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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공자의 생애와 사상 - 곡부로 가서 느낀 것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공자의 생애와 사상 - 곡부로 가서 느낀 것

건방진방랑자 2021. 5. 2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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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부로 가서 느낀 것

 

 

공자는 존재했는가? 살았는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나는 중요한 결단을 하나 감행하였다. 공자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활동하고 죽었다는 그의 고향 곡부(曲阜, 취후우, Qu-fu)로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청도(靑島, 칭따오, Qing-dao)에서 기차를 타고 황하(黃河, 후앙허, Huang-he)와 태산(泰山, 타이산, Tai-shan) 앞의 광활한 대지를 달려 새벽의 여명을 깨뜨리고 연주(兗州, 옌저우, Yan-zhou) 후어츠어잔(火車站, huo-che-zhan)에 도착한 것이 이천년 유월 삼일 아침의 일이었다.

 

곡부에 공자가 있었는가? 곡부의 웅대한 대성전(大成殿)의 위용 속에 공자가 있었는가? 나의 대답은 간결하다. 곡부의 유적 어느 곳에도 공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곡부의 유적 그 모두가 후대에 건조된 것이다. 그 대부분이 송()ㆍ원()대 그리고 청대(淸代)에 크게 개축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찌는 태양 아래 고호의 밀밭보다 더 강렬하게 타오르는 곡부의 산하(山河), 공자의 망령을 쫓아, 하염없이 헤매면서 다음과 같은 명백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를 읽고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정약용(丁若庸, 1762~1836)이라는 사람의 실존성을 크게 의심하지는 않는다. 퇴계전서(退溪全書)를 읽고 안동의 도산서원에 가서 그 숨결을 느껴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황(李滉, 1501~1570)이라는 사람이 나의 몇대조 할아버지와 같은 역사적 인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크게 회의감을 느끼지 않는다. 곡부에서 내린 나의 결론은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 다산초당에서 정약용의 고적(孤寂)한 울분을 느끼고, 도산서원에서 퇴계의 고매(高邁)한 숨결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느낌만큼의 공자는 똑같이 느껴질 수 있는 어떤 역사적 실존태라는 것이었다. 공자는 있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최종적 결론은 독단적으로도 들릴 수 있겠지만 그 역사적 실존성에 대한 확신이었다. 방대한 문헌을 통한 내 일생의 공자와의 해후가 그러한 직감을 가능케 했을지도 모른다. 공자는 분명 살아 있었다! 공자는 곡부에서 태어나고 살고 죽었던 어떤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의 기나긴 지적 방황에 이러한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곡부 여행의 어마어마한 소득이었다. 역사적 판단, 즉 과거에 대한 판단은 예술적 직관과도 같은 어떤 느낌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한 직관적 판단을 내리기까지 반세기의 고독한 방황을 거쳐야 했던 나의 삶의 역정이 나에게는 소중했다. 공자를 탄생시킨 산하는 굽이굽이 나의 의식 속에서 살아 꿈틀거렸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자가 존재했는가? 존재하지 않았는가? 하는 존재의 유무의 확인은 우리가 추구하는 문제의식에 아무런 실마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의 존재의 유무에 대한 확신이 신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것과 동일한 맥락인 것이다. 안젤므스의 신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은 신을 신앙하는 사람들에게도 별 의미가 없다. 플라톤테아에테투스(Theaetetus)이래 제기되어온 서양철학 2천년의 존재의 문제가 럿셀(Bertrand Russell, 1872~1970)기술이론(Theory of Description)’에 의해 면박당하는 것과도 동일한 맥락일 것이다. 공자가 존재한다는 나의 확신은 나의 내면에서 기술되는 여러 가지 의식의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다. 공자라는 고유명사가 존재하느냐 안 하느냐하는 것은 우리가 묻고자하는 공자라는 의미체와 무관한 헛질문일 수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공자라는 고유명사가 기술되고 있질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공자라는 역사적 자기동일적 실체(Substance)에 관한 논의 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공자는 존재한다공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국 다 같이 무의미한 명제들이다. 이 명제를 유의미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보다 본질적 질문은, ‘공자는 어떤 사람이었냐?’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을 던지기 위한 최초의 존재론적 근거로서 나는 공자는 살아있었다라는 믿음을 직관적으로 전제할 수 있기에 이른 것이다.

 

공자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어떤 사람이었다는 명제는, 인식론적으로 공자의 행위로서 기술되고 있는 많은 문헌적 사실들이 시공 속에 존재했던 어떤 주체의 실제적 행위에 대한 해석의 체계들이라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헌적 사실들이 완전한 인간의 상상력의 날조가 아닌, 시공 속의 어떤 인격체의 리얼한 행위의 해석체계들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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