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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2부 뿌리① - 1장 그리스 문명이 있기까지, 신화가 말해주는 역사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서양사, 2부 뿌리① - 1장 그리스 문명이 있기까지, 신화가 말해주는 역사

건방진방랑자 2022. 1. 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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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 그리스 문명이 있기까지

 

 

신화가 말해주는 역사

 

 

오리엔트에서 배태된 문명의 씨앗이 처음 뿌리를 내린 곳은 지중해 동부 에게 해의 크레타 섬이었다. 지도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듯이, 에게 해는 유럽의 가장 동쪽에 속하며, 크레타는 수많은 작은 섬이 떠 있는 다도해 남부에 섬들의 맏형처럼 넉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리스 문명 이전에 그 바로 동쪽의 크레타와 에게 해의 섬들에서 문명이 먼저 발생했다는 사실은 오리엔트 문명의 서진 현상을 뚜렷이 보여주는 한 증거다.

 

크레타 문명은 미노스 문명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전설적인 크레타의 지배자 미노스 왕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미노스의 이름은 다소 낯설지 모르겠지만 미궁이라는 말은 낯익다. 미노스는 바로 미궁으로 유명했던 크노소스 왕궁의 주인이다.

 

물론 미궁의 주인은 따로 있다.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가진 식인 괴물 미노타우로스다. 미노타우로스란 미노스의 소라는 뜻이니까 미노스와 아주 가까운 관계일 것이다. 신화에 따르면, 미노스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산 탓에 그의 아내가 황소를 사랑하게 되어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미노타우로스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미노스는 이 괴물 서자를 그대로 놔둘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었으므로 가두어두기로 했다. 하지만 워낙 힘이 좋고 난폭한 놈이라 아무 데나 가두면 뛰쳐나올지도 몰랐다. 그래서 미노스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다이달로스다이달로스는 이후 미노스 왕의 미움을 사서 탑에 갇히게 된다. 탈출할 길을 모색하던 그는 솜씨를 부려 날개를 만든다. 작품은 성공작이었으나 이 때문에 그는 아들을 잃는 비극을 당한다. 함께 갇혀 있던 아들은 하늘을 난다는 것에 감격한 나머지 태양 가까이까지 날다가 그만 날개가 뜨거운 열에 녹아 떨어져 죽는다. 아들의 이름은 이카로스인데, 여기서 생겨난 고사성어 이카로스의 비행은 헛된 꿈을 뜻한다에게 크노소스 궁전 안에 미로를 짓게 했다. 미노타우로스는 다이달로스가 만든 교묘한 미로 속에 갇혀 몸은 자유롭지만 이곳을 빠져나오지는 못했다. 이 미로를 라비린토스(labyrinthos)라고 불렀는데, 영어의 미궁(labyrinth)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 굳이 신화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신화 속에 역사의 흔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미노스의 시대는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기원전 2000년을 넘지는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 오리엔트의 역사가 상세하게 알려진 데 비해 크레타의 역사에 신화적인 요소가 많았던 것을 보면, 미노스 문명의 시대까지도 오리엔트 문명이 더 선진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노스는 매년 일곱 명의 소년과 소녀를 미궁 속으로 보내 미노타우로스에게 먹이로 주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매년 아테네에서 보내왔다. 이것은 당시 아테네가 크레타에 조공을 바쳤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신화에서 이 끔찍한 인신 조공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다. 그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겠다고 결심하고 제물로 자원해 크노소스 궁전에 간다. 괴물과 싸우는 것은 각오한 일이지만, 문제는 죽이고 나서 미궁을 빠져나오는 일이다. 이 문제는 테세우스에게 반한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가 해결해준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에게서 얻은 실타래를 풀면서 미궁 속에 들어가 괴물을 죽인 다음 실타래를 따라 미궁을 빠져나온다. 하지만 그는 결정적 공헌을 한 아리아드네를 차버리고 만다. 그리스판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인 셈이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였다는 것은 그리스가 크레타에 복속된 상태에서 벗어났음을 뜻한다. 문명의 씨앗이 크레타에서 한 발 더 서쪽으로 옮겨간 것이다. 흔히 그리스 문명을 서양 최초의 문명으로 말하지만, 정확히 따지면 크레타가 먼저다. 따라서 우리가 출발해야 할 곳은 바로 크레타 문명이다. 한때 그리스를 조공국으로 거느렸던 크레타에는 어떤 문명이 발달했을까?

 

 

크레타의 투우 크노소스 궁전에 그려진 벽화다. 소를 이용한 곡예를 그린 것인데, 이것이 나중에 투우로 발전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놀랍게도 곡예사는 여성이다. 크레타와 달리 그리스의 고대 올림픽경기에서는 여성의 참가를 허용하지 않았다.

 

 

크레타에 청동기시대가 시작된 시기는 기원전 3000년경이니까 상당히 오래다. 하지만 그 무렵에는 아직 문명이라고 부를 정도가 못 되었고, 본격적인 미노스 문명은 오리엔트 문명의 세례를 받으면서 싹이 트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고대 지중해를 주름잡았던 페니키아 상인들의 공로가 컸을 터이다. 섬이라는 유리한 지형 조건을 이용해 고대 크레타인들은 일찍부터 해상무역(물론 해적질도 포함된다)에 진출해 지중해 동부의 교역에서 큰 몫을 했다. 앞서 말한 수수께끼의 해상 민족들에게 선배가 되는 셈이다.

 

기원전 2000년쯤 되면 크레타에는 문자가 사용되고 섬 전체의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크노소스 궁전을 비롯해 크레타의 여러 건축물은 이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후대의 학자들은 점토판에 기록되어 있는 이때의 문자를 선형문자A(Linear A)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현재까지도 완전히 해독되지 않았다.

 

본격적인 고대 문명을 이루기 시작한 초창기에 크레타는 두 차례의 시련을 겪는다. 기원전 17세기~기원전 16세기의 사건들인데, 크노소스 궁전을 포함해서 섬 전체의 건물들이 한꺼번에 파괴된 것이다. 그 무렵에 일어난 화산 폭발이 초래한 자연재해였으리라고 추정된다(혹은 당시 이집트에서 쫓겨난 힉소스인의 침입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크레타인은 재앙에 굴하지 않고 더 큰 규모의 궁전과 건물을 다시 지었다. 이후 크레타 문명은 종전보다 더욱 발달해 전성기를 맞았다. 20세기 벽두에 영국의 고고학자 에번스(Arthur John Evans)가 크레타 섬에서 발굴한 수많은 유물은 대부분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시기에 크레타인들은 지중해 동부의 해상무역을 거의 독점했으며, 각종 축제와 스포츠 행사를 벌이는 등 고대 그리스 문화의 원형을 형성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오리엔트 문명의 씨앗을 받아 에게 문명 (크레타 문명과 나중에 그리스에서 발달하는 미케네 문명을 합쳐서 에게 문명이라 부른다)이라는 독자적인 문명으로 키워내는 산파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이 에게 문명은 당대의 오리엔트 문명에 비해 보잘것없는 수준이었지만 이후 서양 문명의 뿌리를 이루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리적으로도 에게 해는 유럽에 속하기 때문에 서양의 역사학자들은 오리엔트 문명보다 오히려 에게 문명을 더 중시하는 입장이다. 심지어 일부학자들은 에게 문명이 오리엔트 문명과 별도로 독자적인 발달을 이루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씨앗 없이 뿌리가 자라났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에게 문명이 발달한 곳은 크레타 섬만이 아니었다. 에게 해 남부 다도해에 떠 있는 섬들을 키클라데스 제도라고 부르는데, 이 일대의 거의 모든 섬에도 크레타와 비슷한 시기에 화려한 청동기 문화가 발달했다. 물론 크레타는 그중에서 가장 큰 문명의 중심지였으며, 키클라데스 제도의 섬들을 지배하는 위치였다. 그러나 제주도 면적의 네다섯 배에 불과한 크레타 섬은 대규모 문명의 모태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미노타우로스의 신화가 말해주듯이, 크레타에 복속되어 있던 그리스인들은 서서히 문명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그 결과 기원전 15세기~기원전 14세기 무렵부터는 오히려 크레타를 침공하기 시작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해야 할까? 크레타에서 문명을 전수받은 그리스는 완전히 형세를 역전시켜 마침내 크레타의 심장 부인 크노소스 궁전을 파괴해버렸다(이 과정이 테세우스의 신화로 각색되었을 터이다). 크노소스 궁전은 이때부터 3300년 동안이나 땅속에 묻혀 있다가 에번스의 발굴로 다시 햇빛을 보게 된다. 에번스는 크노소스를 발굴하면서 수많은 토판 문서를 발견했는데, 여기에는 초기 그리스어인 선형문자 B가 많이 포함되었다. 이 문자는 현재 완전히 해독되었는데, 크레타 문명의 후기에는 이미 그리스인의 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말해주는 자료다.

 

 

에게 해를 휩쓴 화산 폭발 크레타 북쪽의 테라 섬에서 발굴된 벽화다.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에는 항구가 이렇듯 평화로웠으나 크레타의 미노스 문명을 파멸로 이끈 화산 폭발은 이 섬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이 벽화는 수많은 작은 파편을 퍼즐 맞추듯 짜 맞추어 복원한 것이다.

 

 

인용

목차

한국사 / 동양사

신화가 말해주는 역사

오리엔트와 그리스의 중매

신화와 역사의 경계

암흑을 가져온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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