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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올선생 중용강의, 15장 - 1. 황제내경의 성립시기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15장 - 1. 황제내경의 성립시기

건방진방랑자 2021. 9. 1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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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황제내경의 성립시기

 

 

동양의 의서(醫書)에는 대표적인 것이 상한론(傷寒論)이란 것이 있고 황제내경(皇帝內經)이란 것이 있습니다. 둘 다 한나라 때 성립한 것으로 보는데 상한론(傷寒論)에는 앞에 유명한 서문이 있지요. 그걸 보면 상한론(傷寒論)의 성립시대를 추정할 수 있는데 동한말(東漢末)정도로, AD 200년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내경의 의미

 

황제내경(皇帝內經)이라는 것은 황제가 지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라는 것을 내과적인 것으로 보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보면 외경(外經)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때의 내경이란 것은 내과. 외과의 의 의미가 아니고 아주 은밀하게 전수한 중요한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영어로 하면 내경(內經)에소테릭(esoteric, 비밀의)’하다는 의미이고 외경은 엑소테릭(exoteric, 대중용의)’하다는 것이 됩니다. 실제 내경(內經)이라는 것은 소문(素問)하고 영추(靈樞)두 텍스트가 있는데, 이 두 가지가 다 문제가 많은 텍스트입니다. 다 황제가 지었다면 그 제작 연대가 삼황오제(三皇五帝)시대로 올라가겠지만 엉뚱하게도 황제에 대한 신화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전국말(戰國末)에서부터 한초(漢初)에 아주 성행하거든요.

 

 

 

 

 

후래거상(後來居上)

 

고힐강(顧頡剛)이 쓴 고사변(古史辨)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20세기 초기 중국에는 중국문명을 비판하는 의고풍(疑古風)’이 있었다고 하죠. 옛날 것을 철저하게 회의하는 것입니다. 사실 근세에 들어와서 1910년도에 중국지식인들을 가장 흥분시켰던 신청년(新靑年)이라는 유명한 잡지가 있었습니다. 그때 중국은 의고풍(擬古風)’ 바람이 몰아쳤다고 할 수 있는데, 중국문명을 비판해 들어가는 데 상당히 중요한 사상풍(思想風)이었습니다. 거기 리더격인 사람 중 한 사람이 고힐강이고 거기 가담한 사람들 중에는 호적(胡適전목(錢穆) 등 유명한 이가 많아요. 근세 중국의 대가들은 다 고사변(古史辨)같은 의고풍 운동 속에서 큰 사람들입니다. 고힐강은 아주 젊은 20대 후반의 학자였는데도 불구하고 노학자들을 치고 들어가 물리친, 대단한 사람이죠. 그가 얘기한 말 중에 장작을 쌓을 때에는 항상 새로 뒤에 오는 놈들일수록 위에 올라간다[後來居上]’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건 상당히 정확한 지적이죠. 신화를 만들 때는 뒤에 만들어진 놈이 위에 올라간다는 얘기입니다. 먼저 요순을 만들었다가, 그 다음에 신화를 만들 때는 연도가 요순보다 더 올라가고, 또 그 다음은 더 높일 것이고, 이런 식으로 뒤에 만든 놈일수록 더 높이 올라간다는 말이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도(河圖낙서(洛書복희(伏羲신농(神農) 등만 나오면 아주 옛날에 만들어진 것인 줄로 착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윤내현이란 사람은 하바드에서 나랑 같이 스페셜 스튜던트로 공부를 했는데, 윤교수처럼 지금 사계에 권위 있는 학자들의 시각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대에 있어서는 시대적으로 위에 올라가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놈이 오히려 뒤에 만들어진 놈이란 말은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황제내경(皇帝內經)은 한대에 성립했다

 

이렇게 보면 황제내경(皇帝內經)이란 가장 오래된 것이니까 가장 뒤늦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나라 환단고기(桓檀古記)같은 것도 다 구한말에 만들어진 거예요. 고조선은 엄존하는 것이고, 우리가 고조선의 존재를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후대에서 만들어진 신화의 형태로써 고문명을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의서(醫書) 중 가장 오래된 황제내경(皇帝內經)이란 책은 한 대(漢代)에 성립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황제라는 말이 붙은 것을 봐도 고대로 올라갈 수가 없지요.

 

그런데 이제마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정확하게 말하고 있어요. “황제내경(皇帝內經)이란 책은 황당무계해서 아무 쓸모없는 책이다. 역사적인 근거를 발견할 수 없다너와 나의 한의학(서울: 통나무, 1993) pp.102-142 상한론(傷寒論)의 문헌비평에 관한 내용이 있다라고 이제마는 정확하게 갈파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한 걸 보면 이제마가 아주 대단한 사람이란 말이야! 보는 관점이 아주 정확합니다.

 

지금 내 감기 얘기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황제내경(皇帝內經)이라는 책은 어떠한 프로토타입(Prototype, 원형)이 한초(漢初)에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영추(靈樞)라는 텍스트는 나중에 송나라 때 고려에서 진상했다고 하거든요. 영추(靈樞)라는 책도 없었는데 송나라 때 고려에서 진상이 되어서 알았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나중에 한국에서 간 판본이란 이야기죠. 이러한 영추(靈樞)도 내용상으로 보면 고경(古經)의 잔재는 물론 갖고 있어요. 그렇지만 여러 가지 사항을 볼 때 소문(素問)·영추(靈樞)가 다 장시간에 걸쳐서 위조된 문헌들입니다. 하루아침에 성립된 게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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