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승려 시인
麗朝詩僧, 多矣. 宏演, 號竹磵, 「題墨龍卷」詩云: ‘閶闔迢迢白氣通, 滿綃雲起黑潭風. 夜來仙杖無尋處, 應向人間作歲豊.’
天因「冷泉亭」詩云: ‘鑿破雲根構小亭, 蒼崖一線灑泠泠. 何人解到淸凉界, 坐遣人間熱惱惺.’
圓鑑「雨中睡起」詩云: ‘禪房闃寂似無僧, 雨浥低簷薛荔層. 午睡驚來日已夕, 山童吹火上龕燈.’
懶翁「警世」詩云: ‘終朝役役走紅塵, 頭白焉知老此身. 名利禍門爲猛火, 古今燒殺幾千人.’
我朝能詩者甚稀, 惟參寥爲最, 「贈成川倅」詩云: ‘水雲蹤跡已多年, 針芥相投喜有緣. 盡日客軒春寂寞, 落花如雪雨餘天.’
休靜, 號淸虛堂, 「賞秋」詩云: ‘遠近秋色一樣奇, 閑行長嘯夕陽時. 滿山紅綠皆精彩, 流水啼禽亦說詩.’
太能「呈西山大師」詩云: ‘蘧廬天地假形來, 慙愧多生托累胎. 玉塵一聲開活眼, 夜霄風冷古靈臺.’
守初「睡起」詩云: ‘日斜簷影落溪濱, 簾捲微風自掃塵. 窓外落花人寂寂, 夢回林鳥一聲春.’
諸詩情境俱妙, 各臻閑趣, 所謂浮屠多技者, 不其信乎!
해석
麗朝詩僧, 多矣. 宏演, 號竹磵, 「題墨龍卷」詩云: ‘閶闔迢迢白氣通, 滿綃雲起黑潭風. 夜來仙杖無尋處, 應向人間作歲豊.’
고려의 시를 쓰는 스님이 많다. 굉연(宏演)은 호가 죽간(竹磵)인데 「제묵룡권(題墨龍卷)」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閶闔迢迢白氣通 | 대궐문엔 아스라이 흰 기운이 통하고 |
滿綃雲起黑潭風 | 비단에 가득히 구름 일어나 검은 연못에 바람부네. |
夜來仙杖無尋處 | 밤에 신선의 지팡이 찾을 곳 없었는데【후한(後漢)의 비장방(費長房)이 선인(仙人) 호공(壺公)에게 도를 배운 뒤에 대나무 지팡이를 타고 멀리 떨어져 있는 집까지 순식간에 날아갔는데, 호공이 지시한 대로 그 지팡이를 언덕에 던졌더니 푸른 용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神仙傳』 「壺公」 또 선가(仙家)에는 철석(鐵石)을 변화시켜 황금으로 만든다는 ‘점철성금(點鐵成金)’의 이야기가 전한다.】 |
應向人間作歲豊 | 응당 인간을 향해 풍년을 지었네. |
天因「冷泉亭」詩云: ‘鑿破雲根構小亭, 蒼崖一線灑泠泠. 何人解到淸凉界, 坐遣人間熱惱惺.’
천인(天因)의 「냉천정(冷泉亭)」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鑿破雲根構小亭 | 바위 뿌리[雲根]을 뚫어 부셔서 작은 정자 얽으니 |
蒼崖一線灑泠泠 | 푸른 벼랑 한 줄이 물 뿌려진 듯 차디 차네. |
何人解到淸凉界 | 어떤 사람이 청량한 세계에 이르러 |
坐遣人間熱惱惺 | 앉아서 인간에게 뜨거운 번뇌를 깨닫게할 줄 알려나? |
圓鑑「雨中睡起」詩云: ‘禪房闃寂似無僧, 雨浥低簷薛荔層. 午睡驚來日已夕, 山童吹火上龕燈.’
원감(圓鑑)의 「우중수기(雨中睡起)」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禪房閴寂似無僧 | 선방은 고요하고 적막해 스님 없는 듯 |
雨浥低簷薜荔層 | 비가 처마 밑 층계 덩굴을 적셨네. |
午睡驚來日已夕 | 오후에 자다가 일어나니 해는 이미 저물어 |
山童吹火上龕燈 | 산 아이가 불을 때면서 감등(龕燈)을 올리네. |
懶翁「警世」詩云: ‘終朝役役走紅塵, 頭白焉知老此身. 名利禍門爲猛火, 古今燒殺幾千人.’
나옹(懶翁)의 「경세(警世)」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終朝役役走紅塵 | 아침 내내 수고롭게도 세상살이에 애쓰다 |
頭白焉知老此身 | 머리가 희어졌으니 어찌 이 몸 늙었다는 걸 알리오? |
名利禍門爲猛火 | 명예와 이익은 재앙의 문이라서 맹렬한 불꽃이 되어 |
古今燒殺幾千人 | 예나 지금이나 몇 천 명을 태워 죽였던가? |
我朝能詩者甚稀, 惟參寥爲最, 「贈成川倅」詩云: ‘水雲蹤跡已多年, 針芥相投喜有緣. 盡日客軒春寂寞, 落花如雪雨餘天.’
우리 조선엔 시를 잘 지은 스님이 매우 드문데 오직 참료(參寥) 스님이 최고이니, 「증성천졸(贈成川倅)」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水雲蹤跡已多年 | 물과 구름 같은 종적 이미 여러 해인데 |
針芥相投喜有緣 | 의기투합하듯【침개(針芥): 자석(磁石)이 쇠붙이를 끌어당기고 호박(琥珀)이 겨자를 수습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의기투합하는 것을 말한다.】 서로 던지니 인연 있음이 기쁘네. |
盡日客軒春寂寞 | 진종일 나그네의 집은 봄으로 적막하지만 |
落花如雪雨餘天 | 낙화는 눈 같아 비 갠 하늘에 있으리. |
休靜, 號淸虛堂, 「賞秋」詩云: ‘遠近秋色一樣奇, 閑行長嘯夕陽時. 滿山紅綠皆精彩, 流水啼禽亦說詩.’
휴정(休靜)의 호는 청허당(淸虛堂)인데, 「상추(賞秋)」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遠近秋色一樣奇 | 멀고 가까운 가을빛이 한 모양으로 기이해 |
閑行長嘯夕陽時 | 석양의 때에 한가롭게 길게 휘파람 불며 가네. |
滿山紅綠皆精彩 | 산 가득 붉고 푸름이 모두 정채로우니 |
流水啼禽亦說詩 | 흐르는 물이나 우는 새는 또한 시를 말하는 듯하여라. |
太能「呈西山大師」詩云: ‘蘧廬天地假形來, 慙愧多生托累胎. 玉塵一聲開活眼, 夜霄風冷古靈臺.’
태능(太能)의 「정서산대사(呈西山大師)」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蘧廬天地假形來 | 천지를 여관으로 형체 빌려 왔지만 |
慙愧多生托累胎 | 많이 태어나 여러 아이를 의탁한 것이 부끄럽네. |
玉塵一聲開活眼 | 옥 불자의 한 소리에 사리에 밝은 눈[活眼]을 뜨니 |
夜霄風冷古靈臺 | 밤에 바람에 오랜 영대를 시원하게 하네. |
守初「睡起」詩云: ‘日斜簷影落溪濱, 簾捲微風自掃塵. 窓外落花人寂寂, 夢回林鳥一聲春.’
수초(守初)의 「수기(睡起)」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日斜簷影落溪濱 | 해가 처마 그림자에 비껴 시냇가에 떨어지고 |
簾捲微風自掃塵 | 주렴이 미풍에 걷혀 스스로 먼지 쓸어가네. |
窓外落花人寂寂 | 창 밖엔 낙화지고 사람은 쓸쓸하니 |
夢回林鳥一聲春 | 꿈이 깨니 숲 새엔 한 소리의 봄이 있네. |
諸詩情境俱妙, 各臻閑趣, 所謂浮屠多技者, 不其信乎!
모든 시의 정경이 다 오묘해 각각 한가로운 정취로 나아갔으니 소위 ‘스님은 재주가 많은 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랴.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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