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에게 애도를 표한 달라이라마
나의 어조에 담긴 절묘한 새커즘(Sarcasm, 빈정거림, 풍자)을 달라이라마는 정확히 다 파악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유쾌하게 깔깔 웃었다. 이런 말을 하며는 좀 언짢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국에 로마교황이 나타나면 도로변에 마중 나온 사람들은 그 대부분이 비대한 흑인들이나 삶에 지친 서민들의 얼굴이다. 그러나 달라이라마가 맨하탄에 한번 나타나면 센트랄 파크의 잔디밭을 메우는 엄숙한 수만의 군중은 75%가 대학원 졸업생들이라고 한다. 현재 미국 불교도의 60%가 박사며 의사며 변호사며 회사고위간부 등, 프로펫셔날(professional)들이 차지한다. 미국사회의 인텔리겐챠(intelligentia, 지식노동자)들은 더 이상 기독교로부터 새로운 문명의 젖줄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 빈곤이 찾아오게 마련이고, 여유로운 정상적 생활의 루틴을 가진 사람일수록 새로운 정신적 문화를 갈망한다. 마돈나가 한번 오프라 윈프리쇼에 나와 우리 삶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요가만한 것이 없다고 몇 마디 하자마자 미국전역의 슈퍼마켄에 요가테잎이 깔리는 추세인 것이다. 그리고 티벹불교는 비쥬알하게 매우 화려하다. 티불교는 미국사회에 매우 강력한 세력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새로운 정신운동의 구심점에 살아있는 각자(覺者) 달라이라마가 있다. 그 달라이라마가 지금 내 앞에서 깔깔대고 웃고 앉아있는 것이다. 우리의 대화는 매우 이론적이고 진지했지만 그는 나를 아무런 격이 없이 대해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대화에 취해서 점점 친근한 감정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었다. 이때 나는 갑자기 재미있는 질문을 던졌다.
“모택동 주석이 서거했을 때 성하께서는 심심의 애도를 표시했다는 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어찌되었든 모택동(毛澤東, 1893~1976)은 중국사람들에게는 주체적인 역사를 회복시켜준 은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서구열강의 침략으로 파멸의 위기에 간 중국을 공산운동을 통해 다시 근대국가로 변모시킨 장본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세계사적 위인임에는 틀림이 없지요.”
“성하의 자서전에 보면 그래도 모택동에 대한 인상은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주은래(周恩來, 1898~1976)는 매우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모택동이나 주은래나 우리 티벹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하여 헌신하는 맑스주의자들이 아니었으며 철저한 국가주의자들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가장한 쇼비니스트(chauvinist)들이며, 탐욕스러운 제국주의자들이며, 편협한 광신자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의 마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고난의 장정(長征)의 투쟁을 거친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들의 꿈이었고 이상이었던 공화국을 세우자마자 갑자기 서구열강의 제국주의보다 더 악랄한 제국주의자들로 표변할 수 있단 말입니까? 모택동은 사람이 좀 무뚝뚝하고 우직하지만 진실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주은래는 ‘츄우 앤 라이’(Chew and Lie)라는 별명대로, 항상 생글생글 웃고 친철하지만 차갑고 교활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두 사람 사이에 우열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둘 다 인간세에 참혹한 결과를 초래한 탐욕의 화신들일 뿐이지요.”
“그런데 왜 애도를 표시하셨습니까?”
“제가 어찌 이 자리에서 가장된 감정의 위선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중국지도부의 만행으로부터 얻은 심적 고통을 어찌 다 여기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매우 적나라한 현실 속에서 일개의 약자에 불과했습니다. 그 약자가 할 수 있는 적나라한 결론은 그저 참는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제가 아무리 불교의 가르침을 잘 배웠다 해도, 저는 포탈라궁 속의 관념에 갇힌 제식의 상징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둘러싸고 있었던 티벹의 고위관료들은 무능했고 무책임했고 세상사에 어두웠습니다. 대승불교의 실천덕목으로서 6바라밀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 중 하나가 인욕이 아닙니까? 이 인욕의 이야기가 수없이 본생담(자타카, Jātaka)에 나오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설화였습니다. 어찌 제가 인생 속에서 양팔이 잘리고 양다리가 싹둑 베어지고 코가 베어지는 그러한 끄샨띠바딘 리쉬(Kṣāntivādin ṛṣi, 忍辱仙人)【끄샨띠바딘 리쉬(Kṣāntivādin ṛṣi)는 ‘인욕선인(忍辱仙人)’이라는 뜻이며 유명한 본생담(자타카, Jātaka)의 주인공이다. 물론 싯달타의 전신 중의 하나다. ‘찬제파리(羼提波梨)’로 음역된다. 그 이야기는 나의 『금강경 강해』를 참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서울 : 통나무, 1999), pp.278~281.】의 인육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중국의 지도부는 저에게 진정한 인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저에게 참혹하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핍박을 통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깨달을 수가 있었고 오늘의 평온한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모택동(毛澤東, 1893~1976)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겠지요. 오늘의 적이 영원히 적일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무서운 적이라 할지라도 그 적으로 인해 나에게서 생겨나는 선을 더 귀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나의 삶의 고귀한 체험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른뺨을 치며는 왼뺨도 돌려대고,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라(마 5:39~40)는 아가페적인 신의 사랑의 실천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나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하는 부처님의 말씀을 이성적으로 잘 생각해보면 솟구치는 그러한 힘이지요. 내가 참으로 분노를 느끼는 순간, 고통과 굴욕과 진노의 불길에 내가 휩싸여 있는 그러한 순간에는 적은 적으로만 보이고, 그것은 절대적인 적이며 영원히 용서될 수 없는 그러한 실체로서 나에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항상 이러한 탐ㆍ진ㆍ치(貪瞋痴)의 감정은 오래 지속될 수가 없습니다. 진노의 불길 속에서만 인간은 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생리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진노가 강렬하다 할지라도 어느 순간에는 진노가 가라앉은 고요한 마음의 평화나 용서를 베푸는 그러한 감정의 전환상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전환상태를 귀하게 키우려고 하지 않고 다시 진노의 불길 속으로 자신을 채찍질해 들어가는 불행한 자멸의 길을 택하고 마는 것입니다. 고요한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게 되면 적은 더 이상 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모든 것은 항구불변의 실체를 갖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곧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무아(無我)지요. 그렇게 되면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행이 무상하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어려서부터 그토록 암송만 하고 살았던 이러한 진리를 우리 티벹민족이 당면했던 극도의 불안과 초조와 공포와 진노 속에서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나는 이성의 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달라이라마는 솔직히 말해서 나보다 영어가 좀 딸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의 영어는 매우 듣기가 편했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단어선택이 정확했고 문법적으로도 정확했고 간결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 와서는 심한 제스츄어(gesture)를 쓰면서 아주 열심히 공들이면서 표현을 했다. 그야말로 자신의 인생의 고귀한 체험을 나에게 전달해주려는 애틋함이 있었다. 나는 조선에서 온 한 무명(無名)의 인간이다. 그런데 그러한 한 무명의 인간을 앞에 놓고 온갖 정성을 쏟는 그의 진실된 모습은 정말 나를 감동시켰다. 130만의 티벹인민의 처참한 학살의 현장을 눈에 그리면서 나는 그의 말의 진실성과 깊이를 되새겨보곤 했다. 그가 말하는 인욕의 의미는 엄청난 고통의 심연에서 우러나온 말임이 분명했다. 그런 말을 할 때에는 그의 눈가에는 매우 비극적인 기운이 서렸지만 정말 쾌활하기 그지 없는 얼굴이었고 나의 고향집 툇마루 앞에 활짝 피는 백목련의 모습보다 더 화창한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매우 의미심장한 말로 마감을 했다.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랑과 용서와 화해와 자비로움 속에서 끝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인욕(kṣānti)이라고 하는 것은 불의에 대한 복종이나 굴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택동(毛澤東, 1893~1976)이 지은 업은 기나긴 시간을 통해서 반드시 그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모택동(毛澤東, 1893~1976)을 빌미로 중국민족이 우리 티벹민족에게 저지른 악업도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시간성이 결여된 아가페 이론과 불교의 이성적 이론이 다른 점입니다.”
▲ 중국인민해방군에 의하여 파괴된 유서깊은 간덴사원(dga' ldan)의 폐허. 간덴사원은 쫑카파가 그의 제자 달마린첸과 함께 1409년에 창건한 겔룩파의 가장 권위있는 성전이었다. 『유배된 자유』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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