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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선진 제십일 - 25. 자로와 증석, 염유, 공서화가 각자의 이상을 얘기하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선진 제십일 - 25. 자로와 증석, 염유, 공서화가 각자의 이상을 얘기하다

건방진방랑자 2022. 12. 6.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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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자로와 증석, 염유, 공서화가 각자의 이상을 얘기하다

 

 

11-25. 자로(子路)와 증석(曾晳)과 염유(冉有)와 공서화(公西華)가 공자를 모시고 대청마루에 둘러앉아 있었다. 이때 공자께서 입을 여시었다: “내가 너희들보다 하루라도 더 나이를 먹었다고 나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너희들은 평소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투덜거리지만, 만약 여기 어떤 사람이 있어 너희들을 기용키 위해 그 사람됨을 알아보려고 한다면 과연 무엇으로써 너희들은 자신을 알리려느냐? 각자 포부를 말해보렴.”
11-25. 子路曾晳冉有公西華侍坐. 子曰: “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 居則曰: 不吾知也! 如或知爾, 則何以哉?”
 
이에 자로가 대뜸 쌈박하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천승의 나라가, 강대국 사이에 끼어 곤경에 처하고 대군이 덮치는 전란을 겪어 기아에 허덕여도, () 제가 다스린다면, 3년만에 백성들을 용맹스럽게 만들 수 있고, 또 바르게 사는 도리를 알 수 있게 만들 수가 있겠나이다.” 이 말을 듣고 부자께서 빙그레 웃으시었다.
子路率爾而對曰: “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 且知方也.” 夫子哂之.
 
(: 염유)! 너는 어떠하뇨?”하시자, 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사방 670리 정도나, 560리 정도 되는 작은 나라를 구() 제가 다스린다면, 3년이 흐르는 세월 안에 백성들의 경제를 유족하게 만들 수 있겠나이다. 그 나라의 예악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저보다 나은 군자를 모셔오겠나이다.”
! 爾何如?” 對曰: “方六七十, 如五六十, 求也爲之, 比及三年, 可使足民. 如其禮樂, 以俟君子.”
 
(: 공서화)! 너는 어떠하뇨?”하시자, 적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제가 이미 능숙하다고 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배우기를 원하노이다. 종묘의 제사나 제후들의 작은 모임[], 큰 모임[]에 소매 끝동과 깃에 검은 선을 두른 현단복(玄端服)을 입고 장포관(章甫冠)을 쓰고 정치를 도와드리는 배후의 작은 집례자(執禮者)가 되기를 원하노이다.”
! 爾何如?” 對曰: “非曰能之, 願學焉. 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
 
(: 증석)! 너는 어떠하뇨?”물으시었는데, 점은 그때까지 슬)을 여유롭게 튕기고 있었다. 공자의 말씀을 듣는 순간 강렬한 쇳소리가 나듯 마지막 선율을 뜯는다. 그리고 무릎에 있던 슬을 내려놓고 일어나 대답하여 말하였다. “저는 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방향과는 좀 다르오이다.”
! 爾何如?” 鼓瑟希, 鏗爾, 舍瑟而作. 對曰: “異乎三子者之撰.”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누구에게 상처를 주랴! 각기 자기의 뜻을 말했을 뿐인데, 어서 말해보렴.” 증석이 말하였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늦은 봄 음 삼월에 흩날리는 봄옷을 갖추어 입고, 원복 입고 갓을 쓴 성인 56, 십대의 동자 67인을 데리고 저남쪽 기수()에서 목욕을 한 후, 기우제를 올리는 무우(舞雩)단 위에서 바람 쐬고 노래를 읊으며 돌아오리이다.” 부자께서 들으시고 아~ 감동의 탄식을 내쉬면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점과 같이 하겠노라.”
子曰: “何傷乎? 亦各言其志也.” : “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夫子喟然歎曰;“吾與點也!”
 
세 사람이 다 나가고 그 자리에 증석만 공자 옆에 앉게 되었다. 증석이 여쭈었다: “저 세 사람의 말이 어떠하오니이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각기 자기의 포부를 말했었을 뿐이니라.”
三子者出, 曾晳後. 曾晳曰: “夫三子者之言何如?” 子曰: “亦各言其志也已矣.”
 
증석이 여쭈었다: “부자께서는 어찌하여 유(: 자로)의 말에 대해서는 빙그레 웃음지으셨나이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한 나라를 맡아 다스린다는 것은 예()로써 다스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단지 그 말이 너무 겸손이 없었다. 그러한 이유로 빙그레 웃은 것이다.”
: “夫子何哂由也?” : “爲國以禮, 其言不讓, 是故哂之.”
 
증석이 또 여쭈었다: “(: 입구)가 말한 것도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었나이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러게 말이다. 사방 670, 560리 나 되는 지역 치고 나라 아닌 게 어디 있겠느냐? 당당히 나라를 다스린다고 말할 것이지 사방 670, 560리 운운한 것은 구차스럽다.”
唯求則非邦也與?”“安見方六七十如五六十而非邦也者?”
 
증석이 또 여쭈었다: “(: 공서화)이 말한 것 또한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러게 말이다. 종묘의 제사와 회()와 동()의 모임이 다 제후의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 그 놈이 배후의 작은 인물이라고 한다면 누가 능히 그 놈보다 더 큰 벼슬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唯赤則非邦也與?”“宗廟會同, 非諸侯而何? 赤也爲之小, 孰能爲之大?”

 

나는 본 장을 공자시대의 오리지날한 전송을 전하는 것인 양 마구 인용하는 태도에 찬동을 표시하지 않는다. 논어의 최장의 문장이고 워낙 드라마틱한 구성을 과시하고 있어 사람들에게 자주 회자되는 장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맹자시대 즈음에 형성된 유교문학의 한 장르일 뿐이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비밀도 논어의 다른 파편과 잘 비교해보면 저절로 간파될 수 있다. 우선 이 장에서 증석이라는 인물이, 자로와 같은 고제 자를 포함한 타제자들에 비해 월등히 탁월한 인물로서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증석의 아들인 증자 문하에서 증석-증자계열을 추존하기 위해 만든 명예로운 드라마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으나 편해에서 얘기했듯이 그러한 생각도 전혀 타당성을 가질 수 없다. 우선 증석이 증자의 아버지라는 것도 맹자라는 서 물에 의하여 만들어진 신화일 뿐 전혀 그 근거를 논어나 그와 관련된 문헌에서 찾을 수 없다. 증석, 즉 증점은 논어에서 여기 이 장에 혜성 같이 한 번 나타났을 뿐 딴 곳에는 일체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 그토록 다양하게 시ㆍ공을 착종한 논어의 활발한 논의 속에서 증석이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는 것은 우선 그가 공단 내의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방증한 다. 재미있는 것은 사마천의 열전에도 이 장의 이야기 이외에, 그의 신상과 주변에 관한 일체의 정보가 없다. 중석이 증삼의 아비라는 언급이 없는 것이다. 사마천은 정직했다. 그가 동원할 수 있었던 정보가 없었던 것이다. 공자가어』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에는 증삼부(曾參父)’라는 말이 있으나 논어(論語)’라는 서물의 이름을 지칭하고 그 논어에서 말한 내용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증점 조()는 후대의 삽입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하여튼 증석이 중심의 아버지라는 신화도 깨져야 할 관념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사실 여부는 여기 텍스트 크리틱의 문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증삼의 아버지는 누군가 있었을 것이나, 여기서 말하는 증석은 증삼의 아버지라는 이미지나 역할과는 전혀 무관하다. ‘증석은 단지 우리가 논어에서조차 알 수 없는 한 사람의 이름일 뿐이다. 그것이 가장 정직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 장은 반드시 공야장(公冶長)7공야장25를 펴놓고 같이 대비해보아 야만 그 정체를 알 수가 있다. 편해에서 이야기했듯이 공야장(公冶長)옹야선진이 같은 성격의 편들이라고 했는데, 이 장은 공야장725의 파편이 성립한 후에 그것을 놓고 누군가가 새롭게 드라마타이즈 시킨 것이다. 먼저 이 장에 등장하는 인물과 5-7에 등장하는 인물이 증석을 제외하면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더구나 5-7에서 말하는 각 인물들의 장끼[長處]와 본 장에서 그 인물들이 말하는 포부가 완벽하게 동일하다는 사실은 더 더욱 놀랍다. 5-7에서는 공자가 말했고, 11-25에서는 그 공자의 말을, 본인들 스스로가 좀 자세히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수식어만 바뀌었을 뿐 완벽하게 동일하다5-7은 맹무백이 유(), (), () 3인이 인()하냐고 묻는 데 대해 공자가 3인의 장끼를 말하면 서 인()한지는 잘 모르겠다고 한 내용이다.

 

  공야장 7 선진 25
(子路)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冉有) 千室之邑, 百乘之家, 可使爲之宰也 方六七十, 如五六十, 可使足民
(公西華) 束帶立於朝, 可使與賓客言也 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

 

그러니까 유ㆍ구ㆍ적에 대해 공자가 하신 말씀을 놓고 누군가 이 인물들 스스로 그 주제를 고백하도록 드라마를 꾸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양식은 어디서 온 것일까? 바로 공야장(公冶長)25에서 온 것이다. 5-25에서는 안연계로시(顔淵季路侍)’로 시작하고 11-25에서는 자로증석염유공서화시좌(子路曾晳冉有公西華侍坐)’로 시작한다. 완벽하게 동일한 양식이다. 그리고 5-25에서도 공자가 두 사람에게 너희들 인생의 포부를 말해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11-25에서도 네 사람에게 각언기지(各言其志)’ 해보라고 권한다. 이것도 완벽하게 동일한 양식이다. 그리고 클라이막스를 5-25에서는 공자의 말이 장식하고, 11-25에서는 공자가 허여하는 증석의 말이 장식한다. 잘 뜯어보면 이것도 완벽하게 동일한 양식이다.

 

  공야장 25 선진 25
무대세팅 顔淵, 季路侍. 子曰: “盍各言爾志?” 子路曾晳冉有公西華侍坐.
대화시작 盍各言爾志? 如或知爾, 則何以哉
클라이막스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그러니까 드라마의 양식은 5-25에서 가져왔고, 등장인물과 대화내용은 5-7에서 가져왔다. 그러니까 11-255-75-25를 합성한 작품이라는 것은 너무도 명약관화한 것이다와쓰지 데쓰로오(和辻哲郞, 孔子, 東京: 岩波文庫, 2007, pp.116~120 참고.

 

문제는 드라마의 성격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공자의 분신으로서 증석이라는 신화적ㆍ가설적 인물을 등장시켰다는 데에 있다. 바로 그 점이 이 장을 위대하게 만드는 포인트일 수도 있고, 이 장을 아주 천박하게 속화시키는 저주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증석이 슬을 뜯는 자세라든가, 일어나 말하는 품위라든가, 입을 열어 말하는 메시지의 내용은 바로 공자가 구현하고자 하는 유()라는 집단의 성격을 추상적으로 집약시킨 것으로 보인다. 공자시대의 공문의 오리지날 한 성격이라기보다는 후대의 유교화된 유가집단의 성격을 총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라는 글자 속에 비 우() 자가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와 우()는 상통하는 글자이다. 유는 본시 기우제를 지내는 무 당집단이었다. 기우제야말로 유의 원초적인 성격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의 후예로서 자처한 공자의 종교적 일면이 여기서는 시적으로, 매우 낭만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드라마의 가장 조잡하고 졸렬한 부분은, 세 사람이 떠난 후 증석과 공자가 단 둘이 남아, 세 사람이 한 말에 대한 공자의 평론이 기술되고 있는 부분이다. 이런 평론이 첨가되었다는 사실은 본 장의 파편이 생략과 간결함을 생명력으로 하던 로기온 기술양식이 지리한 설명과 논술형식으로 바뀐 후대의 양식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마가복음에도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나오고 그 비유를 나중에 다시 예수가 설명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는데4:1~20: 마태」 「누가에도 있는 공통자료이며 따라서 큐복음서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큐복음서도마복음서에 나오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비하면 역시 후대의 기술양식이다, 그러한 분위기 가 여기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와쯔지(和辻哲郞)는 이 장의 내용은 아마도 공자운동이 보편화되었을 때 민간에서 부르던 민요와도 같은 어떤 노래의 가사 내용이 다듬어져 선진(先進)편에 수록되었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데 시사적이다.

 

세부적인 자의나 문의에 관해서는 내 번역에 다 반영되어 있다. 단지 슬()은 무릎 위에 놓고 탈 수 있는 악기였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그리고 고슬희(鼓瑟希)’를 증석이 세 사람이 각기 자기의 포부를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 배경음악으로서 드문드문 여유롭게 탔었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갱이(鏗爾)’를 고주로부터 슬을 내려놓는 절컹하는 쇳소리라고 했는데[鏗爾者, 投瑟之聲也], 그것은 음악을 몰라서 하는 얘기들이다. 공자의 말씀을 듣는 순간 자기가 연주하던 곡의 클라이막스를 빨리 탔는데, 그것이 쇳소리가 났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손톱으로 강하게 뜯는 소리였다당시는 다 명주실이라서 일본의 코토를 뜯듯이 쯔메(假爪角)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해석이다.

 

 

는 재와(才臥) 반이다. ()’은 중심의 아버지이다. 이름이 점()이다.

, 才臥反. , 曾參父, 名點.

 

()’은 상성이다. 내가 비록 나이가 너희들보다 조금 더 먹었다 하더라도 나의 많은 나이 때문에 나에게 말하기를 어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대저 제자들을 유도하여 그 말을 편하게 다하도록 하여 그 뜻(포부)을 살피려 하심이니, 성인의 온화한 기운과 겸손한 덕성을 여기서도 살필 수 있다.

, 上聲. 言我雖年少長於女, 然女勿以我長而難言. 蓋誘之盡言以觀其志, 而聖人和氣謙德, 於此亦可見矣.

 

(居則曰). 너희들이 평소에 살면서 말하기를, ‘사람들이 날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너희들을 알려고 한다면 과연 너희들은 무엇으로 쓰여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과시하여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言女平居, 則言人不知我. 如或有人知女, 則女將何以爲用也?

 

()’은 거성이다. ‘는 기()라고 발음한다. ‘은 근()이라고 발음한다. ‘는 필이(必二) 반이다. 이하에 나오는 의 용례도 다 마찬가지이다. ‘은 시인(詩忍) 반이다. 솔이(率爾)’는 가볍고 갑작스러운 모습이다沃案. 나는 쌈박하게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말에 쌈박이란 물건이 칼에 깨끗하게 잘려나가는 모습이다. ‘()’은 대국의 관리를 받고 속박당하는 것이다. 2,500 병사가 ()’가 되고, 500 병사가 ()’가 된다. ‘()’은 그로 인하여의 뜻이다. 곡식이 익지 않는 것을 ()’라 말하고, 채소들이 성숙되지 않는 것을 ()’이라고 한다. ‘()’은 방향이다. 그것은 의로움으로 향함을 일컫는다. 백성들이 의로움으로 향하면 능히 윗사람을 친애하고, 어른을 위해 죽음을 각오할 수 있다. ‘()’은 미소이다沃案, 고주에서는 크게 깔깔대고 웃는 것으로 보았다. 신주가 더 낫다. 고주를 따르는 청유들도 잇몸을 드러내고 웃는다고 했다.

, 去聲. , 音機. , 音僅. , 必二反, 下同. , 詩忍反. 率爾, 輕遽之貌. , 管束也. 二千五百人爲師, 五百人爲旅. , 仍也. 穀不熟曰饑, 菜不熟曰饉. , 向也, 謂向義也. 民向義, 則能親其上, 死其長矣. , 微笑也.

 

(! 爾何如?). ‘구이하여(求爾何如)’는 공자께서 물으신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용례도 다 같다. ‘방육칠십리(方六七十里)’는 소국(小國)이다. ‘()’()’과 같다. ‘오육십리(五六十里)’면 더 작은 나라이다. ‘()’은 부유하고 풍족한 것이다. ‘사군자(俟君子)’는 자기의 능한 바가 아님을 솔직히 말한 것이다. 염유는 여기서 겸퇴(謙退: 겸손하고 물러난다)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데, 자로 말에 웃으시는 것을 보고 긴장하여 그 말이 더욱 겸손해진 것이다.

求爾何如, 孔子問也, 下放此. 方六七十里, 小國也. , 猶或也. 五六十里, 則又小矣. , 富足也. 俟君子, 言非己所能. 冉有謙退, 又以子路見哂, 故其辭益遜.

 

()’은 거성이다. 공서화는 예악의 일에 뜻을 두었는데 자기를 군자라고 자부하는 짓은 싫어했으므로, 자기의 뜻을 밝히는 데 먼저 겸손한 말부터 앞세웠다. 그래서 능하지는 못하지만 배우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이다. ‘종묘지사(宗廟之事)’는 제사를 일컫는다. 제후가 때때로 만나는 것을 ()’라고 하고, 많은 제 후들이 떼로 만나는 큰 모임을 ()’이라고 한다. ‘()’은 현단복(玄端服)이고, ‘장포(章甫)’는 예관(禮冠)이다. ‘()’은 임금의 예를 돕는 자이다. ‘()’라 고 말한 것은 또한 겸사(謙辭)이다.

, 去聲. 公西華志於禮樂之事, 嫌以君子自居. 故將言己志而先爲遜辭, 言未能而願學也. 宗廟之事, 謂祭祀. 諸侯時見曰會, 衆覜曰同. , 玄端服. 章甫, 禮冠. , 贊君之禮者. 言小, 亦謙辭.

 

은 고경(苦耕) 반이다. ‘()’는 상성이다. ‘은 사면(士免) 반이다. ‘()’()’은 모두 거성이다. ‘()’는 어의(魚依) 반이다. ‘는 우()라고 발음한다. 네 사람이 둘러앉아 있는데 나이 순서로 말하자면 중점이 두 번째로 대답해야 할 것이다沃案. 공자 70세 기준이면, 자로 61, 증석도 비슷한 나이, 염유 41, 공서화 28. 그러나 그때 계속해서 슬을 타고 있었으므로 공자께서 먼저 구()와 적()에게 물으신 후에 점()에게 미치신 것이다. ‘()’는 간헐이다沃案, 간헐적으로 탄 것이 아니라, 음과 음 사이가 넓은 느린 곡이다. ‘()’은 일어났다는 뜻이다. ‘()’은 각기 내면에 갖춘 것이다. ‘막춘(莫春)’은 화창하고 따사로운 늦봄이다沃案, ‘막춘(莫春)’만춘(晩春)’이다. ‘춘복(春服)’은 하나로 된 겹옷이다. ‘()’은 몸을 헹구는 것이다. 요즈음의 3월 상사일(上巳日: 삼짇날)의 불제(祓除: 한 해의 액을 씻어내는 의식)가 바로 이것이다. ‘()’는 물이름이니, 노나라 읍성의 남쪽으로 흐른다. 지리지에 의하면 그곳에 온천(溫泉)이 있다고 했으니 이치상 그럴 듯한 일이다. ‘()’이란 시원하게 바람을 쐬는 일이다. ‘무우(舞雩)’는 하늘에 제사하고 기우제를 지내는, 흙을 돋아 제단을 만든 곳과 큰 수목이 같이 있다沃案. 우리나라 사직단 비슷한데 개방되어 사람들이 산보를 하곤 했던 곳이다. ‘()’은 노래부르는 것이다.

, 苦耕反. , 上聲. , 士免反. , , 並去聲. , 魚依反. 雩音于. 四子侍坐, 以齒爲序, 則點當次對. 以方鼓瑟, 故孔子先問求赤而後及點也. , 間歇也. , 起也. , 具也. 莫春, 和煦之時. 春服, 單袷之衣. , 盥濯也, 今上巳祓除是也. , 水名, 在魯城南, 地志以爲有溫泉焉, 理或然也. , 乘涼也. 舞雩, 祭天禱雨之處, 有壇墠樹木也. , 歌也.

 

증점(曾點)의 학문은 인욕(人欲)이 다 없어진 곳에 천리(天理)가 유행하여 천리가 도처에 충만한지라 조금도 결함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 동정지제(動靜之際)에 종용(從容: 태연하고 자연스럽다)함이 이와 같았다. 그 뜻을 말함에, 평소 살아가는 자리에 즉()하여 일용(日用)의 항상됨을 즐기는 데서 지나침이 없었다. 애초부터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하려는 뜻이 없었던 것이다(沃案. 나머지 세 사람은 모두 남을 위한 일에 인생의 포부가 있었다는 뜻). 그 가슴속이 한가롭고 자연스러워서 곧바로 천지만물과 더불어 위아래로 같이 흐르니, 각기 제 자리를 얻는 오묘한 이치가 은연중에 말 밖에[言外] 나타난 것이다. 나머지 세 사람이 사물의 말엽적인 데에 구구하게 구애된 것에 비한다면 그 기상(氣象)이 차원이 다르다[不侔]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감탄의 탄식을 내시고 깊게 허여하신 것이요, 문인들이 이 사건의 본말을 기록함에 있어서 중점의 일을 특별히 잘 상세히 기록하였으니 기록자들도 뭘 좀 아는 사람들이라 할 것이다. (三子者出). ‘夫三()’라고 발음한다.

曾點之學, 蓋有以見夫人欲盡處, 天理流行, 隨處充滿, 無少欠闕. 故其動靜之際, 從容如此. 而其言志, 則又不過卽其所居之位, 樂其日用之常, 初無舍己爲人之意. 而其胸次悠然, 直與天地萬物上下同流, 各得其所之妙, 隱然自見於言外. 視三子之規規於事爲之末者, 其氣象不侔矣, 故夫子歎息而深許之. 而門人記其本末獨加詳焉, 蓋亦有以識此矣. , 音扶.

 

(曰夫子何哂由也). ()은 자로의 뜻이 뛰어난 면이 있는데도 부자께서 웃으셨으므로 그 설명을 요청한 것이다. (曰爲國以禮), 부자께서는 대체로 자로의 능력은 인정하셨지마는, 단지 그 겸손 하지 못한 것만을 빙그레 웃으신 것이다沃案. ‘비웃는다고 번역하는 것은 잘못 번역하는 것이다. 자로의 말이 공자에게 있어서 결코 비웃음의 대상은 아니다.

點以子路之志, 乃所優爲, 而夫子哂之, 故請其說. 夫子蓋許其能, 特哂其不遜.

 

()’는 평성이다. 아래의 용례는 다 이와 같다. 중점은 염구가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였는데도 공자께서 웃으시지 아니 하였으므로 슬쩍 여쭈워본 것이다. 그런 데 부자의 답이 특별히 폄하는 나쁜 말이 없으므로 대체로 또한 허여한 것이다沃案, 주희는 문맥을 잘못 이해하였다. 공자가 자로 때만 웃으신 것이 아니고 그 뒤로는 더 시시해서 공자의 반응을 기입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공자의 말씀 속에는 폄하의 뜻이 들어있다. 주희는 그 맥락을 파악하지 못했다. 송유들이라 할지라도 우리보다 경전해석이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平聲, 下同. 曾點以冉求亦欲爲國而不見哂, 故微問之. 而夫子之答無貶辭, 蓋亦許之.

 

(唯赤則非邦也與?). 이것 또한 증석이 물어서 부자께서 답하신 것이다. ‘수능위지대(熟能爲之大)’라는 것은 공서화보다 더 뛰어날 자가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니, 이것 또한 허여(許與)의 말이다沃案, 주희가 또 잘못 새기었다. 그 반대의 뜻이다. 반어적으로 비웃은 것이다.

此亦曾晳問而夫子答也. 孰能爲之大, 言無能出其右者, 亦許之之辭.

 

정이천이 말하였다. “옛날의 배우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 연구하여 충분히 맛을 보아 선후의 차서가 있었다. 자로ㆍ염유ㆍ공서화가 이와 같이 뜻을 말한 것을 또한 부자께서 이와 같이 인정하신 것은, 이것 또한 스스로 실제적인 일[實事]들이다. 후세의 배우는 자들은 고원(高遠)한 것만 좋아하여 그 마음이 천리 밖에서 노니는 척하고 있지만, 자신은 현실의 구속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할 뿐이다.”

程子曰: “古之學者, 優柔厭飫, 有先後之序. 如子路冉有公西赤言志如此, 夫子許之. 亦以此自是實事. 後之學者好高, 如人游心千里之外, 然自身卻只在此.”

 

또한 정명도가 말하였다: “공자께서 점()을 허여하신 것은 그가 말한 것이 대체로 성인의 뜻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요ㆍ순의 기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로 나머지 세 사람의 마음에 구비된 것과는 달랐다. 다만 행실이 그 말을 다 커버하지는 못했을 수도 있으니 소위 광인()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자로를 비롯한 세 사람의 포부는 실로 작았다. 자로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반드시 예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도리(道理)를 깨우치지 못했다. 그래서 공자께서 빙그레 웃으신 것이다. 만약 그것을 깨우쳤다면, 자로의 경지 또한 요ㆍ순의 기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又曰: “孔子與點, 蓋與聖人之志同, 便是堯舜氣象也. 誠異三子者之撰, 特行有不掩焉耳, 此所謂狂也. 子路等所見者小, 子路只爲不達爲國以禮道理, 是以哂之. 若達, 卻便是這氣象也.”

 

또 정명도가 말하였다. “세 사람은 모두 나라를 얻어 다스리고자 했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취하지 않으신 것이다. 증점은 광인이다. 성인의 일을 능히 실천할 수는 없다 해도 성인의 뜻은 능히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노래부르며 돌아온다고 말한 것이다. 그 즐기는 것이 제자리를 얻고 있음 을 말해주는 명언이다. 공자의 뜻은 노인을 편안하게 해주고, 붕우에게 믿음을 주고 젊은이들을 감싸주는 데 있으니(5-25), 만물로 하여금 제각기 그 본성을 발휘하게 하지 않음이 없다. 증점은 바로 이것을 안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아~ ~ 하고 찬탄의 함성을 발하시면서 나는 점과 같이 하겠노라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又曰: “三子皆欲得國而治之, 故夫子不取. 曾點, 狂者也, 未必能爲聖人之事, 而能知夫子之志. 故曰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言樂而得其所也. 孔子之志, 在於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使萬物莫不遂其性. 曾點知之, 故孔子喟然歎曰: “吾與點也.”

 

정명도가 또 말하였다: “증점과 칠조개(5-5)가 이미 그 대의(大意)를 보았다.”

又曰: “曾點漆雕開, 已見大意.”

 

 

주희의 집주(集註)는 본래 상론(上論: 10장까지)에 한하여 내가 번역하려 했던 것이다. 상론에서 얻은 기초적 정보를 집약하여 하론에서는 본문에 즉하여 공자의 본면목을 탐색하여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너무 산만한 송유들의 주석은 오히려 공자 그 역사적 인간의 실상을 만나는 데 방해가 된다. 집약해야할 하론에서 오히려 송유들의 논의는 방만ㆍ산만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론의 관()선진(先進)편의 집주까지만 역()하는 것으로써 송유를 소개하는 나의 소임을 끝낸다. 그러나 주희의 집주는 이미 기존의 좋은 번역이 있기 때문에 나의 번역에 의존치 않더라도 그 문의를 대강 파악할 수 있다. 단지 나의 번역은 기존의 어떤 번역보다도 고전의 출전을 상세히 밝혔고, 출현하는 인물들의 배경까지 낱낱이 소개하였다. 집주 속에서 내가 소개할 인물은 더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나머지 아홉 편의 집주를 상고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음의 네 책자를 참고하면 족할 것이다.

 

1. 김도련(金都鍊) 역주, 주주금석(朱註今釋) 논어(論語), 서울: 현음사, 1990.

2. 성백효(成百曉) 여주, 현토완역(懸吐完譯) 논어집주(論語集註), 서울: 전통문화연구회, 1990.

3. 박헌순(朴憲淳) , 논어집주(論語集註)2, 서울: 한길사, 2008.

4. 후키노 야스시(吹野安)ㆍ이시모토 미찌아키(石本道明), 공자전서(孔子全書)10, 東京: 明德出版社, 1999~2006.

 

4종 중에서 4는 압도적으로 위대한 책이다. 집주와 관련된 자료들까지 모두 상세히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말을 모르는 사람들은 나머지 한글번역을 보면 된다. 1은 깊이가 느껴지는 선구적 작업이며, 2는 원문에 즉한 성실한 번역이다. 3다산의 주석이 첨가되어 있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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