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진(李彦瑱, 1740 영조16~1766 영조42, 자 虞裳, 호 松穆館)은 홍세태(洪世泰)ㆍ이상적(李尙迪)ㆍ정지윤(鄭芝潤)과 더불어 역관사가(譯官四家)로 일컬어지는 시인으로 영조 때의 시단에서 혜성같은 존재로 평가된 바 있다. 특히 그는 24세에 일본에 통역관으로 따라가 그곳에서 시명을 떨침으로써 유명해졌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시재에도 불구하고 일찍 요절함으로써 천재시인으로서의 안타까움을 더욱 절실하게 돋보여 평가되기도 하여, 박지원(朴趾源) 등 여러 문인들에게서 입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의 문집(文集) 『송목관집(松穆館集)』 이 전하고 있다.
이언진(李彦瑱)의 시의 특징은 전통적인 한시의 대부분이 칠언 일색임에 비해, 이언진(李彦瑱)은 파격적으로 육언절구(六言絶句)를 즐겨 짓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동호거실(衕衚居室)」 157수, 「일본도중소견(日本途中所見)」 22수, 「실제(失題)」 5수 등이 대표적인 육언절구이다. 시의 제재나 내용도 역관의 체험에 기초한 외국 기행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새롭게 보고 듣는 것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 은근한 풍자가 돋보이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중인 출신 시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사대부시인들이 접할 수 없는 세계를 경험할 수 있으며 그들이 본 그대로 ‘기실(紀實)’을 할 수 있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대접받지 못하는 신분의 소유자인 반면 사대부들처럼 엄격한 예교적(禮敎的) 사회 규범으로부터 방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백화(白話)를 적극 수용하면서 당대 현실의 여러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는 「동호거실(衕衚居室)」 가운데 한 수를 보기로 한다.
市街頭賣炊餠 | 시장 머리에서 만두를 파는데 |
小孩兒知時價 | 어린애도 값을 안다. |
只一件好東西 | 다만 제일 좋은 것이란 |
吾不辨眞和假 | 진짜 가짜 구분 못하는 그것이네. |
시장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절실하게 드러나 있다. 사대부의 시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다. 시정(市井)의 분위기에 맞게 일건(一件), 동서(東西), 화(和) 등의 백화를 써서 구어에 가깝도록 조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언진(李彦瑱)은 “시문이 앞사람을 답습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에게서 나온 것을 이우상(李虞裳)에서 보았다(金潚, 松穆館集跋).”라는 칭찬을 받게 된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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