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의 편집자 유청지(劉淸之)와 주희의 관계
그는 효(孝)의 중요성은 확고하게 인식하였다. 그러나 효는 그의 이기론(理氣論)적 코스몰로지(Cosmology)의 논리적 결구 속에서 분석되어야 할 그 무엇이 아니었다.
효는 일차적으로 감성의 문제이며, 당위의 문제이며, 실천의 문제이다. 그것은 성인(聖人)의 문제이기보다는 소아(小兒)의 문제였다. 성인에겐 효를 가르친다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그것은 어린이의 일상거지로부터 스며드는 것이라야 했다. 효는 논(論)의 문제가 아니라 습(習)의 과제였다.
인(仁) | 효(孝) |
성인(聖人)의 문제 | 소아(小兒)의 문제 |
논(論)의 문제 | 습(習)의 과제 |
주희의 판단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그가 『효경간오』를 쓴 것이 57세인데, 『소학(小學)』을 그 이듬해 58세 때 완성했다고 하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희는 『소학(小學)』을 제(題)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옛부터 소학에서 사람을 가르치기를, 물 뿌리고 청소하고, 응대하고 진퇴하는 절도로써 하였고, 또 부모를 사랑하고, 윗사람을 공경하며, 스승님을 융성하게 대접하고, 동무를 친하게 대하는 도(道)로써 하였는데, 이 모두가 수신제가치국ㆍ평천하의 근본이 되는 까닭이다.
古者小學敎人以灑掃應對進退之節, 愛親敬長隆師親友之道, 皆所以爲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本.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반드시 유치한 나이에 강습하여야 하며, 배우면서 이지가 더불어 자라나고 몸의 변화를 일으키면서 마음이 무르익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때늦게 억지로 주입시키느라고,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서로 애써 고생만 하는 그런 우환이 없도록 해야 한다【‘한격이불승(扞格而不勝)’이라는 말은 『예기』 「학기(學記)」에 출전이 있다. 이상은 『주문공문집』 권76에 있다】.
而必使其講而習之於幼稚之時, 欲其習與知長, 化與心成, 而無扞格不勝之患也.
전통적으로 『소학(小學)』이란 책은 주희의 저술로 인식되어 왔으나, 실은 주희의 문인이며 친구라 할 수 있는 유청지(劉淸之, 리우 칭즈, Liu Qing-zhi, 1139~1195)【임강(臨江) 사람으로 소흥(紹興) 27년 진사. 주희를 만나고 나서 자기가 배운 것을 다 불태워버리고 의리지학에 뜻을 두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자(字)가 자징(子澄)이다. 그의 전기가 『송사』 권437에 자세히 실려있다】에게 명하여 여러 경전에서 동몽을 교화시킬 수 있는 내용을 한데 모아 편집하도록 한 책이다.
『주문공문집』 권35에는 유자징과의 서한문들이 실려있어 그 자세한 왕래를 엿볼 수 있다. 이미 순희 10년(1183, 주희 54세)에 자징에게 보낸 답서에, “『소학(小學)』이라는 책은 정돈이 잘 되어가고 있소? 빨리 되었으면 다행이겠구료, 찾는 대로 곧 보내주면 행복하고 또 행복하겠소(무엇을 찾는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소학(小學)』의 내용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小學書曾爲整頓否? 幸早爲之, 尋便見奇, 幸幸]”라고 쓰여져 있는 것을 보면 퍽 일찍부터 계획된 사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헌비평가들이 『소학(小學)』은 유자징의 작품이며 주희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으나, 『소학(小學)』 편집에 관여한 사람이 유자징 일인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고, 또 처음부터 마스터 플랜을 정하고 그 편집과정을 주희가 다 감독했으므로 실상 주희의 작품이라고 말하여도 무방하다【이 문제와 관하여서는 진영첩(陳榮捷, Wing-tsit Chan)의 『주자신탐색(朱子新探索)』 중 ‘소학(小學)’ 일문(一文)에 자세하다】.
『소학(小學)』과 『대학(大學)』의 분별에 관한 주희의 논의는 명료하다. 그의 『대학장구』 「서(序)」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사람은 태어나서 8세가 되면, 왕공(王公)으로부터 서인(庶人)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에 들어가 쇄소ㆍ응대ㆍ진퇴의 절도와 예ㆍ악ㆍ사ㆍ어ㆍ서ㆍ수의 글을 배웠다.
人生八歲, 則自王公以下, 至於庶人之子弟, 皆入小學, 而敎之以灑掃應對進退之節, 禮樂射御書數之文.
그리고 나이가 15세가 되면, 천자의 원자(元子)ㆍ중자(衆子)로부터 공ㆍ경ㆍ대부ㆍ원사(元士)의 적자(適子: 적자嫡子를 의미한다)와 뭇 백성의 준수(俊秀)한 인물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대학에 들어가, 궁리ㆍ정심ㆍ수기ㆍ치인의 도를 배웠다. 이는 또한 학교의 가르침에 작고 큰 절차가 있어 소학과 대학으로 나누어진 까닭이다.
及其十有五年, 則自天子之元子衆子, 以至公卿ㆍ大夫ㆍ元士之適子, 與凡民之俊秀, 皆入大學, 而敎之以窮理ㆍ正心ㆍ修己ㆍ治人之道. 此又學校之敎, 大小之節, 所以分也.
『효경』이라는 텍스트에 실패를 선언한 후 『대학(大學)』에 전념하게 되면서 『소학(小學)』을 창조해내는 주희의 구상이야말로 사상가로서 탁월한 전략인 동시에, 그가 얼마나 현실적 문제에 고심하고 산 사람인가, 그 뼈저린 충정을 엿보게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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