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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강신주의 장자수업, 4부 바람이 부는 곳으로 - 41. 울타리의 유혹에 맞서서!(꿩 이야기) 본문

책/철학(哲學)

강신주의 장자수업, 4부 바람이 부는 곳으로 - 41. 울타리의 유혹에 맞서서!(꿩 이야기)

건방진방랑자 2021. 5. 1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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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울타리의 유혹에 맞서서!

꿩 이야기

 

 

습지의 꿩!

열 걸음 걷다 한 번 먹이를 쪼고,

백 걸음 걷다 한 번 물을 마시네.

울타리 안에 갇혀 길러지는 걸 바라지 않지.

()이 울타리 안에서 비록 왕과 같을지라도

이것은 좋지 않은 일이니까.

澤雉十步一啄, 百步一飮, 不蘄畜乎樊中. 神雖王, 不善也. 양생주4

 

 

초나라 군주의 유혹

 

인간세날개 이야기에서 장자는 말합니다. “흔적을 끊기는 쉽지만, 땅을 밟지 않기란 어려운 법이다絶迹易, 无行地難].” 그렇지만 감시당하고, 사찰받고, 지시받고, 통제당하고, 규제되고, 제약받고, 평가되고, 기록되는 영토국가에서 흔적을 끊기란 그 자체로도 매우 힘든 일입니다. 아무리 전국시대 국가가 지금보다 느슨한 영토국가였다 할지라도 말이죠. 더군다나 장자는 당시 유명 인사였던 혜시와 논쟁을 벌인 사람이자,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제자들을 가르쳤고, 심지어 문학적 재능이 충만한 이야기꾼이었습니다. 지식인 사회에서는 몰라도 대다수 피지배계급 민중 사이에서 장자의 평판은 대단했을 겁니다. 쓸모없다고 밀쳐진 사람들을 향한 장자의 애정과 예술의 경지에 이른 육체노동자에 대한 그의 예찬을 떠올려보세요. 심지어 장자는 지배와 복종 관계마저 부정하니, 복종을 강요받고 착취당하던 당시 소인들에게 장자의 사유는 일종의 해방구였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장자는 점점 소인들의 아이돌이 되고 맙니다. 흔적을 끊기란 이렇게 힘든 일입니다. 당시 장자는 미약할지라도 부정하기 힘든 정치적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이 장자에게는 불편하기 그지없었을 테지만, 우리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의 글과 말들이 사장되지 않고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당시 장자에 대한 이런 평판 덕분이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피지배계급의 불만을 완화하고 그들의 자발적 복종을 유도하려고 장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국가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장자에게 실권을 줄 군주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인들로부터 지지받던 장자는 버리기에 너무나 아까운 매력적인 정치적 카드였던 건 분명합니다. 전국시대 후반 신흥강국으로 발돋움하던 초()나라(BC?~BC 223)가 장자에게 손을 내민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다른 지식인들이라면 거부하기 힘들었을 초나라의 제안에 장자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추수(秋水)13에 있는 갑골 이야기는 그 전말을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장자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갑골 이야기 전문을 읽어보죠. “장자가 복수(濮水)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초나라 왕은 두 사람의 대부(大夫)를 먼저 보내 그에게 말을 전했다. ‘국가 안의 모든 일을 선생에게 맡기고자 합니다!’ 장자는 낚싯대를 쥐고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초 나라에 죽은 지 이미 3,000년이나 된 신령한 거북이 있는데, 왕이 이것을 상자에 넣고 비단보로 싸서 묘당(廟堂) 안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내가 들었습니다. 이 거북은 죽어서 뼈를 남겨 귀하게 되기를 원했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원했을까요?’ 두 사람의 대부는 말했다. ‘차라리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원했을 테지요장자가 말했다. ‘그만 돌아가시오! 나는 앞으로도 진흙 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닐 것이오.[莊子釣於濮水. 楚王使大夫二人往先焉曰: “願以境內累矣!” 莊子持竿不顧曰: “吾聞楚有神龜, 死已三千歲矣. 王巾笥而藏之廟堂之上. 此龜者, 寧其死爲留骨而貴乎? 寧其生而曳尾於塗中乎?” 二大夫曰: “寧生而曳尾塗中.” 莊子曰: “往矣! 吾將曳尾於塗中.”]’

 

초나라 군주는 장자를 객경(客卿)으로 삼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가까운 피붙이를 재상으로 임용했던 전통과 달리, 객경 제도는 혈연과 무관한 인물, 심지어 다른 국가 사람을 재상으로 등 용하는 제도입니다. 부국강병의 경쟁이 심해지자 군주들은 능력 위주로 국정 최고 전문가를 등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능한 사람에게 국정을 맡기면 나라를 잃을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죠. 초나라 군주는 대부 두 사람을 보냅니다. 이들은 초나라 군주의 피붙이들이거나 권력 서열 2위나 3위 정도였을 겁니다. 이는 초나라 군주가 자신의 피붙이들 모두가 장자를 재상으로 받드는 데 동의했다는 걸 보여주거나, 아니면 장자가 확실한 서열 2위가 되리라는 걸 약속하는 상징적 조치죠. 한마디로 초나라 군주는 장자에게 자신의 진정성을 제대로 보여준 겁니다. 아마도 하루나 이틀 뒤 초나라 군주는 몸소 장자 앞에 나타났을 겁니다. 장자와 친한 척하려 하거나 아니면 실권이 없는 명예직으로 등용해 소인들의 지지를 얻겠다는 얄팍한 마음이 아니었던 건 분명해 보입니다. 어쩌면 새롭게 등장한 신흥강국이기에 초 나라는 지배와 복종 관계가 다른 국가에 비해 약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초나라 군주 입장에서 소인들의 지지가 더 간절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죠. 장자는 거부하기에 너무나 매력적인 제 안에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먼저 우리 시대에 일어나곤 하는 한 가지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죠. 소인들이 대붕이 되기를 바랐던 장자처럼 마르크스를 따라 임금노동자들의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도 유사한 제안을 받기도 하니까요.

 

 

 

장자가 유혹에 대처하는 방식

 

노동운동 지도자나 진보적인 지식인이 간혹 부르주아 정권이 제안하는 고위관료나 국회의원 자리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르주아 정권은 자본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는 권력입니다. 당연히 노동력이라는 상품만을 가진 노동계급보다는 자본을 소유한 자본계급의 이익에 종사하는 지배 형식입니다. 지배 형식 자체가 그렇다면 이 형식을 폐기해야 노동계급을 위할 수 있습니다. 반면 고위관료나 국회의원이 된다는 건 지배 형식 자체를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됩니다. 결국 노동운동 지도자나 진보적인 지식인이라면 권력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부해야겠죠. 그런데 그들 중 누군가는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물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거나, 아니면 정부나 국회에서 노동계급을 위한 정책활동이나 입법활동을 하겠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고위관료나 국회의원이 되어 누군가를 지배하겠다는 해묵은 권력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순간 자신이 호랑이가 된다는 자명한 진실로부터는 눈을 돌린 거죠. 중요한 것은 호랑이굴입니다. 거기에 누가 들어가 있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니까요. 호랑이가 떠난 굴에서는 여우나 토끼가 왕이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서 수정주의자가 탄생합니다. 이들은 지배 형식은 건드리지 못하고 부드러운 지배만을 지향하는데요. 호랑이굴 자체를 없애지 못하고 그 굴에 들어간 토끼나 여우인 셈이죠. 결국 이것은 노동계급의 저항의지를 약화시키고, 지배 형식 자체를 영속화하는 데 이바지할 뿐입니다.

 

2,500년 전 장자가 권력의 유혹에 대처한 방식은 인상적입니다. 장자는 재상이 되면 소인들을 위한 국가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혹은 자신이 재상이 되면 최소한 소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과거보다 높아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대붕이었기 때문입니다. 대붕에게는 좁은 세계를 만드는 담장을 파괴하거나 아니면 좁은 세계를 떠나버리는 것. 이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대붕이 날개를 접고 자신의 거대한 몸을 작은 호랑이굴에 쑤셔 넣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장자에게 초나라 군주의 제안은 유혹조차도 되지 않습니다. 장자의 확고함은 그가 기회를 살려 대부 두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기는커녕 장자는 이미 거의 들어가 있는 대부 두 사람마저 호랑이굴에서 빼내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갑골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입니다. 권력의 맛을 본 두 사람마저 영토국가라는 협소한 세계를 벗어던지는 대붕으로 만들어버리려 하니까요. 나무를 베어 죽여야 그걸로 서까래나 대들보를 만들 수 있는 법입니다. 국가권력도 그 대상이 지배계급이든 피지배계급이든 인간의 자유와 능동성을 박탈해야 그들을 부릴 수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장자는 살아 있는 거북죽은 거북의 등껍질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살아 있는 거북의 등껍질로는 점을 칠 수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거북을 죽이고 등껍질을 칼로 도려낸 다음 그걸 잘 말려야 합니다. 그래야 신탁을 받을 수 있는 종교 도구가 되니까요. 불에 던져 근사한 균열을 얻으려면 이런 잔인한 조치는 불가피한 법입니다. 물론 군주는 등껍질을 그야말로 아끼고 사랑합니다. 그 껍질을 상자에 넣고 비단보로 싸서 묘당 안에 소중하게 간직할정도니까요.

 

장자는 대부 두 사람에게 거북은 죽어서 뼈를 남겨 귀하게 되기를 원했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원했을까요?”라고 반문합니다. 장자는 죽은 거북이 되지 않겠다는, 그래서 국가가 소중히 여기는 객경이 되지 않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표명한 거죠. 그러나 동시에 문답을 통해 장자는 자신의 대답을 두 사람도 공유하도록 만듭니다.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장자를 만나러 오면서 두 사람은 장자를 질투했을 겁니다. 장자가 아니었다면 둘 중 하나가 재상이 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이제 두 사람은 장자를 통해 재상이라는 지위가 죽은 거북의 등껍질이라는 걸 알게 된 겁니다. 그렇지만 알 수 없는 일이죠. 그들이 돌아가 대부라는 지위마저 버리고 자유인이 될지, 아니면 기꺼이 국가가 소중히 여기는 죽 은 거북의 등껍질이 될지 말입니다. 그건 이제 두 사람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장자의 가르침이 이를 수 없는 부분이죠. 누군가에게 자유를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를 자유롭도록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건 자유의 본질과 관련된 진실입니다. 분명한 건 장자가 앞으로도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닐거리는 사실입니다. 진흙탕에서 자유로운 거북이는 구만리 창공을 나는 대붕과 다름없으니까요. 그러나 장자는 꼬리를 끌면서 그 꼬리가 남기는 자취를 부단히 지우려 할 겁니다. 아니면 초나라든 오나라든 제나라든, 국가는 추적자가 되어 그를 쫓아올 테니까요. 관직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관직을, 나아가 그 생명마저 빼앗을 힘이 있는 법입니다. 상벌의 힘을 가진 지배기구, 생사여탈 권을 가진 억압기구가 바로 국가니까요.

 

 

 

울타리 밖 꿩에게 배운 지혜

 

자신이 등용할 수 없다면 다른 국가도 그를 쓸 수 없도록 장자를 죽여버릴 수도 있는 게 국가권력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제 복수(濮水)에서 낚시하는 장자를 발견할 일이 다시는 없게 되는 겁니다. 대부 두 사람이 빈손으로 떠나고 나면 장자는 바로 낚싯대를 서둘러 거둘 테니까요. 그러고는 자신의 흔적을 말끔히 끊고 연기처럼 사라지겠죠. 곧 정예병의 호위를 받은 초나라 군주가 들이닥칠 테니까요. 장자가 자신의 제안에 끝내 저항하면 그를 죽일 수도 있는 힘을 가진 초나라 군주입니다. 바로 이것이 장자가 스스로 종적을 끊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사라진 장자는 어딘가에서 근사한 이야기를 하나 더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 이야기의 핵심은 아마도 흔적을 끊기는 쉽지만, 땅을 밟지 않기란 어려운 법[絶迹易, 无行地難]”이라는 가르침을 수정하는 데 있을 겁니다. 수정된 가르침은 땅을 밟지 않기도 어렵지만, 흔적을 끊는 것 역시 어렵다[无行地難, 絶迹亦難]”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네요. 어쨌든 계속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고 다니면서장자는 자신의 사유와 삶을 더 심화시킬 겁니다. 양생주편의 꿩 이야기는 어쩌면 그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꿩 이야기로 표현된 자신의 성찰 때문에 장자가 초나라 군주의 제 안을 여유롭게 거부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죠. 확실한 건 꿩 이야기가 갑골 이야기보다 더 시적인 울림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두 이야기는 함께 읽는 것이 좋습니다. 꿩 이야기를 산문으로 풀면 갑골 이야기가 되고, 갑골 이야기를 시적으로 압축하면 꿩 이야기가 되니까요. 꿩 이야기는 장자의 시인으로서의 매력이 가득한 한 편의 간결한 시입니다. 차근차근 읽어보도록 하죠.

 

장자는 바람을 맞으며 작은 바위에 앉아 있습니다. 꿩 한 마리가 그의 눈에 들어옵니다. 연못 근처 숲속을 특유의 리듬으로 걷고 있는 꿩입니다. 평화롭고 유유자적한 풍경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꿩은 특유의 리듬 속에서도 무언가 분주하기만 합니다. 어떤 목적도 없는 소요유가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진 행위를 하는 듯 보였으니까요. 순간적이나마 장자의 눈에는 먹고 살기 위해 꿩이 먹이와 물을 찾아 분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열 걸음 걷다 한 번 먹이를 쪼고 백 걸음 걷다 한번 물을 마시네.” 여기서 장자는 꿩에 대한 자신의 첫인상을 반성합니다. 꿩은 자유의 상징이 아니었던 겁니다. 인간이나 꿩을 포함한 모 든 생명체는 먹고사는 데 연연할 수밖에 없다는 서글픔마저 느끼게 되죠. 다행히 장자의 서글픔은 얼마 가지 않습니다. 장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꿩이 자유롭다는 걸 자각하니까요. 먹고 마신다는 측면에서 꿩은 차라리 인간에게 포획되어 사육되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한두 걸음 안에 바로 먹을 수 있는 사료 통과 물통이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꿩은 울타리 안에 갇혀 길러지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꿩은 ()이 울타리 안에서 비록 왕과 같을지라도 좋지 않다는 걸 직감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장자의 시선은 다시 열 걸음 걷다 한 번 먹이를 쪼고 백 걸음 걷다 한 번 물을 마시는꿩에게 갑니다. 먹이를 쪼기 전의 아홉 걸음, 그리고 물을 마시기 전의 아흔아홉 걸음이 엄청난 무게감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울타리 안에서는 결코 걸을 수 없는 걸음이자 걸을 필요가 없는 걸음입니다. 자유는 먹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먹는다는 의미였던 겁니다. 바로 이것이 꿩에게서 장자가 배운 아름다운 지혜입니다.

 

죽어서 뼈를 남겨 귀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고,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원했던 것이 거북의 마음입니다. 거북의 마음은 먹이를 쪼기 전의 아홉 걸음과 물을 먹기 전의 아흔아홉 걸음을 걸었던 꿩의 마음과 같습니다. 먹이를 쪼는 열 번째 걸음과 물을 마시는 백 번째 걸음이 바로 먹이를 쪼기 전의 아홉 걸음과 물을 먹기 전의 아흔아홉 걸음의 자장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한가롭게 걷다가 꿩은 먹이와 물을 발견합니다. 그러니까 먹이를 찾아 아홉 걸음을, 물을 찾아 아흔아홉 걸음을 걸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꿩의 산책은 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묘한 리듬감이 있었던 겁니다. 사료와 물을 기다렸다가 허겁지겁 사료통과 물통으로 몰려가는 사육장의 꿩과는 분명 다른 행보입니다. 장자의 시는 두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합니다. 꿩이 열 걸음 걷다 한 번 먹이를 쪼고 백 걸음 걷다 한 번 물을 마실, 우리는 먹이를 쪼는 열 번째 걸음이 아니라 먹이를 쪼기 전 아홉 걸음의 여유를, 그리고 물을 마시는 백 번째 걸음이 아니라 물을 마시기 전 아흔아홉 걸음의 여유를 느껴야 하니까요. 마침내 사육장 울타리 안의 풍부한 먹이와 물, 그리고 습지 근처에서 발견하는 먹이와 물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꿩은 사육장 안의 풍요로움이 자신의 죽음을 재촉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뼈를 남겨 귀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던 거북처럼 말이죠. 꿩은 차라리 가난한 자유를 선택합니다. 바로 이것이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원했을거북이 감당했던 삶입니다. 꿩의 소요유를 보며, 결코 울타리 안[樊中]”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지는 장자입니다. 최소한 습지의 꿩처럼 살아야 생명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 법입니다.

 

 

꿩은 차라리 가난한 자유를 선택합니다. 바로 이것이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원했을" 거북이 감당했던 삶입니다. 

 

인용

목차 / 장자 / 타자와의 소통

40. 예술이 간신히 탄생하는 순간 / 42. 섭섭한 세계와 장자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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