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활발발한 기상의 왕건
凡帝王文章, 必有大異於人. 宋太祖「詠日」詩ㆍ明太祖「詠雪」詩, 其弘量大度, 皆有不可以言語形容者.
按『輿地勝覽』, 載高麗太祖嘗巡到鏡城龍城川, 有詩一絕曰: ‘龍城秋日晚, 古戍寒烟生. 萬里無金革, 胡兒賀太平.’ 意格豪雄, 音律和暢. 其一統三韓之氣像, 於此可見.
해석
일반적으로 임금의 문장은 반드시 크게 남보다 다름이 있다.
송태조 조광윤(趙匡胤)의 「영일(詠日)」시와 명태조 주원장의 「영설(詠雪)」이란 시는
其弘量大度, 皆有不可以言語形容者.
너른 헤아림과 크나큰 헤아림이 모두 언어로써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按『輿地勝覽』, 載高麗太祖嘗巡到鏡城龍城川,
『여지승람(輿地勝覽)』을 살펴보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일찍이 순수(巡狩)하며 경성 용성천에 이르렀을 적에
有詩一絕曰: ‘龍城秋日晚, 古戍寒烟生. 萬里無金革, 胡兒賀太平.’
지은 시 절구가 실려 있으니 다음과 같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50권 경성도호부(鏡城都護府) 산천(山川) 용성천(龍城川) 조에 실려 있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최자(崔滋)의 시화 『보한집(補間集)』에서 재인용하였다. 『보한집』 원문은 다음과 같다. “황조(皇祖)께서 수의(衣)를 입고서 북방 변새를 순수할 때 다음 시를 지으셨다. (중략) 그 담박하고 예스러워 흔적이 없기가 최 아무개의 시와 똑같다. 저최 아무개의 시는 고금을 감탄했기에 정감이 풍부하고, 이 시는 한가로이 변새를 읊었기에 풍력이 웅장하다[皇祖以繡衣巡北塞曰, ‘龍城秋日淡, 古戍白烟橫. 萬里無金革, 胡兒賀大平.’ 其淡古無痕迹, 與崔詩同, 彼崔詩感歎今昔, 故情思多, 此詩閑昑邊塞, 故風力壯]." 『보한집』에서는 황조(皇祖)가 용성에 가서 시를 지었다고 했다. 『여지승람』과 『소화시평』 등에서 그 황조를 고려 태조로 보았으나 그것은 오독으로 사실은 최자의 작고한 할아버지이다. 따라서 이 시의 작자는 고려 태조가 아니다. 김유(金楺)는 『검재집(儉齋集)』 「무기쇄록(戊己瑣錄)」에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 작자를 오인하였음을 『보한집』을 근거로 밝혀냈다. 또 경성이 예종 때 윤관이 개척하기 전에는 여진 땅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애초부터 태조가 갈 수 없음을 지적했다. 성호(星湖) 이익(李瀷) 역시 『성호사설(星湖僿說)』 시문문(詩文門) 여조시(麗朝詩) 조에서 비슷한 견해를 제시했다.】.
龍城秋日晚 古戍寒烟生 | 용성의 늦가을 옛 수자리에 추운 이내 일어나지만 |
萬里無金革 胡兒賀太平 | 만리에 병기와 갑옷 없어져 오랑캐조차도 태평성대를 축하하네. |
意格豪雄, 音律和暢.
의취와 격조가 호쾌하고 웅장하며 음률이 들어맞고 밝다.
其一統三韓之氣像, 於此可見.
후삼국[三韓]을 통일한 기상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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