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습명(鄭襲明, ?~1151 의종50)은 학문에 힘쓰는 한편 문사(文辭)에도 능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이르렀다. 오랫 동안 간직(諫職)에 있었으므로 쟁신(諍臣)의 풍(風)이 있어 의종(毅宗)이 태자로 있을 때 극진히 보호하였으므로 인종(仁宗)이 동궁(東宮)의 사부(師父)로 삼았다고 한다. 의종(毅宗)이 즉위한 뒤에 참소를 입어 음독(飮毒), 자진(自盡)하였다.
정습명(鄭襲明)에게는 특히 시(詩)에 얽힌 가화(佳話)가 많아 그의 시는 모두 3수를 남기고 있을 뿐이지만, 그 대표작으로 꼽히는 「석죽화(石竹花)」와 「증기(贈妓)」시도 모두 사연이 있는 것들임을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 권하 16번을 보면 알 수 있다.
「석죽화(石竹花)」는 다음과 같다.
世愛牧丹紅 栽培滿院中 | 세상에서 모두들 모란꽃 붉은 것만 좋아하여 왼 뜰 가득히 심고 가꾸었네. |
誰知荒草野 亦有好花叢 | 누가 거친 이 초야(草野)에 좋은 꽃 있는 줄 알기나 하겠나? |
色透村塘月 香傳隴樹風 | 어여쁜 모습은 연못 속의 달을 꿰뚫었고 향기는 언덕 나무의 바람에 불어 전했네. |
地偏公子少 嬌態屬田翁 | 외진 땅에 있노라니 찾아주는 귀공자(貴公子) 적어 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붙이네. |
때마침 대혼(大閽, 수문장)이 이 시를 외우다가 대궐에까지 전해지게 되어 그가 옥당(玉堂)에 보임되었다는 일화가 『파한집(破閑集)』에 전하고 있다. 이에 따른다면 「석죽화(石竹花)」는 바로 정습명(鄭襲明)의 출세작이 된 셈이다. 평범한 산문의 조직을 연상케 하는 구법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 작품의 기법(技法)은 높은 수준을 보인다. 초야(草野)에 묻혀 사는 자신의 처지를 석죽화(石竹花, 패랭이꽃)에 비유하여 세속에서 사랑을 받는 모란과 대응시키면서 정돈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唐) 맹호연(孟浩然)이 일찍이 직절(直截)하게 읊어 낸 ‘부재명주기 다병고인소(不才明主棄, 多病故人疏)’에도 손색이 없다. 특히 이 작품이 만약 최치원(崔致遠)의 「촉규화(蜀葵花)」를 읽고 점화(點化)한 것이라면 그 장인의 솜씨는 더욱 칭찬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촉규화(蜀葵花)」의 다음 구절을 다시 읽어 보면 「석죽화(石竹花)」가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점화(點化)하고 있는가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寂寂荒田側 繁花壓柔枝 | 쓸쓸한 외진 곳 거친 밭두덕에 탐스런 꽃송이 어린 가지 휘게 하네. |
(중략) | (중략) |
車馬誰見賞 蜂蝶徒相窺 | 수레 탄 높은 손님 뉘 와서 보리요? 벌 나비만 부질없이 서로 엿보네. |
自慚生地賤 堪恨人棄遺 | 천한 곳에 태어난 것 스스로 부끄러워 사람들이 버려둔 것 참고 견디네. |
이 작품은 꾸민 것이 도리어 흠집처럼 보이리만치 천박하지만 「석죽화(石竹花)」는 이러한 어려운 곳도 순하게 극복하여 세련된 풍유(諷諭)의 솜씨를 과시하고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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