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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라말려초시의 성격과 만당의 영향 - 1. 라말려초시의 일반적 성격, 2) 여조시의 창시자들(최유청)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라말려초시의 성격과 만당의 영향 - 1. 라말려초시의 일반적 성격, 2) 여조시의 창시자들(최유청)

건방진방랑자 2021. 12. 2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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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유청(崔惟淸, 1095 헌종1~1175 명종4, 直哉)은 예종(睿宗)ㆍ인종(仁宗)ㆍ의종(毅宗)ㆍ명종(明宗) 등 사조(四朝)를 역사(歷事)하고 벼슬은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의 아들이며 정서(鄭敍)는 그의 처남이다. 인종(仁宗) 이자겸(李資謙)이 모역할 때 그를 미워하였으므로 실직(失職)되었다가 자겸(資謙)이 패한 뒤에 상주졸(尙州倅)이 되어 덕정(德政)을 베풀었다. 사신으로 금()에 갔을 때에도 언동(言動)이 예법(禮法)에 합하여 금인(金人)들을 탄복케 했다고 하며 정중부(鄭仲夫)의 난()에도 제장(諸將)이 유청(惟淸)의 청덕(淸德)을 존앙(尊仰)하였기 때문에 군인들을 그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친척까지도 화를 면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에 서책(書冊)을 손에서 놓지 않아 경사(經史)와 자집(子集)을 널리 통하고 또 불설(佛說)을 매우 좋아하여 유석(儒釋)들 중에서 질문하러 오는 자가 분집(坌集, 먼지처럼 모여들다)하였으며 문생(門生)의 문하(門下)에서 다시 문생(門生)을 보게 되는 종백(宗伯)의 높은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이인로(李仁老)파한집(破閑集)참조. 그의 입신행도(立身行道)훈자시(訓子詩)일편(一篇)에 잘 나타나 있으며 자손이 모두 귀현(貴顯)하여 세세적선 경류자손(世世積善, 慶流子孫)’의 번영을 누렸다. 왕명으로 이한림집주(李翰林集註)를 찬정(撰定)하였으며 그의 저술도 문장 수백편과 남도집(南都集)이 있었다 하나 전하지 않는다. 시작(詩作)7편이 전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잡흥(雜興)구수(九首, 五古)가 널리 알려져 있다. 기일(其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春草忽已綠 滿園胡蝶飛 봄풀이 어느새 푸르러져서 동산에 온통 나비떼 날아 든다.
東風欺人睡 吹起床上衣 자는 사이 동푸(東風)이 슬쩍 불어서 평상 위의 옷자락 펄럭이게 하네.
覺來寂無事 林外射落暉 깨어 보니 쥐 죽은 듯 일도 없는데 멀리 숲 밖에는 저녁 햇빛 쏟아진다.
依檻欲歎息 靜然已忘機 난간에 기대어 긴 한숨 쉴까 했더니 너무도 고요하여 세상만사 이미 잊었네.

 

잡흥(雜興)기팔(其八)을 참고하면 만년에 은거한 양주(楊州) 생활에서 얻어진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지난날의 장지(壯志)는 사라지고 없지만 풍정(風情)은 때에 따라 언제나 새로운 것이므로 전원의 한가로움과 그 곳에서 소요하던 심경을 읊은 것이다. 남의 신하된 몸으로 최고의 지위에까지 오른[位極人臣] 노재신(老宰臣)의 인생회고가 숨김 없이 토로되고 있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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