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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노자와 21세기, 6장 - 우주의 모든 신묘한 기운은 골로부터 나온다 본문

고전/노자

노자와 21세기, 6장 - 우주의 모든 신묘한 기운은 골로부터 나온다

건방진방랑자 2021. 5. 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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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谷神不死,
곡신불사,
계곡의 하느님은
죽지 않는다.
是謂玄牝.
시위현빈.
이를 일컬어
가믈한 암컷이라 한다.
玄牝之門,
현빈지문,
가믈한 암컷의 아랫문,
是謂天地根.
시위천지근.
이를 일컬어
천지의 뿌리라 한다.
綿綿若存,
면면약존,
이어지고 또 이어지니
있는 것 같네.
用之不勤.
용지불근.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도다.

 

 

1. 동양사람에게 신이란 명사가 아닌 형용사다(谷神不死, 是謂玄牝)

 

아마도 노자전체를 통하여 가장 시적인 한 장을 뽑으라 한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이 장을 뽑을 것이다. 실제로 노자(老子)에 매료된 많은 서구인들이 이 장에서 시적 영감을 받았다고 토로한다. 곡신불사(谷神不死)’은 노자의 인간적 정취와 그 절제된 언어가 가장 아름답게 표현된 매우 시적인 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간본(簡本)에 이 6장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백서(帛書) ()ㆍ을본(乙本)에는 모두, 왕본(王本)과 그 뜻과 글자가 대차가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 장은 왕본(王本) 텍스트 그대로 뜻을 새겨도 별지장이 없다.

 

6장이 간본(簡本)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장이 도()의 현묘(玄妙)한 성격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후대에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또 곽점간본(郭店簡本)을 초사(抄寫)한 사람의 취향이 이러한 노자의 시적 정취를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무시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곡신(谷神, 계곡의 하느님)이란 무엇인가? 이 곡신(谷神)을 말하기 전에 내가 평소 이 장을 좋아해서 영역해 놓은 것을 여기 한번 적어본다.

 

 

The God of Valley never dies;

It is called the Mysterious Female.

The Gateway of the Mysterious Female

Is called the root of Heaven and Earth.

Continuously becoming, it seems as if it were there.

Yet in being used, it is never exhausted.

 

 

계곡의 하느님, 다석(多夕) 선생께서 골검이라 번역하신 곡신(谷神)이란 무엇인가? 동양고전에서 말하는 신()이란 근세 서양말의 (God)’의 번역술어로 정착되면서 그 뜻이 변질되었지만, 본시 신()이란 우주의 기()가 발출하는 신묘한 기운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은 후대의 예술가 사혁(謝赫, 5세기 활약)이가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 말한 것과 같다. 동양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란 본시 명사가 아니요. 형용사이다. 이것은 동양인에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요, 서양사람들이 신이라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실 알고 보면 명사가 아니고 형용사인 것이다.

 

서양의 모든 철학적 오류, 모든 존재론의 오류는 신을 형용사로 보지 않고 명사로 본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럿셀경이 기술이론(Theory of Description)’에서 주장하려는 궁극적인 소이연인 것이다.

 

 

2. 우주의 모든 신묘한 기운은 골로부터 나온다

 

이 장의 가장 명료한 주제는 페미니즘(Feminism)이다. 저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을 보라! 제각기 그 아름다움을 뽐내며 의기탱천(意氣撑天)하는 듯 하늘로 치솟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노자는 말한다. 저 아름다움을 뽐내는 겸재 실경의 일만 이천 봉우리가 모두 다 헛것이다! 저 봉우리의 아름다움은 오직 그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계곡의 기능과 아름다움 때문에만 가능한 것이다. 자태를 뽐내는 봉우리보다 자태를 감추고 있는 계곡()이 더 본원적이요, 더 본질적이요, 더 본연적이며, 도의 모습에 가까운 것이라고 간파한다.

 

 

 

 

봉우리는 양()이요, 계곡은 음()이다. 봉우리는 남자의 성기요, 계곡은 여자의 성기다. 봉우리는 뽀송뽀송 마른 모습에 우뚝우뚝 솟기를 좋아하지만, 계곡은 항상 척척하게 젖어 있는 모습에 가랑이에 숨겨져 그 모습을 보이기를 부끄러워 한다. 그러나 노자는, 남자의 그것보다 여자의 그것이 우주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간파하는 것이다. 그것은 보다 직접적으로 생성의 모체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모든 신묘한 기운은 봉우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골로부터 나온다고 간파한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골을 메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빔[]이다. 골은 빔의 상징이다. 빔이란 기하학적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골과도 같은 생성의 빔인 것이다. 비어 있지만 높은 봉우리의 모든 것이 그 낮은 골로 지향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요, 또 그냥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생성을 위한 생명의 순환으로 가득 차 있다. 생명수와 산천초목이 항상 그 골에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항상 뽐내고 으시대고 잘난 체 하는, 봉우리같이 불뚝 불뚝 서 있기 좋아하는 남성들이여! 항상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하며 수모받는 낮은 자리에, 소리없이 숨어 있는 여성들을 우습게 보지 말라! 아무리 그대들이 뽐낸다 한들, 높은 것은 결국 낮은 것으로 되돌아오게 마련이요, 소리는 아무리 질러봐도 침묵으로 돌아가게 마련이요, 참은 빔으로 돌아가게 마련일지니, 남성이란 여성이란 대지 위에 흩날리는 티끌만도 못한 존재로다! 남성이란 생멸의 한 고리에 불과한 잠시적(ephemeral) 존재라고 한다면, 여성이란 모든 생멸의 근원자로서 영속적(permanent)인 것이다.

 

 

 

 

3. 여성성을 지닌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

 

나는 제()하나님으로 번역하였고, ()하느님으로 번역하였다. ‘하나님은 유일자라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허구적인 실체, 허상적인 인격체를 가리키는 것이요, ‘하느님은 우리 조선 민중의 사상인 동학(東學)이 말하는 하늘님’, 즉 신령스러운 우주의 기운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명사이지만, 하느님은 명사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정()에 대한 신()이요, 땅에 대한 하늘이요, ()에 대한 혼()이요, ()에 대한 기(), 유형(有形)에 대한 무형(無形)이다. 우리가 신 즉 하느님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이 결국 알고보면 유형자(有形者)에 대한 무형자(無形者)를 가리키는 것이요, 인간의 감관으로 포착될 수 없는 신묘한 무형적 기운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것은 골검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신령스러운 산()을 일컬어 검산이라 했으니 골검이라는 다석의 번역은 우리말의 정수를 찌르고 있다 할 것이다. 단군신화[]과 관련된 모든 상징체계가 노자가 말하는 골검과 상통하는 것이다.

 

 

하늘() () () ()
() () () ()

 

 

골검은 죽지 않는다. 계곡의 하느님은 죽지 않는다. 그것은 빔이요. 무형이기 때문에 사멸(死滅)의 형체를 지니고 있지 아니한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을 무어라 해야 할까? 울뚝 불뚝 솟기만 좋아하는 저 봉우리라 해야 할까? 저 잘난 체하는 숫컷 놈들이라 해야 할까? 아니, 그럴 수 없지. 난 말야, 이 우주, 이 만물의 생성자인 도()를 남성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그것,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무어라 말하기 힘들지만, 구태여 상징화해서 말하자면 여성일 수밖에 없어. 그래! 에미[]라 하자! 그런데 인간의 한 몸을 낳고 기르는 개별적 에미가 아니니까 현묘한 에미, 우주적 에미, 가믈한 에미, 가믈한 암컷(玄化)이라 하자!

 

 

4. 하늘과 땅의 뿌리인 가믈한 에미의 아랫문(玄牝之門, 是謂天地根)

 

그렇지 그 가믈한 암컷, 그 야믈한 에미, 그 암컷의 아랫문을 보아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천지, 하늘과 땅의 뿌리[天地根]가 아니겠는가?

 

()에미,’ ‘암컷의 의미다. 아마도 소 우() 변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 농경사회에서 모든 생산력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암소에 대한 존중의 관념이 반영된 글자일 수도 있다. ‘현빈지문(玄牝之門)’은 여기 아주 분명하게, 여성의 성기(female sexual organ)의 함의가 드러나 있다. 1장의 중묘지문(衆妙之門)’이나 여기 제6장의 현빈지문(玄牝之門)’은 모두 농경사회의 생산성 예찬(Fertility Cult)의 제식과 관련된 어떤 상징일 수밖에 없다. 여성의 성기야말로 모든 생성의 뿌리다. 따라서 우주적 암컷의 성기(아랫문)야말로 천지의 뿌리라고 노자는 갈파하는 것이다.

 

 

5. 계곡의 물은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네(緜緜若存, 用之不勤)

 

그럼 그 성기는 어떻게 생긴 것일까? 이 우주적 성기의 모습에 대하여 노자는 면면(緜緜)’이라는 또 하나의 상징어를 사용한다. 우리가 지금 우리의 일상생활속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는등의 표현을 쓸 때의 면면(緜緜)’이 바로 노자에서 연유된 것이다.

 

이 표현방식은 옛날 농경사회의 방직문화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솜을 물레에 집어넣어 실이 되어나오는 모습, 그 보슬보슬한 솜들이 꼬아져서 끊임없이 연결되는 실이 되어 계속 나오는() 모습을 곧 천지우주의 성기의 모습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면면(緜緜)’이라는 표현은 곧 우주의 생성의 연속성(Continuity of Becoming), 그 순환성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속성조차도, 그것을 실 꼬이는 모습으로 상징화해서 기술할 뿐, 그 연속성의 실체를 하나의 존재로서 상정할 수 없다. 그래서 노자는 그 실체의 거부, 우주의 성기가 하나의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그 맥락을 살리기 위해 약존(若存, 있는 것 같다)’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이에 대해 또 우리의 왕필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어김없이 멋드러진 주석을 달아놓고 있다.

 

 

그것이 있다고 말할려고 하면, 그 형체를 볼 수가 없고, 그것이 없다고 말할려고 하면, 만물이 그로부터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하지 않고 면면히 있는 것 같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欲言存邪, 則不見其形, 欲言亡邪, 萬物以之生. 故綿綿若存也.

 

 

역시 그 핵심을 꿰뚫는 명주(名注)라 할 것이다.

 

다음에 용지불근(用之不勤)’은 대강 뜻이 통하지만, ‘()’에 대한 주석이 ()’의 뜻과 ()’의 두 가지 뜻으로 엇갈린다. 먼저 ()’()’로 해석하는 입장은 왕필이 취한 해석이다. ‘용지불노(用之不勞)’의 의미는, ‘만물은 아무리 쓰임을 당해도, 그것을 수고롭게 생각하지 않는다의 뜻이다. 불노(不勞)의 주체는 만물이 될 것이다[無物不成用而不勞也, 故曰用而不勤也].

 

그러나 보다 보편적인 주석은 ()’()’으로 보는 것이다. ‘용지불근(用之不勤)’은 그렇게 되면, ‘아무리 퍼내어 써도 고갈되지(마르지) 않는다.’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다의 뜻이 된다. 즉 계곡의 빔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 되는 것이다. 계곡에서는 아무리 물을 퍼 써도 그것이 고갈됨이 없다는 것이다. 요새와 같이 오염된 민둥성이 산이 아닌, 옛날의 청정하고 깊고 깊은 골을 생각하면 虛而不屈, 動而愈出의 이미지나 용지불근(用之不勤)’의 이미지가 쉽게 연상될 수 있을 것이다.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무궁진(無窮盡)한 보전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用之不勤
= =
만물은 아무리 쓰임을 당해도, 그것을 수고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퍼내어 써도 고갈되지(마르지) 않는다

 

 

이 아름다운 시적(詩的)6장을 생각할 때, 최근 영화의 한 불경스러운 장면을 연상해보면 어떨까? 시대정신에 저항하는 만학의 한 의학도의 생애를 그린, 감동스러운 명화,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패치 아담스 (Patch Adams)! 산부인과학의 석학 교수님들께서 거대한 여성 가랑이의 건조물 밑으로 빠끔 나있는 문으로 걸어 들어가고 계신 그 코믹한 장면을!

 

 

 

 

인용

목차 / 서향 / 지도

노자 / 전문 / 6 / 노자한비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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