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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7. 추사와 자하의 변조(개요)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7. 추사와 자하의 변조(개요)

건방진방랑자 2021. 12. 2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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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추사(秋史)와 자하(紫霞)의 변조(變調)

 

 

당시(唐詩)를 선호하는 우리나라 시인들의 기본 성향은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인들이 실제로 제작한 한시작품의 대부분은 시의 뜻이 넓고 깊은 개념(槪念)의 시()를 써 왔으며, 특히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성향의 시작(詩作)으로 독자적인 시세계를 이룩하여 우리나라 한시의 높은 수준을 과시한 시인이 배출되기도 했다.

 

그 사람이 곧 신위(申緯)이며, 이 시인에게 직접ㆍ간접으로 영향을 준 또다른 시인이 김정희(金正喜). 김정희(金正喜)신위(申緯)보다 17년 연하이지만, 신위 시의 창작에 직접 조언(助言)을 하는 등 크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위의 시적 성향은 율조(律調)를 중요시하는 당시(唐詩)의 경우 에는 분명히 일탈(逸脫)하고 있는 것이므로 후세의 논자(論者) 중에는 이를 가리켜 변조(變調)라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의 음율에 소원(疏遠)한 우리나라 시인들이 감수해야만 할 스스로의 한계를 그대로 시현(示顯)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시인들이 우리나라 한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게 한 중요한 동인(動因)을 제공해준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이무렵 중국 소단(騷壇)의 풍상(風尙)도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사정과 크게 다른 것이 없다. 송시(宋詩) 이후 당시(唐詩)를 추숭(追崇)하던 습상(習尙)은 이미 퇴조(退潮)하고 있었으며, 특히 당()으로부터 1,000년이 지나고 있는 청대(淸代)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시작(詩作) 성향도 우리나라 시인들이 제작한 개념의 시와 크게 다른 것이 없었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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