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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위정 제이 - 1. 정치를 덕으로 하면 뭇별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 같아진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위정 제이 - 1. 정치를 덕으로 하면 뭇별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 같아진다

건방진방랑자 2021. 5. 2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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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를 덕으로 하면 뭇별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 같아진다

 

 

2-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정치를 하되 덕으로써 하는 것은, 비유하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나머지 모든 별이 그를 중심으로 고개 숙이고 도는 것과도 같다.”
2-1.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

 

이것은 위정(爲政)편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유명한 구절이며 공자 자신의 말로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공자가 과연 이러한 천문의 이미지를 비유로 들어 자신의 덕치주의(德治主義)’적 위정관(爲政觀)을 직접 표방했는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이것은 유가와 도가를 대립적 사상체계로 파악하는 후대의 관념적 틀에서 볼 때는, 매우 위험한 해석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이 장은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우리나라의 대유(大儒) 다산(茶山)도 도가의 무위(無爲)’적 치세관의 의미맥락에서 이 장을 해석하는 종종의 오류에 대한 강력한 아폴로제틱(apologetic, 변명의)를 장황하게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호교론적 주장 자체가 그 근원적 실정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데서 출발하고 있는 불필요한 변명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장을 전국(戰國)시대의 도가(道家)나 병가(兵家)나 법가(法家)무위(無爲)’적 사유가 짙게 반영된 후대의 날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간백(簡帛)문서들의 대거 출현으로 이러한 주장은 별 설득력을 지닐 수 없게 되었다. 이미 전국시대 중기나 그 이전의 유가문헌의 성격이 후대의 예문지(藝文志)가 분류하는, ()의 분별적ㆍ배타적 개념으로 규정될 수 있는 그러한 획일적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장을 후대의 날조가 아닌 공자 자신의 발언으로 간주한다 해도, 근본적으로 이 로기온에 담긴 사유체계는 도가의 무위(無爲)’ 사상의 핵심과 구조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강변할 수 있는 하등의 근거가 없다. 예를 들면, 위령공4에서 공자 자신이, ()임금의 치세자세는 무위이치(無爲而治)’로 요약될 수 있으며 그것을 풀어 말하자면 자기를 공손히 낮추고 바르게 남면하였을 뿐[공기정남면이이의(恭己正南面而已矣)]’라 할 수 있다고 말한 것과, 이 장의 사상은 내면적으로 일치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논어의 구절은 자로(子路)6, 13 등 많은 파편에서 쉽게 발견되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어의 중심사상을 이루는 생각의 체계가 근원적으로 도가의 무위사상과 대별되어지는, 질적 비약이 있는 어떤 다른 사상체계라고 강변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것은 도가를 이단시(異端視)해야만 유가의 적통이 선다고 하는 후대의 분별적 생각 때문에 견강부회(牽强附會)된 것이다. 청정무위(淸淨無爲)는 한유(漢儒)의 황로지학(黃老之學)이며 진대(晋代)의 청허지담(淸虛之談)으로서 천하를 어지럽히고 만물을 파괴하는 이단사술 중에서도 극심한 것이라고 거품을 뿜어대며 박설(駁說)을 펴는 다산(茶山)의 강변은 역시 편협한 도통관념의 폐해에 사로잡 힌 조선유학의 척박한 분위기를 반영할 뿐이다. 노자도 공자의 스승일 수 있고, 공자도 노자의 스승일 수 있다. 심지어 요즈음은 죽간연구의 성과에 발맞추어 노자 5천언도 유가계열의 한 사상가의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는 관점까지도 정당성을 획득해가고 있다. 이것은 모두 교류된 차이트가이스트(Zeitgeist, 시대정신)의 장()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의 언변일 뿐이다. 노자나 공자나 모두 성인지치(聖人之治)’를 말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은 요새말로 하면 리더십의 본질에 관한 논의일 뿐이다.

 

인간세는 군주제, 민주제를 막론하고 하이어라키(hierarchy, 위계질서)가 없을 수 없다. 모든 하이어라키에는 그 하이어라키의 기능의 구심점으로서의 어떤 상징적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대통령이 없으면 우리나라의 행정체계는 원활히 돌아갈 수가 없다. 능력미달의 대통령 때문에 얼마나 우리 국민이 실생 활에서 고통을 겪었는지는 구태여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아도 국민 모두가 절절히 실감해온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세의 모든 하이어라키의 구심점이 되는 권력자는 강제적 으로 이 세상을 다스려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아닌 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란 무엇인가? 유가나 도가나 동양사상의 위대함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서양사상가들과는 달리, 그 덕의 내용의 세목을 규정하지 않는 데에 있다. 덕이란 무엇인가? 공자나 노자나 그 덕의 내용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이란 바로 무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위란 무엇인가? 무위란 문자 그대로 함이 없음인가? 무위란 함이 없음이 아니요, 바로 북극성과 같은 기능이라는 것이다. 북극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제자리를 지키고서 움직이지 않지만 그 주변의 모든 별이 그것을 구심점으로 해서(共之) 돌아가게 만드는 어떤 힘을 갖는 그 무엇이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주석가들이 북신(北辰)’의 해석을 둘러싸고, 그것은 북극성이라기보다는 북극성 옆에 있는 정확한 북극점을 지칭하는 개념이라는 등, 매우 자세한 천문학적 논의를 하고 있으나 그것은 매우 사소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북신(北辰)’의 의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부동의 사동자(使動者)’(Unmoved Mover)와 같은 기하학적인 형식성의 중심축을 말하는 것도 아니요, 중세기 스콜라철학에서 말하는 카우사 수이(causa sui) 즉 자기원인의 어떤 신()개념이나 실체개념과 같은 것이 아니다.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는 황하문명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똥바가지(Dipper)처럼 생긴 북두칠성이 언제나 눈에 띄고, 그 칠성의 제1성과 제2성의 직선 연장선상에 자리잡은 북극성이 눈에 들어온다. 쏟아질 듯 아름다운 하룻밤, 하늘의 별 들을 쳐다보면 그 엄청나게 많은 옥구슬과도 같이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이 모두 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는 재미난 사실이 발견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중성공지(衆星共之)’의 해석은 우리가 좀 신경을 써야 할 문제가 있다. ()을 그러한 중성(衆星, 뭇별)의 운행의 구심점으로서 북극성을 공유한다는 뜻으로 풀 수도 있지만, ()’()’자로 해석하면, 모든 별들이 이 북극성을 향해 소매를 들어 공수(拱手)하면서 고개 숙여 절하고 있는 어떤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림이 떠오르는 것이다. 아마도 이 공()자의 원의는 이러한 문학적 상상력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나는 정현(鄭玄)주에 의거하여 이런 해석을 나의 원문번역에 반영하였다.

 

도가(道家)무위(無爲)’는 사소한 덕목에 얽매이지 않는 큰 행위를 말한다. 지도자가 될수록 작은 일을 사사건건 참견하면 그 체제는 번문욕례(繁文縟禮)만 늘어나는 불편한 조직이 되어버리고 만다. 지도자는 사소한 덕목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법가(法家)무위는 지도자가 법()의 권세만 지니고 법에 따라 집행할 뿐, 자신이 직접 어떤 감정이 얽힌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함이 없음이다. 그리고 병가(兵家)무위는 함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남을 함정에 빠지게 만드는 어떤 계략이다. 그리고 유가의 무위(無爲)’는 인()의 덕성(德性)에 의하여 자신이 직접 개입을 하지 않아도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부터 심복하게 만드는 어떤 힘이다. 이 모든 것이 조금씩 뉴앙스는 달라도 결국 같은 인간의 사유체계에 근원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은 불가(佛家)의 사상까지를 포괄하는 어떤 동양인의 지혜의 원형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학파적으로 분별지어, 대립적으로 해석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나는 공자가 올랐다는 태산의 정상에서 일숙(一宿)을 하면서 천상이 맞닿는 듯 별 들이 쏟아지는 찬란한 밤하늘의 장관을 쳐다본 적이 있다. 그리고 문득 이 장이 생각났다. 음악의 천재, 시인적 감성이 풍부한 공자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찬연히 빛나는 별들이 정연히 운행하고 있는 밤하늘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쳐다보았을 것이다. 당시의 더러운 인간세, 예나 지금이나 권좌를 둘러싸고 더러운 암투를 벌이는 현실정치의 추잡한 모습만 쳐다보다가, 문득 도덕의 무위지치를 실현한다면, 저 찬란한 천상의 별의 세계의 장엄한 조화로운 모습을 이 지상에서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비젼이 순결한 공자의 영혼을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예수도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6:10)라고 기도했다. 공자에게는 그러한 인격적 신의 질서는 없었다. 밤하늘에 보이는 중성(衆星)의 모습조차 그에게는 이 지상에서 실현되어야 할 이상적 질서로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공자의 꿈이었다. 그러나 공자의 꿈은 이데아가 아닌 현실이었다.

 

 

은 음이 ()’이다. ‘이라고 쓰기도 한다. ()’이란 것의 말 됨이 ()’이니, 그것은 사람의 바르지 못함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이란 것은 말 됨이 ()’이니, 그것은 도를 행하여 마음에 얻는 바가 있다는 뜻이다. ‘북신(北辰)’ 은 북극성이다. 하늘의 추뉴(樞紐)이다. 제자리에 거하며 움직이지 않는다. ‘()’이란 향한다는 뜻이다. 뭇 별들이 사면으로 둘러싸고 돌면서 북극성을 향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정치를 행하되 덕으로써 하면 인위적으로 조작함이 없어도 천하가 다 돌아온다. 그 모습이 이와 같다.

, 音拱, 亦作拱. 政之爲言正也, 所以正人之不正也. 德之爲言得也, 得於心而不失也. 北辰, 北極, 天之樞也. 居其所, 不動也. , 向也, 言衆星四面旋繞而歸向之也. 爲政以德, 則無爲而天下歸之, 其象如此.

 

정이천이 말하였다: “정치를 하되 덕으로써 해야만 그 연후에 비로소 무위(無爲)할 수가 있는 것이다.”

程子曰: “爲政以德, 然後無爲.”

 

범순부(范淳夫)가 말하였다: “정치를 행하되 덕으로써 하면, 부산을 떨지 않아도 사람들이 교화되며, 말을 떠벌이지 않아도 사람들이 믿으며, 특별히 하는 일이 없어도 이루어진다. 지키는 것이 지극히 간략한데도 번거로운 것들을 제어할 수 있으며, 처하는 것이 지극히 고요한데도 움직이는 것들을 제압할 수 있으며, 힘쓰는 것이 적은데도 많은 사람들을 복종시킬 수 있다.”

范氏曰: “爲政以德, 則不動而化, 不言而信, 無爲而成. 所守者至簡而能御煩, 所處者至靜而能制動, 所務者至寡而能服衆.”

 

 

범씨는 범조우(范祖禹), 자가 순부(淳夫)이다. 앞서(1-12) 상술하였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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