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 제일(第一)
불감훼상의 우주적 스케일
중니(仲尼)께서 댁에서 한가롭게 거(居)하고 계실 때에 증자(曾子)가 시중들며 곁에 앉아 있었다. 이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삼(參)【자(字)가 아닌 증자의 이름[名], 공자가 제자를 애칭하는 방식】 아!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을 만드신 선왕(先王)들께서는 지덕(至德: 지극한 덕. 효덕孝德)과 요도(要道: 도의 요체. 효도孝道)를 몸에 지니고 계셔, 그것으로써 천하(天下)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백성들은 그 지덕과 요도로 인하여 화목(和陸)하게 되었고, 사회의 윗 계층과 아랫 계층이 서로 원망하는 일이 없었다. 아가, 너 그것을 아느냐?” 仲尼閒居, 曾子侍坐. 子曰: “參, 先王有至德要道, 以順天下. 民用和睦, 上下無怨. 女知之乎?” 증자가 공손히 일어나 자리를 비키며 아뢰었다: “제가 불민(不敏)하기 그지 없사온대, 어찌 그것을 알리오리이까?” 曾子避席曰: “參弗敏, 何足以知之乎?”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대저 효(孝)라는 것은 인간의 모든 덕성의 근본이며, 교화(敎化)가 모두 그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다. 아가, 네 자리로 돌아가 앉거라! 내가 정식으로 너에게 가르침을 주겠노라. 다음의 말들을 가슴 깊이 새기어라. 너의 몸통(신身)과 사지(체體), 그리고 머리카락(발髮)과 피부(부膚)가 모두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것을 감히 훼상(毁傷: 다치거나 못쓰게 함)하지 아니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효의 시작이다. 몸을 반드시 세우고(立身: 떳떳한 인간으로 성장함) 인생의 정도를 걸어가는 것(行道), 그렇게 하여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떨치는 것, 그리고 내 이름으로 부모님까지 영예롭게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효의 종착이다. 대저 효라는 것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섬기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사회에 나아가서는 임금을 섬기는 것으로 진행되다가, 결국은 자기 몸을 반듯이 세우는 것으로 완성되나니라. 『시경』 대아(大雅) 「문왕(文王)」 노래에 이런 구절이 있나니라: ‘그대의 선조들을 항상 잊지 말아라. 선조들의 덕을 이어 그것이 한층 빛나도록 몸을 닦아라.’” 子曰: “夫孝, 德之本也, 敎之所繇生也. 復坐. 吾語女.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夫孝, 始於事親, 中於事君, 終於立身. 「大雅」云: ‘亡念爾祖, 聿脩其德.’” |
‘개종명의(開宗明義)’란 종지(宗旨)를 열고, 대의(大義)를 밝힌다는 뜻으로 『효경』 전체의 총론이라는 뜻이다.
‘증자(曾子)’라는 표현은 증삼을 높인 말인데, 증자학파에 소속되는 증자문인들이 자기 선생을 부를 때 쓰는 표현이다. 공자 앞에서 당연히 낮추어 불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증자’라고 부른 것은 증자학파의 형식주의나 권위주의가 좀 개재되어 있을 수도 있다.
‘피석(避席)’ ‘복좌(復坐)’는 자리의 예법인데, 여기 석(席)이라는 것은 마루바닥 위에 일본사람들 다다미(たたみ, 疊)처럼 생긴 방석이 있는 것이다.
‘복좌(復坐). 오어여(吾語女).’는 그냥 상식적인 행동이 아니고 학문을 전수할 때 말하는 작법으로서 고례(古禮)로부터 내려온 것이다(『논어한글역주』 「양화」 8의 설명을 참고할 것).
마지막의 『시경』 인용은 대아(大雅)의 「문왕(文王)」에 있는 구절인데, 원래적 맥락은 피정복의 은나라 유민들을 겁주면서 하는 말로써, ‘조상들의 비극을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덕을 닦아라[亡念爾祖, 聿脩其德]’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효경』의 인용방식이 단장취의(斷章取義)라고 할 수 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이라는 메시지는 몸철학(Philosophy of Mom)의 대원리로서 나의 존재의 연대성과 관계성, 그리고 생명의 온전성에 대한 존중(Reverence for Life)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의 몸에 대한 존중은 타인의 몸에 대한 존중을 똑같이 수반한다는 사실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타인의 몸도 나와 똑같이 ‘수지부모(受之父母)’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나의 신체발부나 타인의 신체발부가 공통된 효의 원리 속에서 똑같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이라는 이 구절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절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문자의 일면만을 보아서는 아니 된다. 그 배면에는 반어적(反語的)인 역동성이 숨어 있는 것이다. ‘불감훼상(不敢毁傷)’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머리카락도 함부로 자를 수 없었다. 그래서 조선조에서는 남아(男兒)도 더벅머리를 길게 따서 늘어뜨리는 관습이 생겨났던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살아 생전에 손톱을 자르시고도, 그 손톱을 모아두었다가 꼭 화단에 묻곤 하셨는데, 부모님의 유체를 아무 곳에나 방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으셨던 것이다.
이러한 삶의 형태는 매우 보수적인 체제순응적 인간을 길러낸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구한말의 단발령(斷髮令)에 반발한 유자들이, 한결같이 『효경』의 이 구절을 인용하여 ‘내 목을 자를 수 있을지언정 내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고 목숨으로 항거한 것은 이러한 가치관의 또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발의 수용이 개화의 정당한 길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그것은 일본의 정치적 압력에 대한 굴복이었고, 삶의 ‘일본화’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며, 인륜을 파괴하여 문명인을 야만인으로 전락케 하는 비열한 행동이었다. 그러한 피상적 강요는 국정개혁을 결실시킬 수 있는 대중적 지지기반을 상실케 할 뿐이었다. 을미사변(乙未事變, 일본인에 의한 민비시해사건) 3개월 후에 선포된 단발령에 대한 전 국민의 항거는 결국 단발령을 철회하게 만들었으며, 단발령으로 촉발된 국민들의 격노는 거센 의병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조선왕조의 비극적 종말을 막아볼려고 노력한 반일ㆍ반정부의 의병운동이라도 없었더라면 우리가 과연 조선왕조의 노블리스 오블리쥬(noblesse oblige)를 말할 수 있을까? 부끄러운 역사만 우리에게 남았을 것을 생각하면 『효경』의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의 사상이야말로 우리민족의 영원한 ‘항거의 활화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감훼상’의 논리가 과거에는 ‘왕조형법의 저촉’을 발생시키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정언명령처럼 해석되어, 왕조체제순응형의 인간을 길러내는 데 크게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독재정권의 불의에 항거하여 경찰곤봉에 머리가 깨지고 피가 나는 데모대열의 대학생들에게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을 외치면서 그들의 행동을 저지하려는 보수언론의 논객들도 있겠지만, 오히려 ‘불감훼상’의 논리가 항거(抗拒)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역설을 우리는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너희들이 무엇인데, 감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이 몸을 훼상시킨단 말이냐’하고 정의로운 데모의 불꽃은 더욱 치성하게 타오를 수 있다. 서슬퍼런 간언을 일삼고 당당하게 사약을 들이키는 과거 유생들의 절개로운 삶은 부모에게 대효를 완수했다는 안도감의 전율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더구나 과거 왕조의 형법중심의 법률체계와는 달리 민법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이 ‘불감훼상’의 논리는 인간개체의 존엄성과 거의 본능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존 록크(John Locke, 1632~1704)는 인간은 국가가 제정한 실정법과 관련없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불가침(不可侵)ㆍ불가양(不可讓)의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현실의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국가지배는 개인의 이러한 권리에 대한 ‘지배계약’에 의거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지배자가 이 계약에 위반하여 개인의 생명ㆍ자유ㆍ재산ㆍ행복을 침해할 때에는 개인은 여기에 대하여 대항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소위 자연법(自然法, Natural Law)에 기초한 천부인권설(天賦人權說, The Theory of Natural Rights)이다.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의 신권통치(Theocracy)의 허구에 치명적 타격을 가한 사상이며, 이 사상은 영국의 권리장전(the Bill of Rights, 1689)의 기초가 되었고, 버지니아 인권선언(the Virginia Declaration of Rights, 1776)으로 채용되었으며, 미국의 독립선언문(the Americ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1776)의 뼈대가 되었다. 그리고 향후 불란서혁명(French Revolution)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근세적 인권설(Human Rights)이 우리나라 헌법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타생적이든지, 자생적이든지를 불문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민주 법질서는 이러한 인권설에 기초한 성공적인 관례들을 축적시켜 나가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면에는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이라는 『효경』 사상이 깔려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우리는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인의 ‘인권’ 개념은 신부(神賦)도 아니요, 천부(天賦)도 아니다. 그것은 친부(親賦)인 것이다. 내 몸(Mom)이야말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지존의 권리이며 천자(天子)라도 훼상시킬 수 없는 지고한 가치라는 생각이 한국인의 인권개념을 정립시키고 있는데 이것을 친부인권설(親賦人權說, the Theory of Mom's Intrinsic Rights)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친부인권설이야말로 바로 록크적인 천부인권 개념에 잘 맞아 떨어진 것이다. 『효경』의 불감훼상은 결코 과거의 가치로서 이해될 것이 아니라 미래적 가치로서 더욱 존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효경』의 ‘불감훼상’ 논리는 ‘나’의 ‘몸’이라는 서구적 개인존엄의 가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나의 몸은 나의 부모의 몸의 연장태로서 ‘천지동포’와의 화엄적 연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몸이라는 개체에 한정될 때 그것은 ‘인권(人權)’이 되지만 그것을 천지동포로 확대시킬 때는 그것은 ‘물권(物權)’이 된다. 산천초목에도 친자의 관계는 존재한다. 나무도 어미와 새끼가 있다. 그것이 ‘효도’라는 의식적 활동으로 연계되고 있지는 않지만,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이라는 논리는 엄연히 고수되고 있다. 산천초목이라 할지라도 부모에게서 받은 몸(Mom)을 온전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을 한다. 그런데 그것을 인간이 마구 톱질해대는 것은 매우 불효(不孝)한 일이다. 그들이 온전한 모습과 환경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물권(物權)을 묵살하는 죄악이다.
『효경』의 자매편이며 동일한 사상 패러다임을 표현하고 있는 『대대례기』의 「증자대효(會子大孝)」 편, 그리고 『예기』의 「제의」 편에는 다음과 같은 충격적 명언이 있다. 바로 악정자춘이 발목을 삔 이야기 이후에 연(連)하여 나오고 있다.
산천초목도 반드시 그 때를 따라 베어야 한다. 금수도 반드시 그 때에 맞추어 죽여야 한다. 그래서 공자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나무 한 그루를 베는 것도, 짐승 한 마리를 죽이는 것도, 자연의 때를 따라 공경히 하지 않으면 그것은 불효이다.”
草木以時伐焉, 禽獸以時殺焉. 夫子曰: “伐一木, 殺一獸, 不以其時, 非孝也.”
‘불감훼상’의 몸철학의 논리는 바로 전 우주적 스케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몸’과 ‘효’와 ‘불감훼상’은 인권이라는 협애한 개념에 국소화되지 않는다. ‘몸’은 기(氣)의 사회(Society of Qi)이며, 그 기의 사회는 모든 생명체와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증자대효」의 사상은 우리나라 동학의 2대교조인 해월(海月)의 ‘이천식천(以天食天)’ 사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느님이 하느님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이 하느님을 봉양할 때만이 허락된다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도 하느님이요, 짐승 한 마리도 하느님이다. 공자가 말하는 “벌일목(伐一木), 살일수(殺一獸)’는 바로 ‘이천식천’의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최소한의 요구에 따라 최적의 자연리듬에 따라 행하여질 때만이 효(孝)가 된다는 것이다. 효는 동방인의 에콜로지(Ecology) 관념의 근간을 형성하는 것이며, 알버트 슈바이쳐(Albert Schweitzer, 1875~1965)가 말하는 ‘생명외경(Reverence for Life)’ 사상과 상통하는 것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은 평상시에는 나의 삶의 고결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극기절제의 양생(養生)철학의 구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주적 스케일로 확대될 때는 온 생명의 온전함에 대한 경외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사회적 개체로서 인식할 때는 부모에게 받은 몸(Mom)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존엄한 개체로서 살아가게 된다. 그것은 서구인들이 자기 몸을 신의 은총으로서만 생각하던 중세기적 사유보다 훨씬 앞서서, 그리고 근세적 개인주의의 존엄성을 확보하기 훨씬 이전부터, ‘나’를 존엄한 신체발부로서 인식하고 당당하게 대장부(大丈夫)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효는 나의 몸의 효인 동시에 천지자연의 몸의 효이다. 그러한 생명 공동체의 효야말로 모든 신성(Divinity)의 궁극적 의미인 것이다.
‘수지부모(受之父母)’가 인치본에는 ‘수우부모(受于父母)’로 되어있다.
천자장(天子章) 제이(第二)
한 사람의 생각이 세계평화로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자기의 부모를 사랑할 줄 아는 자들은 그 마음을 확대시켜 타인을 미워할 수 없으며, 자기의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자들은 그 마음을 확대시켜 타인을 깔보지 아니 한다. 子曰: “愛親者, 不敢惡於人; 敬親者, 不敢慢於人. 천자가 자기의 부모를 섬기는 데 사랑의 마음과 공경의 마음을 극진하게 한다면 그 덕성의 교화가 온 누리 백성에게 미칠 것이요, 사해(四海) 천하에 그 모범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곧 천자의 효이다. 『상서』의 「여형」 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한 사람의 훌륭함이 있으면, 그 훌륭함에 만민(萬民)이 은덕을 입는도다.’” 愛敬盡於事親, 然後德敎加於百姓, 刑於四海. 蓋天子之孝也. 「呂刑」云: ‘一人有慶, 兆民賴之.’” |
전통적인 봉건체제의 상하질서를 전제로 하여 효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상황에 그대로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 최고의 권력자인 천자에게 준엄한 도덕을 요구한 것은 오늘날과 같이 민주적 정치체제를 구상할 수 없는 당시로서는 필연적 요청이었다. 최고의 권력자가 도덕적이지 않으면 만사가 불안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이러한 정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조직의 장에게 우리는 효를 구현할 수 있고, 그 효를 보편적 가치로서 모든 인간에 적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덕성을 구비한 인품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1961~ )가 카이로대학에서 행한 연설(2009. 6. 4.)은 지구상의 모든 종교가 극단이나 독단이나 편견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연의 삶의 증진을 위하여 공통된 비젼을 공유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힘의 유지는 강압이 아닌 공감을 통하여, 관용과 절충에 의하여 이루어져야만 한다. 종교적 신앙은 타인의 신앙의 배타를 전제로 할 수 없으며, 종교의 자유야말로 인류가 지구상에서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꾸란』과 『탈무드』, 그리고 『신약』이 모두 평화로운 신의 비젼 속에서 지구상의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해 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 「여형」 편의 말과 같이, 한 사람의 생각의 훌륭함이 세계평화를 증진시키고 있는 한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여기 ‘애(愛)’라는 동사는 우리말로 ‘아낀다’, ‘애석해 한다’라는 뜻에 가까우며 서양언어 개념의 ‘to love’와는 출입이 있다. 그리고 ‘형어사해(刑於四海)’의 ‘형(刑)’은 ‘형(型, 모범, 전범, 법法, 칙의 뜻)’과 “형(形, 드러난다)‘의 두 가지 뜻이 있다. 양자를 절충하여 번역하였다.
『상서』 「여형」의 인용도 단장취의이다. 단장취의일 경우 번역은 현재의 콘텍스트에서 할 수밖에 없다.
다음에 나오는 제후장과 경대부장에서는 직접적으로 효가 언급되지 않는다. 그들은 봉건질서 권력체제 속의 인간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효는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덕성을 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효의 개념의 확충이지, 결코 효의 맥락을 무시한 것이 아니다.
제후장(諸侯章) 제삼(第三)
고위공무원에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윗자리에 거(居)하면서도 교만하지 아니 하고, 높은 곳에 처하면서도 자신과 주변을 위태롭게 하지 아니 하고, 삶의 상황들을 제어할 줄 알고 매사의 도수를 지나치지 않게 절제하며, 재화가 가득 차도 그것이 넘치도록 하지마라. 子曰: “居上不驕, 高而不危; 制節謹度, 滿而不溢. 높은 곳에 처하면서도 위태롭게 하지 아니 하니, 그 높은 지위를 오래 지킬 수 있다. 가득차도 넘치도록 하지 아니 하니, 그 부(富)를 오래 지킬 수 있다. 풍요로운 재력과 권위로운 높은 지위가 그 몸을 떠나지 않은 연후에나 비로소 사직을 보전(保全)할 수 있는 것이요, 자기 영내의 인민들을 화목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대저 이것이 제후의 효이다. 高而不危, 所以長守貴也. 滿而不溢, 所以長守富也. 富貴弗離其身, 然後能保其社稷, 而和其民人. 蓋諸侯之孝也. 『시경』 소아(小雅) 「소민(小旻)」노래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전전긍긍(戰戰兢兢)하여라. 깊은 못에 임하는 듯이, 살 얼음을 밟듯이 조심하며 살아가라.’”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水.’” |
제후의 효는 제후국의 질서를 지키고 그 영내의 인민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다. 효의 개념이 ‘바른 통치’라는 의미로 확대되고 있다. 효의 맥락을 결코 무시한 장이 아니다. 청와대의 권좌에 있는 자의 효는 자기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정치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한 효행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제후의 효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제후 본인의 부(富: financial power)와 귀(貴: positional strength)가 우선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후 본인의 부귀가 확보되기 위해서는 사치하고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절검하고 위태롭게 처신하지 않는 겸허함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이불일(滿而不溢)’이라는 말은 재력에 있어서는 항상 ‘허(虛)’를 유지하는 슬기로움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노자(老子)적 사유의 깊은 영향이 엿보인다. 『노자』 제15장에 ‘이 도를 보존하는 자는 채우려하지 않는다[保此道者, 不欲盈]’이라는 말이 있는데 왕필(王弼)이 ‘차면 반드시 넘친다[盈必溢也].’라고 주석을 단 것과 상통하는 의미맥락이다. 『노자』 제9장에도 ‘금과 옥이 집을 가득 채우면 그를 지킬 길이 없다. 돈이 많다고, 지위가 높다고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길 뿐이다. 공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길이다[金玉滿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功遂身退, 天之道].’라는 말이 있는데 『효경』의 본 장과 그 의미가 상통한다.
기실 유(儒)와 도(道)는 삶의 지혜에 있어서 근원적으로 차별이 없는 것이다. 『효경』 안에는 유(儒), 도(道)ㆍ법(法)ㆍ묵(墨) 등등이 다 통섭되어 있다. 『효경』을 유교의 경전으로만 간주하고 이러한 도가사상과의 관련성을 밝히는 주석을 다는 자가 별로 없는데 그것은 매우 편협한 자세이다. 높은 지위에 있을수록 로우 키(low-key)의 겸허한 인생태도를 지녀야 그 높은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삶의 허(虛)다.
마지막의 『시경』 「소민」의 가사 인용도 단장취의라 할 수 있다. 그 맥락이 다르다. 「소민」의 맥락은 대운하를 강행하거나 도성을 신축하거나, 정치지도자가 그릇된 계획(가사 중에는 ‘모謀’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있다)을 세워 국민을 위기에 빠뜨릴 때, 힘없는 인민들은 전전긍긍하면서 조심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한탄한 노래이다. 본 장에서는 그러한 의미맥락을 제후가 조심하면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전환시켰다. 노래가사란 본시 해석의 스펙트럼이 넓은 것이다.
증자의 삶의 최후 순간을 기록한 『논어(論語)』 「태백」의 기술과 내면적 연결이 있다.
경대부장(卿大夫章) 제사(第四)
출중한 교양인을 위해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선왕의 법복(法服)【고대문명의 틀을 짠 선왕들이 법도에 따라 정한 복식】이 아니면 감히 입지 아니 하고, 선왕의 법언(法言)【선왕들이 예법에 따라 정한 이상적 언어, 그 의미 내용과 말씨. 고대제식에 수반되는 언어로서 격식화되어 있었다. 『시』에서는 ‘덕음(德音).’ 『예』에서는 ‘합어(合語).’ 고대문명에 질서를 부여한 고등한 언어, 교양】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 아니 하고, 선왕의 덕행(德行)【‘법행(法行)’이라 말해도 될 것이다. 선왕들의 덕을 구현한 행동. 이상적 삶의 실천】이 아니면 감히 행하지 아니 한다. 그러므로 선왕의 법(法)이 아니면 말하지 아니 하고, 선왕의 도(道)가 아니면 행하지 아니 한다. 子曰: “非先王之法服弗敢服, 非先王之法言弗敢道, 非先王之德行弗敢行. 是故非法弗言, 非道弗行; 입에는 버리거나 택하거나 할 말이 없고, 몸에는 버리거나 택하거나 할 행동이 없다. 그러므로 그의 말이 천하에 퍼져도 입놀림의 과실이 없고, 그의 행동이 천하에 퍼져도 원망이나 증오가 없다. 口無擇言, 身無擇行. 言滿天下亡口過, 行滿天下亡怨惡. 법복(法服), 법언(法言), 덕행(德行), 이 삼자(三者)가 구비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녹위(祿位: 작록과 지위)를 보전할 수 있고 그 종묘를 지킬 수 있다. 이것을 소위 경대부의 효라고 하는 것이다. 『시경』 대아(大雅) 「증민(蒸民)」 노래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른 아침부터 깊은 밤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을 충심으로 섬기도다.’” 三者備矣, 然後能保其祿位, 而守其宗廟. 蓋卿大夫之孝也. 『詩』云: ‘夙夜匪懈, 以事一人.’” |
『효경』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중요한 장 중의 하나이다. 총론에서 밝힌 지덕(至德)ㆍ요도(要道)가 이 「경대부」 장에서 법복(法服)ㆍ법언(法言)ㆍ덕행(德行)이라는 세 개념으로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복ㆍ법언’이라 하면 우리는 언뜻 불교의 용례를 생각하기 쉬우나, 불교의 한역과정에서 이 『효경』」의 언어들이 격의(格義)의 틀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불교에서 법(法)은 ‘다르마(dharma)’를 의미하지만, 다르마가 함의하는 모든 신성한 의미를 선진문명에서 이미 ‘법’이라는 개념이 담고 있었다. 그것은 불타의 교법(敎法)ㆍ규범(規範)ㆍ법칙(法則)이 아닌 선왕의 교법이요, 규범이요, 법칙이었다.
일반독자들은 ‘선왕(先王)’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 중국고전에서 ‘선왕’은 매우 특수한 의미를 지니는 개념이다. 중국문명, 아니 인간세의 법칙의 모든 기초를 놓은 문명창조자들(Culture-bringers, Culture-creators, Cultural Heroes, 이상은 희랍문명의 개념)이며 유대교에 비유하면 패트리아크스(Patriarchs)에 해당된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요셉에 이르는 족장들이 중국민족들에게는 선왕(先王)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 족장들로부터 내려오는 율법전승을 집대성한 것이 모세율법 즉 토라(Torah)라는 것이다. ‘토라’도 ‘가르침’ 즉 ‘교(敎, instruction, teaching)라는 뜻이다. 토라로부터 미쉬나(Mishnah)가 발전하고, 미쉬나로부터 탈무드(Talmud)가 발전하여 유대인의 삶을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듯이, 여기 ‘법복’ ‘법언’ ‘덕행’이라는 개념도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단지 신화적ㆍ종교적 희생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문적ㆍ문화적 질서가 중심이 되고 있을 뿐이다.
『예기』의 「문왕세자(文王世子)」 편의 문장을 한번 살펴보자!
세자나 일반 선비를 가르치는 데는 반드시 때에 맞추어 커리큐럼을 짠다. 대학에 들어가지 않은 일반 선비의 경우, 봄에는 시(詩)를 음영한다. 그리고 여름에는 금슬로써 그 시를 연주한다. 이러한 음악교육은 고종(瞽宗)【장님들이 교수인 학교로서 고대 주요교육기관】에서 태사들이 가르친다. 가을에는 의례를 행하는 것을 배우는데, 실제로 집례하는 사람들이 가르친다. 겨울에는 삼대로부터 내려오는 관공문서들을 실제로 관공문서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직접 가르친다. 그러니까 예(禮)는 고종(瞽宗)에서 배우고, 서(書)는 상상(上庠)에서 배운다【실제로 시ㆍ서ㆍ예ㆍ악의 커리큐럼이 사계절로 다 짜여져 있는 셈이다】.
春誦夏弦, 大師詔之瞽宗. 秋學禮, 執禮者詔之. 冬讀書, 典書者詔之. 禮在瞽宗, 書在上庠.
대저 제사를 지내는 것과 양로걸언(養老乞言)【노인의 현자를 모셔다가 지혜의 말씀을 청하는 것】과 합어(合語)【향사례(鄕射禮)ㆍ향음주례(鄕飮酒禮)ㆍ대사례(大射禮)ㆍ연사례(燕射禮) 등의 연회가 끝날 즈음 술을 주고 받으면서 선왕의 법에 관하여 그 의미를 상고하면서 진지하게 토론하는 예식】의 예(禮)는 모두 소악정(小樂正)이 동서(東序: 교육기관 이름)에서 가르친다. 대악정(大樂正)은 방패와 도끼로 추는 춤과 어설(語說)【각종 세미나에서 행하는 연설】과 명걸언(乞言)【대체로 ‘양로걸언’과 비슷한 의미】을 가르친다. 이 삼자(간척ㆍ어설ㆍ걸언)는 모두 대악정이 책의 편수(篇數)를 지시하면, 그에 따라 대사성(大司成)【사씨(師氏)계열의 교육담당 관리】이 동서(東序)에서 논설(論說)【강의하고, 또 강의에 대하여 시험을 본다】 한다.
凡祭與養老乞言, 合語之禮, 小樂正詔之於東序. 大樂正學舞干戚, 語說, 命乞言, 皆大樂正授數, 大司成論說在東序.
지금 여기에 나오는 ‘걸언(乞言)’ ‘합어(合語)’ ‘어설(語說)’ ‘논설(論說)’이라는 단어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효경』」에서 말하는 ‘선왕의 법언(法言)’의 실례들인 것이다. 고대의 예식이 우리가 종묘에서 보듯이 격식화된 의례와 음악만 있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례(射禮: 활쏘는 예식), 향음주례(鄕飮酒禮: 술 마시는 예식) 등 일반 파티에서는 반드시 ‘언어의 제전’ 즉 ‘세미나의 향연’ 즉 심포지움(Symposium)이 동반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줄리어스 시저나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BC 43)와 같은 로마의 영웅들을 생각하면 반드시 멋드러진,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웅변을 연상하는데, 이러한 풍속은 동ㆍ서가 차이가 없었다. 우리가 너무 동방문화의 원류에 무지할 뿐이다.
언어를 통하여 인간을 교육시키는 것은, 비록 상류사회에 국한되었다 해도, 주나라 인문교육제도의 기본이었다. 입에서 버리거나 선택하거나, 지지고 볶거나 할 건덕지가 없는[口無擇言] 출중한 교양인을 만드는 교육이 철저하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요즈음 정치지도자들 사이에서 너무도 천박한 싸구려 말들이 입가[口]에 맴돌아 이토록 나라의 풍기를 문란하게 만든 사례를 뼈저리게 체험한 한국인들은, 여기 경대부장의 메시지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경대부장에서 유독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천자 - 제후 - 경대부 - 사 – 서인’의 하이어라키(hierarchy, 계층)에서 경대부가 가장 막강한 실권자이며 실제로 인민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공자가 일생을 통해 추구했던 것도 경대부 자리였고 공자가 그토록 저주했던 계씨(季氏)도 경대부였다. 이들이야말로 법복ㆍ법언ㆍ덕행을 가장 정밀하게 실천해야 할 사람들인 것이다.
본시 경(卿)이란 대부(大夫)보다 높은 지위로서 군정(軍政)을 집장(執掌)하는 대신이었다. 그러니까 제후 밑의 행정수반이었다. 그리고 대부는 상대부(上大夫)ㆍ중대부(中大夫)ㆍ하대부(下大夫)의 구분이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경이나 대부나 모두 식읍(食邑)이라는 봉토를 받는다는 것이다. 일정의 봉토를 자신의 통치지역으로서 소유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러한 봉토가 없이 샐러리에만 의존하는 사(士)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사는 자유로운 유랑인이었고, 경과 대부는 땅에 얽매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여기 ‘경대부’라는 개념이 합칭되고 있는 것은 이미 공자의 시대에도 경과 대부의 뚜렷한 경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도 참월(僭越)을 하여 막강한 실권을 장악하면 군주의 권력을 능가했다. 옹렬한 주석가들이 경대부를 나누어 주석해야 한다고 하나, 이 『효경』이 쓰여진 전국말에는 ‘경대부’는 하나의 통합된 개념이었다.
경대부의 행동이야말로 천하에 펼쳐져도 천하사람들에게 원망이나 증오가 없어야 하고, 오늘날의 정치ㆍ관료ㆍ법조인들의 언어가 천하에 펼쳐져도 ‘입의 범죄[口過]’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효라고 말하는 『효경』」의 말씀이야말로 참으로 통렬한 법언(法言)이 아닐 수 없다. 어찌하여 이다지도 이 세상이 법언을 상실케 되었는가? 효가 곧바로 우리의 구업(口業)과 관련된다는 이 장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명심하기를 바란다.
마지막 시 「증민」의 인용은 대체적으로 본장의 의미맥락과 잘 맞아떨어지므로 단장취의라 볼 수 없다. 중산보(仲山甫)가 주나라 선왕(宣王)의 경대부였는데 선왕을 보좌하여 중흥의 치세를 이룩한 공신이었다. 그의 일상적 덕성을 찬양하는 구절이다. 여기 ‘일인(一人)’이란 천자를 의미한다. 경대부는 제후 밑에도 있고, 천자에 직속된 경대부도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는 맥락상 천자에 직속된 경대부를 일컫는 것이나, 의미론적으로는 어느 상황에도 다 들어맞을 수 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장관이나 행정관료들(특히 실제 사무를 장악하는 국장들), 그리고 검찰, 판사님들! 법언(法言)과 덕행(德行)을 꼭 기억하시오. 법언과 덕행의 실천이 바로 그대들의 효(孝)라오.
여기 『예기』의 ‘양로걸언(養老乞言)’과 관련하여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파티장이나 사교모임, 어디를 가든지, 또 길거리에서 사람을 만나는 경우라 할지라도 ‘덕담 한마디 해주세요’라는 청탁을 꼭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양로걸언’의 고례가 우리나라에 살아남은 실증이다. 옛 음주례에는 반드시 ‘양로걸언’이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양로(養老)’의 효도라고 하는 것은 훌륭한 ‘걸언(乞言)’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늙어가면서 젊은이들에게 법언(法言)이나 합어(合語)를 말할 수 있는 지혜로운 노인이라야 진정한 효(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더럽게 늙고, 완고하게 고집만 피우고, 골은 텡텡 비어가면서 젊은이들의 효심만을 강요하는 보수쓰레기가 되지 말자!
사장(士章) 제오(第五)
아버지와의 관계설정이 온전할 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버지를 섬기는 마음으로써 엄마를 섬길 때, 거기에 공통된 것은 애(愛)【‘사랑’이라고 번역하지만, 일차적 의미는 ‘아낀다’는 뜻이다. 어원상 ‘애(哀)’와 동근(同根)의 글자이며 ‘애석(愛惜)히 여긴다’는 뜻이 있다. 『설문』에는 ‘혜(惠)’로 풀이되어 있고, ‘인(仁)’ ‘친(親)’ 등이 관련된다. 마음 심 자가 들어가 있는데 그 아래에 있는 형상과 함께 가슴이 메진다. 애달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여기서는 감정적 거리가 없는 관계를 나타낸다】이다. 그리고 똑같이 아버지를 섬기는 마음으로써 임금을 섬길 때는, 거기에 공통된 것은 경(敬)【회의자(會意字)로서 사람이 사슴뿔을 만졌다가 놀라 불러서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데 ‘놀람[驚]’이나 ‘긴장[驚]’의 뜻이 내포되어 있으며 ‘애’와는 대조적으로 일정한 심적 거리감이 있다】이다. 그러므로 엄마를 섬길 때는 아버지를 섬기는 마음 중에서 애(愛)의 마음을 취하고, 임금을 섬길 때는 아버지를 섬기는 마음 중에서 경(敬)의 마음을 취한다. 그러니까 애(愛)와 경(敎)을 겸비한 마음은 아버지를 섬기는 마음이다. 子曰: “資於事父以事母, 其愛同; 資於事父以事君, 其敬同. 故母取其愛, 而君取其敬, 兼之者父也. 그러므로 애와 경을 겸비한 효(孝)의 마음으로써 임금을 섬기면 충(忠)【마음속[中心]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할 수밖에 없고, 제(弟)【아랫 사람의 공손함】로써 어른을 섬기면 순(順: 순종)할 수밖에 없다. 충순을 잃지 않고 윗사람을 섬기는 선비는 작록을 보전할 수 있고, 제사를 지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士)의 효이다. 『시』의 소아(小雅) 「소완」 노래에 다음과 같은 시구가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며, 너를 낳아주신 부모를 욕되게 하지 마라.’” 故以孝事君則忠, 以弟事長則順. 忠順不失, 以事其上, 然後能保其爵祿, 而守其祭祀. 蓋士之孝也. 『詩』云: ‘夙興夜寐, 亡忝爾所生.’” |
「사장」 역시 매우 중요한 장인데 해석이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 해석하고 마는 오류를 범한다. 이미 「천자장」에서 효를 ‘애친(愛親)’과 ‘경친(敬親)’으로 규정했다. 그러므로 애(愛)와 경(敬)은 효의 두 측면으로서 천자로부터 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서민에 이르기까지 전 인간을 관통하고 있는 보편적 덕목이다. 애와 경을 근간으로 깔고, 각 신분에 맞는 효의 요청을 하고 있는 것이 『효경』의 구조이다.
아버지[父] | |
가정 | 사회 |
엄마[母] | 임금[君] |
애(愛) | 경(敬) |
효(孝) |
효에는 애와 경의 두 측면이 있다. 그런데 애는 여성적이고 경은 남성적이다. 애는 감정의 거리가 없고 경은 감정의 거리가 있어야 한다. 애는 가정 내의 허물없는 분위기에서 성립하는 것이요 경은 가정 밖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애는 감정적이라면 경은 이성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이 애와 경의 두 측면을 종합한 것이 아버지라는 권위체이다. 아버지의 권위는 이 두 측면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아버지와의 관계설정을 온전히 할 때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프로이드, 라캉은 이러한 문제를 외디푸스 컴플렉스의 극복이라는 상징적 테제로서 설명했다.
이 「사장」에서 중요한 것은 사군(事君)이 본(本)이 아니고 사부(事父)가 본이라는 것이다. 사부의 마음으로 사군하는 것이지, 사군의 마음으로 사부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군은 철저히 사부에 종속된다.
말(末) | 사군(事君) | 말(末) | 사부(事父) | |
O↑ | X↑ | |||
본(本) | 사부(事父) | 본(本) | 사군(事君) |
따라서 본장에서 말하는 ‘충(忠)’은 어디까지나 아버지를 섬기는 마음처럼 우러나오는 진심을 말하는 것이지, 그러한 감정의 배경이 없는 무조건적 복종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경』의 「소완」은 어려움이 많은 사회의 서글픈 현실에 직면한 작가가 일반서민들에게 인내하면서 부지런히 노력할 것을 권면하는 노래이다. ‘첨(忝)’은 ‘욕보이다[辱]’로 해석된다.
서인장(庶人章) 제육(第六)
바른 정치가 이루어질 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하늘의 시(時: 시간의 변화)에 인순(因順)하고 땅의 리(利: 공간적 다양성의 이로움)를 활용하여 생업에 부지런히 종사하고, 근신(謹身)하며 재용(財用)을 절약(節約)한다. 그렇게 하여 정성껏 부모님을 봉양한다. 이것이 서인(庶人)의 효이니라.” 子曰: “因天之時, 就地之利, 謹身節用, 以養父母. 此庶人之孝也.” |
내가 『효경』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장이 바로 이 장이다. 푸른 초원에 초가삼간 하나 외로이 서있는 목가적인 정경이 삼삼히 떠오른다. 여기 서인(庶人)이란 사(士)ㆍ농(農)ㆍ공(工)ㆍ상(商)에서 사가 빠져 나갔으므로, 농ㆍ공ㆍ상인데 이 중에서도 ‘농(農)’을 중심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여불위(呂不韋)도 자신이 호상이면서도 『여씨춘추(呂氏春秋)』의 마지막을 농업사편(農業四篇)으로 마무리졌다. 새로운 제국의 질서는 반드시 중농정책(重農政策)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와 같은 상인들은 전국시대에는 적합해도 제국의 시대에는 통제하기 어려운 말썽꾸러기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최근에 정명현, 김정기, 민철기, 정정기 등에 의하여 번역된 조선의 대유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본리지(本利志)」를 참고할 것. 농업에 관하여 가장 완벽하게 정보가 수집된 백과사전이라 할 것이다. 서유구는 놀라웁게도 『여씨춘추(呂氏春秋)』를 정독하였다. 번역도 치밀하다. 국학의 한 쾌거라 할 만하다】.
서인이란 일체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자경농이 그 모델이라고 할 때, 과연 그들이 천시(天時)에 인(因)하고 지리(地利)에 취(就)하여 근신하고 절용하면서 부모를 봉양하고 사는 것 외에 또 딴 무슨 방도가 있으랴!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정치 즉 치국의 궁극적 목적이 바로 서인들이 근신절용하면서 초가삼간에서 부모 모시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인민대중들이 권력의 부당한 간섭이 없이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닥의 현실, 즉 서인들이 부모를 봉양하면서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다시 말해서 정치의 구극적 목적은 ‘서인의 효’를 확보하는 데 있다는 사실이다.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부모를 모시는 데 애경을 다해야 한다[愛敬盡於事親]는 주제는 여기 『효경』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그리고 ‘서인’은 가장 낮고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므로, 오히려 구구절절이 잔소리를 늘어놓아야 할 계몽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토록 간결한 문장으로 처리했다는 데 『효경』, 저자의 놀라운 감각이 있다. 그는 서인이야말로 바른 정치가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효를 다할 사람들이라고 보았으며 결코 계몽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계몽의 대상은 항상 천자(天子)였다.
오늘날 농업인구의 감소로 인하여 농자대본(農者大本)을 말할 수는 없겠으나, 농업인구가 감소한다 해서 농업이 피폐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농촌인구가 도시로 몰려들어 결국 생산적인 활동을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현실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농업은 힘은 들지만 지혜를 생기게 하고 자연과 소통하는 삶의 건강성을 확보케 한다. 그러나 농이 줄었다 해서 도시의 상ㆍ공이 제대로 확대된 것도 아니다. 실제로 도시인구의 대부분이 대기업의 부속품이거나 국가조직의 샐러리맨들이며, 자영상인들이나 일반서민들은 모두 국가정책이나 대기업중심 시장경제에 예속된 노리개들이다. 독립된 서인의 삶의 기반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국가가 농업이나 상ㆍ공업의 제조업 기반을 상실하면 장기적으로 볼 때 반드시 멸망을 자초한다.
따라서 도시문화를 생각해도 농촌기반을 무시해서는 아니 되며, 대기업을 육성해도 중소기업의 자족적인 제조업기반을 권장치 아니 하면 국가 경제는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제조업에 대한 근원적 대책이 없이 토건업 붐이나 일으킬 생각하고, 디자인산업이나 꿈꾸는 것은 모두가 허망한 짓이다. 현금 우리나라는 본(本)이 상실되고 말엽의 조작정치만 살아있다. 민주가 우리민족에게 선물한 최대의 파탄이라 할 것이다.
사(士)도 지식의 제조가 없는 사는 사가 아니다, 농(農)도 순수한 자연의 결실의 소출이 없는 농은 농이 아니다, 공(工)도 자족적 기술에 의한 제작이 없는 공은 공이 아니다. 상(商)도 제조업 기반이 없는 허황된 상은 상이 아니다.
마지막에 ‘절용(節用)’이라 한 말은 현대인들이 매우 가슴에 새겨야 할 말이다. 서인일수록 ‘절용’ ‘절약’ ‘절검’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데, 방만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카드빚이 쌓이고, 자식마다 핸드폰 다 들고 다니고, 끄떡하면 외식이고 외출이고 외유다! 『논어(論語)』 「학이」편 첫머리에 ‘절용이애인, 사민이시(節用而愛人 使民以時)’라는 공자님 말씀이 있다. ‘절용’의 사상은 묵자에 의하여 극단적으로 발전되었다.
금문에는 ‘因天之時, 就地之利’가 ‘用天之道, 分地之利’로 되어 있다.
효평장(孝平章) 제칠(第七)
고문효경이 더 진실하다
공자께서 이상의 여섯 장의 취지를 마무리 하시며 말씀하시었다: “그러므로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신체발부를 훼상치 아니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입신행도(立身行道)하여 후세에 양명(揚名)하고 부모님의 이름마저 빛냄으로써 완성되는 효를 실천하지 않고서는 그 화가 몸에 미치지 아니 하는 자, 천지개벽 이래 지금까지 있어본 적이 없다.” 子曰: “故自天子以下, 至于庶人, 孝亡終始而患不及者, 未之有也.” |
‘효평(孝平)’이란 ‘효에 있어서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의미이다. 주희는 여기까지(제7장)를 하나로 뭉뚱그려 『효경』의 경문(經文)으로 삼았다. 그리고 여기 이후는 지금까지의 경문에 대한 전문(傳文)이라는 것이다. 얼핏 그럴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주희는 근원적으로 『효경』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각 장의 독자적 특수성을 깨닫지 못했다. 서글픈 일이다.
금문에는 본 장이 독립되어 있질 않고 제6장인 「서인장」에 융합되어 있다. 따라서 앞에 ‘자왈(子曰)’도 없고, ‘자천자(自天子)’ 밑에 ‘이하(以下)’도 없고, ‘지우서인(至于庶人)’의 ‘우(于)’가 ‘어(於)’로 되어 있다. 주희는 이러한 금문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금문효경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자들은 ‘고(故)’로 시작하는 문장인데 그 앞에 ‘자왈(子曰)’이 있는 것은 이상하며, 그것은 원래 하나로 융합되어 있던 것을 독립시켜 효평장으로 만들면서 ‘자왈’을 삽입시켰다고 주장한다. 원래의 모습이 ‘그러므로[故]’로 연결되는 연속된 하나의 문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금문효경이 고문효경의 원래의 모습을 축약시킨 것일 수밖에 없다고 오히려 나는 주장한다.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선진문헌에서 ‘장(章)’이라는 이름이 편명 그 자체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은 유례가 없다. 예를 들면 『논어(論語)』의 「학이」도 그냥 ‘학이’까지만 있는 것이지 그 다음에 ‘편(篇)’이라는 글자가 같이 붙어있는 것은 아니다. ‘편’이라는 것은 모두 후대에 편의상 붙인 것이다. 그런데 『효경』만이 제목에 ‘경(經)’이라는 글자가 붙어있고 모든 분절에 딴 문헌으로 말하면 편에 해당되는 편명에 모조리 ‘장(章)’이라는 글자가 붙어있는 것이다. ‘개종명의장,’ ‘천자장,’ ‘제후장’, … 이런 식으로! 이것은 참으로 유니크한 사례이다.
장(章)이란 무엇인가? 장이란 ‘경(竟)’이란 글자와 동계열의 회의자인데, 본시 악곡에 있어서 가사가 일단락지어지는 것을 말한다. 『설문』에도 ‘장(章)’은 ‘음(音)’의 부류에 소속되어 있으며 ‘음악이 일단락지으면 일 장이 된다[章, 樂竟爲一章].’라고 풀이되어 있고, ‘가사가 그치는 곳이 장이다[歌所止曰章].’라는 주석이 있다. 결국 『효경』의 저자는 매우 의도적으로 『효경』 전체를 하나의 음악으로 보았고, 그 음악이 22장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효경』이 노래처럼 암송되면서 일반백성들의 가슴속에 신바람처럼 울려퍼지기를 바랬던 것이다.
따라서 「개종명의장」에 대하여 「효평장」이라는 일단락의 중간 마무리를 독립시킨 것은 너무도 정당성이 있다. 더구나 ‘효망종시(孝亡終始)’의 해석을 잘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여기서의 종(終)과 시(始)라는 것은 「개종명의장」에 있는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夫孝, 始於事親, 中於事君, 終於立身.’이라는 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인식하여야 한다. 따라서 ‘개종명의’에 대하여 ‘효평’이라는 마무리는 너무도 정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왈’이 ‘고(故)’ 앞에 있는 것도 너무도 정당하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의 ‘공자왈’은 ‘이상의 논리를 마무리하여 말씀하시었다’라는 뜻이며, 그 말씀의 내용이 ‘그러므로’라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상기의 논지를 이어 다시 말씀하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효경』의 악장의 특수성을 이해못한 자들이 금문에서 압축시켰고, 주희는 그것을 더 과감하게 압축시키려 했던 것이다. 모두가 용렬한 발상이다. 그리고 ‘천자’ 다음에 ‘이하(以下)’가 있는 것도 불필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요즈음 간백문헌의 느낌으로 보아 그러한 연접사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 오히려 고문용례인 것이다. 구어체에 보다 충실함을 반영한다. 이런 맥락에서 세밀하게 검토해본다면 고문효경의 진실성은 별로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삼재장(三才章) 제팔(第八)
문화적 역량을 지닌 지도자
증자가 이때까지 주욱 듣고 나서 감탄하여 외쳤다: “선생님, 참으로 대단합니다. 효의 위대함이란!” 曾子曰: “甚哉, 孝之大也!” 이에 공자께서 계속하여 말씀하시었다: “대저 효란, 하늘의 벼리[經]요, 땅의 마땅함[誼]이며, 사람이 살면서 실천하지 않을 수 없는 당위적 행동[行]이다. 효란 대체 하늘과 땅의 벼리이요 우주의 질서이니 사람이 본받지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대저 성인께서 사람을 가르치신다고 하는 것은 하늘의 밝음[明]【명백하게 내재하여 있는 질서, 시간적 개념】을 본받고, 땅의 이로움(利)【만물이 땅에서 생성되는 다양한 이치의 이로움, 공간적 개념】을 활용하여, 천하백성을 가르치고 훈도하는 것이다. 子曰: “夫孝, 天之經也, 地之誼也, 民之行也. 天地之經, 而民是則之. 則天之明, 因地之利, 以訓天下. 그러므로 모든 위대한 인민의 지도자는 그 백성을 교화하는 방식이 엄숙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루어지며, 그 다스리는 방식이 엄형을 내리지 않아도 스스로 질서있게 된다. 옛 선왕들께서는 천지의 벼리인 효도로써 인민을 가르치면 인민이 스스로 감화되어간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是以其敎弗肅而成, 其政不嚴而治. 先王見敎之可以化民也. 그러하므로 인민의 지도자는 솔선수범하여 자신의 애친(愛親)하는 마음을 인민에게로 넓혀나가야 한다. 그리하면 백성들이 그 부모를 소홀히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인민의 지도자는 인민들에게 말을 할 때에도 반드시 덕성의 마땅함으로써 해야 한다. 그리하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도덕적 행동들을 흥기(興起)시키게 된다. 인민의 지도자가 공경하는 마음과 사양하는 마음으로 솔선수범하니 백성들이 다투지 아니 하고, 인민들을 예(禮)와 악(樂)으로써 그 문화를 선도하니 백성들이 화목하지 않을 수 없고, 인민들에게 올바른 호오(好惡)를 제시하니 백성들은 스스로 금(禁)해야 할 것을 자각한다. 是故先之以博愛, 而民莫遺其親; 陳之以德誼, 而民興行. 先之以敬讓, 而民弗爭; 導之以禮樂, 而民和睦; 示之以好惡, 而民知禁. 『시경』 소아(小雅) 「절남산(節南山)」 노래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빛나고 또 빛나는 태사 윤씨여! 백성들이 모두 그대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도다!’” 『詩』云: ‘赫赫師尹, 民具爾瞻.’” |
‘삼재장’은 매우 이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효를 우주론적 차원(cosmological dimension)으로 승화시켜 ‘인(仁)’과도 같은 인간세의 최고덕목으로서 논구했다는 데 특별한 매력이 있다. 여기서는 우주적 질서(Cosmic Order)와 인간의 질서(Human Order)가 상응관계에 놓여 있다. 더구나 『효경(孝經)』이라는 책명이 본 장에서 유래되었다는 맥락에서도 본 장은 『효경』 속에서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장 중의 하나이다.
‘삼재(三才)’라는 말은 천(天)ㆍ지(地)ㆍ인(人)이라는 우주구성의 보편적 원리개념이며, 『주역』의 「설괘」, 「계사(繫辭)」하에서 유래하였다. 그런데 주자는 『효경간오』에서 본 장을 해설하면서 정나라의 공자 태숙(太叔: 대숙大叔으로도 쓴다)이 조간자(趙簡子)에게 정자산(鄭子産)의 말로서 인용한 구절을 도용한 것이라 하여 매우 불쾌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단지 예자를 효자로써만 바꾼 것이고, 문세(文勢)가 오히려 『좌전』의 통관(通貫)됨만 같지 못하고, 조목 또한 오히려 『좌전』의 완비(完備)됨만 같지 못하다[唯易禮字爲孝字, 而文勢反不若彼之通貫, 條目反不若彼之完備].”
그러나 『좌전』의 문장과 『효경』의 문장의 선후를 말하는 것은 매우 현명치 못하다. 막말로 『효경』을 『좌전』이 베꼈다고 해도 안 될 일은 없다. 텍스트의 문제들은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 그것은 제각기 다른 양식적 표현이며 그것이 설사 같은 의미맥락을 내포하고 있다 하더라도 일자에 준거하여 타자의 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다. 양자가 어떤 사유의 전승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문제가 되는 『좌전』의 문장은 나의 『논어한글역주』 제2권, 506 ~ 8에 상세히 해설되어 있다.
「삼재장」에서 내가 가장 감명을 받은 대목은 효를 통한 이상적 다스림의 결론은 ‘불숙이성(弗肅而成)’, ‘불엄이치(不嚴而治)’라는 엄숙주의와 엄형주의 배제이다. 유교적 덕치(德治)를 이상으로 하면서 도가적 사유를 반영하고 있다. ‘저절로 이루어지고, 저절로 다스려지도록’ 만드는 것이 도덕주의의 궁극적 이상인 것이다. ‘엄숙(嚴肅)’이라고 우리가 쓰는 말이 바로 이런 구절에서 유래된 것이다. 호문(互文)의 두 글자를 나누어 배속시킨 것이다. ‘숙(肅)’은 ‘엄숙’으로 ‘엄(嚴)’은 ‘엄형’으로 번역하였다. 가장 비근한 인간의 덕목으로서 자연스러운 질서를 사회에 안착시키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것이 스스로 기능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도덕의 이상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유가사상은 매우 세련된 것이며, 오늘날의 현대사회에도 물론 적용 가능하다.
「절남산(節南山)」이라는 노래는 주나라 삼공(三公) 중의 하나이며 당시 최고의 권력자였던 태사 윤씨(尹)가 국정의 혼란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질책하는 시이다. 국민 모두가 너 하나 쳐다보고 있는데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는 원망과 더불어 그 높은 지위에 대한 찬사를 동시에 보내고 있다. 실로 정치적 지도자 한 사람의 ‘문화적 역량’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질서에 너무도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효치장(孝治章) 제구(第九)
효로써 다스린다는 것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옛부터 명철한 왕(王: 옛 용법으로는 천자天子를 가리킴)은 효로써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 결코 작은 나라의 신하라도 홀대하는 법이 없었다. 하물며 공(公)ㆍ후(侯)ㆍ백(伯)ㆍ자(子)ㆍ남(男)과도 같은, 자기가 직접 관리하는 제후들을 홀대할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만국(萬國)의 환심(歡心)을 얻어 선왕(先王)의 제사를 받드는 안정된 천자의 국체를 이룩할 수 있었다. 子曰: “昔者明王之以孝治天下也, 弗敢遺小國之臣, 而況於公侯伯子男乎? 故得萬國之歡心, 以事其先王. 제후국을 다스리는 군주는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외롭고 힘없는 노인이나 질병 기아에 허덕이는 소외받은 사람들이라도 업신여기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하물며 사민(士民)【선비와 백성, 여기서는 하층대중을 총괄하는 개념】을 업신여길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백성의 환심을 얻어 선군(先君: 제후의 선조들)의 제사를 잘 받들어 모실 수 있었다. 治國者, 弗敢侮於鰥寡, 而況於士民乎? 故得百姓之歡心, 以事其先君. 일가(一家)를 다스리는 경대부는 가신(家臣)이나 하녀(下女)들의 마음을 잃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하물며 가까운 처자(妻子)의 마음을 잃어버릴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뭇사람의 환심을 얻어 그 부모를 잘 봉양할 수 있었다. 治家者, 弗敢失於臣妾之心, 而況於妻子乎? 故得人之歡心, 以事其親. 이렇게 상하로 질서있는 세상이 잘 돌아가면, 누구든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 부모가 편안하게 봉양을 받을 수 있으며, 누구든지 세상을 뜨게 되면 제사를 통해 그 영혼이 같은 대접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하기 때문에 천하가 화평하게 되고, 재해(災害)가 발생하지 않으며, 화란(禍亂)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명철한 천자가 효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방식이 이와 같았다. 夫然, 故生則親安之, 祭則鬼享之, 是以天下和平, 災害不生, 禍亂不作. 故明王之以孝治天下也如此. 『시경』 대아(大雅) 「억」 노래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천자에게 높고 큰 덕행이 있으면, 사방의 나라들이 그를 본받아 따른다.’” 『詩』云: ‘有覺德行, 四國順之.’” |
‘효치(孝治)’란 이 장을 통하여 한 단어로 개념화되었지만 ‘효로써 다스린다’는 말이다. 이 장의 ‘천자 - 제후 - 경대부’의 효치를 차례로 서술하고 있다.
사(士)와 서인(庶人)은 치(治)의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논의에서 제외된 것이다. 「삼재장」의 ‘불엄이치(不嚴而治)’와 「천자장」의 ‘덕교가어백성 형어사해(德敎加於百姓, 刑於四海)’와 내재적 연관이 있다. 주석은 번역 속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성치장(聖治章) 제십(第十)
인간의 본질을 따르는 정치
증자가 효치(孝治)의 위대함을 듣고 나서 여쭈어 말하였다. “감히 묻겠나이다. 성인의 덕성 중에서 효보다 더 위대한 것으로 첨가할 덕목이 없겠나이까?” 曾子曰: “敢問, 聖人之德, 亡以加於孝乎?” 공자께서 이에 답하여 말씀하시었다. “천지의 본성을 구현한 만물 중에서 사람보다 더 귀한 존재는 없다. 그리고 그 사람의 행동 중에서 효보다 더 위대한 행동이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또 그 효행(孝行) 중에서도 아버지를 존엄하게 모시는 것보다 더 위대한 효행은 없다. 그리고 아버지를 존엄하게 모시는 방식 중에서, 그 아버지를 하늘과 동등한 존재로서 짝지어 제사 지내는 것보다 더 존엄하게 아버지를 모시는 방식은 없다. 이 모든 위대함을 실천한 사람이 바로 주공(周公)이다. 子曰: “天地之性, 人爲貴. 人之行, 莫大於孝. 孝莫大於嚴父, 嚴父莫大於配天, 則周公其人也. 옛날에 주공께서는 주나라의 시조(始祖) 이며 땅(농경)의 신인 후직(后稷)을 남쪽 교외 원구(圓丘)에서 하늘과 동등한 존재로서 제사(郊祀: 교외에서 제사 지냄) 지내시었다. 그리고 또 당신의 아버지이며 주나라의 실제적 창업주이신 문왕(文王)을 하느님 상제(上帝)와 동등한 존재로서 명당(明堂)【흙을 높게 북돋아 놓은 그 위에 지은 고전(高殿)으로 오실(五室)이 있고 사방에 문이 있는 궁전】에서 종사(宗祀)【혈족(血族)의 본원을 제사 지냄: 앞의 교사(郊祀)와 대비된다】 지내시었다. 주공께서 이와 같이 조상과 아버지에 대하여 성심성의의 효행을 다하는 것을 보고, 사해(四海) 안의 모든 제후들이 각기 그들의 나라의 귀한 토산품 공물(貢物)을 바쳐 들고와서 제사를 도왔다.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리오? 대저 성인의 덕이 이러한 효에 더 가(加)할 것이 있겠느뇨? 昔者, 周公郊祀后稷以配天, 宗祀文王於明堂以配上帝. 是以四海之内, 各以其職來祭. 夫聖人之德, 又何以加於孝乎? 그러하므로 한 인간이 몸으로 친히 자식을 낳아 성심껏 그 자식을 기르고, 기름의 혜택을 받은 자식이 성장하여 다시 부모를 공양하는 것, 그것을 바로 부모를 존엄히 한다(엄嚴: 여기서는 동명사적 용법)라고 말한 것이다. 성인께서는 바로 이러한 존엄을 통하여 경(敬: Reverence)을 가르치고, 그 친함(親: 몸으로 서로 거리감 없이 느낌)을 통하여 애(愛: Love)를 가르친다. 앞에서도 계속 강조했지만 성인의 교화(敎化)는 엄숙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고, 그 정치(政治)는 엄형에 의존하지 않아도 스스로 다스려진다. 왜 그러한가? 바로 성인의 다스림이 의거한 바가 바로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是故親生毓之, 以養父母曰嚴. 聖人因嚴以敎敬, 因親以敎愛. 聖人之敎, 不肅而成, 其政不嚴而治. 其所因者, 本也.” |
이 장 때문에 ‘효치(孝治)’라는 개념과 더불어 ‘성치(聖治)’라는 개념이 생겨났지만, ‘성치’는 단지 ‘성인지정 불엄이치(聖人之政, 不嚴而治)’라는 구절에서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딴 것이다. 성인의 치도(治道: 다스림의 길)는 궁극적으로 효도의 실현 이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장에 주공(周公)이 등장하기 때문에 유교의 종파적 제식주의의 갖가지 맥락에서 복잡한 해석이 이루어져 오히려 이 장의 의미가 난삽하게 곡해되었으나 주공은 단지 하나의 캐릭터로서 등장한 것이지, 그를 통하여 유교적 종법주의나 정통론을 주장하려 한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훌륭한 정치를 행한 하나의 효(孝)의 패러곤(paragon, 본보기)일 뿐이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장(士章)」에서 말한 아버지의 중요성이다. 여기 ‘아버지’라는 것은 라캉의 말대로, 권위를 대변하는 하나의 이름(nomina)이며 상징체(symbol)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버지를 존엄하게 한다는 것(엄부嚴父: ‘엄’이 타동사, ‘부’가 그 목적)이 곧 배천(配天)【하늘에 배향된다. 하늘과 동등한 존재로서 짝지어 모셔진다】이라는 사상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석(多夕)의 ‘효기독론(Xiao Christology)’이 결코 그 자신의 기발한 상상력에 의한 것이라든가, 기묘한 언어사용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효경』의 충실한 해석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고한 존재가 천자(天子)나 왕(王)이나 지상의 최고의 통치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천자에게도 아버지가 있기 때문에 천자는 ‘천자(天子)’일 수 있는 것이다. 주공이 위대한 것은 바로 아버지와 사직의 신을 잘 제사 지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문왕(文王)이고 사직의 신은 시조신 후직(后稷)이다. 문왕은 정치적 창업자이며 구체적 인격체이다. 후직은 이미 추상화되어 있다. 그래서 후직을 배향할 때는 ‘배천(配天)’이라 했고 ‘교사(郊祀)’라고 했다. 문왕을 배향할 때는 ‘배상제(配上帝)’라 했고 ‘종사(宗祀)’라 했다. 우리가 ‘종묘사직’이라 할 때 문왕은 종묘라는 상징체에 해당되고, 후직은 사직이라는 상징체에 해당된다. ‘배천’의 ‘천(天)’ 땅에 배(配)하는 존재로서 추상화되어 있고, ‘배상제(配上帝)’의 ‘상제(上帝)’는 모든 조상신을 총괄하는 지고의 존재로서 인격화되어 있다.
문화적ㆍ경제적 | 권력적ㆍ정치적 |
추상적(abstract) | 인격적(personified) |
배천(配天) | 배상제(配上帝) |
교사(郊祀) | 종사(宗祀) |
사직 | 종묘 |
후직(后稷) | 문왕(文王) |
주공(周公)의 제사, 효(孝) |
청가정본(淸家正本)에는 ‘각이기직래제(各以其職來祭)’에서 ‘래’ 다음에 ‘조(助)’가 들어가 있는데, 나는 정본에 따라 ‘조제(助祭)’의 뜻으로 풀이하였다. ‘직(職)’은 ‘공물(貢物)’을 뜻한다.
여기 맥락을 잘 살펴보면 『효경』의 일관된 주제가 드러나 있다. 그것은 효의 두 측면, 애(愛)와 경(敬)의 재천명이다. 애는 친(親)과 관련되어 있고 경은 엄(嚴)과 관련되어 있다.
땅적(Earthly) | 하늘적(Heavenly) |
여성적 측면(femininity) | 남성적 측면(masculinity) |
친(親) | 엄(嚴) |
애(愛) | 경(敬) |
효(孝) |
그리고 감동적인 것은 엄부(嚴父)와 배천(配天)의 구체적 이미지와 궁극적 의미를 한 인간이 자식을 낳아 기르고 그 자신이 그 기름의 애경을 인식하여 다시 부모를 봉양하는 그 역사적 연속성(Historical Continuity)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느님(天) 아버지(父)’를 말하게 되는 것은 우리 유한한 생명은 유기체의 한계로 인하여 단절되지만, 그 단절의 연접성ㆍ연속성은 효(孝)로써 보장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효의 궁극적 주체는 개개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효를 통섭하는 주체로서의 ‘하느님 아버지’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배천(配天)’, ‘배상제(配上帝)’하게 되는 이유이다.
효(孝) | |
배상제(配上帝) | 인간을 초월하는 보편자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엄케 함 |
배천(配天) | 하늘과 더블어 땅의 존재를 존엄케 함 |
생육(生毓) | 인간세의 연속성(Historical Continuity) 확보 |
엄부(嚴父) | 아버지를 존엄케 함 |
이런 의미에서 효는 철저히 인간의 덕성인 동시에 모든 종교성(religiosity)를 포괄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적 가능성이 이 효라는 개념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효를 통한 성스러운 다스림[聖治]의 궁극적 소이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이 바로 『효경』을 관통하고 있는 ‘성인지교, 불숙이성(聖人之敎, 不肅而成)’, ‘성인지정, 불엄이치(聖人之政, 不嚴而治)’라는 말이다. 성치에는 교(敎)와 정(政)의 두 측면이 있으며, 교는 ‘불숙이성(不肅而成)’하고, 정은 ‘불엄이치(不嚴而治)’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를 한다고 하는 자들이 억지로 사회질서를 잡기 위하여, 검찰과 경찰을 동원하여 기껏해야 공안통치를 일삼는 사태를 목격할 때 우리는 이러한 『효경』의 언어가 오늘 여기에 절실한 이유를 감지한다.
무위지치(無爲之治) | |
비엄숙주의(non-authoritarian) | 비엄형주의(non-legalistic) |
불숙이성(不肅而成) | 불엄이치(不嚴而治) |
교(敎): 교화, 문화적 통치 | 정(政): 정령, 법제적 통치 |
성치(聖治) |
이것은 『효경』이 후기유가의 작품이며, 노장계열에서 제기한 강력한 유교의 도덕주의(moral rigorism)에 대한 비판을 극복하고서 ‘효’라는 개념을 확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숙이성, 불엄이치는 곧 도가의 자연주의를 충분히 반영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성치장, 하나만 해도 제국의 통합을 앞둔 시점에서 유교적 사상가들의 생각을 총집결시킨 명문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마지막의 결어는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성인의 다스림이 의거한 바는 바로 인간의 본질이다.
其所因者, 本也.
정치는 사회적 제도의 조작이나 엄형ㆍ엄벌에 의한 권위나 협박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본질로부터 자연스럽게 비조작적으로 형성되어 나가는 질서라는 것이다. 정치의 본질을 인간의 본질에 두었다는 의미에서 이 『효경』은 유교의 성경(바이블, Bible)일 수밖에 없다.
부모생적장(父母生績章) 제십일(第十一)
부모가 낳아주신 공적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도(道: 길)는 천성(天性: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의 마땅함(誼: 사회적으로 부여된 당위적 가치)마저도 구현하는 것이다. 子曰: “父子之道, 天性也, 君臣之誼也. 부모께서 날 낳으신 그 공적은 막대(莫大)한 것이다. 그리고 부모께서는 군주의 엄격함[君]과 친부모의 사랑[親], 그 양면으로써 날 길러주시니 그 두터운 은혜는 막중(莫重)한 것이다.” 父母生之, 績莫大焉. 君親臨之, 厚莫重焉.” |
「사장」에서 이미 ‘사부(事父)’의 덕성 속에는 ‘사모(事母)’의 애(愛)와 ‘사군(事君)’의 경(敬)의 두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였는데, 그러한 틀 속에서 이 장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공전(孔傳)」이나 「어주(御注)」가 다 그런 틀 속에서 이 장을 해석하고 있다.
‘부모생지(父母生之)’와 ‘군친임지(君親臨之)’를 대구적으로 해석하여 후자를 임금(사회적 지도자)의 은혜로 해석하기 쉬우나, 본 장은 주체가 일관되게 부모일 뿐이다. ‘군(君)’은 부모의 한 측면의 상징적 덕성일 뿐이다.
‘부자지도(父子之道)’라는 ‘천성(天性)’ 속에 ‘군신지의(君臣之誼)’가 내포된다고 보는 것은 자연적 가치(Sein) 속에 사회적 가치(Sollen)가 내포된다고 보는 입장인데, 이것은 이미 맹자(孟子)의 관점을 승계하고 있다.
‘부모생적장(父母生績章)’이라는 이름은 ‘부모께서 날 낳아주신 공적의 위대함’이라는 뜻으로 본문의 ‘부모생지, 적막대언(父母生之 績莫大焉)’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금문에는 ‘적(績)’이 ‘속(續)’으로 되어 있다. ‘속막대언(續莫大焉)’이라 하면 ‘전체상속(傳體相續)’, 즉 존재의 연속성이 있게 해주시는 은혜가 막대하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좀 어색하다. 고문의 ‘적(績)’이 더 본래적 의미에 가깝다는 것은 독자의 상식이 말해줄 것이다.
효우열장(孝優劣章) 제십이(第十二)
가까운 데서부터 실천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자기의 친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부모를 사랑하는 것을 일컬어 패덕(悖德: 덕에 어긋남)이라고 한다. 자기의 친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일컬어 패례(悖禮: 예에 어긋남)라고 한다. 子曰: “不愛其親而愛他人者, 謂之悖德; 不敬其親而敬他人者, 謂之悖禮. 이러한 어긋난 도리로써 백성들을 가르치면 그들은 어둡게 되고, 그들은 본받을 수 있는 준칙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백성들은 선(善)에 거할 바를 모르게 되며, 모두 흉덕(凶德)에 거하게 된다. 以訓則昏, 民亡則焉. 不宅於善, 而皆在於凶德. 이러한 어긋난 도리로써 설사 출세의 길이 열린다 하더라도 군자라면 모름지기 그것에 따르지 아니 한다. 군자는 그렇게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아니 하며, 말할 때는 오직 말할 만한 것만을 생각하고, 행동할 때는 오직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만을 생각한다. 雖得志, 君子弗從也. 君子則不然, 言思可道, 行思可樂. 군자의 덕과 의로움은 백성들이 존경할 만하며, 그가 짓는 일들은 본받을 만하며, 그의 모습과 행동은 백성들이 우러러볼 만하며, 그의 삶의 진퇴(進退)는 백성들이 척도로 삼을 만하다. 이러한 삶의 자세로써 백성들을 대하니, 자연히 백성들은 그를 경외하며 사랑하고, 기준을 삼아 본뜬다. 그러므로 능히 그 덕교(德敎: 문화적 교화)를 이룰 수 있고, 그 정령(政令: 정치와 법령)을 부드럽게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德誼可尊, 作事可法, 容止可觀, 進退可度, 以臨其民. 是以其民畏而愛之, 則而象之. 故能成其德敎, 而行其政令. 『시경』 조풍(曹風) 「시구」 노래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아 의젓한 군자여, 그 반듯한 위의(威儀)가 법도에 어긋남이 없도다.’” 『詩』云: ‘淑人君子, 其儀不忒’” |
‘효우열(孝優劣)’이란 효에도 우수한 효가 있는가 하면 열등한 효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수한 효라는 것은 반드시 가깝고 비근한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반드시 친(親)에서 소(疎)로 나아가야 되며, 근(近)에서 원(遠)으로 나아가야 한다. 세상에 출세를 잘 하는 사람 중에 친부모를 홀대하고 남의 부모에 알랑거려 출세가도를 여는 사람도 있고, 가정에서는 개판이면서 사회에서는 존경받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 본장의 논지는 보다 개념적인 논쟁에서 도출된 것이며, 묵가(墨家)의 겸애(兼愛)설을 집중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효경』은 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유가비판을 의식적으로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묵가의 겸애의 주장이 반드시 ‘나의 부모를 사랑하지 아니 하고 남의 부모를 사랑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의사가 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병이 왜 일어났는지 그 근원을 알아야 한다[如醫之攻人之疾者然, 必知疾之所自起]. 그 근원을 모르면 병을 공략할 길이 없다. 마찬가지로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도 천하의 어지러움이 왜 생겨났는지, 그 근원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묵자의 진단의 핵심이 천하의 어지러움이 모두 ‘불상애(不相愛)’, 즉 ‘서로를 동등하게 사랑하지 않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즉 모든 인간관계에서 자사(自私)의 이익만을 도모하여 편애하게 되면 그 관계가 원활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부모를 사랑하는 것과 타부모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차등의 원리를 적용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관계가 편협한 가족주의에 빠지게 되고 보편적 가치를 상실하게 되며, 친근한 사람부터 봐주기(favoritism, 편애)에 빠지게 되며, 국가 간의 군사적 사태에 있어서도 아주 편협한 정벌이론이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가가 묵가를 비판하는 논조로, 묵가를 정당하게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독교의 아가페(αγαπητοις, Agape, agápē,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를 생각해도 하나님의 무차별적 보편애를 인간이 실천해야 된다는 것인데, 과연 그러한 무분별적 보편주의를 실현하는 기독교인이 몇 명이나 될까? 테레사 수녀도 수없는 회의 속에서 일생을 보냈다는데, 묵자의 겸애든지, 기독교의 아가페든지, 현실적 인간의 현실태로써 실현하기에는 너무 허점이 많다고 유가는 주장하는 것이다. 유가의 친애(親愛)는 단지 패밀리즘의 오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최소한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그 보편적 덕성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어찌 타인(他人)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가까운 데서부터 보편적 덕성을 실천하자! 이것이 유교의 테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를 나가는 사람들에게 가정내의 효윤리의 실천이 없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다.
이러한 문제와 더불어 본 장은 ‘군자(君子)’의 모범적 행동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주희식으로 전(傳)을 말한다면, 사(士)에 대한 해석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주자는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마지막의 『시경』도 최초로 국풍(國風)을 인용하고 있다.
기효행장(紀孝行章) 제십삼(第十三)
효행의 다섯 가지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효자가 부모를 섬긴다고 하는 것은 다음의 다섯 가지 상황이 있다. 평소 집에 거(居)하고 계실 때에는 자식으로서 그 공경함을 다하고, 부모님을 봉양할 때에는 자식으로서 즐겁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을 다하고, 부모님께서 편찮으실 때에는 자식으로서 그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자식으로서 그 슬픔을 다하고, 영혼을 제사지낼 때에는 자식으로서 그 근엄함을 다한다. 이 다섯 가지를 온전하게 다 해야만 비로소 그 부모를 잘 모셨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子曰: “孝子之事親也, 居則致其敬, 養則致其樂, 疾則致其憂, 喪則致其哀, 祭則致其嚴. 五者備矣, 然後能事親. 그리고 또 부모님을 모시는 자는, 높은 자리에 있을 때는 교만하지 말아야 하며, 아랫자리에 있을 때는 함부로 난동을 부리면 아니 되며, 군중 속에 있을 때는 다투지 말아야 한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교만하면 결국 그 지위를 잃게 되고,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난동을 부리면 형벌을 받게 되며, 군중 속에 있으면서 함부로 다투면 칼에 찔리고 마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위험을 삶에서 제거하지 않으면 매일 소ㆍ양ㆍ돼지를 희생으로 삼아 맛있게 봉양해 드려도, 여전히 불효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事親者, 居上不驕, 爲下而不亂, 在醜不爭. 居上而驕則亡, 爲下而亂則刑, 在醜而爭則兵. 此三者不除, 雖日用三牲之養, 繇爲弗孝也. |
‘기효행(紀孝行)’이란 ‘효행을 기록함’이란 뜻이며, 따라서 본 장은 효자의 자격을 그 구체적인 행동으로써 논하고 있다. 과연 효도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과연 효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어떠한 조건을 구비해야 하는가?
이 효자의 자격요건으로서의 효행을 다섯 가지로 논하고 있다. 보통 ‘오효(五孝)’라고 하면, 천자, 제후, 경대부, 사, 서인의 오등효(五等孝)를 가리키지만, 때로는 여기 5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오효가 구비되어야만 비로소 효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효는 삶의 단계(3효)와 죽음의 단계(2효)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것은 인간존재의 파악 자체가 삶과 죽음의 단계를 포섭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기체의 죽음으로써 그 존재가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가정의 일원으로서 계속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고대중국의 인간관의 특징이다.
그래야만 존재와 존재의 연결고리가 확보되고 역사(History)라고 하는 연속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서양의 경우는 천당이나 사후세계가 있거나 또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있어 그러한 신화적 경계(mythic realm)를 통해 존재의 단절을 극복한다. 그러나 중원문명을 중심으로 하는 한자문화권의 인문세계에서는 그러한 신화적 경계(境界)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인문세계의 연속성을 가정의 연대감으로 확보하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제사’라는 것이다.
제사는 가정이라는 장(場)의 성화(聖化, sacralization)이며 존재의 단절의 연접(continuation)이다. 따라서 효는 삶의 제식일 뿐 아니라 죽음의 제식이다. 죽음의 제식을 온전하게 거행해야만 비로소 효는 완성되는 것이다.
삶의 단계 Life |
거(居): 일상적 거함 | 경(敬): 공경 | 존재와 역사의 연속성 Continuity |
양(養): 일상적 봉양 | 락(樂): 즐거움 | ||
질(疾): 질병 | 우(憂): 근심 | ||
죽음의 단계 Death |
상(喪): 돌아가심 | 애(哀): 슬픔 | |
제(祭): 제사 지냄 | 엄(嚴): 근엄 |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물리적으로 부모님을 어떻게 잘 해드리냐, 그 대상화된 봉양에 효의 궁극적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유지방식, 즉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나를 인식하는 나 자신의 내면화된 가치관이 더 본질적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부모님을 아무리 잘 해드리려고 해도 나 자신의 존재의 관리가 개판이면 그것은 불효일 뿐이다. 부모님을 잘 해드리는 것보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는 함부로 나대지 않으며 대중들과 섞여 살 때는 다투지 아니 하는 내면적 삶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삶의 허(虛)를 유지하면서 나의 존재의 온전함, 신체발부의 건강함을 유지하는 것이 더 본질적인 효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사친(事親)의 본질(本質) | 거상(居上) In a high position |
불교(不驕) Not self-conceited |
위하(爲下) In a low position |
불란(不亂) Not riotous |
|
재추(在醜) In the midst of mass |
부쟁(不爭) Not contentious |
『논어(論語)』 「위정(爲政)」에서 자유(子游)가 공자에게 효를 묻자 공자가 대답한 말을 한번 상기 해보는 것도 『효경』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 유익할 것이다: “요즈음 효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잘 봉양하는 것만을 일컫는 것 같다. 허나 개나 말을 가지고 이야기해도 또한 봉양해주기는 마찬가지인데, 공경함이 없다면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겠느냐[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大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재추부쟁(在醜不爭)’의 ‘추(醜)’는 ‘중(衆, 무리)’의 뜻이다. 『시경』과 『맹자(孟子)』 등에 용례가 있다. ‘병(兵)’은 병기에 찔려 죽는다는 동사이다. 우리말에 ‘칼침맞는다’, ‘칼부림당한다’가 이 맥락에 꼭 해당된다.
오형장(五刑章) 제십사(第十四)
가부장의 특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옛부터 형벌에는 크게 다섯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세분하면 3천이나 된다. 그러나 이 많은 죄 중에서도 불효(不孝)처럼 큰 죄는 없다. 子曰: “五刑之屬三千, 而辜莫大於不孝. 임금에게 강요하여 자기 의지를 관철시키는 자는 윗사람을 윗사람으로 생각치 아니 하는 것이다. 성인을 비방하는 자는 성인의 법을 법으로 생각치 아니 하는 것이다. 효도를 비방하는자는 부모를 부모로서 생각치 아니 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란(大亂)의 도(道)이다.” 要君者亡上, 非聖人者亡法, 非孝者亡親. 此大亂之道也.” |
오형 (五刑) |
묵(墨): 이마에 먹으로 문신하여 죄명을 써넣는다 |
의(劓): 코를 벤다 | |
비(剕): 다리 뒷꿈치를 베어버린다 | |
궁(宮): 남자는 불알 바르고 여자는 궁에 유폐시킴 | |
대벽(大辟): 사형 |
묵벽(墨辟)의 속(屬) | 1.000 |
의벽(劓辟)의 속(屬) | 1.000 |
비벽(剕辟)의 속(屬) | 500 |
궁벽(宮辟)의 속(屬) | 300 |
대벽(大辟)의 속(屬) | 200 |
도합 | 3.000 |
이 한 장은 『효경』에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 장의 삽입은 당대 법가의 영향이 얼마나 막강했는가를 보여준다. 이미 상앙(商鞅: ?~BC 338)의 변법(變法)이 단행된 후였으며 진(秦)나라는 대제국의 성립을 앞두고 법가사상에 의하여 모든 국가 체제를 정비해가고 있었다.
1975년에 호북성 운몽(雲夢) 수호지(睡虎地) 11호 진묘(秦墓)에서 1,155매나 되는 대량의 죽간(竹簡)이 발견되었다. 죽간이 분묘주인의 관(棺)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했다. 진나라의 예서로 쓰여졌으며 대강 진시황 30년(BC 217) 전후로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 묘주(墓主)의 이름이 희(喜)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죽간의 내용이 진나라의 법률에 관한 것이 많다는 것이다. 출토된 율문(律文)이 진율의 전부는 아니지만, 진율의 실제적 정황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그 중 진율에 관한, 요즈음으로 말하자면 법률상식, 법률문답에 관한 책 같은 것이 『법률답문(法律答問)』이라는 제목으로 분류된 210매가 있는데 그 중에 ‘불효’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있다.
국가의 복역의무가 면제된 나이의 노인(免老)이 관부(官府) 재판관에게 와서 자식이 불효하다고 고발하면서 사형을 요구했다고 하자! 보통 사형건에 관해서는 세 번 신중한 심핵(審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삼차 검증을 거쳐야 하는가? 그럴 필요 없다. 즉시 즉결로 사형에 처하라! 이런 안건은 유실되지 않도록 하라!
免老告人以爲不孝, 謁殺. 當三環之不? 不當環, 亟執勿失.
참으로 끔찍한 법률이다! 그런데 이러한 진률(秦律)의 전통은 중국역사 2천 2백 년을 지배했다. 아비가 자식을 직접 상살(傷殺) 해도, 그러한 케이스는 관부가 죄를 묻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아버지는 권위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횡포와 공포의 대상이다. 실제로 동방역사에서 가부장의 특권은 이러한 법률의 지원에 의하여 강화되어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강화가 『효경』의 바로 이 장을 핑계삼아 이루어졌다고 할 때, 유가의 덕치(德治)나 효치(孝治)는 위선이 되어버리고 만다. 많은 주석가들이 이러한 문제를 적당히 얼버무리고 마는데 철저한 반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부권의 강화와 국가 권력의 강화는 상보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효자에 대해서는 관작(官爵)이 주어지고, 정표(旌表)가 세워지고, 부조(賦租)가 면제되고, 병역이 면제되고, 비가 세워지고, 사액이 이루어지는 등 백방으로 장려되었지만, 불효로 낙인 찍힌 사안에 대해서는 엄벌ㆍ극형이 서슴지 않고 자행되었다. 존속(尊屬)인 부모가 비속(卑屬)인 자녀에 대하여 저지르는 범죄는 아주 경량인데 반하여, 비속인 자녀가 존속인 부모에게 저지르는 범죄는 형량이 막중하였다.
효를 법제와 관련시키는 것은 오늘날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단지 작량감경(酌量減輕)을 위한 정상(情狀)으로서 효와 관련된 많은 사안들이 긍정적으로 고려될 필요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효경』의 저자의 진실한 의도를 디펜드 한다면 그가 이 37자의 짤막한 글 속에서 의도한 메시지는, 불효를 형벌로서 다루라는 것을 말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3천 개의 형벌이 있다 해도 ‘불효’처럼 막중한 죄는 없다고 한 것이, ‘불효’를 무거운 형벌로써 다루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불효가 도덕적으로 나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 표현일 수도 있다. 불효에 대해서는 ‘형(刑)’을 쓰지 않고 ‘고(辜, 허물)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이 장은 단장취의되어 중국의 형법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효경』을 역대 제왕들이 사랑하고 주해했기 때문이다.
광요도장(廣要道章) 제십오(第十五)
윗사람이 먼저 경례할 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민들이 서로 친(親)하고 서로 사랑[愛]하도록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위에 있는 사람이 인민들에게 직접 효도(孝道)를 실천해 보이는 것처럼 좋은 방법은 없다. 인민들이 서로 예의를 지키고 질서에 순종하도록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위에 있는 사람이 인민들에게 직접 제도(弟道)를 실천해 보이는 것처럼 좋은 방법은 없다. 인민들의 신바람을 움직여서 그 풍속을 개변시키는 데 있어서는 음악[樂]처럼 좋은 것이 없다. 위에 있는 사람(상上: 지배자. 군주)을 안정시키고 인민들을 질서있게 다스리는 데는 예(禮)처럼 좋은 것이 없다. 예(禮)는 한마디로 경(敬)일 뿐이다. 子曰: “敎民親愛, 莫善于孝. 敎民禮順, 莫善于弟. 移風易俗, 莫善於樂. 安上治民, 莫善於禮. 禮者, 敬而已矣. 그러므로 위에 있는 자가 그 아비를 공경해주면 아들들이 기뻐 따르고, 그 형을 공경해주면 동생들이 기뻐 따르고, 그 군주를 공경해주면 신하들이 기뻐 따른다. 그러니까 아비ㆍ형ㆍ군주 한 사람을 공경해주면, 그 밑에 있는 아들들ㆍ동생들ㆍ신하들 천 명ㆍ만 명이 기뻐 따르게 되는 것이다. 공경해주어야 할 대상은 적은데, 파급되어 기뻐 따르는 자는 많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일컬어 천하를 다스리는 요령의 길(요도要道: 가장 효과적인 길道)이라고 하는 것이다.” 故敬其父, 則子悅; 敬其兄, 則弟悅; 敬其君, 則臣悅; 敬一人, 而千萬人悅. 所敬者寡, 而悅者衆, 此之謂要道也.” |
‘광요도(廣要道)’란 ‘요도(要道)’를 넓힌다’는 뜻인데, ‘요도(要道)’는 이미 수장(首章)인 「개종명의장」에서 ‘지덕요도(至德要道)’라는 개념으로 언급되었다. 주희는 본 장을 수장의 ‘지덕’ 다음의 ‘요도’의 해설로 보아 ‘전지이장(傳之二章)’으로 만들었다. 여기 해설에 따르면 ‘요도(要道)’란 결국 ‘천하를 다스리는 요령, 비결’인 셈이다. ‘요도’의 의미를 넓힌다는 것은 효도로써 천하를 다스릴 때, 얼마나 다스림의 효과가 좋은지를 상론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고경기부, 즉자열(故敬其父, 則子悅)’할 때 ‘경(敬)’의 주어가 누구이냐는 것이 확실하게 파악되어야만 문의가 명료해지는데, 수장에서 이미 ‘지덕요도(至德要道)’의 주체는 ‘선왕(先王)’으로 명시되었기 때문에 역시 ‘천자(天子)’ 즉 지상의 최고의 통치자 중심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경기부(敬其父)’, ‘경기형(敬其兄)’, ‘경기군(敬其君)’의 주어가 다 천자일 수밖에 없다. ‘군(君)’은 제후이므로, 제후보다 더 높은 존재는 천자밖에는 없다. 천자가 세상을 통치할 때, 제후 한 명을 존경해주면, 제후 밑에 있는 모든 사람, 천 명ㆍ만 명이 다 따르게 된다는 뜻이다. 「공전(孔傳)」부터 「형병소(邢昺疎)」까지 모두 그렇게 해설되어 있다.
그런데 이 장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핵심사상은 다음의 한마디이다.
예(禮)라는 것은 경(敬)일 뿐이다.
禮者, 敬而已矣.
예(禮)라는 것은 형식적 규범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공경일 뿐이라는 이 한마디는 근세철학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정주학(程朱學)에서는 경(敬)은 ‘주일무적(主一無適, 정신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흐트러짐이 없음)’으로 해석되었다. 이 경(敬)을 실천하여야 할 주체는 다름아닌 최고의 통치자 본인이다. 공경하는마음에서 아랫사람을 예로 대할 때 그것이 곧 천하를 다스리는 요도(要道)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인사하는 것을 ‘경넷!’이라고 말하는데 실상 그것은 본 장에서 유래된 ‘경례(敬禮)’를 일컫는 것이다. 그런데 경례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해야 참다운 요도(要道)로서의 경례인 것이다. 윗사람이 공경하는 마음으로 아랫사람을 예로써 대하면 천하의 질서는 놀랍게 잘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동방인들이 말하는 윤리(morality)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윤리(sacred command)가 아니라, 모든 인간세의 조직의 장(長)의 솔선수범에 의한 경례(敬禮)의 윤리이다. 몸소 먼저 경례를 실천함으로써 교화를 넓혀가는 것이다. 솔선수범(Teaching by Example)이란 인간의 종적 관계를 횡적인 연대감으로 확대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예와 더불어 악을 같이 말했는데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맥락이 숨어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경(敬) | 애(愛) |
예(禮) | 악(樂) |
효(孝) |
광지덕장(廣至德章) 제십육(第十六)
전도보단 본을 보이라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君子: 여기서는 ‘선왕先王’)께서 효로써 세상을 교화하신다고 하는 것은 집집마다 다니면서 매일매일 백성들을 만나서 교화하시는 것은 아니다. 당신 자신이 스스로 자식된 도리를 행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게 되면, 그것은 천하의 모든 아버지 된 사람들을 경복시키게 되는 것이다. 당신 자신이 스스로 동생 된 도리를 행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게 되면, 그것은 천하의 모든 형 된 사람들을 경복시키게 되는 것이다. 당신 자신이 스스로 신하 된 도리를 행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게 되면, 그것은 천하의 모든 군주된 사람들을 경복시키게 되는 것이다. 子曰: “君子之敎以孝也, 非家至而日見之. 敎以孝, 所以敬天下之爲人父者也. 敎以弟, 所以敬天下之爲人兄者也. 敎以臣, 所以敬天下之爲人君者也. 『시경』 대아(大雅) 「형작」 노래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마음이 편안하고 즐길 줄 아는 군자이시여! 당신이야말로 백성의 부모이시구려.’ 그 지극한 덕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과연 누가 천하 만민을 이토록 큰 덕으로써 가르칠 수 있으리오!” 『詩』云: ‘愷悌君子, 民之父母.’ 非至德, 其就能訓民, 如此其大者乎!” |
주희는 본 장을 ‘전지수장(傳之首章)’이라 하였다. 여기 ‘광지덕(廣至德)’도 「개종명의장」의 ‘지덕요도(至德要道)’의 ‘지덕(至德)’을 부연한 것이다. 따라서 ‘지덕’의 주체는 물론 ‘선왕(先王)’일 수밖에 없다. 첫머리의 ‘군자(君子)’는 ‘선왕’을 가리킨 것이라고 「공전(孔傳)」에 명기되어 있다[君子亦謂先王也]. 마지막의 ‘훈민(訓民)’도 「개종명의장」의 ‘이훈천하(以訓天下)’를 받고 있다【금문에는 ‘훈민(訓民)’이 ‘순민(順民)’으로 되어 있는데 ‘백성을 순종케 한다’는 뜻이며 후대의 정치화된 내음새가 더 물씬 풍긴다. 그래서 제왕들이 금문을 더 좋아했을 것이다】.
천자가 주어가 될 때, 천자가 아들의 모범을 보이고, 동생의 모범을 보이고, 신하의 모범을 보인다는 말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으나, 과거 선왕의 예(禮)에는 다 그러한 법도가 규정되어 있었다. 삼로(三老: 아버지처럼 받듬), 오경(五更: 형처럼 받듬), 황시(皇尸: 시동을 당신의 군주처럼 받듬)라는 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법을 떠나서도 천자가 자신을 신하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모든 제후의 마음을 얻는 첩경이다.
내가 미국 하바드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나의 노은사 선생님이신 오노자와 세이이찌(小野澤精一)【『한비자』의 대가. 1919년 생으로 내가 동경대학을 떠난 후 몇년 안 있다 작고하심】로부터 옥함(상대를 높여 그의 편지를 이르는 말)을 받았는데 당신을 ‘제(弟)’라고 겸칭하신 글이었다. 송구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지만, 내 평생 가슴에 기억에 남는다. 강의를 하실 때도 그 평온하고 인자하신 모습이 너무도 돋보였다. 그런 분들의 훈도가 있었기에 내가 오늘까지 격랑의 세월을 견디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에 ‘교화(敎化)’의 의미에 관하여 매우 적절한 표현이 있다. 교화란 무형의 교육이며 집단의 자발적 의지의 집합이다. 따라서 한 사람ㆍ한 사람 집집마다 방문하여 교화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일대일 전도주의는 매우 저열한 방법이다. 그렇게 민폐 끼치는 일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 21세기와 같은 대명천지에 있어서는 모든 종교전도주의는 악이다. 오직 본(파라데이그마, παράδειγμα)을 보임으로써 무형으로 전파되는 것이 도덕이요, 교화라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효경』은 결코 일반대중의 효순(孝順)을 위하여 쓰여진 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물론 일반대중이 『효경』을 읽을 리도 없다. 일차적으로 이것은 최고의 통치자를 겨냥하여 쓴 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국의 이념으로서 제국의 최고의 통치자가 효(孝)의 이상을 구현할 때 제국이 안정된 문화적ㆍ무형적ㆍ도덕적 기반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 『효경』의 저자에게 철두철미 깔려있다. 오늘날에도 효는 아랫사람을 위한 개념이 아니라 윗사람을 위한 개념이라는 것을 깊게 통찰할 필요가 있다.
청가정본에는 ‘일견지(日見之)’ 다음에 ‘야(也)’가 있다.
감응장(應感章) 제십칠(第十七)
신적 존재로서의 천인감응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옛부터 명철한 천자는 당신의 아버지를 섬기시는 것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그러기 때문에 하느님 아버지[天神]를 섬기는 것도 어두운 곳이 없이 순결했다. 당신의 어머니를 섬기시는 것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그러기 때문에 대지의 어머니[地神]를 섬기는 것도 어두운 곳이 없이 세밀했다. 그리고 나이 많은 사람들과 어린 사람들을 서로 순화롭게 만들었기 때문에 천하의 위ㆍ아래가 모두 질서있게 하나로 융합되어 태평을 이루었다. 子曰: “昔者明王事父孝, 故事天明; 事母孝, 故事地察; 長幼順, 故上下治. 하느님 아버지 신(神)과 대지(땅)의 어머님 신(神)이 밝게 살피시게 되니, 신령한 조상의 귀신들이 나타나 재앙을 없애주고 축복을 내려주었다. 그러므로 지고의 천자(天子)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보다 더 높은 존재가 있는 것이다. 아버님이 계시다고 말하는 것은 반드시 선대(先代)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형님이 계시다고 말하는 것은 반드시 장배(長輩)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天地明察, 鬼神章矣. 故雖天子, 必有尊也; 言有父也, 必有先也; 言有兄也, 必有長也. 천자가 종묘에서 공경을 다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은 부모와 선조를 잊지 않기 때문이다. 천자일지라도 몸을 닦고[修身] 행동을 신중하게 하는 것은 부모와 선조를 욕되게 할까봐 걱정하기 때문이다. 종묘에서 공경을 다하여 제사를 지내니 조상의 귀신들이 춤을 추며 재앙을 막아주고 축복을 내리는 구나. 아~ 천자의 효제(孝弟: 아들 되고 동생됨)가 지극하니 신들의 신비로운 기운[神明]과 통하고 그 빛이 사해(四海: 이방의 먼 지역. Gentiles)로 뻗쳐 미치지 아니 하는 곳이 없도다. 宗廟致敬, 不忘親也. 修身愼行, 恐辱先也. 宗廟致敬, 鬼神著矣. 孝弟之至, 通於神明, 光於四海, 亡所不曁. 『시경』 대아(大雅) 「문왕유성(文王有聲)」 노래에 이런 구절이 있다: ‘동으로부터 서로부터, 남으로부터 북으로부터 유덕한 천자를 사모하여 심복하지 아니 하는 제후가 없도다.’” 『詩』云: ‘自東自西, 自南自北, 亡思不服.’” |
또다시 천자가 주어가 되어 논리가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주었으면 한다. 이것을 일반 선비나 서인들의 제사로 생각하여 효행의 신비적 감응으로 해석한 것은 참으로 용렬한 짓이다. 더구나 『삼강행실도』에 나오는 감응의 사례들이 모두 본 장의 맥락을 그릇되게 인용하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효경』을 신비화시키는 데 본 장이 오용되어 왔다.
이 장은 다석의 ‘효기독론’의 원형이다. 즉 천자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곧 천신(天神: 하느님) 지신(地神: 따님)이므로 『역(易)』의 「설괘」에 ‘건은 하늘이니 아비라 칭하고, 곤은 땅이니 어미라 칭한다[乾, 天也, 故稱乎父; 坤, 地也, 故稱乎母].’라 한 것이나 장횡거(張橫渠)의 「서명(西銘)」에 ‘건칭부, 곤칭모[乾稱父, 坤稱母]’라 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말들이다. 천인상응(天人相應)의 이치를 말한 것이다. 인간은 신적인 존재이며, 우주의 모든 가능성을 구유한 존재이기 때문에 지성을 다하면 반드시 천지신명의 감응이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원불교(圓佛敎, Won-Buddhism)【1916년 박중빈(朴重彬), 1891~1943, 개창】에서 말하는 천지은(天地恩)과 부모은(父母恩)도 두 개의 실체화된 은혜가 아니라 하나로 귀결되는 은혜이다. 천지은(天地恩)은 우주론적 차원에서 말한 것이고, 부모은(父母恩)은 개인의 정감적 차원에서 말한 것이나 양자는 상통하는 것이다. 원불교 사은(四恩) 교리는 『효경』의 사상을 투철하게 반영하고 있는 한국인의 토착적 사유이다.
‘응감장(應感章)‘은 금문에서는 ‘감응장(感應章)’으로 되어 있다. 본 텍스트의 ‘言有兄也, 必有長也’는 인치본에는 ‘必有長也’가 없다. 그리고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효경』(古古1-29-72)에는 ‘言有兄, 必有長也’로 되어있다. 그리고 청가정본에는 ‘故雖天子, 必有尊也. 言有父也, 必有長也, 言有兄也’로 되어있다. 어주효경본, 십삼경주소본에는 ‘故雖天子, 必有尊也, 言有父也; 必有先也, 言有兄也’로 되어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참고하여 텍스트를 확정하였다.
광양명장(廣揚名章) 제십팔(第十八)
안에서 이루어진 후에야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유덕한 군자(君子)【여기서는 천자나 제후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ㆍ경대부를 지시한다는 것을 명심할 것】는 부모를 섬기는 데 효도(孝道)를 다한다. 그런데 그 효도의 충성스러운 측면[忠]은 그대로 임금을 섬기는 데로 옮기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子曰: “君子事親孝, 故忠可移於君. 유덕한 군자는 형님을 섬기는 데 제도(弟道)를 다한다. 그런데 그 제도의 순종하는 측면[順]은 그대로 윗사람들을 섬기는 데로 옮기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事兄弟, 故順可移於長. 유덕한 군자는 집에서 생활할 때에 질서 있게 집안을 관리한다. 그런데 그 관리의 질서있는 측면[治]은 그대로 관직에 복무하는 데로 옮기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居家理, 故治可移於官. 그러므로 효(孝)ㆍ제(弟)ㆍ리(理)의 덕행이 일차적으로 집안 내에서 잘 이루어지게 되면 그 이름이 결국 언젠가 바깥세상에서 바르게 서게 되는 것이다.” 是以行成於內, 而名立於後世矣.” |
여기의 군자는 천자ㆍ제후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경대부와 사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이 본 장의 특징이다. 가정의 덕성과 사회의 덕성의 상통성ㆍ연대감을 말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역시 유가적이다.
가정(Family) | 사회(Society) |
효(孝)-親 | 충(忠)-君 |
제(弟)-兄 | 순(順)-長 |
리(理)-家 | 치(治)-官 |
「개종명의장」의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를 보다 치밀하게 설명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결코 ‘충(忠)’이라는 개념이 군(君)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효(孝)의 어떤 충성스러운 측면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친(事親)’의 한 측면이로서 ‘사군(事君)’을 말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士)의 독자적인 뚜렷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엿보이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효경』」의 전체적 맥락을 효의 충화(忠化)라는 측면에서 규정하는 것은 그릇된 관점이다. ‘양명(揚名)’을 너무 사회적ㆍ정치적으로(socio-political fame)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세태와는 달리【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면 ‘양명’이라고 생각하는 등】, 보다 가정적이고 내면적인 덕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규문장(閨門章) 제십구(第十九)
한 집안에 있는 국가 통치법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한 가정 내에 이미 한 국가를 다스리는 예법이 구비되어 있도다! 子曰: “閨門之內, 具禮矣乎! 부모를 존엄하게 하는 자세로 임금을 존엄하게 하며, 형님을 존엄하게 하는 자세로 사회적 어른들을 존엄하게 하며, 처자에게 임하는 자세로 인민에게 임하며, 집안의 하남ㆍ하녀를 자비롭게 다루는 자세로 국가 노역의 인부들을 다루어야 하느니라.” 嚴親嚴兄. 妻子臣妾, 繇百姓徒役也.” |
‘규문(閨門)’이란 원래 부인들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는 문을 의미했는데, 여기서는 일반명사로 한 가정을 의미한다. 「규문장」은 금문에 없으며, 고문에만 있는 장으로 유명하다. 국가통치의 근본이 일가통치의 근본과 같다고 보는 면에서 매우 유가적이다. 이 장은 앞 장의 ‘거가리, 고치가이어관(居家理, 故治可移於官)’이라는 명제를 승계하여 발전시킨 것으로 앞뒤의 명확한 맥락이 있다.
간쟁장(諫爭章) 제이십(第二十)
불의를 당하면 간쟁하라
증자가 여쭈어 말하였다. ‘자애(慈愛)와 공경(恭敬)과 안친(安親: 부모를 편안하게 해드림)과 양명(揚名) 등등에 관해서는 삼(參), 제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나 감히 떨리는 마음으로 묻고 싶습니다. 자식이 아버지의 명령을 좇기만 하면 효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曾子曰: “若夫慈愛龔敬安親揚名, 參聞命矣. 敢問子從父之命, 可謂孝乎?” 공자께서 의외라는 듯이 말씀하시었다: “아가! 너 뭔 말을 하고 있는 게냐, 뭔 말을 하고 있는 게냐! 너 자신이 뭔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구나! 예로부터 천자(天子)에게 천자의 잘못을 간쟁해주는 신하가 일곱만 있어도, 비록 천자가 무도한 사람일지언정 천하를 잃는 법은 없었다. 제후에게 제후의 잘못을 간쟁해주는 신하가 다섯만 있어도, 비록 제후가 무도한 사람일지언정 나라를 잃는 법은 없었다. 대부에게 대부의 잘못을 간쟁해주는 신하가 셋만 있어도, 비록 대부가 무도한 사람일지언정 가(家)를 잃는 법은 없었다. 사(士)에게 그의 잘못을 간쟁해주는 벗이 한 사람만 있어도 그 몸이 명예로운 이름을 잃는 법은 없었다. 아버지에게 그의 잘못을 간쟁해주는 아들 한 사람만 있어도 그 몸이 불의(不義)에 빠지는 일은 없었다. 子曰: “參, 是何言與, 是何言與! 言之不通耶! 昔者, 天子有爭臣七人, 雖無道, 弗失天下; 諸侯有爭臣五人, 雖無道, 弗失其國; 大夫有爭臣三人, 雖無道, 弗失其家; 士有爭友, 則身弗離於令名; 父有爭子, 則身弗陷於不義. 그러므로 불의를 당하면 자식은 아비에게 간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신하는 임금에게 간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불의한 상황에 당면하면 투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기만 한다 해서 어찌 효라 일컬을 수 있겠느뇨?” 故當不誼, 則子不可以不爭于父; 臣不可以不爭於君. 故當不誼, 則爭之. 從父之命, 又安得爲孝乎!” |
이것은 순자(荀子)의 합리주의 정신이 반영된 『효경』」의 위대한 사상이다. 소효(小孝)와 대효(大孝)의 문제는 이미 설진(說盡)하였다. 본 장의 언어는 매우 명료하다. 독자들은 이 한마디만 기억해주면 좋겠다. ‘당불의, 즉쟁지(當不義 則爭之)! 불의를 당하면 투쟁하라!’
여기 재미있는 것은 증자라는 캐릭터의 등장이다. 『효경』은 「개종명의장」으로부터 증자가 공자를 시좌(侍坐)하고 있다가 공자의 가르침을 청하여 듣는 방식으로 시작하였다: “게 앉거라! 내가 너에게 가르침을 주겠노라!”하면서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치달으면서 증자가 다시 등장한 것은 전체적으로 그러한 드라마적 구성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증자는 ‘꾸지람’을 들으면서 소기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시하언여(是何言與)’를 두 번 반복한 것은 공자의 말습관을 나타낸다. 『논어(論語)』의 5-4, 6-23, 6-26, 9-12, 11-8 등의 용례를 보라.
내가 여기 ‘아가’라고 번역한 것은 실제로 공자의 나이 73세 때에 증자의 나이 27세였다. 가장 어린 제자그룹에 속하였던 것이다. 증자는 자신의 ‘불민(不敵)’을 처음부터 말하였고, 여기서도 좀 아둔한 모습으로 그려짐으로써 공자의 위대한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여지게 되는 촉매역할을 하고 있다. 하루종일 공자의 말씀을 듣고 또 듣고 졸리는 눈을 부벼가며 아둔한 듯 질문을 던지는 증자의 모습이 귀여운 데가 있다. 증자는 「선진」 2의 사과십철(四科十哲)에도 끼지 못했고, 「선진」 17에 ‘좀 아둔한 사람[參也魯]’이라고 가볍게 평가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증자는 겸손했고 꾸준히 공자의 가르침의 적통을 이어 가장 중요한 공자의 학단을 형성했던 것이다.
이 20장의 대화가 끝나고 21장에서 연애시가 인용되며 아랫사람(신하)의 도리가 설파된 후, 최후 22장에서 누구나 실존적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는 상친(喪親)’의 슬픔을 말하면서 효라는 주제를 감정적으로 부각시키는 『효경』의 저자는 전체적으로 놀라운 구성력을 과시하고 있다. 마지막 22장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마치 장중한 모차르트의 레퀴엠(Requiem)을 듣는 듯하다. 그러면서 부모님의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그런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효자지사종의(孝子之事終矣)’라는 말로 대단원의 막이 내려진다.
사군장(事君章) 제이십일(第二十一)
신하의 참된 도리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유덕한 군자(君子)【여기 군자는 문맥상 윗사람을 모실 수 있는 사람으로 제후ㆍ경 대부ㆍ사가 모두 해당된다】가 윗사람(임금, 천자)을 모실 때에는 나아가서는 내면의 충정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군주의 잘못 혹은 자신의 잘못을 어떻게 고쳐 보완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윗사람의 아름다운 면은 따라 잘 살려내고, 아름답지 못한 면은 광정하여 구해내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임금과 신하, 위ㆍ아래가 모두 화합하여 가깝게 느끼도록 만든다. 子曰: “君子之事上也, 進思盡忠, 退思補過. 將順其美, 匡救其惡, 故上下能相親也. 『시경』 소아(小雅) 「습상」 노래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애절한 사랑이 가슴에 넘치네, 어찌 이 가슴 전하지 않을 수 있으랴마는, 가슴속 깊이 깊이 묻어두니,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잊을 수 있으리오?’” 『詩』云: ‘心乎愛矣, 遐不謂矣. 忠心藏之, 何日忘之?’” |
이 장의 내용은 「개종명의장」에 있는 ‘중어사군(中於事君)’의 의미를 상술(詳述)한 것이다. 제목은 ‘사군장’이지만 실내용인즉 ‘신하의 참된 도리’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후대에 왜곡되듯이 ‘충성’이라는 시각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충정’이라고 하는 진심을 말하고 있고, 마지막에도 순수한 연애시를 인용함으로써, 임금을 생각하는 마음을 연애와도 같은 감성적 차원으로 순화시키고 있다. 매우 정감이 짙으면서 합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좋은 장이다. 전통적 「습상」 시의 해석은 매우 경직되어 있다. 나는 그러한 해석을 따르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의 「사미인곡(思美人曲)」을 아름다운 가사문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충(忠)’에 대한 그릇된 해석과 지나치게 체제아부적인 비열한 인간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그가 정적(政敵)을 다룬 잔인성은 만인에게 반성의 소재가 될 뿐이다.
상친장(喪親章) 제이십이(第二十二)
효의 덕성이 발현되는 사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부모의 상을 당하면, 구슬피 대성으로 곡하며, 세성(細聲)으로 꼬리를 흘리는 그런 곡을 하지 않으며, 조문객에 대해 예를 차릴 때에도 용모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말을 할 때에도 멋있게 꾸미지 않으며, 아름다운 옷을 입어도 마음이 불안하며, 즐거운 음악을 들어도 기쁘지 아니 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한다. 이 여섯 가지 정황은 효자로서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는 애척(哀慼)의 정이다. 子曰: “孝子之喪親也, 哭弗依, 禮亡容, 言弗文, 服美弗安, 聞樂弗樂, 食旨弗甘, 此哀慼之情也. 삼 일이 지나서 비로소 미음을 들기 시작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부모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 삶을 상하게 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어버이를 잃은 슬픔으로 인하며 몸을 훼상하여 끝내 생명을 잃고 마는 일이 없도록 만든 것이 지나간 성인들의 바른 제도이다. 복상 기간도 3년을 넘지 않도록 한 것은【정현(鄭玄)의 설은 27개월, 왕숙(王肅)의 설은 25개월. 재미있게도 「공전」은 왕숙의 설을 취함】 백성들에게 사물의 이치가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三日而食, 敎民亡以死傷生也. 毁不滅性, 此聖人之正也. 喪不過三年, 示民有終也. 먼저 내관과 외곽을 마련하고 염의(斂衣)와 금피(衾被)【시신을 염한 후에 다시 싸는 요와 이불】로 시신을 잘 싸서 관에 집어넣고, 영전(靈前)에 보궤(簠簋: 제기들)를 진열하고 이별의 정을 달래며 애척한 마음을 금치 못한다. 爲之棺槨衣衾以擧之, 陳其簠簋而哀慼之; 큰소리로 곡하고, 눈물을 흘리며 애통하는 손으로 가슴을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구슬피 장지를 향해 운구한다. 양지 바르고 뽀송뽀송한 묘혈과 묘지를 점치어 고르고 관을 안치한다. 哭泣擘踴, 哀以送之; 卜其宅兆, 而安措之; 3년 복상 후에는 신주를 종묘에 모시고 귀신의 예로써 제향(祭享)한다.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로 제사 지내며, 계절에 맞는 공물(供物)을 올리며 부모의 따사로운 은혜를 계속 떠올린다. 爲之宗廟, 以鬼享之; 春秋祭祀, 以時思之. 이와 같이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애경(愛敬)으로 섬기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애척(哀慼)으로 섬기니, 이것이 인간이 태어나서 할 수 있는 근본을 다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리오? 삶과 죽음의 마땅함이 이에 다 구비되니, 효자의 사업은 비로소 끝나는 것이요, 완성되는 것이다.” 生事愛敬, 死事哀慼, 生民之本盡矣, 死生之誼備矣, 孝子之事終矣.” |
더 이상 나 도올이 무엇을 말할 수 있으리오? 번역하는 나의 붓 끝을 따라가는 나의 눈길에 부모님을 사모하는 간절한 정이 사무쳐 원고지가 적셔지고 만다. 부모님은 누구에게나 계시는데, 과연 내가 부모를 사모하는 정을 과연 나의 자손들이 느낄손가? 내가 불효한 자식인데, 또 내 자식에게 무엇을 바라리오? 21세기가 아무리 새로운 정보의 시대요, 민주의 시대라 하지마는, 효의 본뜻은 살려야 마땅하다.
이 장을 읽으면서 놀랍게 느끼는 것은 전국말의 상례 습관이나 이천이백 년을 격한 오늘 우리의 풍속도가 거의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서양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동아시아 인민들의 감정구조를 이제 다시 한번 리클레임(reclaim, 개심)할 때가 왔다. 전통적으로 효의 가치관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었으나 이제 민주의 시대가 왔다. 인권이 강화되고, 어린이와 여자의 권익이 보호되고, 서민의 최저생계가 보장되어가는 이런 시대일수록 보다 정당한 효의 가치관이 자리잡을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효경』의 주석을 총체적으로 마무리하면서 드는 생각은 『효경』이 결코 지배자에 대한 서민들의 충(忠)을 강조하고 있는 서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민들은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사회질서의 안녕이 보장된다면 자연적으로 자애와 효성의 호상적 덕목을 발현하게 되어 있다. 『효경』의 근원적 문제의식은 서민들의 효가 아니라 서민들이 효의 자연스러운 덕성을 발현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건설하냐에 집중되어 있다. 그 가장 강력한 정언명령이 바로 그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의 담지자들이 효의 가치관을 실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치자(治者)들에 대한 법제적 강제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백화노방의 아름다운 시절을 보낸 전국시대 사상가들의 마지막 염원은, 어떻게 천자(天子)로 상징화되는 국가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천자 권력의 도덕적 통제의 테제로 내걸은 것이 바로 효(孝)라는 것이다. 천자가 솔선수범해서 효를 실천해야만 만인이 은덕을 입게 된다. 이러한 효치(孝治)의 테제는 경대부까지밖에 내려오지 않는다. 권력이 집중된 사람들일 수록 효(孝)를 더 철저히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효경』의 궁극적 테제이다. 그리고 효는 단지 생리적 관계의 두 개체를 잘 모신다는 협애한 의미를 떠나 치자들의 올바른 사회정의관(the vision of social justice), 그리고 올바른 종교관【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효의 종교이다. 이것은 현대신학의 공통된 견해이다】, 올바른 삶의 태도(법복法服, 법언法言, 덕행德行)를 포괄하고 있다.
이러한 『효경』의 발상은 21세기 오늘날에도 너무도 정교하게 들어맞는다. 그리고 『효경』은 치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사상이 아니라, 치자와 피치자가 공동으로 실현해야 할 객관적이고도 정감적이며, 합리적이면서도 비근한, 보편주의적 패러다임(a universalistic paradigm)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제국의 꿈이었다.
그 제국의 꿈을 진시황제로부터 건륭황제에 이르는 기나긴 중국역사가 결코 실현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 실현을 향한 임피터스(impetus, 힘)로서 『효경』은 항상 동아시아 역사 저변을 흐르고 있었다. 이제 효의 마음의 제국을 다시 한 번 일으켜보고자 하는 뜻있는 사람들에게 나 도올의 번역이 하나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면 학인으로서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2009년 6월 4일
밤 11시 43분
부모님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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