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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중용강의, 13장 - 1. 도는 가까이 있다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13장 - 1. 도는 가까이 있다

건방진방랑자 2021. 9. 1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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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도는 가까이 있다

 

 

子曰: “道不遠人. 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
공자가 말하기를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도()를 행할 때는 그것이 멀리 있는 것처럼 한다. 그렇게 해가지고는 도()를 실천할 수 없다.
 
道者, 率性而已. 固衆人之所能知能行者也, 故常不遠於人.
()라는 것은 본성을 따를 뿐이다. 진실로 여러 사람이 알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若爲道者, 厭其卑近以爲不足爲, 而反務爲高遠難行之事, 則非所以爲道矣.
그런데 만약 도를 행하는 사람이 비근함을 싫어하여 행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도리어 고원하여 행하기 어려운 일에 힘쓴다면 도를 행할 수가 없다.

 

()’을 보통 타동사로 멀리하다로 하는데, 여기에서는 자동사적인 용법으로 멀리 있다로 해석합니다.

 

인지위도원인(人之爲道遠人)’사람이 도()를 실천함에 있어서 사람으로부터 멀리 있게시리 한다. , 자꾸만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요원한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죠.

 

학문을 하든, 무엇을 하든 도()의 현실은 불원(不遠)이나, 위도(爲道), 유독 사람이 도()를 행할 때 그것이 멀리 있는 것처럼 한다는 지적이죠. ‘도불원인(道不遠人)’의 도()는 현실적인 도(), ‘인지위도이원인(人之爲道而遠人)’의 도()는 인간이 생각하는 도()입니다. ‘불가이위도(不可以爲道)’

 

주자 주에 도자솔성이의(道者率性而己)’, 또 중용(中庸) 1장에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를 보면 도()라는 것은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이죠? 그러니까 ()’, 본성이라는 것은 나에게 내재하는 겁니다. ‘()라고 하는 것은 본성을 따르는 것이고, 뭇 사람이 다 가지고 있고, 원래 있는 것, 능히 알 수 있고, 능히 행할 수 있는 것이다[道者率性而己 固衆人之所能知能行者也].’라고 주자(1130-1200)가 이야기를 했지만, 왕양명(1472-1528)양지양능설(良知良能說)’에서 그 사상이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만약 도()를 행하는 자가 가까이 있고() 일상적인 것()을 싫어하여 이는 족히 할 것이 못 된다 하고[若爲道者厭其卑近 以爲不足爲]’

그리고 높고 멀고 행하기 어려운 일만 일삼는다면 도()를 행하는 까닭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而反務爲高遠行之事 則非所以爲道矣].’

 

첫 시간에 중용(中庸)을 한 마디로 한다면 뭐라고 했죠? ‘똥을 잘 싸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그렇게 비근(卑近)한 게 도()가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할 겁니다. 그게 도()를 먼 곳에서 찾는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오류죠. 헤겔은 인류역사란 절대정신을 구현한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했는데, 하지만 김용옥의 중용(中庸)의 역사관으로 말하면, 첫 시간에 말한 대로 인류의 역사는 영원히 똥을 잘 싸는데 달려 있다 이 말입니다. 중용론(中庸論)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지만, 그 사상을 꿰뚫을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중용론(中庸論)이야말로 인류역사를 지배할 가장 위대한 사상이고, 근세 계몽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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