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우리 한시를 읽다 - 8. 대동강 부벽루의 한시 기행 본문

책/한시(漢詩)

우리 한시를 읽다 - 8. 대동강 부벽루의 한시 기행

건방진방랑자 2022. 10. 24. 13:49
728x90
반응형

 8. 대동강 부벽루의 한시 기행

 

 

대동강과 유적지

 

 

1. 옛 노래에 담긴 대동강

1) 손인호의 한 많은 대동강: “한 많은 대동강아 대동강 부벽루야 뱃노래가 그립구나. 귀에 익은 수심가를 다시 한 번 불러본다. 편지 한 장 전할 길이 이다지도 없을쏘냐. 아아아, 썼다가 찢어버린 한 많은 대동강아

2) 나훈아의 대동강 편지: “대동강아 내가 왔다, 부벽루야 내가 왔다. 주소 없는 겉봉투에 너의 얼굴 그리다가 눈보라 치던 밤 달도 없던 밤 울면서 떠난 길을 돌아왔다고. 못 본 체하네, 못 본 체하네. 반겨주려마, 한 많은 대동강

3) 이처럼 대동강은 분단 이래 실향민의 눈물이 어린 장소였음.

 

 

2. 대동강의 구조 및 이름

1) 구조: 남강ㆍ무진천ㆍ보통강ㆍ순화강 등과 평양에서 합쳐져 대천을 이룸.

2) 옛 이름: 고구려 때엔 패강(浿水)ㆍ왕성강(王城江)으로 불리다 고려 때 대동강으로 정착됨. 패수(浿水)는 이두 표기로 부루나로 읽는데 곧 벌내(벌과 강)’이란 뜻임. 물이 맑기에 청류(淸流)ㆍ옥류(玉流)라고도 불림.

 

 

3. 구조

1) 대동강에 들어서면 능라도(綾羅島)가 보이고, 그 북단에 평양성, 평양성 동쪽문인 장경문(長慶門) 바깥쪽 북안 일대가 청류벽(淸流壁)으로 여기에 영명사(永明寺)가 있고, 부벽루(浮碧樓)청류벽(淸流壁)에 있던 문루임.

2) 영명사 안엔 기린굴(麒麟窟), 문무정(文武井)의 유적이 있음.

3) 영명사 뒤쪽의 야트막한 산이 모란봉(牡丹峯)으로 불린 금수산(錦繡山)이며, 그 정상에 을밀대(乙密臺)가 있음.

4) 을밀대 동쪽엔 기생들의 무덤인 선연동(嬋姸洞)이 있음.

 

 

4. 박제가(朴齊家)선연동(嬋娟洞): 평양의 화려한 풍속이 이 시 한 편에 녹아 있음.

春城花落碧莎齊 봄날 성벽에 꽃 지고 푸른 풀 가지런해
終古芳魂此地棲 예부터 꽃다운 혼들 이 땅에 살았지.
何限人間情勝語 어찌 한하여, 사람의 정을 이루다 말하랴.
死猶求溺浣紗溪 죽어서도 오히려 완사계에 빠지길 구하는데.

 

 

5. 김황원의 부벽료(浮碧寮): 이곳에 올라 고금의 제영을 보고 뜻에 차지 않아 다 불태우고 한 연을 짓고 뜻이 말라 통곡하고 떠났다는 고사가 있음.

長城一面溶溶水 긴 성 한 면에 넘실넘실 물
大野東頭點點山 큰 들의 동쪽 끝엔 점점이 솟은 산

 

 

6. 성현(成俔)부벽루기(浮碧樓記): 1478년 부벽루의 풍광을 서술하고 있으며 부벽루에 가지 않고도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 그곳 풍경을 그려볼 수 있음.

 

 

 

부벽루에서 쓴 이색과 신광수의 시

 

 

1. 예전부터 시인묵객(詩人墨客)은 부벽루(浮碧樓)에 올라 시를 지었으며 김극기(金克己)오색 구름 속의 백옥루가 지상으로 날아와 천상의 놀이에 알맞은 듯[五色雲中白玉樓, 飛來地上稱天遊]’라는 시도 있음.

 

 

2. 이색(李穡)부벽루(浮碧樓)

昨過永明寺 暫登浮碧樓 어제 영명사를 지나다 잠시 부벽루에 올랐네.
城空月一片 石老雲千秋 성은 텅 빈 채 달 한 조각 있고, 바위(조천석)는 천년 두고 구름뿐인데,
麟馬去不返 天孫何處遊 기린 말 타고 떠나 돌아오지 않으니, 천손이여 어디서 노시는가?
長嘯倚風磴 山靑江自流 길게 바람 부는 돌계단에 기대어 읊조리니, 산을 절로 푸르고, 강은 절로 흐르는구나.

 

1) ()에서 공부하던 중 23살 때 잠시 귀국하여 개성으로 가는 도중에 지은 시.

2) 수련은 대구(對句)이고 당시에 기피하던 고유명사를 써서 표현했음. 두보(杜甫)등악양루(登岳陽樓)의 수련을 응용하여 지금.

昨過永明寺 暫登浮碧樓 이색(李穡), 부벽루(浮碧樓)
昔聞洞庭水 今上岳陽樓 두보(杜甫), 등악양루(登岳陽樓)

 

3) 함련에선 일반적으로 자연유상 : 자연무상을 대비하는 걸 깨고 자연유상을 보임. 정지상(鄭知常)개성사팔척방(開聖寺八尺房)처럼 새로운 미감을 창출함.

城空月一片 石老雲千秋 이색(李穡), 부벽루(浮碧樓)
靈泉澄淸寒水落 정지상(鄭知常), 開聖寺八尺房
古壁暗淡蒼苔斑

 

4) 경련에선 옛날 기린마를 타고 만주 벌판까지 호령하던 동명왕의 자취를 이제 찾을 수 없다는 무상감을 말함으로 시인이 강개한 정을 발산함

5) 미련에선 3연의 강개를 풀어버린 후, 다시 자연을 바라보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란 깨달음에 이름. 이백(李白)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와 같은 느낌임.

長嘯倚風磴 山靑江自流 이색(李穡), 부벽루(浮碧樓)
鳳凰臺上鳳凰遊 이백(李白), 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
鳳去臺空江自流

 

 

3. 평가

1) 허균(許筠)성수시화(惺叟詩話)13에서 이 작품이 꾸미지 않았는데 성률이 절로 맑아 읊조리노라면 신일(神逸)함을 느낄 수 있다라고 함.

2) 남용익(南龍翼)壺谷詩話에서 ‘7언절구의 걸작으론 정지상의 송인(送人)을 들었고, 5언율시로는 이 작품을 들음[五言律則牧隱, 昨過永明寺; 七言絕則鄭知常, 雨歇長堤草色多, 已有定論].’이라 함.

3) 중국 사신들도 이 시를 보고 감탄했으며 한 사신이 이 시를 보고서 문에는 아직도 고려의 시가 걸려 있으니, 당시에 이미 중국의 문자를 이해했다.[門端尙懸高麗詩, 當時已解中華字者]’라고 평가하기도 함.

4) 그 중국 사신은 부벽루의 경치는 중국 소주나 항주와 나란하며, 중국의 것들은 화려하지만 인공적인데 반해 부벽루는 맑은 강물과 절벽, , 봉우리가 모두 자연에서 나온 것이라 더 낫다고 함.

 

 

 

서경(西京)과 관련 있는 한시들

 

 

1. 신광수(申光洙)관서악부(關西樂府)

朝天舊事石應知 하늘을 조회하던 옛 일 바위는 응당 알겠지.
故國滄桑物不移 옛 나라는 상전벽해했지만 물건은 바뀌질 않아
城下滿江明月夜 성 아래 물 가득한 대동강 달 밝은 밤에
豈無麟馬往來時 어찌 기린말 가서 오지 않는가?

 

1) 평양감사로 가는 채재공을 위해 제작한 작품.

2) 이 작품은 관서악부65번째 것으로, 이색(李穡)부벽루(浮碧樓)를 바탕에 깔고 지은 것임.

3) 상전벽해를 겪어 고구려 수도 평양의 옛 모습은 전혀 남은 것이 없지만, 조천석이 있어 옛날의 영화를 기억할 수 있다고 함.

4) 3연과 4연엔 이렇게 달 밝은 밤이 신선이 되어 간 동명왕이 혹 오지 않을까 상상해 본 것임. 이색의 정감에 자신을 포개어 넣음.

 

 

2. 이달(李達)채련곡차대동루선운(採蓮曲次大同樓船韻)

蓮葉參差蓮子多 연잎 들쭉날쭉하고 연밥이 많아
蓮花相間女郞歌 연꽃의 서로 사이에서 낭자 노래 부르네.
歸時相約橫塘口 돌아가던 때에 서로 황당의 입구에서 만나자 약속했으니,
辛苦移舟逆上波 힘들게 배를 저어 물길을 거슬러 가네.

 

1) 부벽루에선 이색(李穡)부벽루(浮碧樓)시보단 정지상(鄭知常)송인(送人)이 더 애송되었고 이 시를 차운한 시들도 많이 나옴.

2) 불우한 환경에서 제작된 것이지만, 풍류남아로서의 낭만적 필치가 잘 드러남.

3) 청창연담(晴窓軟談)에선 이달(李達)고경명(高敬命)최경창(崔慶昌)이 부벽루에 올라 정지상의 시에 차운하는 시재를 겨룰 때 지었고 가장 낫다는 평가가 실려 있음.

4) 정지상(鄭知常)의 이별 노래를 사랑의 노래로 지어 화답했고 흥청망청한 대동강의 뱃놀이로 사대부와 기생들의 흥을 돋움.

 

 

3. 백광홍(白光弘)의 우리말 노래 관서별곡(關西別曲)

 

감송정(感松亭) 돌아들어 대동강 바라보니

십리에 뻗은 물빛과 만 겹 안개 속의 버들이 상하에 어리었다.

봄바람이 헌사하여 화선(畵船)을 비껴 보니

녹의홍상(綠衣紅裳) 비껴 앉아 섬섬옥수(纖纖玉手)로 거문고를 뜯으며

호치단순(晧齒丹脣)으로 채련곡을 부르니

태을진인(太乙眞人)이 연엽주(蓮葉舟) 타고 옥하수(玉河水)로 내리는 듯

설마라 나랏일에 소홀할 수 없다 한들 풍경에 어이하리

연광정 돌아들어 부벽루에 올라가니

능라도 방초와 금수산 연하는 봄빛을 자랑한다.

 

1) 대동강의 화창한 날씨와 그곳에서 봄빛과 고움을 다투는 기생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태을이라는 신선이 연잎으로 만든 배를 타고 은하수로 내려오는 듯함.

2) 국사가 급하다 해도 이런 날은 잠시 머물며 봄빛을 보지 않을 수 없기에 백광홍은 연광정(練光亭)과 부벽루(浮碧樓)에 올라 이 노래를 지은 것임.

 

 

 

 

인용

목차

한시사 / 略史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