立錐 空餘懸磬

4. 가난한 집은 바늘 꽂을 곳 없이 공연히 경쇠 달린 집만 남았네.

僅僅起廢丘 年荒稅不足

5. 근근이 버려진 언덕을 일궜지만 흉년이라 세금내기 부족한대도

吏來日徵督 令嚴如火烈

6. 아전이 와서 날마다 징수 독촉하니 호령의 엄하기가 불같아 맹렬했지.

剜肉未醫瘡 逃竄匿崖谷

7. 심장의 살 도려내도 등창은 낫질 않아 도피하여 벼랑과 골짜기에 숨었네.

飢火煎膓肚 顏色日黎黑

8. 굶주림의 불이 창자와 위를 태울 듯하여 안색은 날로 검어졌지.

採薪入山中 山中盛薪棘

9. 땔나무 캐러 산에 들어가지만 산엔 땔나무 가득한데

家有黃犢兒 終年空復骨

10. 집엔 누런 송아지 있지만 한해 마치도록 굶주려 다시 뼈만 앙상.

䭾載亦不能 一步二顚踣

11. 짐 실으려 해도 또한 할 수 없어 한 걸음에 두 번 자빠지니

行行親負荷 兩肩赬已肉

12. 걸음걸음 친히 지게 되니 두 어깨는 붉어져 이미 살이 드러나네.

日暮始入城 路逢隴斷

13. 해 저물어 비로소 성곽에 들어갔는데 길에서 농단하는 나그네 만나면

折閱入錙銖 米貴賤估直

14. 가격을 후려쳐서 푼돈 들어오니 쌀은 귀하고 품삯은 쳔해지지.

尙念十口在 嗷嗷待哺啜

15. 오히려 열 식구의 입은 배고프다 아우성치며 다만 먹고 마시길 기다리는 걸 생각하자니

升㪷何足論 聊以慰飢渴

16. 되와 말 어찌 논하리오. 하릴없이 굶주림과 갈증만을 위로해줘야지.

歸來對妻兒 稍亦得饘粥

17. 돌아와 처자를 대하고 조금이나마 또한 죽을 얻을 수 있었지만

以此作生理 生理眞可惜

18. 이 때문에 살 도리를 짓자니 살 도리가 참으로 가련하기만 하죠.”

近來豪勢家 權利到木石

19. 근래의 호걸스런 권세가의 권세와 이익이 나무와 돌에까지 이르러

籠山作柴圃 禁人之樵牧

20. 산을 에워싸며 시포 만들어 사람이 땔나무 장만하는 일과 가축 기르는 일을 금하네.

西家採一薪 鞭韃恣流血

21. 서쪽 집에서 한 땔나무 캤다고 채찍질하여 낭자하게 피가 흐르고

東家蹊過牛 父子遭縶縛

22. 동쪽 집에선 소가 질러갔다고 아버지와 아들 포박 당하는구나.

公然掠民財 鎌斧盡漁獵

23. 공연히 백성이 재물을 약탈하고 낫과 도끼마저 다 약탈하죠.”

草木生山澤 天地之公物

24. 초목은 산과 연못에서 나니 천지 공용의 사물인데도

小民獨何辜 亦不蒙其渥

25. 하찮은 백성들만 유독 무슨 잘못으로 또한 윤택함을 입지 못하는가?

國家重貴近 尊位厚其祿

26. 국가는 귀하고 가까운 이 중하게 여겨 벼슬을 높여주고 봉록 후하게 주는데

胡爲逐小利 不仁至此極

27. 어째서 작은 이익을 쫓아 불인함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

君子尙節義 見此欲嘔殼

28. 귀하고 가까운 이가 만약 군자여서 절의를 숭상한다면 이를 보고서 본질을 말하리라.

嗚呼我民生 何以得生恩

29. ! 나의 백성의 삶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얻게 될까?

我今聞此語 中夜獨嗚咽

30. 나는 오늘 이 말을 듣고 한밤중에 홀로 오열하며 목메어 하노라.

 

 

내용을 읽어보면 농부가 처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위의 내용은 크게 네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4행까지는 돌밭인 척박한 땅임에도 농사를 지으려 하니 관가에 몰수를 당했고 그런 관가는 자신들을 편들어주기보다 권세가들을 편들어줘 가난한 살림이 더욱 가난해졌다는 사실을 다뤘고

5~8행까지는 기울어가는 살림임에도 기운을 내 다시 밭을 일궈보지만 흉년이 찾아왔고 설상가상으로 세금 독촉으로 인해 굶주림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을 이야기했으며

9~18행까지는 농사를 지을 수 없어 겨우 땔나무를 해서 팔러가더라도 농단하는 사람 때문에 땔나무 값은 후려쳐져 제대로 쌀조차 살 수 없다는 걸 이야기했고

19~23행까지는 권세가들이 왕토王土인 산을 개인의 공간으로 만들어 땔나무를 하러 들어오거나 소가 그곳을 들어오면 마구잡이로 때리고 소를 빼앗은 약탈의 광경을 이야기했다.

네 부분의 이야기를 통해 열심히 살려 하지만 살 수 없는 구조와 작은 이익마저도 독점하려는 권세가들의 끝없는 이기심을 다뤘다. 농부가 삶을 근근이 꾸려갈 수 있는 이유는 무언가? 그들이 게을러서인가? 절대로 아니다. 그들에게 아낌없이 뜯어가려는 공공기관, 그들이 눈물 나는 노동을 헐값에 취급하며 이득을 취하는 농단세력들, 산에 함정을 파놓고 백성이 걸려들길 바라는 권세가들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이 말을 듣던 서거정은 오열하며 목이 매었던 것이다.

 

 

농단객으로 인해 가까스로 가져간 땔감도 푼돈이 된다. 어떻게 살란 말인가? 

 

 

 

김시습이 담아낸 농부의 말

 

두 번째로 봐야 할 시는 조선전기 이단아 김시습이 쓴 기농부어記農夫語.

 

 

去歲早旱晚霖劇

1. 작년에 일찍 가물었다가 늦게서야 장마 극심히더니

泥沒江滸深一尺

2. 진흙이 강가에 무너져 쌓인 깊이가 한 자나 되었네.

沙石塡塞卒汚萊

3. 모래와 바위가 메워 마침내 채마밭 뒤덮었으니

豐者游龍陵舃

4. 무성한 곳엔 너울거리는 홍초와 질경이 뿐이었네.

婦兒啼飢號路傍

5. 아낙과 아이는 울면서 길 곁에서 부르짖으니

路傍觀者爲歎息

6. 길가에서 보던 사람은 탄식을 했었지.

私債官租日夜督

7. 사채와 관가의 세금 낮과 밤으로 독촉하는데

況我難逃白丁役

8. 하물며 나는 백성의 부역도 피하기 어렵구나.

一身丁役亂於麻

9. 한 몸 장정의 부역이 삼베보다 어지럽게 얽혀 있으니

東侵西擾多煩酷

10. 동쪽으로 침범하고 서쪽으로 흔들어 많이 번잡하고 혹독하구나.

歲收芋栗不足支

11. 해마다 토란과 밤 수확하나 지탱하기엔 부족하여

春田采芑盈阡陌

12. 봄밭에서 씀바귀 캐는 사람이 두둑에 가득 하구나.

今歲于耜苗始秀

13. 올해 밭을 갈아 싹이 났지만

陰霾且曀經一月

14. 음산하게 흙비 오고 또 구름 낀 지 한 달이 흘렀네.

麥穗生糱稻根腐

15. 보리의 이삭이 그루터기에서 났지만 벼의 뿌리는 썩었으니

天步艱難民卼臲

16. 하늘의 행보가 어렵게 하니 백성들이 위태롭구나.

八月晚秔花正繁

17. 8월 늦게 메벼의 꽃이 활짝 폈지만

東北風吹秕不實

18. 동북의 바람이 불어 쭉정이도 열매 맺질 못하고

橡蠹菜蝗瓜蔓枯

19. 상수리나무 좀 먹고 채마밭엔 메뚜기 들끓으며 넝쿨나무는 말라

飢饉連年無可活

20. 기근이 해마다 이어지니 살 수가 없네.

我有腴田數十畝

21. 나는 기름진 밭 수십 이랑이 있었지만

去年已爲豪強奪

22. 작년에 이미 권세가에게 빼앗김 당했고

亦有壯雇服耕耘

23. 또한 건장한 품꾼 두어 김매기에 복무시켰지만

昔年作保充軍額

24. 작년에 보인되어 군역에 충당되어 버렸네.

赤子在左叫紛紛

25. 어린아이 왼쪽에 있어 분분하게 울부짖어

交徧謫我如不聞

26. 돌아가면서 집안사람들이 나를 꾸짖어도 들리지 않은 듯 무시했었지.

天門九重邃且深

27. 대궐은 구중궁궐이라 깊고도 또 깊으니

欲往愬之(下缺)

28. 가서 그곳에 하소연하려 해도 할 수 없다네. 梅月堂詩集卷之十五

 

 

1~6행까지는 작년에 늦장마로 진흙이 채마밭을 덮어버려 먹을 것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는 내용을 이야기했고

7~10행까지는 그런 상황이기에 개인적으로 빌린 돈과 관아의 세금까지 갚아야 하기에 정신이 없는데 군역까지 담당해야 했다는 꼬인 자신의 상황을 묘사했으며

11~20행까지는 이런 상황임에도 어떻게든 살아보려 토란과 보리를 수확하고 씀바귀를 캐느라 분주했으며 올해에도 열심히 농사를 지어보았지만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 농사를 망치게 된 이야기를 했고

21~28행까지는 자신이 과거엔 비옥한 땅도 있었고 품꾼까지 둘 정도로 넉넉한 살림이었지만 그마저도 권세가들에게 빼앗기고 품꾼도 보인保人되는 바람에 가세가 완전히 기울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천재지변과 가혹한 세금 징수, 권세가들의 횡포까지 겹치며 기근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까? 당연히 임금에게 상황을 사뢰 이 위기를 타개하고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구중궁궐 깊고도 깊어 일반 백성이 당도할 수 없을 뿐더러 실제로 우리 같이 하찮은 사람의 말을 들어줄 열린 귀를 지닌 임금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이전엔 그래도 밭도 있고 일꾼도 둘 수 있었지만 지금은 빈털털이가 됐다.  

 

 

 

 

같지만 다르다

 

이렇게 두 편의 서사시를 읽어본 소감이 어떤가? 분명히 다른 두 사람이 각각 만나본 농민의 이야기를 담아냈지만 막상 지은 사람을 떼어놓고 보면 누가 썼는지 모를 정도로 같은 내용이다. 어찌 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얘기다. 이건 어디까지나 상상 속에서 지은 이야기가 아니라 농부의 말을 듣고 쓴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마치 조선시대로 여행을 떠나 그들과 직접적인 대화를 듣는 듯한 착각마저 들 지경이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 만족스러워 하며 작품에 대한 감상을 끝내선 안 된다. 두 시엔 작가가 다른 만큼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건 곧 저자들이 이 작품을 왜 지었는가?’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서거정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벼슬에 나가서도 조선의 지식인이면 여러 사화에 휩쓸려 한 번쯤은 가게 마련인 유배를 간 적도 없으며, 심지어 외직으로 밀려난 적도 없이 살았다. 그에 반해 김시습은 이미 5살 때에 시를 잘 지어 세종의 총애를 받기도 했지만 그 후 단종이 세조에 의해 축출 당한 것에 분개하며 야인의 생활을 자처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죽었다. 어찌 보면 두 사람은 180도 다른 삶을 산 것이다. 서거정은 성공한 사람의 전형으로 관리의 입장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김시습은 반골기질로 여러 사상에 관심을 가지며 맘껏 삐딱선을 탔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쓴 시엔 당연히 그들의 다른 기질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서거정토산촌사록전부어兎山村舍錄田父語을 쓴 이유와 김시습이 쓴 기농부어記農夫語를 쓴 이유는 갈릴 수밖에 없다. 이런 차이를 보기 위해선 논평 부분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국가는 귀하고 가까운 이 중하게 여겨 벼슬을 높여주고 봉록 후하게 주는데 어째서 작은 이익을 쫓아 불인함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 귀하고 가까운 이가 만약 군자여서 절의를 숭상한다면 이를 보고서 본질을 말하리라(國家重貴近, 尊位厚其祿. 胡爲逐小利, 不仁至此極. 君子尙節義, 見此欲嘔殼).’라고 서거정은 말하고 있다. , 이 말을 통해 서거정은 농부가 말하는 처참한 현실을 인용한 끝에 관리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동료들에게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들이 나라를 군자처럼 절의를 숭상하며 다스린다면 이런 처참한 상황은 펼쳐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밀하며 위정자들에게 말을 하고 싶어 이 시를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김시습이 쓴 시의 뒷 부분은 지금의 문집에선 누락되어 있다. 그래서 김시습의 논평을 볼 수는 없지만 누락되기 이전까지의 내용을 통해 서거정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농부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주목적일 뿐, 위정자에 대한 조언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그는 농부의 이야기를 세상에 그대로 전달하고 싶어 이 시를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시를 쓴 이유

서거정토산촌사록전부어兎山村舍錄田父語

김시습기농부어記農夫語

관리들에게 실상을 알려주고 선정을 펴길 바라서

백성들의 현실이 세상에 전해지길 바라서

 

 

우리네 이야기를 담아내던 시인들, 그리고 최민식 작가.  

 

 

인용

지도

목차

20년 글

임용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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