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사상인의 성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1. 기본적인 기능들
사상기운(四象氣運)
사상의학의 가장 기본적인 책은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가 쓴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이라는 책이다. 하지만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면서 바로 『동의수세보원』의 내용을 설명하면 대부분은 상당히 어려워한다. 일단 용어가 문제다.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이라는 용어부터가 그렇다. 동무 시절에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람에게는 태소음양(太少陰陽)이라는 말은 낯선 용어가 아니었다. 들으면서 무언가 감이 잡히는 말에 속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음양이라는 표현을 익숙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제일 좋기로는 독자 여러분들의 음양에 대한 이해를 그 당시 지식인들의 일반 수준까지 끌어올려 놓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필자의 능력 밖이니 기대하지 말기 바란다. 또 사상체질을 이해하는 방법이 굳이 그 방법밖에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도 『동의수세보원』의 용어들을 사용하지만, 그 외에도 요즘 사람들이 익숙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용어를 최대한 사용하고 있다. 당시의 용어와 요즘 용어를 적절히 배치해서 같이 쓰면 뭐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이라는 용어부터 시작해보자. 현대적인 용어로 다시 설명을 하겠지만, 그래도 사상체질에 대한 책을 읽었다면 어디 가서 음이 어떻고 양이 어떻고 이야기를 좀 할 수 있어야 멋있어 보일 것 같다. 그리 어렵지 않은 수준까지만 음양이라는 용어를 써서 설명하도록 하자.
음양을 나타내는 것을 효(爻)라고 한다. 보통 음효(陰爻)는 ‘⚋’로 양효(陽爻)는 ‘⚊’로 표시한다. 그 효가 세 개 모이면 괘(卦)라고 해서 『주역』을 공부하는 기본이 된다. 예를 들어 양효만 세 개가 모이면 건(乾, ☰)이라 해서 하늘을 뜻하고, 음효만 세 개가 모이면 곤(坤, ☷)이라고 해서 땅을 뜻한다. 사상이란 효가 두 개만 모인 것이다. 음양에서는 분화되었지만, 괘처럼 확실히 어느 하나의 성질로 고정되지 않은 상(象)인 것이다. 효가 둘이면 각각이 음, 양이 될 수 있으니 모두 네 가지 경우가 나온다. 그래서 사상(四象)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안에도 음, 밖에도 음이면 태음(⚏), 안에도 양, 밖에도 양이면 태양(⚌)이 된다. 안팎이 서로 다른 경우는 밖을 기준으로 이름을 붙인다. 즉 안은 음인데 밖이 양이면 소양(⚎), 안은 양인데 밖이 음이면 소음(⚍)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사상은 세상을 보는 시각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사상의 의미 역시 그 틀로써 관찰하고자 하는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나 자세한 설명은 건너뛰기로 하자. 사상체질을 아는 데 있어서 필요한 만큼만 이해하면 되니까. 여기서는 사상이라는 틀을 사람의 마음을 보는 용도로 사용할 때, 각각의 음, 양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만 설명하도록 하자.
안에 있는 ‘음/양’은 ‘구체적인 것/추상적인 것’에 대한 구분으로 보면 될 것이다. 이것을 동양학에서는 ‘기(氣)/리(理)’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 퇴계와 율곡의 사상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니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니 할 때 쓰는 그 이기(理氣)이다. 리(理)는 이치, 원리라는 기는 구체화되고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기(氣)라는 말을 들으면 기공이니 기치료니 무협지에 나오는 장풍이니 뭐 이런 것이 생각나서 형체가 없는 무엇이라는 느낌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물체와 비교한 생각이다. 이게 리와 짝이 되어서 말할 때는 오히려 구체화되는 것에 가깝다.
이치가 구체적인 상황에 맞닥뜨려 처음 드러날 때, 눈 밝은 사람은 드러나는 걸 알지만 눈이 어두운 사람은 모른다【그런 걸 ‘기미(幾微)를 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직 잘 안 드러난 순간을 잡아서 “저게 기야”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잘 모르고 못 느끼니까 “아, 기란 무형의 것이로구나”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기는 ‘유형이다/무형이다’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드러난다’에 초점이 있다. 이것이 물체와 대비될 때는 첫 단계라는 측면에서 아직 충분히 형상화되지 않은 속성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기와 리에 대한 설명을 더 자세히 하면 어려워지니까, 이 정도로 하자. ‘기(氣)’ ‘리(理)’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그냥 실질적인 쪽에 관심이 더 많으면 음(陰), 이론적인 것에 더 관심이 많으면 양(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깥쪽의 ‘음/양’은 쉽다. 우리가 흔히 느끼는 음양의 개념이다. 모든 것이 바깥이 더 쉽게 관찰되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들은 대부분 바깥에 초점을 맞춘 것이 많다. 우리가 잘 아는 음양이 뭐냐고? 흩어지고, 퍼지고, 올라가고 하는 것이 양(陽)이고, 모이고, 내려가고, 다지고 하는 것이 음(陰)이다. 그럼 정리해보자.
태양(太陽)은 이치를 알리고 퍼뜨리고 하는 것에 관심이 가는 기운이다.
소양(少揚)은 구체적인 일을 알리고 퍼뜨리고 하는 것에 관심이 가는 기운이다.
태음(太陰)은 구체적인 일을 다지고 완성시키는 일에 관심이 가는 기운이다.
소음(少陰)은 이치를 다지고 완성시키는 일에 관심이 가는 기운이다.
그리고 이 네 가지의 기운이 각각 태양인, 소양인, 태음인, 소음인이 마음을 쓰는 가장 기본적인 기운인 것이다.
융 심리학에서 제시하는 인간의 기본 기능
느낌이 좀 오는지? 뭐 이렇게 간략히 설명은 했지만, 이런 설명으로 태소음양(太少陰陽)을 다 이해하기는 좀 부족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머니’라든지 ‘자유’라든지 이런 단어들을 들으면 사전에 정의되어 있는 단어의 뜻 이상으로 우리 마음에 뭔가 와 닿는 게 있다. 그런 식으로 ‘태양’ ‘소음’ 이런 단어에서 느낌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으면 그런 단어만으로 설명을 해도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사람은 음양을 기준으로 하는 사고를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그런 수준의 느낌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러니 위의 설명은 일단 맛보기라고 생각하고, 요즘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다른 용어를 찾아보기로 하자. 칼 융이라는 서양 심리학자가 사용한 용어 중에 사상체질에 따른 기본을 설명하기에 아주 적합해 보이는 용어가 있다【경희대 한방정신과에서 사상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찾아낸 것이다】.
융은 사람의 기본 기능을 네 가지로 구분한다. 직관(直觀), 감성(感性), 감각(感覺), 사고(思考), 이렇게 넷을 제시하는데, 이게 사상체질에서 기본 기능으로 삼는 부분들과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이 네 단어를 사상인의 기본 성정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 용어로 자주 사용할 예정이다.
먼저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네 가지 기능을 설명해보자.
직관과 감각은 수용 기능이라고 한다. 직관은 일이 돌아가는 이치, 원리를 수용하는 것이고, 감각은 벌어진 현상을 수용하는 것이다.
감성과 사고는 판단 기능으로 분류한다. 감성은 나에게 ‘좋은가/나쁜가’를 판단하는 것이고, 사고는 ‘옳은가/그른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뒤에 다시 나오겠지만, 간략한 설명만을 기본으로 한번 짝을 맺어보자,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직관, 감성, 감각, 사고의 네 가지 기능과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의 네 가지를 각각 짝을 맺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 절로 넘어가 답을 보기 전에 한번 독자들 스스로 해보기를 권유하고 싶다. 이런 걸 맺어보는 연습을 자꾸 해보는 것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융 | 이제마 | 내용 |
직관 | 일이 돌아가는 이치, 원리를 수용하는 것 | |
감성 | 벌어진 현상을 수용하는 것 | |
감각 | ‘좋은가/나쁜가’를 판단하는 것 | |
사고 | ‘옳은가/그른가’를 판단하는 것 |
융 심리학으로 본 사상기운
답은 직관-태양, 사고-소음, 감성-소양, 감각-태음이다. 많은 독자가 맞추었기를 기대한다.
융 | 이제마 | 내용 |
직관 | 태양 | 일이 돌아가는 이치, 원리를 수용하는 것 |
감성 | 소양 | 벌어진 현상을 수용하는 것 |
감각 | 태음 | ‘좋은가/나쁜가’를 판단하는 것 |
사고 | 소음 | ‘옳은가/그른가’를 판단하는 것 |
사실 답이라고 하기는 좀 애매하다. 태소음양(太少陰陽)의 기운을 그 네 가지 기능으로 설명하는 것이 옳은 방법인지가 확실한 것도 아니니, 그냥 융 심리학과 사상의학을 연관해서 설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견해라고 해두자. 뭐, 잘 맞으면 되는 거니까, 이런 배당이 잘 맞는지 한번 검토해보자.
직관이라고 하면 우리는 ‘천재의 영감(靈感)’ 같은 걸 떠올리는데, 정확하게 직관이라는 것은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핵심을 잡아내는 것을 보통 직관이라고 말한다. 각각의 가지를 다 검토하는 과정을 건너뛰어서 바로 핵심으로 가는 능력이다. 이는 필요 없는 부분이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과감하게 잘라내는 기능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여러 가지 정보들이 서로 연관된 ‘관계’를 파악하면 부분에 치우치지 않고 핵심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관계’의 파악, 그것이 직관의 핵심이다.
태양의 기운은 바깥쪽이 양이니까 퍼져나가는 기운이 있어서 주변과의 관계로 관심이 간다. 무엇의 영향으로 발생한 일이고, 무엇에 영향을 주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안쪽도 양이라서 구체적인 사실 하나를 중심으로 차분히 한 가닥, 한 가닥 따지고 풀어나가는 방식은 아니다. 중요한 기본 원리 중심으로 가볍게 짚어나가는 것이다. 이 정도면 ‘안팎이 다 양으로 이루어진 태양인’이라든가, ‘이치를 양(陽)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능한 태양인’이라는 어려운 표현 대신에 ‘직관이 강한 태양인’이라는 쉬운 표현을 써도 될 듯하다.
소음도 안에 깔려 있는 것은 같은 양이니까, 역시 이치에 관심을 둔다. 그러나 함부로 넓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확실하게 따지고 굳혀나가는 방식이다. 겉에 드러난 것이 음이니까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를 태양인의 ‘관계의 파악’과 비교하자면 ‘구조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관계’와 ‘구조’라는 짝을, ‘관계의 음적인 표현이 구조’ ‘구조의 양적인 표현이 관계’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음적, 양적이라는 표현이 익숙하지 않으면, ‘관계는 구조를 동적, 시간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구조는 관계를 정적, 공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라고 생각해도 된다.
사고라는 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기능이라고 했다. 소음 기운은 일종의 자동 판단 기계를 형성하는 기능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무언가가 입력되면 자동적으로 ‘옳다/그르다’가 판단되어 나오는 판단 기계를 구축하는” 기능이 소음의 기운이라는 것이다. 태양의 직관과 다른 것은 근본적으로 구조화시키는 작업이고 고정시키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서, 외부의 요인들이 작용할 때마다 수시로 바뀌게 된다.
‘직관/사고’ ‘관계/구조’라는 말로 써놓으니까 좀 어려워지는 감이 있다. 나중에 사례들이 나오게 되면 훨씬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니, 여기서는 그냥 가볍게 읽어 나가도 된다. 여기에 학술적인 용어들로 써놓은 부분이 굳이 멋있어 보이면, 끝까지 다 읽고 나서 이 부분을 다시 읽으면 된다. 그때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될 것이다.
태음인의 감각은 글자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밝다, 어둡다. 뜨겁다. 차다 등등으로 느끼는 감각은 그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다. 그런 감각들이 무수히 모여서 비로소 어떤 정보가 된다. 소음인의 사고와 비교하면 자료를 하나하나 판단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료를 적절한 양이 될 때까지 확보하는 기능이 감각이다.
실제로 관찰을 해봐도 태음인은 확실히 선(先) 접수, 후(後) 판단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앞에서 ‘알았어’라는 말을 사람마다 다르게 쓴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알았어’라는 말을 ‘네가 말하는 게 뭔지 접수했어. 그러니 내가 천천히 생각해볼게’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 태음인이다. 판단의 근거가 충분히 모일 때까지 판단을 미루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다 설명을 하자면, ‘알았어’를 ‘당신의 주장에 동의한다’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소음인이고, ‘알았어’를 ‘당신 기분을 파악했다’라는 뜻으로 쓰는 사람은 소양인이다. 태양인은 ‘알았어’를 ‘네 의도를 알았다’는 뜻으로 가장 자주 쓴다고 한다.
“알았다”고 말을 하는 네 가지 경우 | |
태음인 | 소음인 |
당신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생각해보겠다고 하는 경우 | 동의할 경우에만 알았어라고 하는 경우 |
태양인 | 소양인 |
네 기분은 알았으니 그만 하자고 하는 경우 | 의도 파악이 완료되었다고 선언하는 경우 |
그렇다면 태음인은 근본적으로 판단력이 약한 사람일까? 아니 그렇지는 않다. 벌써 잊었는가? 사상심학이 운명론적 유형학이 아니라고 굉장히 강조를 했는데, 태음인 중에도 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 속도로 빨리 결정하고 서두르는 사람이 있다. 또, 그런 빠른 판단들이 기가 막히게 맞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런 행동 중에서도 ‘아, 저 사람이 선 접수, 후 판단의 순서를 밟고 있구나’하는 것을 읽어낼 수 있다. 그 정도 되면 성정을 기준으로 사람의 체질 판별이 가능해지는데, 나중에 다 나올 이야기니까 너무 서두르지 말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감성이다. 감성 역시 구체적인 사실에서 비롯된다. 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감성은 고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타인 또는 외부 환경과의 접촉에서 생겨난다. 즉 바깥이 양일 때 나타나는 기능이라는 것이다. 상황에 부딪혔을 때, 안쪽으로 이치를 파고들면 사고의 기능이 작동한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다. 바깥으로 관계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면 감성의 기능이 작동한다. ‘좋고 싫음’에 대한 판단이다.
사고는 구체적 상황에서 한 발 떨어져야 제대로 이뤄진다. 즉 기(氣)에 매이지 않고 리(理)를 찾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소음인은 깊게 생각할 일이 있으면 자기 방에 틀어박힌다. 그래야 사고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 그러나 감성은 구체적 사실에서 멀어지면 그냥 사그라진다. 그 부분이 사고와 감성이라는 두 판단 기능 사이의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다.
딱딱한 이야기만 이어지면 재미없으니까, 삶의 지혜를 하나 말하고 가자. 소양인이 화가 났을 때, 이를 그냥 퍼부어대면 상대가 마음을 다친다. 그렇다고 참으면 본인이 마음을 다친다. 특히 부모와 아이가 같은 소양인일 경우 어느 한쪽은 화병이 걸리는 경향이 높다. 이를 어떻게 해결하면 될까? 위에 대답이 있다. “감성은 구체적 사실에서 멀어지면 그냥 사그라진다”가 답이다. 잠깐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요령이다. 조금 가라앉은 다음에 다시 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네 가지 기능을 다 말했으니, 감성 기능을 다른 기능들과 비교하며 각각의 기능들에 대한 이해를 높여보자.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것은 흔히 겉에 보이는 음, 양이다. 따라서 안이 양이고 겉이 음인 소음인의 사고 기능에서는 겉의 음이 더 눈에 잘 띄게 마련이다. 그래서 사고의 기능에서는 침착하고, 꼼꼼하고, 폭을 좁히는 모습을 중시한다. 그러나 소음인의 사고의 근본은 안에 깔린 양에서 나오기 때문에, 원리를 찾고, 리(理)를 찾는 작업이다. 겉보기에는 구체적이고 작은 일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개별적 상황의 해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짜 관심은 이치를 따지고 원칙을 세우는 쪽에 있다. 반대로 겉이 양인 소양인의 감성은 빠르고 변화무쌍한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 깔린 음에 따라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늘 구체적 상황이나 사실과 관련된다. 기분파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태양과 비교해보자. 직관은 사실의 규명에 초점이 있다. 감성은 상황의 해결에 초점이 있다. 구체적으로 상황이 바뀌어야 감성이 바뀐다. 직관은 양을 바탕으로 하고, 감성은 음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 구체성의 중시 여부에서 차이가 난다. 마지막으로 태음과 비교해보자. 태음은 일단 접수해두고 판단을 미룬다. 판단이 끝나지 않았기에 자신을 표현하지 않고 기다린다. 감성은 접수와 판단이 동시에 이뤄지는 기능이다. 따라서 접수한 즉시 자신의 표현이 뒤따른다.
자, 이제 ‘직관이 강한 태양인’ ‘감성이 풍부한 소양인’ ‘감각이 섬세한 태음인’ ‘사고가 치밀한 소음인’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 듯하다. 그런 표현을 접할 때마다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의 괘의 모양을 같이 생각하며 읽으면 더 이해가 빨라질 것이다. 여기까지 이론적인 내용을 따라 오느라고 머리가 좀 지끈거리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 정도에서 직관, 감성, 감각, 사고의 기능들을 좀더 구체적인 상황을 놓고 비교해보도록 하자. 아무래도 구체적인 예가 있어야 쉽게 이해가 되는 법이니까.
2. 직관, 감성, 감각, 사고 기능이 나타나는 구체적인 사례
‘좋다/싫다’와 ‘옳다/그르다’
서로 비교한다고 해도, 뭐 리그전 시합 붙이는 것이 아니니까, 그냥 생각나는 순서대로 적어보자. 우선 소양인의 감성이 호오(好惡)를 기준으로 하는 판단과 소음인의 사고가 정오(正誤)를 기준으로 하는 판단부터 비교해보자.
‘좋다/싫다’를 기준으로 판단할 경우에 빠지기 쉬운 함정이 ‘그르다’를 ‘나쁘다’로 해석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양인은 자신의 오류를 지적당하면 화를 내는 경우가 다른 체질보다 좀 자주 있다. 그냥 ‘논리적으로 안 맞는다’라든지, ‘당신이 실수한 것 같다’라는 말들에 대해서 자신이 비난이라도 받은 듯이 화를 내는 것이다. 반면 소음인은 ‘나쁘다’라는 말을 듣고 ‘그게 왜 그르지?’라며 혼자 고민하는 경우가 있다. ‘좋다/싫다’를 기준으로 하는 말을 ‘옳다/그르다’의 기준으로 해석하니 헷갈리는 것이다. ‘좋다/싫다’는 뚜렷한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음인은 ‘싫다’에 대해서도 “왜 싫은데?”를 묻는다. 단순한 감정 표현을 논리로 이해하려 드니까 어려워진다.
그런 차이가 보편성을 중시하느냐, 객관성을 중시하느냐로 갈라지기도 한다. 보편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 투표 다시 해서 결과가 바뀌면 바뀌는 것이 보편이다. 반면 객관은 쉽게 잘 안 바뀐다. 소양인의 그런 보편 중시는 잘 되면 대중과 같이 호흡하는 강한 현장성으로 나타난다. 반면 잘못되면 함부로 사람들을 선동할 수도 있고, 힘이나 세에 의존하는 버릇을 낳기도 한다.
소음인의 객관 중시는 혼란한 시기에 중심을 지키는 노릇을 하기도 하지만, 때론 대중과 호흡이 어긋나는 결과를 빚기도 한다. 특히 정치인이나 조직의 리더가 설득하려는 태도를 지나치게 고집하면 대중으로부터 배척받게 되는 결과를 빚기도 한다. 국민들, 또는 조직원들이 스스로 느끼게 유도하는 기술이 부족한 것이다.
(사실 여기서 소양인에게 사용한 ‘보편’이라는 용어는 정확한 것이 아니다. 흔히 쓰는 방식대로 ‘다수의 지지를 받는 것이 보편이다’라는 식으로 사용한 것인데, 보편의 정확한 의미는 이와는 좀 다르다. 보편/특수, 주관/객관이라는 용어 짝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자세히 나올 것이다.)
그럼 소양인과 소음인이 논쟁을 벌이면 어떻게 될까? 논쟁 자체가 잘 안 된다. 소양인은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 음이라서 구체적인 사실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소음인은 원리나 구조 쪽에 관심이 간다. 결국 서로 핀트가 잘 안 맞아서 논쟁이 치열해지기가 쉽지 않다. 적당한 선에서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야’라며 끝내는 경우가 더 많다.
미래 예측 태도
소양인이 태음인과 논쟁이 붙으면 의외로 치열해진다. 둘 다 구체적인 사실에 관심이 있으니까, 포인트가 명확하다. 또 이론적인 것은 서로 긴가민가 하는 점이 있지만, 사실에 대한 것은 서로 자기 주장에 대한 확신을 잘 안 꺾기 때문이다. 특히 미래에 대한 예측 문제에서 부딪히면 꼭 문제가 된다. 태음인이 소양인을 주로 비난하는 점은 시각이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영어로 말하자면 ‘I wish…’와 ‘It will…’을 구분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바라는 쪽의 가능성은 과대평가하고, 자기가 바라지 않는 쪽의 가능성은 지나치게 낮게 평가해서 엉뚱한 결론을 낸다는 건데, 어떨까? 감성에 치우치는 소양인의 판단이 태음인의 판단보다 부정확할 확률이 클까?
물론 소양인은 자기가 싫어하는 쪽의 결과가 나오는 것을 예측하는 것 자체도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서, 종종 태음인에 비해 비합리적인 예측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는 서로 기준이 달라서 싸우게 된다. 태음인은 가만히 놓아두었을 경우의 확률을 계산하는데, 소양인은 가만히 놓아두는 경우가 없으니 기준이 같을 수가 없다. 소양인은 자기가 좋아하는 쪽에 적극 개입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자기가 적극 개입했을 경우의 확률을 계산하는 것이다. 그러니 소양인의 계산에서는 당연히 좋은 쪽 확률이 올라간다. 좋을수록 더 열심히 개입하게 되니까, 확률이 더 올라가는 것이다.
이건 자신이 개입 안 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그걸 좋아할까, 아닐까’에 대한 감각이 태음인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감각이 없는 태음인은, 아무래도 자기 예측이 훨씬 합리적인데 왜 엉뚱해 보이는 소양인의 예측이 맞는 경우가 제법 되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한다. 그런 경우 태음인은 ‘이상하게 일시적으로 바람을 타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나 감성 기능이 발달된 사람에게는 바람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변수인 것이다.
미래 예측 태도를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 감각 기능을 중시한다는 것은 ‘경험론자’의 경향을 띤다는 것이다. 태음인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경험론자에게 있어 경험이 없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가지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결국 일을 시작할 때는 새로운 상황이 최악인 경우를 따져보고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최악의 경우에도 내가 버틸 수 있는지를 먼저 계산해보는 것이다. 소양인은 그런 경우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쁘기 때문에 그걸 미리 상상해볼 이유가 없다고 느낀다. 시작해보고 상황이 아니다 싶으면 그때 얼른 발 빠르게 대처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 되었을 경우의 최선의 이익이 얼마나 큰가가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뭐 그렇다고 소양인이 함부로 도박에 미친다든가, 로또에 목을 매달지는 않는다. 좀 전에도 말했듯이 감성의 기능이 발달되면 보편에 눈이 떠지게 된다. 그래서 소양인은 사회 통념상 ‘나쁘다’라고 하는 일에는 손을 잘 안 대려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태음인은 신중하기는 하지만,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해봐야 알지’라면서 사회 통념에 곧잘 도전한다. 다만 그 경우의 행보는 매우 조심스럽지만.
호감 중시/정보 중시
사례를 조금 들어보자. YS의 인사(人事) 스타일을 보면, 그 사람의 과거를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다른 사람하고 일했을 때의 결과들이고, 나와 하면 달라질 수 있다’라는 식의 독선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대중적 지명도나 호감도를 중시하는 경향이 더 큰 이유이다. 즉 그 사람이 호감을 주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중시하는 것이다. 종종 포퓰리스트(Populist) 경향이 있어서,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정치인을 중용하는 경우가 생긴다.
지금은 인기도 있고, 지명도도 있지만 과거 행적을 놓고 객관적으로 따지면 곤란한 사람이 등용될 경우, 보안은 더 철저해진다. 언론이 물고 늘어지면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거 자료를 놓고 객관적으로 따지는 건 귀찮은 일이니까 피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일단 임명이 되면 그걸 되돌리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언론도 적당히 떠들다가 말게 된다. YS가 필요 이상으로 인사 문제를 보안에 붙이는 경향이 나타났던 것은 이런 이유이다.
반면 DJ의 인사는 은근히 말을 띄우고 반응을 보는 경향이 있었다. 대놓고 공론에 붙이는 것도 아니고, 은근히 말을 흘린다. 자료를 충분히 수집하고도, 말을 대중에게 흘려서 혹시 숨겨졌던 다른 내용이 밝혀지는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대중의 반응 자체도 판단 자료로 넣는다. 가능한 한 마지막까지 판단을 늦추는 특성이 보였다. 나중에 레임덕이 심해지면서는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인사 폭을 좁히는 경향이 두드러졌지만.
물론 위의 두 가지 다 전형적인 소양인, 태음인의 사례는 아니다. YS의 사례는 소양인이 태음 기운에 대한 이해가 없이 어설프게 태음을 흉내 내어, 그냥 소양인 원래 스타일로 밀고나간 것보다도 나쁜 경우를 낳는 사례이다. DJ의 사례는 너무 음(陰) 쪽으로만 치우친 방법이어서 결국은 모든 일을 본인이 일일이 간섭하고 챙기게 만드는 원인이 된 경우다. 뒤에서 체질에 따른 약점이 어떻게 극복이 되는지가 이야기되고 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어쨌든, 소양인이다, 태음인이다 해도 구체적인 방법은 수도 없이 많고, 다 제각각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그러나 그 속에 공통점, 경향성이 있어서 체질에 따른 성격의 연구가 재미있는 것이다.
태양인의 직관에 관하여
태양인 이야기도 좀 해보자. 융 심리학에서 직관, 감각, 감성, 사고에 대해 말하는 것을 처음 읽었을 때, ‘감각은 인지 기능이 맞지만, 직관은 판단 기능이 아닐까?’라는 느낌에 좀 의아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나중에 사상(四象)을 공부하면서 괘상을 보고, 태양인(⚌)을 관찰하면서 그 의문이 풀렸다.
근본적으로 판단은 인지와 행동을 이어주는 고리다. 그런데 이 연결이 자연스러우려면 음과 양을 다 갖추어야 한다. 어느 쪽이 안이 되고, 밖이 되건 괘 안에 음양을 다 갖추어야 완성된 구조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음으로만, 또는 양으로만 이루어진 패는 완성구조가 안 된다. 소음, 소양인은 부딪히는 일을 하나하나 해결해나간다. 그래서 언뜻 보면 스케일이 작아 보인다. 태양, 태음인은 자체 완성구조가 없어서 그런 식으로 일을 못한다. 적절한 계기가 될 때까지 인지만 하고 놓아둔다. 대범해 보이고 스케일이 커 보이기 쉽다. 그래서 한쪽은 태(太)이고 한쪽은 소(少)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다.
태음인이 감각을 모아두는 것은 인지만 하고 판단은 미루는 것이라고 쉽게 느낌이 올 것이다. 반면 태양인의 직관은 그 순간 판단이 다 서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판단이 너무 작다는 것이다. 양은 갈라지고 퍼지는 힘이라고 했다. 태양인의 직관은 너무 갈라져 있어서 오히려 판단 기능이 아니라 인지 기능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판단으로 작용하려면, 즉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려면 행동 가능한 규모의 판단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태양인의 직관은 그 시간 그 공간에 한정된 판단이다. 즉 시간, 공간이 조금만 달라지면 달라진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는 판단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원리만을 판단할 뿐이지 구체적 사실의 판단이 될 수 없으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판단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감각이 많이 모여야 비로소 정보가 될 수 있듯이, 직관이 주욱 한 바퀴를 돌면서 다 한 번씩은 짚어주어야 비로소 판단의 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부분이 감성이나 사고가 바로바로 판단의 기능으로 작용하는 것과 차이가 난다.
말이 너무 추상적이라서 어려운 사람은 다음의 예를 들어보면 쉬울 것이다【사상인의 교육에 관한 글에서 읽은 내용인데, 어디서 읽었는지는 기억이 확실치 않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환경 문제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조용히 듣고 있던 태양인이 불쑥 이렇게 말하더란다. “그러니까 산소호흡을 하는 종속영양생물에게 유리한 것이 뭐냐는 것이지?”라고, 듣던 사람들은 한 마디로 멍해지고 말았다는 이야기인데, 환경운동 자체도 너무 인간 중심적이지 않느냐, 또는 폭을 좀 넓힌다고 해도 우리가 정서적으로 공감이 되는 생물 쪽에 치우쳐 있지 않느냐는 반문인 셈이다. 사람, 동물, 식물,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니까 식물 정도 가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무기호흡을 하는 미생물의 관점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느낌이 오는가? ‘그러니 환경운동을 어떻게 하자’로 이어지는 판단이 아니라, 환경운동이 생명의 공생을 말하지만, 역시 인간이라는 종에 치우쳤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 그런 게 태양인의 직관이다. 태양인은 보편적 상식이라는 것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진보 성향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게시판을 중심으로 ‘보편적 시민상식이란 존재하는가’라는 주제로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태양인이나 태양의 기운이 강한 사람들은 모든 상식은 당파적, 계급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관찰된다. 그 주장이 맞느냐 틀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당파적, 계급적인 측면에 당연히 눈이 먼저 뜨이고, 보편적 상식이라는 틀에 갇힌 사람들이 못 보는 부분을 직관으로 인지한다는 말이다.
결국 태양인의 직관이란 늘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늘 바뀌고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 잘 모르는 사람은 변덕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코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다. 상황이 계속 바뀌니 직관의 결과도 계속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는 것이다.
소음인의 사고 특성
소음인의 사고는 집중한 일에 대한 판단이 설 때까지, 행동의 근거를 세울 때까지는 사고의 범주를 고립시킨다. 쉬운 표현으로 ‘사고의 범위를 좁힌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굳이 ‘범주를 고립시킨다’는 표현을 쓴 것은 사고 대상에 포함되는 것과 포함되지 않는 것을 좀더 엄격히 가른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태양인의 직관이 관계를 중시하는 것과 확실히 구분이 된다. 태양인의 직관은 넓고 엷게 퍼져 있다.
소음인의 사고는 좁고 깊다. 소음인은 사고 대상에서 빼기로 한 것은 과감히 자른다. 관계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좀 쉽게 말하자면 자신이 관련 안 되는 것, 관심 없는 것은 아예 모르고 깜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교육의 정도, 나이, 직업 등에 따라 다 다르게 나타난다. 즉 소음인이 관심 영역이 좁다는 것은 같은 교육 정도, 나이, 성별, 직업, 사회적 위치인 사람과 비교할 때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소음인 중에도 칼럼니스트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상당히 박학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남들이 조금씩은 하는 것, 예를 들자면 당구라든지 고스톱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주변의 친구들이 다해도 소음인은 꿋꿋하게 안 하고 버티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띈다. 그런 부분에서 소음인의 냄새가 난다.
소양인도 그런 경우가 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하더라도 그 부분을 천박하다거나 나쁜 일이라고 보는 경우에는 안 한다. 즉 그 집단의 보편과 더 큰 집단의 보편이 부딪힐 때 그런 경우가 생긴다. 그런데 소양인은 그런 경우 ‘난 그거 싫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소음인은 ‘그런 걸 왜 하냐?’라고 하는 차이가 있다.
실험과 관찰
현대 과학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할 때, 변수를 단순화시키고 외부의 영향을 차단하는 방식이 바로 소음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실험은 소음인도 중시하지만 태양인이 더 즐기는 것 같다. 소음인은 아무래도 행동에 옮기는 것이 치밀하고 늦는데, 태양인은 “긴가민가 하면 실험해봐”라며 쉽게 실행에 옮기는 차이인 듯하다. ‘사고 실험’이라고 실험적 방법을 머리 속에서 논리로 쫓아가는 방식이 있다. 현대 이론 물리학자들이 종종 사용하는 방법으로, 아인슈타인이 좋아했던 방법이다. 이런 것이 전형적으로 소음적인 방법이다.
반면 태음인은 관찰을 한다. 직접 나서서 조작하는 것을 별로 안 내켜 한다. 조작된 결과보다 자연스러운 결과들을 관찰하는 쪽이 원리를 찾아내는 데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다량의 데이터를 쌓아두는 것이 익숙하니까 가능한 태도이기도 하다. “책을 묶은 끈이 헤어져 다시 매는 일을 백 번 하도록 책을 읽으면 뜻은 자연히 드러난다[讀書百遍意自見].” 이것이 태음적인 접근이다. 새로운 일에 끼어들 때는 한 발씩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언제라도 발을 뺄 준비를 하면서. 어느 정도 경험해보고 나서야 조금씩 더 깊게 참여하게 된다. 그래서 막상 본격적으로 일에 착수할 때는 이미 그 일에 대해서 상당한 폭을 확보하고 있다.
학문하는 사람들이 연구한 결과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보면 태음인의 폭과 소음인의 깊이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태음인의 논문은 자상하다는 느낌이 들고, 소음인의 논문은 간결하다는 느낌이 있다. 체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논문만 읽고도 저자가 태음 기운이 강한 사람인지, 소음 기운이 강한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나중에는 시, 소설 등도 저자의 기운이 어느 쪽이 강한지 느낌이 오게 될 것이다.
학문뿐만이 아니다. 바둑의 기풍 같은 데서도 폭과 깊이의 차이가 있다. 바둑 두는 독자들은 임해봉(林海峰, 1942~)의 기보와 조치훈(趙治勳, 1956~)의 기보를 대비해놓고 보면 태음 기운과 소음 기운의 차이를 느끼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그 기운에 대한 느낌이 실제 체질과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체질은 선천적인 것이고, 느껴지는 기운에서는 후천적인 부분이 포함되니까. 하지만 이 책을 열심히 읽고 나면 그것이 선천적인 영역에서 나오는 기운인지 후천적인 것인지까지 분석이 가능해질 것이다.
자, 그럼 태양인의 직관, 태음인의 감각, 소양인의 감정, 소음인의 사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테스트를 한번 해보자. 요즘은 흔히 정보 홍수의 시대라고 한다. 요즘같이 쏟아지는 정보량이 많아지면 어느 체질에 가장 유리하고, 어느 체질에 가장 불리할까? 다음 내용을 보기 전에 한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융 | 이제마 | 내용 |
직관 | 태양 | 일이 돌아가는 이치, 원리를 수용하는 것 |
감성 | 소양 | 벌어진 현상을 수용하는 것 |
감각 | 태음 | ‘좋은가/나쁜가’를 판단하는 것 |
사고 | 소음 | ‘옳은가/그른가’를 판단하는 것 |
3. 정보 처리의 문제
문제의 답은 잘 나왔는가? 정답은 ‘문제가 잘못되었다’이다. 어느 체질에 유리하고 불리하다는 답을 고른 독자가 많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 정보 상호간의 관계를 잘 파악하고, 상황에 따라 적용할 것과 적용하지 말 것을 고르는 태양인의 직관 능력이 쓸모가 많아진다. 반면 정보의 교류에서 어려움을 받는다.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 받는 쪽에서도 각각의 정보를 깊고 신중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생겨난다. 이 경우 직관에 치우친 태양인이 말하는 정보는 아무래도 무시당하기가 쉽다. 태양인의 말은 사람들이 흔히 놓치거나 낯선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태양인의 주장은 신중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오해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이유들이 태양인이 말하는 정보가 무시당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소양인은 정보를 쉽게 취득할 수 있다는 것이 도움이 된다. 급한 성격 때문에 정보를 취득하는 데 시간이 걸리면 충분한 정보의 수집 없이 서둘러 판단하는 악습이 있는 소양인이 제법 된다. 쉽고 빠르게 정보를 취득할 수 있으면 아무래도 그런 악습이 좀 줄어든다. 또 부족한 정보로 인한 빈 곳을 기존의 고정관념으로 함부로 메우는 경향도 줄일 수 있다. 반면 접하는 정보의 양만이 아니라 범위도 같이 확대된다는 점이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충분히 알 때까지 판단을 미루는 음인(陰人)들과 비교할 때, 섣불리 알고 떠드는 단점이 부각될 가능성도 같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태음인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뛰어나니까 다른 체질의 사람들이 소화해내지 못할 정도의 정보량도 별 무리 없이 소화해낸다. 섣불리 판단하려 하지 않고 일단 쌓아두니까 받아들이는 부담이 적은 것이다. 따라서 정보의 홍수 상황에 가장 적응이 쉽다. 그러나 알아볼 것을 다 알아보고 판단하는 버릇이 태음인치고도 강한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아무리 알아봐도 끝도 없이 새로운 정보가 나오게 되니까 판단을 마냥
미루는 악습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소음인은 쓸데없는 정보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관련된 정보에만 집중하는 능력이 뛰어나므로, 정보의 홍수라 해도 판단에 장애를 받거나 헷갈리는 일이 가장 적다. 오히려 필요한 부분에 충분한 정보가 있다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자신의 사고의 가장 기초가 되고 있는 내용을 부인하는 정보 역시 자주 접하게 되므로 불안정한 마음이 생겨나기가 쉽다.
즉 주어진 어떤 상황이 좋으냐 나쁘냐는 식의 판단은 의미가 없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어떤 환경이 유리하다는 것도 의미가 없다. 모든 상황은 모든 사람에게 유리한 면과 불리한 면이 있다. 그 유리한 면을 잘 살리고 불리한 면을 잘 피하는 사람은 성공하는 것이고, 아니면 실패하는 것이다. 또 어떤 상황이니 어느 사람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도 절대적이지 않다.
앞에서 한 번 언급한 바 있듯이, ‘이건 남자가 할 일이다, 저건 여자가 할 일이다’라는 분류에서 차별이 발생한다. 다만 ‘이 일을 남자가 할 때는 이런 방식이, 여자가 할 때는 이런 방식이 각각 더 적합하다’는 이해는 꼭 필요하다. 이전까지 남자가 주로 해오던 일을 여자에게 문호를 개방하려면 여자에게 어울리는 방식을 개발할 필요가 있고, 여자가 주로 하던 일에 남자가 도전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체질의 문제도 이와 똑같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체질별로 각각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를 따져야지, 어느 체질에 ‘유리하다, 불리하다’라던가, 정보를 많이 접하는 자리에는 어느 체질이 상대적으로 더 적합하다는 식의 판단은 차별의 원인이 된다.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을 그런 식으로 판단하면 결과는 둘 중에 하나가 된다. 상사의 체질과 비슷한 부하를 선호하거나, 상사의 약점을 메워줄 수 있는 부하를 선호하는 둘 중의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그러나 상사는 그런 선호를 차별이라고 못 느끼고 ‘능력에 따른 정당한 대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정보의 처리와 체질의 문제는 중요하다. 사람들 사이에서, 말한 사람은 ‘거짓말한 적이 없다’라고 주장하는데 들은 사람은 ‘거짓말을 했다’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 독자들도 살면서 이런 일들 한두 번 겪어보았을 것이다. 또 인터넷의 토론방을 자주 들어가보면 이런 일이 여러 토론 게시판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알 수 있다. 물론 의도적으로 사기를 친 경우도 종종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체질에 따른 정보의 처리 방식 차이에서 생겨난 오해인 것이다.
정보의 취득, 분류, 건달, 교류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오류의 방식들도 체질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은 오류라고 못 느끼는 것을 상대는 오류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게 참 재미있는 주제인데, 아직은 다루기가 좀 이르다. 사상인의 체질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깊어진 뒤에 다루도록 하자.
태양인 | 정보가 많아질수록 수용에선 태양인의 직관 능력이 쓸모가 있지만 교류에선 직관에 치우친 태양인의 정보는 사람들이 흔히 놓치거나 낯선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이해하기가 어려움. |
소양인 | 쉽고 빠르게 정보를 취득할 수 있으면 서둘러 판단하는 악습이 좀 줄어들지만 정보의 범위까지 확대되면 섣불리 알고 떠드는 단점이 부각됨. |
태음인 |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뛰어나기에 엄청난 정보양도 무리 없이 소화해내지만 끝도 없이 새로운 정보가 나오니 판단을 마냥 미루는 악습이 심해짐. |
소음인 |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관련된 정보에만 집중하는 능력이 뛰어나기에 정보의 홍수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자기 사고의 기초가 되는 내용을 부인하는 정보를 자주 접하게 되기에 불안정한 마음이 생겨남.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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