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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강신주의 장자수업, 4부 바람이 부는 곳으로 - 39. 죽음, 그 집요한 관념을 해체하며(맹손재 이야기) 본문

책/철학(哲學)

강신주의 장자수업, 4부 바람이 부는 곳으로 - 39. 죽음, 그 집요한 관념을 해체하며(맹손재 이야기)

건방진방랑자 2021. 5. 1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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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죽음, 그 집요한 관념을 해체하며

맹손재 이야기

 

 

안회가 공자에게 물었다. “맹손재는 자신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곡은 했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고 마음속으로도 슬퍼하지 않았으며 장례를 지낼 때도 애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세 가지가 없음에도, 그는 노나라에서 장례를 잘 치른 자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 내실이 없는데도 그런 명성을 얻는 경우가 실제로 있는 것 아닙니까? 저는 정말로 그것이 이상합니다.”

顔回問仲尼曰: “孟孫才, 其母死, 哭泣無涕, 中心不戚, 居喪不哀. 無是三者, 以善處喪蓋魯國, 固有無其實而得其名者乎? 回壹怪之.”

 

공자가 말했다. “맹손재는 죽음과 장례에 대한 앎을 넘어 그것을 모두 실천한 사람이다. 장례를 간소히 치르려 해도 뜻대로 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이미 간소히 한 것이 있다. 맹손재는 태어난 이유나 죽는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고, 어느 것이 중요하고 어느 것이 부차적인지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변화에 따라 하나의 사물로 태어났다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변화가 끝나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장차 변화한다면, 어떻게 변화하지 않음을 알겠는가? 장차 변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이미 변화했었음을 알겠는가? 단지 나도 그렇지만 너도 꿈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仲尼曰: “夫孟孫氏盡之矣, 進於知矣, 唯簡之而不得, 夫已有所簡矣. 孟孫氏不知所以生, 不知所以死. 不知就先, 不知就後. 若化爲物, 以待其所不知之化已乎. 且方將化, 惡知不化哉? 方將不化, 惡知已化哉? 吾特與汝, 其夢未始覺者邪!

 

게다가 그는 몸이 망가지더라도 마음을 소모하지 않았고, 몸을 떠나려 해도 죽음에 신경 쓰지 않는다. 맹손재만이 홀로 깨어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곡할 때 그 또한 곡을 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 것을 따른 것이다. 지금 우리는 자신을 나라고 여기고 있을 뿐인데, 어떻게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것이 실제로 내가 아님을 알겠는가? 너는 너 자신이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 있다고, 혹은 너 자신이 물고기가 되어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고 있다고 꿈꿀 수 있다. 지금 말하고 있는 나도 깨어 있는 자인지 아니면 꿈꾸고 있는 자인지 모르겠구나!”

且彼有駭形而無損心, 有旦宅而無情死. 孟孫氏特覺, 人哭亦哭, 是自其所以乃. 且也相與 吾之耳矣, 庸詎知吾所謂 吾之? 且汝夢爲鳥而厲乎天, 夢爲魚而沒於淵. 不識今之言者, 其覺者乎? 其夢者乎?” 대종사13

 

 

죽음에 대한 장자의 2.5인칭 감각

 

모르는 사람의 딸이 죽었을 때와 애지중지하던 내 딸이 죽었을 때, 두 경우에 우리가 죽음을 느끼는 강도는 확연히 다릅니다. 내 딸의 장례를 치른 뒤 집에 돌아왔다고 생각해보세요. 딸의 빈방에서도, 거실에서도, 부엌 식탁에서도, 욕실에서도, 딸 이 신던 신발에서도, 딸이 입던 옷에서도, 딸이 가지고 놀던 곰 인형에서도, 심지어 배우자에게서도 딸이 없다는 경험, 블랙홀과 같은 부재감에 사로잡힐 겁니다. 당연히 방의 있음, 거실의 있음, 식탁의 있음, 신발의 있음, 곰인형의 있음, 배우자의 있음, 심지어 자신의 있음마저 경험하기 힘들게 되죠. 바로 이것이 2인칭의 죽음입니다. 여기서 2인칭은 내가 당신이라고 부르는 사람, 다시 말해 내 앞의 누군가를 가리키는 문법적 의미를 넘어섭니다. 인문학적 의미의 2인칭이니까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 기쁨을 주는 사람, 그래서 부재하면 내게 슬픔을 안기는 사람이 2인칭입니다. 반면 모르는 사람의 딸은 내게 3인칭이죠. 내가 애지중지하던 사람도 아니고, 기쁨을 주던 사람도 아니고, 없다고 해서 내게 엄청난 슬픔을 주는 사람도 아닙니다. 당연히 나는 3인칭의 죽음보다 2인칭의 죽음에 고통과 슬픔을 강하게 느낍니다. 땅이 꺼져 설 곳이 없어진 것 같은 박탈감입니다. 그래서 2인칭의 죽음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있음을 빨아들 이는 블랙홀이 되는 겁니다. 땅이 꺼지면 그 위에 서 있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여기서 죽음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정착민적이라는 걸 직감해야 합니다. 정착생활은 내 땅, 내 집, 내 사람 등 소유의식을 강화시킵니다. 내 땅이 없다면 내 집이 없다면 내 사람이 사라지면, 정착민은 극심한 박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2인칭과 3인칭의 기원을 알게 됩니다. 정착민이 갖는 정착지 안과 정착지 바깥에 대한 감각이 중요합니다. 정착지 안에서 함께 정착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2인칭의 기원이고, 정착지 바깥의 사람들, 즉 내 정착 생활과 무관한 사람들이 바로 3인칭의 기원입니다.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이 있습니다. 타의에 의해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문화나 지역으로 흩어져 살아가게 된 정착민 집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고대 그리스어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라는 말 자체가 나는 흩어진다는 뜻의 동사 디아스 페이로(diaspeirō, διασπείρω)에서 유래한 겁니다. 구체적으로 이 말은 바빌로니아나 로마제국에 의해 이스라엘 땅에서 추방당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유대인을 가리키는 성경의 표현에서 유래합니다. 추방당한 정착민들은 추방지에서 자신이 살던 고향에 거의 병적인 집착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극심한 향수병이죠. 당연히 추방된 정착민들은 자신이 새로 정착한 땅을 긍정하기 어렵습니다. 새로 살게 된 땅은 친숙한 올리브 나무도 없고 물놀이하던 개울도 없고 포근한 바람도 없는 곳으로, 다시 말해 고향의 부재로만 기억될 테니까요. 반면 지배와 복종을 피해 자발적으로 유목생활을 시작한 유목민들은 다릅니다. 사실 유목민들 이 매 순간 쉬지 않고 초원과 사막을 배회하는 건 아닙니다. 어느 곳이든 마음에 들면 그들은 일정 시간 동안 그곳에 머무니까요. 유목민적인 것의 핵심은 부단히 이동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언제든 이동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유목민은 마음에 드는 새로운 땅을 찾아 기꺼이 떠날 수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잠시 정착한 곳에서 유목민들은 과거 정착지에 대한 향수에 빠지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목민들이 자신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사랑하는 동안에만 머문다는 게 정답일 겁니다. 유목민의 임시 정착지는 마음에 들어 머물기에 2인칭적인 곳이지만, 동시에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곳이기에 3인칭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지금 머물지 않는 곳은 3인칭적인 것 같지만 2인칭적이기도 하죠. 그래서 유목민에게 유라시아 전체 땅은 2인칭도 아니고, 그렇다고 3인칭도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착민이 자기 정착지를 2인칭으로 집착하고, 정착지 바깥을 3인칭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2.5인칭의 땅, 바로 그것이 유목민이 땅에 대해 갖는 감각의 핵심입니다. 떠났던 곳에 대한 향수나 앞으로 갈 곳에 대한 기대감도 유목민에게서는 거의 찾을 수 없는 감정입니다. A지역에서는 A지역을 긍정하고 B지역에서는 B지역을 긍정하니까요. 유목민은 긍정하는 지역에 머물고 머무는 지역을 긍정합니다. 그러니까 B지역에 새롭게 머물게 되었을 때, 유목민은 디아스포라처럼 이곳을 ‘-A‘, 다시 말해 A의 부재로 경험하지 않는다는 게 중요합니다. 유목민에게 떠나온 A지역에 대한 기억은 회한이나 슬픔의 정조가 아니라 좋았던 느낌으로 존재합니다. 하긴 당연한 일입니다. 유목민은 슬픔을 강요하는 땅에 억지로 머물지 않으니까요. 기쁨을 주는 한 어떤 지역에 지속적으로 머물기 때문에, 떠난 곳에 대한 유목민의 기억은 기쁨의 정조로 채색되는 겁니다. 이렇게 2.5 인칭으로 파악된 땅에 대한 유목민의 감각은 A지역에서는 A지역을 긍정하고, B지역에서는 또 B지역을 긍정하고, C지역에서는 마찬가지로 C지역을 긍정하는 것으로 구체화합니다. 머무는 곳에 대한 거의 완전에 가까운 긍정입니다. 그러니 B지역에 있을 때 유목민이 이 지역에 집중하지 못하고 C지역을 꿈꾼다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A지역에 대한 향수도, C지역에 대한 갈망도 B지역에 대한 몰입과 집중을 가로막을 수 있으니까요. 정착민이 아니라 유목민만이 발달시킨 2.5인칭의 감각! 이것은 장자가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됩니다. 죽음은 머물기와 떠나기의 사건이니까요. 하긴 장자의 소요유 정신은 정착민적 사유와 정착민적 감각을 넘어서려는 의지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제 대종사편의 맹손재 이야기, 죽음에 대한 장자의 성찰이 멋지게 빛을 발하는 이 이야기를 읽을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맹손재가 죽음을 슬퍼하지 않은 이유

 

공자와 안회가 대화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아울러 꿈 모티브를 채택하기에, 맹손재 이야기는 장자 본인이 만든 이야기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공자에게 유학 사상을 부인하는 대사를 맡기는 장자의 재기발랄함이 눈부십니다. 모친상을 치르는 맹손재의 모습을 보고 공자의 수제자 안회가 스승 공자에게 당혹감을 피력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먼저 우리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 혹은 전국시대 유가들의 흑역사를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제후국들을 돌아다녀도 등용되지 못한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먹고살아야 했던 그들, 유가들은 일종의 장례 전문지도사 노릇을 하게 됩니다. 과거 장례 예식에 대한 박학한 지식을 십분 이용한 거죠. 전국시대에는 벼락부자나 벼락귀족들이 양산되었는데 그들은 자신을 과시할 허례허식에 무지했습니다. 그러니 장례지도사의 수요도 급증했던 겁니다. 묵자(墨子)』 「비유(非儒()4에는 당시 유가들의 삶을 조롱하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가을이 지나 큰 초상이 나면 온 가족이 이에 따라 물리도록 먹고 마실 수 있고, 작은 초상 몇 개만 마쳐도 그 정도로는 살아갈 수 있다. 그들은 남의 집에 의지해 살찌고, 남의 땅에 의지해 존귀해진다. 그들은 부자가 상을 당하면 크게 기뻐하며 이거야말로 입고 먹을 수 있는 기회다라고 즐겁게 말한다[五穀旣收, 大喪是隨, 子姓皆從, 得厭飮食, 畢治數喪, 足以至矣. 因人之家翠以爲, 恃人之野以爲尊, 富人有喪, 乃大說, 喜曰: ‘此衣食之端也.’]”,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는 공자를 상갓집 개[喪家之狗]”에 비유하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상갓집 개는 흔히, 상을 당해 경황이 없는 상가에서 기르던 개에게 밥을 챙겨주지 않아 개가 수척해진다는 의미로 독해됩니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공자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대가 허락하지 않아 곤궁했던 인물이 됩니다. 그러나 이는 후대 유학자들의 공자 미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상갓집 개는 그냥 상가의 음식을 먹으려 배회하는 개, 상가와는 무관한 개로 이해해야 합니다. 잔치가 열리면 출현하는 각설이처럼 말이죠. 결국 맹손재 이야기는 장례 기능 보유자 공자와 장례 기술 계승자 안회 사이에 오갔던 장례에 대한 고품격 대담이었던 겁니다. 그러니 맹손재가 상을 치른 사례에 대한 안회의 평가는 묵직한 의미를 갖습니다. 지금 안회는 맹손재의 사례를 통해 자신의 장례기술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자랑하는 중입니다. “맹손재는 자신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곡은 했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고 마음속으로도 슬퍼하지 않았으며 장례를 지낼 때도 애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세 가지가 없음에도, 그는 노나라에서 장례를 잘 치른 자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안회의 이 평가에는 장례 전문가로서의 그의 자부심, 즉 죽음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유가로서의 자긍심이 묻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공자는 안회에게 맞장구를 쳐주기보다 장례 기술전승 집단으로서의 유가를 스스로 부정하는 멘트를 던지죠. “맹손재는 죽음과 장례에 대한 앎을 넘어 그것을 모두 실천한 사람이다. 장례를 간소히 치르려 해도 뜻대로 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이미 간소히 한 것이 있다.” “죽음과 장례에 대한 앎을 넘어섰다는 말은 맹손재가 유학 사상을 극복했다는 것, 동시에 유학이 수준이 떨어지는 사유 체계라는 걸 의미합니다. 심지어 맹손재는 그 복잡한 절차마저 간소히 합니다”. 복잡한 절차를 대신해주기에 유가들이 상갓집 개로 연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맹손재는 유가의 영업을 방해하고, 심지어 유학을 괴멸시킬 수도 있는 위험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그가 장례 절차를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나름 간소히 했다고 극찬합니다. ‘간소히 한다는 뜻의 동사 ()’비운다는 뜻의 동사 ()’를 상징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맹손재는 눈물[]’ ‘슬픔[]’ 그리고 애도[]’를 간소히 하고 죽음과 장례에 직면했던 사람입니다. 물론 안회의 말대로 맹손재도 어머니가 죽었을 때 곡은 했습니다. 사실 그는 곡마저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곡을 간소히 하는 데는 실패합니다. 그러나 맹손재가 자발적으로 곡을 한 건 아닙니다. 이웃과 지인들이 문상 와서 곡을 했기에 그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곡할 때 그 또한 곡을 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 것을 따른 것이다.”

 

형식적인 곡을 포함한다면, 결국 모친상을 당한 맹손재는 죽음과 장례에 대한 모든 것을 간소히 한”, 다시 말해 비운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공자는 이런 맹손재가 죽음과 장례에 대한 꿈에서 홀로 깨어난[特覺]” 사람이라고 존경을 표합니다. 공자의 평가가 옳다면, 모친상을 당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곡하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애도하는 것은 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일이 되어버리죠. 여기서 장례기술전문가 집단 유가는 자폭하고 맙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깨우기는커녕 그들의 꿈을 증폭시켜 생계를 유지하는 사기 집단이 되는 셈이니까요. 어쨌든 여기서 홀로 깨어난 맹손재의 내면이 궁금해집니다. 맹손재는 어머니의 죽음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맹손재는 어머니가 죽어 자신을 떠났다는 걸 압니다. 왜 그는 곡하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애도하지않았던 걸까요? 생전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닙니다. 맹손재는 정착민적 감수성이 아니라 유목민적 감수성의 소유자였습니다. 자신도 언젠가 떠날 임시 정착지에서 누군가 먼저 떠날 때, 유목민들은 그 이별을 그다지 슬퍼하지 않습니다. 반면 정착민들에게 정착지를 떠난다는 건 엄청난 불안감과 공포, 나아가 슬픔을 안겨주는 사건일 겁니다.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강도가 정착민적 감수성에서 더 강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삶은 정착이고 죽음은 디아스포라로 느껴지니까요. 이것이 정착문명에서 귀신과 제사의 제도가 발달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향을 떠난 불행한 영혼이 1년에 한 번 돌아와 따뜻한 환대를 받는다는 발상입니다. 그래서 후대 성리학에서는 귀신(鬼神)의 귀()라는 글자에 돌아온다는 뜻의 ()’의 의미를 덧붙였던 겁니다. 그러나 유목민적 감수성에는 돌아온다는 발상 자체가 없습니다. 자신이 자유롭게 다른 곳으로 떠날 뿐입니다. 당연히 유목민에게서 삶에 정착하려는 집착은 정착민이 보면 놀랄 정도로 희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삶은 삶으로, 죽음은 죽음으로 긍정하라

 

맹손재에게 어머니는 먼저 떠난 유목민이었습니다. 그리고 맹손재의 어머니는 돌아올 필요도 없습니다. 맹손재도 어머니처럼 떠날 테니까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미 다른 사람이 머무는 곳에 다시 와서 무엇하겠습니까? 맹손재는 압니다. 죽음은 나중에 떠날 유목민보다 먼저 어떤 유목민이 떠나는 사건이라는 걸요. 그러나 함께 있을 때 유목민들은 서로를 충분히 아껴주고 환대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고 떠날 수 있지만 함께 있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떠날 수 있는 데도 떠나지 않고 머문다는 건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징표입니다. 떠날 수 없어서 억지로 정을 붙이기도 하는 정착민적 마음, 떠날 수 없기에 사랑한다는 정신승리를 구가하는 마음으로는 헤아리기 힘든 일일 겁니다. 자신도 떠나리라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만이 떠난 사람에게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끼는 법입니다. 자신도 죽는다는 걸 그야말로 온몸으로 절실하게 안다면,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눈물이 별로 나지 않을 겁니다. 반대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면, 자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단지 관념으로만 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문상을 오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문상을 오는 경우를 비교해보면, 이 점은 분명해집니다. 맹손재는 자신이 임시 정착지에 잠시 머물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입니다. 바로 이것이 죽음에 대해 홀로 깨어 있던 맹손재의 핵심 정조입니다. 어쩌면 먼저 죽은 사람 앞에서 보이는 눈물과 슬픔은 자신은 죽지 않았다는 확인과 안도의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운다는 것, 그것은 남은 자들 혹은 산 자들의 살아 있다는 자기 희열의 반영일 수도 있습니다. 영정을 흐리는 우리의 눈물은 그래서 상징적인 데가 있습니다. 눈물의 막은 만리장성이 되어 우리 자신의 삶을 보호하고, 고인을 삶의 장벽 밖으로 추방하니까요.

 

친절한 장자는 공자의 입을 빌려 맹손재의 유목민적 감수성, 소요유의 감각을 설명합니다. ‘유목민()’의 유()소요유(逍遙遊)’의 유()가 섬광처럼 중첩되는 대목입니다. 먼저 장자는 맹손재가 태어난 이유나 죽는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고, 어느 것이 중요하고 어느 것이 부차적인지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119라는 번호가 붙은 비트겐슈타인의 유고에 흥미로운 구절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원인이라 부른 것은 에게 책임이 있다!’라고 가리켜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진한 글자는 비트겐슈타인 본인이 그렇게 표기한 겁니다. 삶에 문제가 벌어지면 우리는 그렇게 만든 원인을 찾습니다. 사랑에 빠졌던 사람이 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가?”라고 자문한다면, 이 사람의 사랑에는 무언가 문제가 생긴 거죠. 사랑이 충만하고 사랑을 향유하고 있다면, 우리는 사랑에 ?”라는 의문을 붙이지 않습니다. 태어난 이유든 죽는 이유는 ?”라는 의문을 던진다면, 삶을 긍정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야 맹손재가 왜 태어난 이유나 죽는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그는 삶을 긍정했던 사람, 지금 잠시 머무는 삶, 어머니와 함께한 삶을 향유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태어나기 전의 상태나 죽은 뒤의 상태는 그의 마음속에 들어올 수도 없는 거죠. 당연히 어떻게 사느냐의 여부나 어떻게 죽느냐의 여부 중 무엇이 중요한지도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정도로 도 충분히 근사하지만, 지적인 독자들에 대한 노파심에 장자는 사족을 하나 붙입니다. “변화에 따라 하나의 사물로 태어났다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변화가 끝나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장차 변화한다면, 어떻게 변화하지 않음을 알겠는가? 장차 변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이미 변화했었음을 알겠는가?” 인식론적 설명입니다. 살아서 변화를 겪고 있다면 어떻게 태어나기 전의 상태나 죽은 뒤의 상태를 알 수 있겠냐는, 이제 죽어 더 이상 변화를 겪지 않게 되면 어떻게 살았을 때의 상태를 알 수 있겠냐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맹손재는 태어나서 자신이 겪은 모든 변화를 긍정했던 사람입니다. 늙어도 그것을 젊 음의 부재로 생각하지 않고 다리가 잘려도 그것을 다리의 부재로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여기서도 유목민적 감수성이 빛을 발합니다.

 

과거 머물던 A지역과 지금 머무는 B지역에 가치평가를 하지 않는 유목민처럼 맹손재는 과거의 젊음에 연연하면서 지금의 늙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몸이 망가지더라도 마음을 소모하지 않았던그가 몸을 떠나려 해도 죽음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죠. 삶에 집착해 죽음을 피하려는 맹손재가 아닙니다. 젊은 내가 나이고, 사지가 멀쩡한 내가 나이고, 살아 있는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게 바로 장자가 말한 헛된 꿈입니다. 이런 자의식은 늙음을 젊음의 부재로, 불구를 정상의 부재로, 죽음을 삶의 부재로 느끼게 됩니다. 늙음은 늙음으로, 불구는 불구로, 그리고 죽음은 죽음으로 긍정해야 합니다. 물론 젊음을 늙음의 부재로 정상을 불구의 부재로, 삶을 죽음의 부재로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젊음은 젊음으로, 정상은 정상으로 삶은 삶으로 긍정해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젊음과 늙음은, 정상과 불구는, 그리고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몽환적 일체감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젊음과 늙음은, 정상과 불구는 삶과 죽음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건 젊음과 늙음, 정상과 불구, 삶과 죽음 중 어느 하나에 우월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감각입니다. 땅에 대한 2.5인칭의 감각, 유목민적 감각이 타인에 대해서나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필요한 이유입니다. 겨울에 머무는 곳도 좋고 여름에 머무는 곳도 좋습니다. 그래야 나나 나와 함께 있는 타인도, 나와 함께 있는 양이나 낙타, 그리고 말도 머무는 어느 곳에서나 여유롭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자의 입을 빌려 장자는 말했던 겁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을 나라고 여기고 있을 뿐인데, 어떻게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것이 실제로 내가 아님을 알겠는가?” 우리는 태어나서 끝내 죽는 존재, 살아서도 부단한 변화를 겪는 존재라는 장자의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타자도 그렇고 나 자신도 유목민일 뿐입니다. 그 어떤 변화의 국면에 영구히 머물러 정착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소중하다고 느끼기 쉬운 것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맹손재! 다른 유목지로 떠나며 먼발치에서 겨우내 있던 유목지를 얼핏 돌아보는 유목민의 마음입니다. 안녕! 잠시 머물기를 허락했던 땅이여! 안녕! 엄마! 갈 길을 재촉하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다시 번집니다. 초원의 바람이 그의 자유를 맞아줍니다.

 

 

중요한 건 젊음과 늙음, 정상과 불구, 삶과 죽음 중 어느 하나에 우월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감각입니다. 

 

인용

목차 / 장자 / 타자와의 소통

38. 열 번째 화살을 찾아서 / 40. 예술이 간신히 탄생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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