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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통서 인류문명전관 - 신크레티즘(syncretism)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통서 인류문명전관 - 신크레티즘(syncretism)

건방진방랑자 2021. 5. 2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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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크레티즘(syncretism)

 

 

이집트의 문명에서는 신들의 결합이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들의 태양숭배는 어떤 생명의 근원자에 대한 숭배이며 그 숭배의 본질은 무수한 로칼(local)한 신들의 형상으로 현현되기 때문에 신들 사이에는 서로간의 배타가 있을 수 없다. 후대 희랍의 제우스의 원형이 된(헤로도토스의 주장) 테베지역의 토착신인 아문(Amun)신은 멤피스지역의 태양신(Heliopolitan sun-god)인 라(Ra)신과 결합되어 아문라(Amun-Ra)신이 된다. 오시리스도 프타, 소카르와 결합하여 프타ㆍ소카르ㆍ오시리스(Ptah-Sokar-Osiris)가 된다. 이집트인들은 이러한 퓨젼방식에 의하여 주변의아시아, 누비아, 후대의 희랍 로마 신들을 거침없이 수용하여 자기들의 토착신과 결합시킨다. 그러한 신크레티즘(syncretism, 융합)을 통하여 장엄한 판테온(Pantheon, 로마의 만신전)을 구성했다.

 

이집트문명의 특성은 그 풍요로움으로 인한 배타성의 결여이며, 따라서 삶과 죽음이 연속적으로 이해되고 선과 악의 이원적 대결도 그리 강렬한 실체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이에 비한다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신들은 유일신앙을 고집하지는 않았지만 보다 공격적이고 배타적이며 전쟁수호신적 성격을 강렬하게 지니며, 특히 선ㆍ악의 이원적 대결구조가 너무도 선명하다. 그리고 죽음과 삶의 세계가 단절되어 있고 인간세와 초월계가 뚜렷히 이원화 되어있다. 우리가 흔히 종교라고 하는 것은 모두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사막문화를 원형으로 하는 것이다. 이집트는 사막지대에 위치하고 있지만 문명의 요람으로서의 나일강 유역은 사막적 성격이 없다. 그것은 농경문화일 뿐이다. 사막에서는 한 텐트 안에서 생활하는 베두윈(Bedouin)들의 강렬한 결속력과 배타성, 그리고 초월적 힘에 대한 절대적 숭배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공동체의 수직적 하이어라키(hierarchy, 계층)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러한 하이어라키의 구조는 신과 인간 사이에도 철저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유대교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왔다갔다하면서 그 중간에서 태어난 비교적 후대의 산물이지만그것은 지중해지역경계의 한시적 풍요로움을 틈타 BC 98세기에나 형상화된 것이며 그 이전의 모든 족장이야기는 문학에 속한다. 성서적 이스라엘의 민족개념은 페르시아 르네상스기에나 구체화된 것이다 이집트의 영향보다는 역시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이 압도적이다.

 

최근에 발견된 쿰란공동체 사해문서에 담겨있는 공동체규약을 보아도 이들이 얼마나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의 영향을 강렬하게 반영하고 있는지 자명하게 드러난다. 선과 악의 대결, 공동체내의 사람과 공동체외의 사람의 구분, 선한 영과 악한 영, 의인과 악인, 어둠의 자녀와 빛의 자녀, 저주의 시대와 구원의 시대, 종말론적인 최후의 전쟁, 최후의 심판, 메시아 이 모든 어휘들이 종교라는 이름하에 인간세에서 펼쳐지고 있는 열악한 형태의 모든 가능성을 구현하고 있다. 이러한 이원론이 후에 요한복음의 빛과 어둠로고스사상으로 발전하고 이것이 재림의 묵시론적 환상과 결합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대체적으로 말해서 아시아대륙의 문명은 서쪽으로 갈수록 신화적ㆍ초월적 성격이 강하고, 동쪽으로 갈수록 인문적ㆍ내재적 성향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앞서 말한대로 동쪽으로 갈수록 문명이 후발이라는 사실과 연관되는 것일 수도 있다.

 

(西) ()
신화적(mythical) 인문적(humanistic)
초월적(transcendental) 내재적(immanent)

 

기실 인더스강역의 문명은 이집트문명ㆍ메소포타미아문명ㆍ페르시아문명과 연속적 일체를 이루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문헌에도 인도의 지혜문학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문명사적 전체적 통찰 속에서 조망되어야할 것이다. 헬레니즘시대의 동ㆍ서문명의 교류는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자유로운 것이었다. 실제적으로 캐러반루트의 개척은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인도고대문명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아리안족과 토착세력문명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관한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고고학적 성과로서도 확정짓기가 매우 어렵다. 인더스강유역 하라파 고대문명(Harappan civilization)의 주역이 토착세력이었냐, 상부에서 내려온 아리안족이었냐 하는 것도 확정짓기 어렵다. 모헨죠다로(Mohenjodaro)나 하라파(Harappā)의 유적이나 유골을 보면 그것은 획일적인 성격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라파문명에 이미 다양한 요소의 유입이 있었고, 그 하라파문명의 토착성과 아리안 요소들이 결합하여 후대의 갠지스강문명의 꽃을 피웠다고 개괄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더스계곡의 하라파문명은 BC 1750년경에는 쇠퇴한다. 그리고 펀잡(Punjab) 지역의 사람들이 점점 갠지스강역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도시국가(폴리스)들이 생겨났고 이 도시국가들은 기존의 종족사회를 해체시켰다. 그러나 또 다시 이 도시국가들은 다양한 과도기적 정치체제를 유지하였지만 결국 마가다왕국과도 같이 강력한 전제국가로 통합되어 간다. 이러한 변혁기에 싯달타라는 인류사에 획을 긋는 대사상가가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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