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우는 왜 형주에서 죽어야만 했나
왕위계승의 문제
제갈량(諸葛亮, 181~234)은 소음인이다. 경륜(經綸)의 경지에 도달했기에 가히 사람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 병법을 쓰지만,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이 동요되거나 들뜨는 일이 없다. 자신의 감정을 헤아려 타인의 감정을 아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움직임을 연구하여 이해한 것이기에, 자신의 감정은 늘 고요하면서도 타인의 감정을 이용할 줄 안다. 또 남만정벌에서 보면, 새로운 환경에 당황하지 않고 그 환경에 맞는 새로운 전술을 바로 창안한다. 전술로 안 되면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 쓰기도 한다. 이것은 식견(識見)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증거다. 여기까지는 장점이다.
소음인이 갖는 한계도 조금 드러난다. 모든 것을 구조화해서 안정적으로 돌리려는 마음이 지나치다. 평시라면 문제될 일이 없겠지만, 당시가 전란의 시기였다는 점에서 과연 안정성만을 고집하는 것이 옳았는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이 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바로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제갈량(諸葛亮, 181~234)과 관우 사이의 충돌이다. 이런 해석은 기존의 책에는 없다. 필자가 최초로 주장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어차피 소설 속의 이야기니까 편하게 읽어주기 바란다.
유비(劉備, 161~223)의 왕통을 이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넷이었다. 우선, 처음부터 생사고락을 같이했으며 인품으로도 가장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관우(關羽, ?~219), 두 번째는, 비록 양자이기는 하나 맏아들이고 많은 전쟁을 함께 치른 유봉, 세 번째는, 적자인 유선, 네 번째는, 국가 경영 능력에서 가장 앞선 제갈량(諸葛亮, 181~234).
문제는 유비에서부터 나온다. 태음인은 결정을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는 경향이 있다. 유비 역시 태음인답게 왕통의 문제를 일찍 결정하지 않는다. 물론 국력이 약한 상황, 생사고락을 함께해 와서 서로에게 신뢰가 있는 상황에서는 그것이 좋을 수도 있다. 서로가 큰 욕심을 가지고 좀더 노력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국가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그 문제는 정리를 해야 했다. 아마 촉을 손에 넣었을 때 정도가 적기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때까지도 이 문제가 정리되지 않는다.
유비가 촉(蜀)을 손에 넣었을 때, 형주, 양양, 강릉의 삼군은 관우에게 맡겨진다【형주, 양양, 강릉의 삼군은 적벽대전의 결과로 얻은 장강 유역의 군들로서, 위, 촉, 오 삼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역이다】. 그리고 한동안 이 삼군은 촉의 영토라기보다는 관우의 영지처럼 다스려진다. 물론 촉과 형주 사이의 거리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유비가 관우를 믿는 마음도 있고 관우의 인품이 워낙 주민의 존경을 받는 부분도 있어서 아예 전권을 주어버린 것이다.
유비가 황족이라서 맏형이 되지만, 실제 나이는 관우가 위라고 나온다. 게다가 학식, 인품, 무예, 모든 면에서 관우는 유비를 앞선다. 다만 난세에 어울리는 노련함이 부족하다. 너무 인의를 숭상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앞으로 돌려보자. 유비가 조금씩 명성을 얻게 되자, 조조가 유비를 견제하려고 허창(許昌)으로 부른다. 겉으로는 한나라 조정의 일을 맡기는 듯하지만, 실은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 세력을 키우지 못하게 잡아두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많은 관료와 장수들이 나선 사냥터에서 승상인 조조가 황제를 무시하는 일이 벌어진다. 조조가 황제의 활로 사슴을 쏘아 맞히자, 사람들은 황제의 표시가 있는 화살만을 보고 황제가 사슴을 잡았다고 환호를 지른다. 그러자 조조가 앞에 나서며 “사슴을 잡은 것은 황제가 아니라 나 조조다”라고 외친다.
관우의 손이 반사적으로 칼집으로 간다. 유비가 이를 보고 얼른 앞을 가리며 만류한다. 깊은 수양 때문에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관우의 기본 성향은 확실히 급하고 직선적인 면이 있다. 그 부분이 태양인 관우가 수양에도 불구하고 드러내는 한계다.
조조가 유비를 놓아줄 것 같지 않으니까, 유비는 느닷없이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나는 욕심이 없는 소박한 사람이다”라고 위장하는 것이다. 조조가 유비를 떠보려고 와서 같이 술을 마신다. 중간에 천둥이 치자 유비는 놀라서 술상 밑으로 숨는다. 철저히 위장하는 것이다. 함께 인질 형편인 관우를 볼까? 관우는 여전히 무예를 연마하고, 책을 읽는다. 군자의 모습에 흐트러짐이 없다. 관우는 죽었다 깨어나도 유비와 같은 위장은 못한다. 그게 태양인 관우와 태음인 유비의 차이다. 관우로서는, 난세의 군주가 되기에 부족했던 단 한 가지 요소다.
관우가 그런 인물이기에 유비로서도 장비처럼 편하게 아랫사람으로 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유비는 하나의 목표로 밀고 가는 사람이 아니다. 태음인답게 여러 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다. 천하통일이 안 되어 촉만 그냥 지키고 있는 상황이 길어지는 경우를 생각하면 어떤 것이 최선일까? 형주, 양양, 강릉의 삼군은 아예 관우에게 주어 독립시키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다. 자신보다 명망이 더 높은 부하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최선일까? 게다가 아랫사람으로 마구 부리기도 어렵고, 공로는 막대한 사람이다. 한곳을 떼어주어 독립시켜주는 것이 백성들의 평판도 잃지 않고 부담도 줄이는 최선이 아닐까?
관우 입장은 어떨까? 물론 명분이나 인의를 중시하지만, 그 같은 난세에서 백성들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이 어느 것이냐를 역시 고민한다. 자신이 독립하여 형주, 양양, 강릉을 지키는 것이 촉에 유리하고 백성들에게 유리하다면 관우는 받아들인다. 기존의 고정관념에 연연하지 않는 태양인다운 사고방식이다.
유비와 관우 사이에 말은 없었지만 그런 생각이 서로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정적 국가 구조를 생각하는 제갈량(諸葛亮, 181~234)의 생각은 좀 다르다. 관우의 독립은 다른 장수의 독립을 부를 수 있다. 관우가 독립하면 마초는 서량왕이 되어야 마땅하다. 장비나 조자룡이라고 불만이 없으란 법이 없다. 제갈량(諸葛亮, 181~234)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치다.
또 모든 것을 확실히 해서 아예 일찍 독립해버리면 차라리 낫다. 문제는 관우가 형주를 자기 영지처럼 지배함으로써 명성이나 백성들의 기대가 높아진 상태에서 유비가 갑자기 죽는 경우다. 형주는 당연히 관우의 땅이 되려니와, 촉마저도 왕권이 관우에게로 승계되기를 바라는 백성들이 많아질 수 있다.
제갈량(諸葛亮, 181~234)의 생각으로는, 왕권은 무조건 유선에게 이어져야 한다. 적장자 승계라는 확실한 원칙이 있어야 왕권 다툼으로 인한 나라의 혼란이 없다. 그런데 그 계승자가 왕에 오를 만한 재목이 못 된다면? 그건 관료시스템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 때문에 제갈량(諸葛亮, 181~234)은 국가 관료시스템의 정비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아주 소음적인 접근 방법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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