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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한글역주, 등문공장구 상 - 1. 성선(性善)을 말하다 본문

고전/맹자

맹자한글역주, 등문공장구 상 - 1. 성선(性善)을 말하다

건방진방랑자 2022. 12. 16.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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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문공장구(滕文公章句) ()

 

 

1. 성선(性善)을 말하다

 

 

3a-1. 등문공이 세자 시절에 아주 젊고 영명한 사람이었는데 초() 나라에 사신으로 갈 일이 있었다. 가는 길에 그는 송()나라를 들렀다. 그때 마침 맹자는 제나라를 떠나 송나라에 머물고 있었다맹자의 행로에 관해, 제나라를 떠나 추로 갔다는 설도 있고, 제나라를 떠나 일단 고향 추로 갔다가, 다시 추에서 다시 추로 돌아왔다가, 다시 등나라로 초빙되어 갔다고 보기도 한다. 그래서 등문공은 세자 시절에 송나라에서 맹자를 뵈올 수 있었다. 등세자는 맹자가 현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우회하여 송에 들른 것이다. 따라서 맹자는 그를 만났을 때 그의 지론인 성선론을 강의했다. 맹자는 말끝마다 요ㆍ순을 반드시 언급하였다. 세자는 강의를 잘 듣고 떠났다. 그리고 초나라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다시 송나라에 들러 맹자를 뵈었다.
3a-1. 滕文公爲世子, 將之楚, 過宋而見孟子. 孟子道性善, 言必稱堯舜. 世子自楚反, 復見孟子.
 
맹자는 말씀하시었다: “세자는 내 말이 의심스럽게 느껴집니까? 본 시 진리()란 하나라오. 다시 말해서 이 세상 사람 누구든지 같은 도()를 평등하게 공유한다는 말이요. 제나라의 용맹스럽기로 유명했던 명신하 성간(成覵)이 제경공(齊景公)에게 말한 바가 있소: ‘이 세상의 위대한 그 누구라도, 그는 한 사나이, 나도 한 사나이, 내가 왜 그를 두려워하오리이까?’ 공자의 수제자 안연(顔淵) 또 이와 같이 말했지요: ‘순 임금, 그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또한 어떤 사람인가? 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누구든지 순임금이 되려는 의지만 있다고 한다면 순임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孟子曰: “世子疑吾言乎? 夫道一而已矣. 成覵謂齊景公曰: ‘彼丈夫也, 我丈夫也, 吾何畏彼哉?’ 顔淵曰: ‘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
 
공자의 제자 증삼의 제자인 공명의(公明儀)공명(公明)이 성(), ()가 명 노나라의 현인이다. 자장(子張)의 문인이라는 설도 있다. 맹자의 시대에 아직 살아있었으며, 맹자는 그에게서 춘추를 배웠을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는다. 이루24는 또 이와 같이 말했지요: ‘그 위대한 문왕도 나의 스승이다. 그의 아들인 주공이 어찌 나를 속이리오?’ 지금 등나라는 절장보단(絶長補短)긴 데를 잘라 모자라는 데를 메운다는 뜻인데, 지형을 정사각형으로 계산한다는 뜻이다. 당시의 토지면적 계산상의 상용어하여 계산하면 사방 50리 정도입니다만, 노력하여 인정(仁政)을 행한다면 훌륭한 나라[善國]가 될 수 있 습니다. ()지금의 서경』 『상서(尙書)』 「열명에 있다. 조기는 서경의 일편(逸篇)이라 하였다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약을 먹어 명현이 일어나지 않으면 병은 낫지 않는다.’ 약은 쓰고 어지러운 법입니다. 고통스러운 약을 먹는 것처럼 단단히 마음을 고쳐먹고 노력하면 앞으로 당신의 나라에 유익함이 있을 것이외다.”
公明儀曰: ‘文王我師也, 周公豈欺我哉?’今滕, 絶長補短, 將五十里也, 猶可以爲善國. : ‘若藥, 不瞑眩, 厥疾不瘳.’”

 

여태까지의 논의가 주로 정치현실을 위주로 한 것이라면 등문공장에서는 현실정치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순수이론이나 학설을 둘러싼 논쟁을 테마로 삼고 있다. 상편은 그러한 논쟁이 집약되 어 있고 하편은 성격이 좀 잡하다. 등문공편은 전체적으로 보면 맹자 공생애의 후반부에 있었던 사건과 대화를 엮어놓고 있다. 등문공상의 1234장과 양혜왕131415장은 원래 연속되어 있던 것인데, 등나라 여정을 나타내기 위하여 양혜왕편으로 편집되어 나간 것이다.

 

이 장에서 맹자의 사상을 한마디로 성선(性善)’이라 표현하는 것만 보아도 이미 맹자의 사상이 제나라에서 어떤 개념적 틀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개에게 성선론을 강의했다는 표현은 이미 맹자의 언설이 그 시대에 어떤 담론의 형태로서 개념화되어 있지 않으면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말끝마다 요순을 말했다는 것은, 묵자학파가 민중과 더불어 노동하는 지도자로서 우임금의 이미지를 어필시키는 것을 뛰어넘어 요ㆍ순의 선양과 왕도를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짧은 대화 속에서 중요한 맹자사상이 표출되고 있는데, 그 것은 성선(性善)의 전제로서 깔려있는 인간평등론(人間平等論)’이다. 인간은 누구든지 평등하다는 사상이 확보되어야만 인간은 누구든지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 맹자의 인간평등론이야말로 중국문명, 아니 한자문명권의 모든 문명이 인간에 대한 보편적 존엄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궁극적 근거이다. 그러나 맹자의 인간평등론은, 인간이 단순히 평등하다는 사실의 기술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든지, 길거리의 걸인이라도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도덕적 상향의 가능성에 대하여 어떠한 제약을 가해서는 아니 된다고 하는 평등이다. ‘인간평등도 왕도의 구현이라는 정치적 전제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며, 그 정치적 목표에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한에 있어서의 평등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도덕적 상향이 없는 평등은 진정한 인간세의 평등일 수 없다. 권리나 의무조항이나 따지고 앉아있는 서구적 평등은 공리주의적 계산의 전제일 뿐이다.

 

2b-6에서 이미 우리가 보았듯이, 맹자는 제나라의 경()으로서 등나라에 조문객으로 다녀온 적이 있다. 세자는 그때에 이미 맹자의 명성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맹자는 등 세자에게 왕도의 꿈을 불어넣지 않는다. 등나라가 비록 절장보단(絶長補短)하여 사방 50리의 소국이라고 하지만, 탕왕은 사방 70리에서 문왕은 사방 100리에서 천하를 통일했다고 하는 맹자의 상투적인 논리를 가지고 말한다면 당연히 등나라 50리로써도 천하를 통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런 대목에서 맹자가 얼마나 대단한 현실감각의 소유자인지를 알 수가 있다. 탕ㆍ문왕의 예는 오직 위나라. 제나라와 같은 대국을 격려하기 위한 논리는 될지언정, 등나라와 같은 소국에게 망상을 안겨주는 논리는 될 수 없는 것이다. 맹자는 세자에게 등나라에서 인정을 실현할 것을 말할 뿐이며 거창한 왕도를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등나라가 노력하기만 하면 선국(善國, 좋은 나라, a good country)’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명현(瞑眩)이 있어야 약발이 있듯이, 좀 고통스럽더라도 그대가 나의 사상을 잘 응용하여 치세하면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래서 맹자의 논의는 정전법과 같은 구체적 실현방안에 집중되어 있다. 등문공은 맹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충실히 실행하였다. 그 결과 등나라는 타국의 모범이 되어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사상가들도 등나라를 주목하여 맹자 와 논쟁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본 편은 그 기록이다.

 

문왕(文王), 아사야(我師也)’를 주공(周公)의 말로서 풀이하는 견해가 많은 데 나는 그런 견해를 취하지 않는다. ‘명현(瞑眩)’이니 도는 하나다[夫道一而已矣]’니 우리가 평소 잘 쓰는 말들이 이 장에서 유래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인용

목차 / 맹자

전문 / 본문

중용 강의

논어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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