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유학파의 가치관
견유학파(Cynicism)의 견유(犬儒, cynic)란 문자 그대로 ‘개 같이(canine) 사는 지식인’이란 뜻이다. 이 말에서 우리는 이미 이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반문명적이었나를 알 수가 있다. 이들은 종교, 풍습, 옷차림, 집, 음식, 예절 등 일체의 인간세(人間世)의 전통을 부정하였다. 그들은 일년 내내 한번도 빨지 않은 남루한 옷을 걸치고 구걸하며 살았다.
그들은 전 인류에 대한 동포애뿐만 아니라 동물 전체에 대한 동포애를 주장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상가 시노페의 디오게네스(Diogenes of Sinope, BC 412~323)는 평생을 절구통 속에서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알렉산더대왕이 그의 명성을 듣고 그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가 웅크리고 앉아있는 절구통 속을 들여다 보면서 알렉산더대왕이 물었다.
“존경스러운 철학자님!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해드리겠습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이때 디오게네스는 무어라 말했을까?
내 햇빛을 가리지 마시오!
Please stand out of my light!
이 극적인 해후의 장면은 매우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이 상징적 언사에 가려져있는 심오한 사유를 그냥 가벼운 해프닝으로 스쳐지나가 버린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가 건설하려고 하는 제국문명 전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실존적 삶에 필요한 것은 알렉산더대왕의 부귀와 권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비치고 있는 햇빛이면 족하다. 여기에는 유위적 문명에 항거하는 무위적 자연에로의 회귀사상이 있다. 그리고 최소한의 질박한 삶(simplicity)과 자기절제(self-control)로서 얻을 수 있는 도덕적 자유, 모든 공포로부터의 해방을 구가한다. 디오게네스는 “나는 현존하는 모든 가치를 재주조한다”(I recoin current values.)고 말했는데 그의 재주조는 니체의 가치전도보다도 훨씬 더 래디칼한 것이다. 견유학파(Cynicism)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초기불교 승단의 아라한들, 컴컴한 비하라(vihara) 굴 속에 앉아있는 수행자들과 매우 자유로운 노장(老莊)철학의 무위(無爲)사상이 결합된 그 어떤 이미지를 연상하면 정확한 그림이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이 견유학파의 사상은 초기 기독교의 형성시기에 매우 유행한 사상이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이들은 물질적 소유 없이 사는 법, 소박한 음식으로 행복할 수 있고, 비싼 옷이 없이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고, 국가에 충성한다는 것의 하찮음, 자녀나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의 어리석음 등등을 설파하는 작은 설교집을 유포시켰다. 이렇게 하여 견유학파의 사상은 매우 대중화되었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세속적 가치의 부정이 아니라, 그러한 가치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이러한 헬레니즘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부나 권력과 같은 세속적 가치에 대하여 아주 래디칼한 전도를 요구하고, 바리새인들이 신봉하는 율법적 사유의 철저한 부정을 가르치는 예수라는 사상가의 시대적 분위기를 읽어내기 힘들다. 최근에 발굴된 초기 기독교 자료로서 Q자료보다도 더 오리지날한 예수어록 파편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도마복음서(The Gospel of Thomas)』 속에 비쳐지고 있는 예수는 견유학파의 한 지혜로운 사상가 같은 느낌이 든다. 인자(Son of Man)를 주어로 하는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한 종말론적 언급이 없다. 종말론적 사유는 오히려 시간적으로 역전되어 있다. 천국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이 분화되기 이전의 합일된 원융한 원초적 사태이다. 노자(老子)의 ‘혼돈(混沌)’을 연상케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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