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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열하일기의 길을 가다(2003년 봄) - 여성들이여, 제기를 차라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열하일기의 길을 가다(2003년 봄) - 여성들이여, 제기를 차라

건방진방랑자 2021. 7. 1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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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여, 제기를 차라

 

 

베이징에서 합류하기로 한 후발대 중 세 명이 낙오했다. 사스 때문이란다. 뭔 사스? , 그러고보니 우리는 그동안 사스를 잊고 있었다! 요동벌판을 가로질러 오는 동안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기 때문이다. 황사의 괴력에다, 고속도로 위의 질주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뺨치는 수준이었다. 추월 과속은 기본이고, 중앙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현란한 액션에는 그저 아연할 따름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원시적 공포에 시달리는 동안, 도시에선 사스가 한층 기세를 떨치고 있었던가보다. 폭우로 범람한 강을 건널 때, 누군가 연암에게 물었다. 소경이 애꾸말을 타고 밤중에 깊은 물가에 섰는 것이야말로 위태로움[盲人騎瞎馬, 夜半臨深池]의 최고가 아니겠느냐고, 연암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소경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조금도 위험함을 모르지만,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이 공포에 떨 뿐이라고, ‘이목(耳目)의 누()’! 정작 베이징보다 서울에서 더욱 공포가 증폭된 것도 이런 격인 셈인가. 아무튼 사선(사스의 선)’을 뚫고 입성한 두 명은 의기양양해서, “이제 우리를 책임져!” 한다. 그러면 우리 선발대는 눈을 내리깔고 말한다. “니들이 황사의 참맛을 아냐?”

 

힘겹게 도착한 만큼 우리는 베이징 거리를 유쾌하게 싸돌아다녔다. 틈틈이 제기차기로 팀웍을 다지며, 웬 제기? 연구실이 발견한운동 가운데 하나다. 우연히 시작했다가, 한의학적으로 수승화강(水升火降)하는 효과가 있다는 을 들은 다음부턴 무시로 제기를 차댔다. , 근데 이게 웬일인가? 베이징에선 곳곳에서 제기를 차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주로 아줌마들이! 테크닉도 장난이 아니다. 양발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한마디로 소림제기수준이다. “인해전술이 아니라 다이다이로 붙어도 지겠는걸요?” 일행들은 중국 아줌마들한테 떨고 있었다.

 

연암은 한족 여인네들이 전족 때문에 뒤뚱거리며 땅을 디디고 가는 꼴에 못내 안타까워했다. 전족이란 발을 작게 보이려고 어릴 때부터 꽁꽁 싸매는 여성억압의 대표적 습속이다. 만주족들은 수없이 법으로 금지했건만, 한족들이 오히려 완강하게 고수했다고 한다. 종족적 정체성의 표지를 여성의 신체에 새겨넣었던 것. 전족에서 제기를 차는 발로! 이 하나만으로도 문명사적 변환을 읽어낼 수 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여성들은 정말 운동을 하지 않는다. 헬스나 에어로빅처럼 몸매가꾸기에만 주력할 뿐, 일상에 뿌리내린 운동에는 거의 무관심한 형편이다. 전족이 말해주듯, 권력은 언제나 신체를 통해 표현된다. 따라서 자기의 신체를 능동적으로 조절하고 변이하는 능력, 이것이 없이 여성해방은 불가능하다. 제도나 법은 부수적인 방편일 뿐, 감기의 변종에 불과한 사스에 놀라 위생당국의 명령에 낮은 포복으로 설설 기는 광경을 보라, 몸으로부터의 소외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기도 어려울터, ‘사스소동은 임상의학이 신체를 훈육하는 억압적 기제임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거꾸로 말하면, 몸에 대한 자율권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권력으로부터 탈주하는 길이라는 뜻도 된다.

 

여성들이여, 성과 권력의 배치를 바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국가와 병원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몸을 조절하고 관리하라. 등산을 하든 요가를 하든, 혹은 제기를 차든. 바로 그 순간, ‘자유의 새로운 공간이 펼쳐질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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