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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올선생 중용강의, 16장 - 1. 정약용과 주희의 귀신론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16장 - 1. 정약용과 주희의 귀신론

건방진방랑자 2021. 9. 1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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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정약용과 주희의 귀신론

 

 

합리적으로 해석한 귀신

 

중요한 것은 16입니다. 오늘은 이것 하나만 끝내면 될 것 같은데, 16장이 유명한 장이예요. 정약용 선생이 정조(正祖)에게 진강(進講)을 했는데, 임금에게 중용(中庸)을 강의한 강의록이 중용강의(中庸講義)라고 해서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그 양반은 자꾸 이 귀신을 초월적인 어떤 상제(上帝)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중용(中庸)에서의 귀신이라는 의미는 그런 게 아니예요.

 

주자 주를 보면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귀신이라는 것은 천지의 공용이고 조화의 흔적이다[程子曰: “鬼神, 天地之功用, 而造化之迹也.”]”라고 말한 것이 있지요. 그러니까 귀신이라는 것은 이미 정명도 시대에만 해도 천지라는 코스몰로지의 프레임 웤(frame work)’ 속에서 굉장히 합리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태도가 있는 겁니다. ‘귀신은 천지의 공능(funtion)이다, 지의 기능적인 측면이다라는 말은 이미 천지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귀신을 해석해 들어가는 거지요.

 

그러니까 장자(장횡거)왈 귀신이라는 건 이기지양능(二氣之良能)이라했지요. 여기서 이기(二氣)라는 건 음양입니다. 귀신을 음양론으로 해석해 들어갈 땐 귀신의 인격적 존재성이 희박해지고 천지론에 의한 법칙적 기능으로 되버리겠지요. 그래서 이기지양능(二氣之良能)’이라 한 것에 대해 주자가 말하기를, “(), 나는 그것을 따른다. 이기(二氣)를 가지고써 말하면 귀()자는 음지령(陰之靈)’으로 음()에 속하고, ()이란 건 양지령(陽之靈)’이라 했다. 이것을 다시 한 기()로 합쳐서 말하면 지()하여 신()하는 것이 신()이고 반()하여 귀()하는 것이 귀()이니 기실은 일물(一物)일 뿐이다. 위덕(爲德)이라 한 것은 성정공효(性情功效)를 말한 것과 같다[愚謂以二氣言, 則鬼者陰之靈也, 神者陽之靈也. 以一氣言, 則至而伸者爲神, 反而歸者爲鬼, 其實一物而已. 爲德, 猶言性情功效.]”고 했습니다.

 

이러한 주자의 이야기를 잘 보세요. 천지는 명백한 하나의 세계관을 나타낸다고 했었죠? 그 세계관에서 천()은 양()이고 지()는 음()입니다. ()라는 것은 정조로 말한다면 조()한 것이고 하늘이 정()한 것입니다. 하늘이 미()한 것이라면 땅은 현()한 것이고, 하늘이 무형적인 것이라면 땅은 유형적인 것으로 명백하게 나뉘는 것이죠. 천지론에서 신()이라는 것은 신()이라고 펀(Pun, 언어유희)을 썼는데, 이것은 양()이 펼쳐나가는 기운[天氣]이고, 또한 귀()는 돌아올 귀()자라고 썼는데, 이건 음()이 수렴하고 돌아가는 기운지기(地氣)입니다.

 

 

= =

 

 

이러면 귀신이라는 것은 음양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하등의 신비로울 것이 없어요. 주자의 귀신론은 초자연적 실체(super natural entity)의 문제도 천지론 속에 흡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송명유학의 합리론이고 신유학(neoconfuciasm)의 합리론적 구조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16장을 전체적으로 쭈욱 읽어보면,

 

 

子曰: “鬼神之爲德, 其盛矣乎!” 視之而弗見, 聽之而弗聞, 體物而不可遺. 使天下之人齊明盛服, 以承祭祀. 洋洋乎! 如在其上, 如在其左右. 詩曰: “神之格思, 不可度思, 矧可射思!” 夫微之顯, 誠之不可揜如此夫!”

 

 

이렇게 전체적으로 보면, ‘以承祭祀 洋洋乎如在其上 如在其左右 詩曰 神之格思 不可度思()’온다, 이른다라는 말로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격이나 마찬가지등등 느낌이 어때요? 주자가 말하는 것처럼 그다지 천지론적 음양적 공능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지요? 본래 중용(中庸)에 나타나 있는 귀신의 느낌은 귀신이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박한 생각들인데, 주자가 천지론적 구조에 의해 해석한 귀신은 서양에서 말하는 이신론(理神論, deism)적 구조와 흡사합니다. 이것이 근세 유학의 법칙적인 세계이죠. 귀신은 천지의 공능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죽음과 귀신

 

하늘과 땅의 묘합이 인()이라고 하면, ((()이라는 구조 속에서 인() 자체가 신()과 귀()로 구성된 것입니다. 주자의 귀신론(鬼神論) 구조는 혼백론(魂魄論)과 같은 거예요. ()과 같은 것이 혼()이고 귀()에 해당되는 것이 백()이죠. 사람은 귀와 신, 혼과 백이 합쳐져 있을 때 사람이고, 죽으면 이것이 분리되어 혼()은 다시 펼쳐져 날라가서[] ()이 되고, ()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서[] ()가 된다는 겁니다. 천신(天神지귀(地鬼)입니다. 주자는 혼백론에 의해서 귀신론을 해석한 거예요. 주자는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귀신을 천지의 기능으로 볼 때는, 사람이 죽고 나면 사람의 귀신은 결국 천지의 기능으로 다시 환원된다. 만약 그렇지 않고 불교 등에서 말하는 것처럼 독립된 귀신으로서의 존재성을 갖는다면, 이 대기는 혼백들의 교통지옥에 빠질 것이다. 수없는 사람들이 죽었으니까 그들이 다 그대로 있다면, 대기에도 교통순경이 있어서 혼백들이 다니는 것을 교통정리도 해야 하고 상당히 복잡할 것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의 귀신장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와요. 주자가 말하는 귀신이라는 것은, ()는 땅으로 들어가고, 우리 몸의 귀()라는 것은 형체적인 측면을 말하니까, 해부학적으로 보는 시체들이 모두 귀(), 즉 백()일 것입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혼()이 뜨는 것입니다. ‘() 나간다는 것 알아요? 분명히 있다고 합니다.

 

사람 죽을 때 보면 죽기 얼마 전에 지붕에서 불덩어리가 휙 나간다고 하거든요. 밤에 떠서 가는 것을 본다고 하는데, 그것이 나가고 나서 얼마 안 되니까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혼불이라는 것이 있어요. 옛날 사람들은 봤다고 합니다. 나는 못 봤지만. 지금 이런 게 다 없어진 것은 전기문화가 들어오고 나서입니다. 도깨비나 혼불 같은 것들이 다 없어졌어요.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마을에서 아이들이 밥 먹고 나와서 동네에 앉아 있으면 도깨비불이 산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을 함께 봤어요. 동네 솥뚜껑을 집어가기도 하는 도깨비라는 것이 있었는데, 에디슨 형님 때문에 완전히 멸망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혼백이라는 구조를 주자는 이신론(理神論, deism)적으로 합리적으로 해석한 거죠. ()과 백(), ()과 귀()는 결국은 다시 천()이 되고 지()가 되어 흩어지는 것입니다.

 

 

 

유교와 불교의 혼에 대한 생각

 

불교의 윤회설이란 것은 쉽게 이야기하면 혼()의 영속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혼이라는 것은 몇 억겁년이든 영원히 간다는 것이죠. 그럼 그 혼이 어디로 가는가? 잠시 백()을 빌렸다가() 다시 백()에서 나오는 것(죽음)이예요. ()을 빌리고 있는 동안이 인생이고, 죽으면 혼()은 해방되어 다시 윤회의 억겁을 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윤회설은 혼불멸설(魂不滅說)입니다.

 

그런데 동양의 천지론에서는 혼불멸설을 인정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혼백은 천지 그 자체의 공효(功效)들이기 때문에 결국은 하늘님, 하늘의 기()로 환원되는 것이거든요. 다시 재조합될 때는 김용옥이가 통째로 환생은 안 되고, 천지론으로 말하면 억만분의 일의 기()라도 들어오긴 하지만, 그것은 천지의 기()로서 들어오는 것이지 김용옥이란 존재성의 기()로 다시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동양의 천지론은 인간의 존재성이 완전히 흩어졌다가 다시 탄생될 때 천지의 기()로 조합되지만, 인간의 존재성이 그대로 재생되는 경우는 없지요.

 

그런데 불교는 혼의 영속성을 인정하므로 혼이 통째로 되돌아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달라이 라마가 딱 죽는 시간에 태어난 아이들 중에서 하나를 후계자로 뽑는데, 이게 뭐냐면 혼이 그대로 다른 백()에 간다는 생각이거든요. 우리나라 옛날이야기 중에, 혼불이 나와서 막 가니까 사람이 막 따라가 보면 어느 집에 쑥 들어가는데, 혼불이 나온 집의 할머니는 그날 돌아가시고 그 혼불이 들어간 집에서 아기가 태어났다고 하는 말들이 있지요. 이런 것들은 다 불교적 세계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불교와 유교가 이렇게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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