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욱(黃廷彧)은 호소지(湖蘇芝) 삼가(三家) 중에서 가장 후배이다. 그는 많은 시를 쓰기보다는 힘들여 시를 썼기 때문에 시인으로서의 명성에 비하여 남긴 시작(詩作)이 적은 편이다. 젊어서부터 문명(文名)이 있었으나 불우하여 만년(晩年)에야 문병(文柄)을 잡을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불행이 이어져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함경도에서 두 왕자와 함께 왜군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항복권유문을 쓴 죄로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그는 강서파(江西派)인 황정견(黃庭堅)과 진사도(陳師道)를 배워 소재(蘇齋)보다는 호음(湖陰)과 시세계가 가깝다. 허균(許筠)은 「제황지천시권서(題黃芝川詩卷序)」에서 그의 시가 박상(朴祥)에게서 나와 호음(湖陰)과 소재(蘇齋) 사이를 출입(出入)하였지만 삼가(三家)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하였다[余友趙持世裒其近律百餘篇, 余始寓目, 則其矜持勁悍, 森邃泬寥, 寔千年以來絶響. 覈所變化, 蓋出於訥齋, 而出入乎盧ㆍ鄭之間, 殆同其派而尤傑然者].
황정욱(黃廷彧)은 특히 칠율(七律)에 솜씨를 보여 대부분의 명편(名篇)이 칠율(七律)로 제작되고 있다. 대표작 「송심공직충겸부춘천(送沈公直忠謙赴春川)」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淸平山色表關中 | 청평산(淸平山) 산색(山色)이 관동(關東)의 모습 드러내고 |
下有昭陽江漢通 | 아래는 소양강(昭陽江)이 한강(漢江)으로 통하네. |
馳出東門一匹馬 | 도성문을 나올 땐 한 필 말에 몸을 맡기고 |
泝洄春水半帆風 | 봄물 따라 올라갈 땐 강바람에 의지했네. |
送人作郡鬼爭笑 | 남을 군수(郡守)로 보내기만하여 귀신도 다투어 웃고 |
問舍求田囊久空 | 밭 사들여 농사 짓자니 주머니 빈 지 오래네. |
爲語當時勾漏令 | 당시의 구루령(勾漏令) 갈홍(葛弘)에게 말하노니 |
衰顔須借點砂紅 | 다 늙은 얼굴에 그 곳 단사(丹砂)로 화장하게 해주오. |
김만중(金萬重)이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우리나라 역대 칠언시(七言詩)의 대표작으로 꼽은 작품이다[間嘗閱本朝諸公詩, 僭爲五言絶, 當以李蓀谷“桐花夜烟落 「別李禮長」”, 爲第一. 七言絶, 鄭東溟“章華高出白雲間 「楚宮詞」”, 爲第一. 五言律, “世廟崇西竺 「宿奉恩寺」”, 第一. 七言律, 傑作頗多, 尤難取捨. 當於黃芝川 “淸平山色表關東”, 權石洲“江山嗚嗚聞角聲 「早渡碧瀾」”, 李東岳“崔顥題詩黃鶴樓 「次崔天使百祥樓韻」”, 數詩中求之].
미련(尾聯)의 하구(下句)는 그 기법이 공교(工巧)의 극치를 이루고 있어서 기굴(奇崛)한 그의 시세계가 이에서 다한 느낌이다. 경련(頸聯) 상구(上句)의 고사(故事)【매양 남이 군수로 나가는 것을 보내기만 하고 자신은 군수로 나가지 못하므로 귀신들의 놀림거리가 된 것】 원용은 영직(榮職)을 누린 작자의 처지로는 과장이 심한 것이지만, 경련(頸聯)과 미련(尾聯)이 모두 작자 자신을 말한 부분임을 알게 해준다.
다음으로 황정욱(黃廷彧)의 「차이백생순인영옥당소도(次李伯生純仁詠玉堂小桃)」을 보인다. 대부분의 시선집에 「차옥당소도운(次玉堂小桃韻)」으로 수재(收載)되고 있어 줄여진 이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無數宮花倚粉墻 | 궁중에 핀 꽃들이 담장 위에 기대니 |
遊蜂戱蝶趁餘香 | 벌 나비 향기 맡고 어지러이 날아 든다. |
老翁不及春風看 | 그러나 이 늙은이 봄이 온 줄도 모르고 |
空有葵心向太陽 | 공연히 해바라기 마음으로 태양을 향하네. |
옥당(玉堂)의 소도(小桃)를 두고 이순인(李純仁)의 「야직(夜直)」에 차운(次韻)한 작품이다.
허균(許筠)은 『성수시화(惺叟詩話)』 59에서 이 시를 함의(含意)가 심원(深遠)하고 조사(措辭)가 기한(奇悍)하다고 평하기도 하였거니와 당시의 세태(世態)를 심원(深遠)한 우의(寓意)로 그려낸 것이 이 작품이다[含意深遠 措辭奇悍 爲詩不當若是耶 綺麗風花 返傷其厚].
벼슬에 군침을 흘리는 벼슬아치들은 난만한 궁중의 꽃을 보고 벌 나비 떼처럼 덤벼들지만, 정작 이 늙은 시인은 봄이 오는지 어떤지도 알지 못하고 다만 충직(忠直)한 신하의 마음만 있어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돌듯이 임금님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쯤이면 조직(組織)의 솜씨도 더 바랄 것이 없을 듯 싶다.
인용
'책 > 한시(漢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시사, 목릉성세의 풍요와 화미 - 2. 이학자의 여기(성혼&정구) (0) | 2021.12.21 |
---|---|
한시사, 목릉성세의 풍요와 화미 - 2. 이학자의 여기(이이&송익필) (0) | 2021.12.21 |
한시사, 목릉성세의 풍요와 화미 - 1. 관각의 대수(노수신) (0) | 2021.12.20 |
한시사, 목릉성세의 풍요와 화미 - 개요 (0) | 2021.12.20 |
한시사, 조선전기의 다양한 전개 - 6. 유가의 시편(조식) (0) | 2021.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