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콘스탄티누스의 공인까지
성서고고학의 양대 사건: 쿰란과 나그 함마디
20세기는 동·서문명의 고전학(古典學)에 있어서 눈부신 발전이 이루어진 세기였다. 황하(黃河)문명권의 최고의 지혜의 서라 할 수 있는 『노자(老子)』의 백서(帛書, 비단에 쓴 책) 고판본이 2종이나 완정한 형태로 호남성(湖南省) 마왕퇴(馬王堆, BC 168년 무덤)에서 발굴되었고, 『주역』의 백서고판본과 대량의 고귀한 고전판본들이 같이 출토되었다. 1973년 11월부터 74년초에 걸친 사건이었다.
그리고 1993년에는 호북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에서 BC 3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노자』 죽간본(竹簡本)이 나왔다. 그외로도 중국 최고의 문자인 갑골문(甲骨文)이 새겨진 귀갑(龜甲)ㆍ우골(牛骨)의 발견, 명문이 있는 청동기나 고대 역사유물의 대량출토는 중국고문명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지평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진시황시대의 사람들이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하여 아는 것보다 20세기를 거친 오늘 우리가 중국 고문명에 관하여 훨씬 더 정확하고 소상하게 알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신·구약성서와 관련하여서는 천지를 굉동(轟動)시키고도 남을, 방대한 문서의 발견을 포함한 양대사건이 있다. 하나는 1947년부터 1956년까지 사해 북단의 쿰란지역의 11개 동굴에서 800여 개의 사본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기원전 2~3세기로부터 기원후 1세기 사이에 필사된 것으로, 「에스더」와 「느헤미야」를 제외한 202개의 구약성서 사본과 외경, 위경, 외부문서, 내부문서 그리고 성서 해석문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사해문서와 관련하여 이 동굴 라이브러리를 존립하게 만든 공동체 취락군들이 발굴되었는데, 우리는 이 공동체를 포괄적으로 쿰란공동체(Qumran community)라고 부른다.
이 공동체는 BC 150년경부터 AD 68년경까지 지속적으로 존립했는데 이곳의 건축물들은 개인들의 일반 주거가 아니라 공동체생활을 목적으로 지어진 것임이 확연히 드러난다. 물론 개인들의 주거는 그 주변으로 광범하게 텐트나 토굴의 형태로 산재했을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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