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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장자수업, 1부 대지를 뛰어올라 - 12. 보편적인 것은 없다, 제대로 마주치지 않으면 번개는 생길 수 없다 본문

책/철학(哲學)

장자수업, 1부 대지를 뛰어올라 - 12. 보편적인 것은 없다, 제대로 마주치지 않으면 번개는 생길 수 없다

건방진방랑자 2021. 5. 1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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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마주치지 않으면 번개는 생길 수 없다.

 

먼저 두 번째 질문을 생각해보죠 우리는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 아닐까?” 설결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까요? 아니 정확히 말해, 잘못 제기된 이 문제는 어떻게 그의 마음속에서 해소되었을까요? ‘모든 동물들이 동의하는 올바른 거주지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의문을 생각해보세요. 잘못된 문제는 답을 찾아서 풀리는 것이 아니라 해소되어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느라 삶을 허비하지 않아야 하니까요. 설결의 두 번째 질문은, 어떤 장소가 누군가에는 쾌적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끔찍하지만 그곳 자체는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 어떤 음식은 누군가에게 군침 돌게 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역겨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 음식 자체는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 혹은 어떤 사람은 누군가에게 설렘을 주고 다른 누군가에게 불쾌함을 주지만 그 사람 자체는 존재하는 것 아니 나는 질문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개똥이다라는 문장을 생각해보세요. 술어 개똥임이라는 보편자가 부정된다고 해도 이것이라는 주어가 가리키는 개별자는 자기 동일적으로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입니다. 물자체, 1실체 혹은 개별자는 불변한 채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동시 이야기가 설결과 우리에게 던지는 첫 번째 화두는 바로 이겁니다.

 

제자가 화두를 스스로 풀도록 5년이고 10년이고 기다려주는 것이 선생의 배려일 겁니다. 하지만 성질이 급한 독자들을 위해 왕예 혹은 장자 대신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번개가 친다’ ‘꽃이 핀다혹은 물이 흐른다는 말을 생각해보세요. 주어와 술어, 혹은 제1실체와 제2실체로 나뉜 표현입니다. 이로부터 주어가 의미하는 제1실체, 즉 개별자가 불변한 채로 존재한다는 착각이 생깁니다. 번개가 치는 장면을 떠올려보세요. 하나의 운동만이 밤하늘에 번쩍 섬광이 일어나는 현상만 있습니다. 그런데 번개가 친다는 주술 구조에 빠져드는 순간 우리는 번개가 있고 그 다음에 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치지 않는 번개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번개가 있는데, 그 것이 내려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발상이죠. 어떤 장소가 누군가에 쾌적하기도 하고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끔찍하기도 하지만 그곳 자체는 존재한다는 발상과 같은 겁니다. 하지만 번개가 치지 않으면 번개는 없는 것입니다. 그냥 없는 겁니다. 내려치지 않은 채 하늘 어딘가에 번개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꽃이 핀다도 마찬가지입니다. 피지 않은 꽃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물이 흐르지 않을 때도 흐르지 않는 물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돌아보세요. 번개가 치고 다시 어두워지고 눈이 오고 멎는, 그리고 꽃이 피고 지는 세계입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사람이 사랑하고 사람이 늙어가고 사람이 죽어가는 세계입니다. 불변하는 제1실체와 같은 것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멋진 세계죠.

 

이제 설결이 절망적으로 던진 마지막 질문, “외물이란 알 수 없다는 겁니까?”도 깔끔하게 해소되었나요. 인간의 인식은 문장을 만드는 능력입니다. “AB!” 바로 이것이 판단의 핵심 구조니까요. “이것은 더러운 개똥이다라는 인식을 보세요. 하지만 이제 우리는 더러운 개똥이 이것의 본질이 아닌 것을 압니다. “이것은 약재다라는 말도 가능하니까요. 사람에 따라 문맥에 따라 어느 표현이든 가능합니다. 여기서 사물에만 속한다는 본질로서의 제2실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주술 구조에서 술어 부분의 견고함은 이렇게 녹아내리게 됩니다. 번개 등도 다양한 조건들의 마주침의 결과이니, 주어가 가리키는 제1실체도 불변하는 그 무엇으로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적절한 수증기와 대기의 운동 등이 제대로 마주치지 않으면 번개는 생길 수 없습니다. 사물도 혹은 사물의 속성마저도 마주침의 효과이니, 주어와 술어는 모두 확고한 토대를 잃고 맙니다. 이렇게 주술 구조 전체가 흔들리면서 “AB라는 판단이 흔들리니 설결은 절망했던 겁니다. 외물에 대해 어떤 판단도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옳다고 동의하는 본질이나 불변하는 개별자를 상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외물에 대해 인식하고 판단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대해, 원숭이에 대해, 미꾸라지에 대해, 장소에 대해, 아름다움에 대해, 사랑에 대해, 소통에 대해, 그리고 바람에 대해.

 

 

 

 

인용

목차 / 장자 / 타자와의 소통

11. 자유로운 공동체를 꿈꾸며 / 13. 선과 악을 넘어서

모두가 옳다고 생각한다

안다모른다의 경계

제대로 마주치지 않으면 번개는 생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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