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권력, 과학의 초극
과학의 객관성이 과학의 진리성을 확보하지는 못한다. 원자의 법칙을 이해하여 원자폭탄을 만들었고 그 폭탄이 객관적으로 항상스러운 위력을 과시한다고 해서 그 폭탄을 인간의 대규모 살상무기로 쓴다면 과연 과학의 진리는 무엇으로 확보할 것인가? 너무 적나라한 특수사례인 것처럼 나의 이러한 지적을 비꼬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모든 분야에 있어서 과학의 발전이 과연 인간세의 모습을 어떻게 끌고나갈 것인가에 관한 질문은 항상 유효하다. 현재, 명료한 결론은 과학이 부국강병의 가장 효율적 방편이라는 사실밖에는 없다. 동양인들은 서양인들의 제국주의적 무력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고, 꿇은 무릎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과학이 필요할 뿐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세는 한없이 무력다툼의 굴레로 휘말려 갈 뿐이다.
최종적으로 우리의 결론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자! 동방의 사람들이 20세기를 통하여 서방의 사람들에게서 배워야한다고 생각한 것을 요약하면, 자본주의, 민주주의, 자연과학이라는 세 가지 테마로 함축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였다. 우리는 소략하나마 이 세 가지 테마를 다 검토해 보았다. 그러나 우리의 결론은 이러한 서구문명(+미국)의 위대한 성취를 우리가 따라잡는다해도 결코 인류사회가 더 바람직한 모습으로 발전한다든가, 우리의 삶이 보다 개선된 방향으로 나아가리라는 확실한 보장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최종적 진리라고 생각했던 과학이라는 것조차도 우리가 ‘과학적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어떤 새로운 진리관을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상기의 세 가지 테마가 결국 서구문명의 총결이라고 한다면 그 결론은 매우 편협한 그레코ㆍ로만문명의 흐름으로부터 파생된 것이고, 그것은 모두 기독교문명의 횡포 속에 갇혀있는 것이다. 희랍인의 수학, 유대인의 종교적 광신, 그리고 갈릴레오 이래의 자연과학이 모두, 기독교라는 미신과의 텐션 속에서 오늘날의 모든 제국주의적 문명의 형태에 기여한 것이다.
이 제국주의가 인류의 20세기를 장악하였고 민족국가(nation states)시대를 개시하였고 오늘의 국제역학과 환경오염의 재앙을 연출한 것이다. 사실 20세기는 인류사가 진보(Progress)라는 이름 아래 매우 낙관적인 개명(開明)을 구가한 듯이 보였지만 총체적으로 분석해보면 지구문명사의 편협한 일곡(一曲)에 획일적으로 매달려온, 정신사적으로 빈곤한 세기였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은 서양 나름대로 그러한 편견을 탈피해볼려는 정당한 노력을 기울였고, 동양은 동양 나름대로 자신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는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제 진정한 인류사의 교섭의 장이 시작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집트의 나일강으로부터 아시아대륙으로 펼쳐지는 인류문명의 발상지들을 한번 일별하여 보자! 재미있는 사실은 동으로 갈수록 문명의 시원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나일강에서 메소포타미아로, 인더스 갠지스로, 황하유역으로! 사실 나일강에서 비옥한 초생달지역으로 뻗쳐 있는 고문명지대의 일찍 개화한 모습을 생각한다면 황하유역의 중국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고문명이라고 말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후대의 신생문명에 속한다. 상(商)왕조의 청동기는 매우 정교한 문명의 수준을 나타내고 있지만 당시의 궁궐의 모습을 보면 요즈음의 허름한 맛배지붕 목조창고의 수준을 넘어가지 않는다. 갑골문이래야 이집트 신왕조(New Kingdom)의 후기에 속하는 것이므로 크로놀로지(chronology, 연대기) 상에서는 가히 같은 차원에서 비교하기 어렵다.
사실 우리가 중국문명을 고문명인 것처럼 생각하는 상식적 인상의 이면에는 일차적으로 한반도 출토의 유물에 비해 보다 오래된 찬란한 것들이 중국땅에서 많이 나오기 때문이요, 세계사에서도 중국문명은 곧 잘 희랍ㆍ로마문명과 나란히 대비되어 논의되기 때문일 것이다. 진시황을 알렉산더 느낌으로, 한무제를 줄리어스 시저 느낌으로 대비한다면 분위기는 대강 맞아 떨어지겠지만, 여하튼 이들 모두가 고문명세계에서 본다면 최근세문명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문명이란 반드시 오래되었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과연 그 문명이 인간세에 어떠한 가치와 어떠한 삶의 방식을 전했느냐 하는 것을 포괄적인 시각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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