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어”라고 말하는 네 가지 방식
사람들이 논쟁을 벌이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도저히 논점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한 사람은 “저게 어떻게 파란색이냐? 빨간색이지”라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은 “저게 어떻게 레몬 맛이냐? 포도 맛이지”라고 주장하면서 싸우는 격이다. 겉보기에는 공통된 단어를 기준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 단어를 속으로 이해하는 것이 서로 다른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알았어”라는 말을 어떤 경우에 쓸까? 어떤 사람은 “네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는 생각해보겠다”라는 뜻으로 쓴다. 즉, “일단 당신 주장을 접수는 해두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상대의 주장에 동의할 경우에만 “알았어”라는 표현을 쓰지 동의하지 않는 한 절대 “알았어”라고 하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은 상대의 주장이 아니라 상대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이해했다는 뜻으로 쓴다. 즉, “네 기분 어떤지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하자”라는 말막음용으로 “알았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네가 말하는 의도가 파악되었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눈치 챘다”라는 뜻으로 “알았어”라고 하는 경우다.
“알았다”고 말을 하는 네 가지 경우 | |
당신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생각해보겠다고 하는 경우 | 동의할 경우에만 알았어라고 하는 경우 |
네 기분은 알았으니 그만 하자고 하는 경우 | 의도 파악이 완료되었다고 선언하는 경우 |
이런 부분들이 서로 오해를 낳는 이유가 된다. “‘알았다’라고 해놓고 왜 또 딴소리냐”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저 사람은 말을 바꾸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버린다. 때로는, ‘저 사람은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알았다고 말하는 경박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모두 그 사람과 내가 표현 방식이 틀리다는 걸 모르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 표현의 차이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표현은 단순한 버릇이 아니기 때문이다. 표현 방식 하나하나가 마음의 근본 동작 원리의 반영이다. 그가 세상을 받아들이고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개인 대 개인의 오해나 말다툼의 원인이 된다. 더 나아가 공인의 행동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게 되고, 정치적 호오(好惡) 역시 갈라진다. 또, 이런 경향성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서도 생겨난다. 따라서 종교, 제도, 문화 등도 역시 경향성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알았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위의 네 가지 방법 중에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익숙한 방법과 그렇지 않은 방법이 있을 뿐이다. 다만 상황에 따라 어느 용도로 쓰는 것이 적절한지가 달라지는 경우는 있다. 학술 토론장이라면 “알았다”를 동의의 뜻으로 쓰는 편이 확실할 것이고, 부부 사이라면 “알았다”를 감정의 이해로 쓰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종교, 제도, 문화가 일방적으로 우월한 것은 없다. 지역적, 시대적 상황에 따라 더 적절한 것이 있을 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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