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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4장 콘스탄티누스의 공인까지 - 예수는 음모와 권세 속에 있지 않다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4장 콘스탄티누스의 공인까지 - 예수는 음모와 권세 속에 있지 않다

건방진방랑자 2022. 2. 28.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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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음모와 권세 속에 있지 않다

 

 

과연 로마는 콘스탄티누스의 계획대로 기독교라는 새로운 활력소로 인하여 되살아났는가? 결코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로마의 멸망은 이미 결정된 것이다. 기독교라는 요소가 결코 쇠망의 길로 접어든 로마를 흥성의 길로 역전시키지는 못했다. 결국 로마의 문제는 이미 창조성을 결여한 시민사회의 도덕적 해이(moral laxity)였다. 로마와 접합된 기독교는 이미 권위화된 기독교였으며, 그 유일성과 배타성과 절대성은 로마사회를 더욱 경직시켰으며, 멸망을 재촉시켰다. 결국 기독교는 로마의 멸망을 한 1세기 더 연장시켜 준 셈이지만, 너무도 중요한 사실은 그 멸망연장기간을 통하여 너무도 심각하게 향후 모든 유럽역사의 발전을 기독교 일색(一色)으로 염색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오늘의 이스탄불에 이슬람의 회칠로 덮여있는 소피아성당(Hagia Sophia), 그리고 베드로의 무덤 반석 위에 섰다고 하는 로마의 베드로성당(Saint Peter's Basilica)의 위용에 우리는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모종의 기운을 느끼지만 그 원래의 구전(舊殿)은 모두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하여 320년대에 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가 만나고자 하는 예수님은 그러한 위압적인 거석(巨石) 안에는 계시지 않다는 것이다. 소피아성당과 베드로성당, 이 동·서 로마의 양대 심볼 속에서 우리는 콘스탄티누스가 씨뿌려놓은 기독교 문명의 천여 년 성상의 성쇠를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식물들이다. 그것은 구운몽(九雲夢)의 덧없는 한 장면일 수도 있다. 나는 한국인들이 성지순례를 하기 어려웠던 시절, 이미 약관의 나이에 몸소 이 성지의 유적들을 다 돌아보면서 그렇게 절감했다. 내가 발견한 예수는 웅장한 베드로성당의 돔 안에도, 미켈란젤로의 섬세하고도 가냘픈 피에타(Pieta) 조각 속에도, 하기아 소피아의 정교한 모자이크 속에도 있지 않았다.

 

갈릴리 바다의 북단 가버나움(Capernaum, Kapharnaoum)의 호수가에 찰랑거리는 물결, 살랑거리는 산들바람, 그리고 산상수훈이 설파되었다는 작은 동산, 그것은 우리나라 강원도 옛 감자바위 동네의 소박한 모습이나 이효석이 읊어댄 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 들녘이나 꽃 덮인 샛길, 장터, 이런 것들이 연상되는 그러한 곳에 예수는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음모와 권세와 부귀와 영화의 찬란한 금빛 장식 속에 있지 않았다. 우리가 시골장터에서 만나볼 수 있는 그러한 갈릴리의 군중들,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정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불쌍히 여길 줄 알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러한 이름 모를 뭇 군중 속에 있었다. 나는 로마의 베드로 성당을 보고 난 후 이스라엘 가버나움의 호수가에 하염없이 앉아서, 이런 생각을 눈물겹도록 하고 또 해보았다(1978722일 토요일, 나의 생애에서 기억할 만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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