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하게 자란 나무의 비밀
『장자』 외편과 잡편에도 유용의 형이상학을 공격하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지금은 내편 「인간세」 편에 등장하는 원형적인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바로 거목 이야기입니다. 주나라 이전 중국을 지배했다는 상(商)나라(BC 1600 ~ BC 1046)의 유적지에 남백자기라는 사람이 유람차 들렀나 봅니다. 이곳에서 남백자기는 거대한 나무를 보게 됩니다. 얼마나 거대하냐 하면 말 네 필이 끄는 수레 천 대가 그 나무 그늘 안에 다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남백자기는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이 나무는 이렇게 거대하게 자랄 수 있었을까?’ 나무는 당시에는 지금보다도 더 인간 문명이나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재료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철재나 시멘트가 있지만, 과거에는 나무가 돌과 함께 거의 유일한 건축자재였습니다. 돌은 다루기 힘든 자재이니, 아마 나무는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된 자재였을 겁니다. 그러니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이 나무는 어떻게 잘리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잘리지 않아 이렇게 크게 자랄 수 있었으니 이런 의문을 품은 것입니다. 물론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깊은 산속이나 오지에 있다면 나무는 잘리지 않고 크게 자랄 수 있죠. 그러나 남백자기가 본 거대한 나무는 상나라의 중심지 근처에 있었습니다. 도시는 목재를 많이 필요로 하는 법이죠. 그러니 잘리지 않은 이 거대한 나무는 그야말로 미스터리였던 것입니다.
마침내 남백자기는 거대한 나무의 비밀을 알아냅니다. 거목은 인간들이 재목으로 쓸 수 없는 나무였던 것입니다. 장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재지목(不材之木)이 바로 거목이 거목으로 살아 있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죠. 거목 이야기에는 거목이 재목으로 부적절했던 구체적인 이유가 상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가느다란 가지들을 올려다보니 너무 구부려져 있어서 들보나 서까래로 만들 수 없고, 그 거대한 뿌리를 내려다보니 속이 푸석푸석해서 관으로 만들 수 없었다. 그 잎사귀들을 혀로 핥으면 입안이 헐어 상처가 생기고, 그 냄새를 맡으면 사람들을 사흘 동안이나 미쳐 날뛰게 할 것 같았다[仰而視其細枝, 則拳曲而不可以爲棟梁; 俯而視其大根, 則軸解而不可以爲棺槨; 舐其葉, 則口爛而爲傷; 嗅之, 則使人狂酲三日而不已].” 가지, 본체, 뿌리, 심지어 잎사귀마저 인간에게 전혀 쓸모가 없었으니, 이 나무는 그야말로 잎 한 장마저 온전히 지킬 수 있었던 것이죠. 남백자기는 이로부터 삶의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인간도 쓸모가 없어야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전쟁과 살육이 일상이었던 전국시대를 무사히 건너려면 인간은 쓸모가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남백자기가 말했던 신인(神人)은 바로 이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칼과 창이 난무하는 곳에서 전혀 피해를 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정말 신과 같은 사람, 즉 신인이라 불릴 만한 사람 아닌가요.
거목 이야기에서 쓸모가 있다는 것, 재목이 된다는 것은 바로 죽는다는 것과 동의어입니다. 쓸모가 있어야 잘 산다는 통념이 위태로워지는 대목이죠. 살아 있는 나무를 지붕을 받치는 기둥으로 쓴다고 상상해보세요. 나무가 자라면서 집이 무너지고 말 겁니다. 원래 설계대로 집을 유지하려면 목재는 형체를 그대로 유지해야 합니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목재는 일체의 능동성이 사라지고 완전한 수동성의 상태에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자른 나무를 곧바로 목재로 쓰지 않고 잘 건조시키죠. 건조하지 않으면 목재는 외형의 자발적 변형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나무는 잘린 다음 건조 과정까지 거쳐야 인 간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목재가 됩니다. 인간의 의지와 욕망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완전한 수동성의 상태에 있는 것이 목재라는 이야기죠. 결국 목재가 된다는 것은 나무 입장에서 한 번만 죽는 것이 아닙니다. 죽고 죽고 또 죽어, 생명의 힘뿐만 아니라 자발적 변화마저도, 즉 최소한의 능동성마저 완전히 소멸되는 과정이 나무가 목재가 되는 과정이니까요. 거목 이야기가 우리에게 서늘함과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 이야기는 재목이 되면, 그러니까 인재가 되면 우리의 능동성이 증대하여 우리가 더 자유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폭로하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자신을 쓸모 있게 만드는 노력이 자신의 능동성을 강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자살의 길로 이끄니 말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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