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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라말려초시의 성격과 만당의 영향 - 1. 라말려초시의 일반적 성격, 2) 여조시의 창시자들(정습명)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라말려초시의 성격과 만당의 영향 - 1. 라말려초시의 일반적 성격, 2) 여조시의 창시자들(정습명)

건방진방랑자 2021. 12. 2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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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습명(鄭襲明, ?~1151 의종50)은 학문에 힘쓰는 한편 문사(文辭)에도 능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이르렀다. 오랫 동안 간직(諫職)에 있었으므로 쟁신(諍臣)의 풍()이 있어 의종(毅宗)이 태자로 있을 때 극진히 보호하였으므로 인종(仁宗)이 동궁(東宮)의 사부(師父)로 삼았다고 한다. 의종(毅宗)이 즉위한 뒤에 참소를 입어 음독(飮毒), 자진(自盡)하였다.

 

정습명(鄭襲明)에게는 특히 시()에 얽힌 가화(佳話)가 많아 그의 시는 모두 3수를 남기고 있을 뿐이지만, 그 대표작으로 꼽히는 석죽화(石竹花)증기(贈妓)시도 모두 사연이 있는 것들임을 이인로(李仁老)파한집(破閑集)권하 16을 보면 알 수 있다.

 

석죽화(石竹花)는 다음과 같다.

 

世愛牧丹紅 栽培滿院中 세상에서 모두들 모란꽃 붉은 것만 좋아하여 왼 뜰 가득히 심고 가꾸었네.
誰知荒草野 亦有好花叢 누가 거친 이 초야(草野)에 좋은 꽃 있는 줄 알기나 하겠나?
色透村塘月 香傳隴樹風 어여쁜 모습은 연못 속의 달을 꿰뚫었고 향기는 언덕 나무의 바람에 불어 전했네.
地偏公子少 嬌態屬田翁 외진 땅에 있노라니 찾아주는 귀공자(貴公子) 적어 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붙이네.

 

때마침 대혼(大閽, 수문장)이 이 시를 외우다가 대궐에까지 전해지게 되어 그가 옥당(玉堂)에 보임되었다는 일화가 파한집(破閑集)에 전하고 있다. 이에 따른다면 석죽화(石竹花)는 바로 정습명(鄭襲明)의 출세작이 된 셈이다. 평범한 산문의 조직을 연상케 하는 구법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 작품의 기법(技法)은 높은 수준을 보인다. 초야(草野)에 묻혀 사는 자신의 처지를 석죽화(石竹花, 패랭이꽃)에 비유하여 세속에서 사랑을 받는 모란과 대응시키면서 정돈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맹호연(孟浩然)이 일찍이 직절(直截)하게 읊어 낸 부재명주기 다병고인소(不才明主棄, 多病故人疏)’에도 손색이 없다. 특히 이 작품이 만약 최치원(崔致遠)촉규화(蜀葵花)를 읽고 점화(點化)한 것이라면 그 장인의 솜씨는 더욱 칭찬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촉규화(蜀葵花)의 다음 구절을 다시 읽어 보면 석죽화(石竹花)가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점화(點化)하고 있는가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寂寂荒田側 繁花壓柔枝 쓸쓸한 외진 곳 거친 밭두덕에 탐스런 꽃송이 어린 가지 휘게 하네.
(중략) (중략)
車馬誰見賞 蜂蝶徒相窺 수레 탄 높은 손님 뉘 와서 보리요? 벌 나비만 부질없이 서로 엿보네.
自慚生地賤 堪恨人棄遺 천한 곳에 태어난 것 스스로 부끄러워 사람들이 버려둔 것 참고 견디네.

 

이 작품은 꾸민 것이 도리어 흠집처럼 보이리만치 천박하지만 석죽화(石竹花)는 이러한 어려운 곳도 순하게 극복하여 세련된 풍유(諷諭)의 솜씨를 과시하고 있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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