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흐름에 따르는 사람, 흐름에 거스르는 사람
4a-7.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천하에 유도(有道)하면, 도덕이 표준이 되므로, 소덕자가 대덕자에게 부림을 당하고【沃案: 여기 ‘역대 덕(役大德)’의 ‘역(役)’은 능동태가 아니라 피동태이며 실제로 ‘역어대덕(役於大德)’의 뜻이다. ‘어(於)’가 생략된 것이다】, 소현자(小賢者)는 대현자(大賢者)에게 부림을 당한다. 천하에 무도(無道)하면, 적나라한 권력이 표준이 되므로, 소자(小者)는 대자(大者)에게 부림을 당하고, 약자는 강자에게 부림을 당한다. 이 두 경우가 모두 작은 자가 큰자에게 부림을 당하는 것이니, 이것은 자연스러운 하늘의 이치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순천자(順天者)는 존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 4a-7. 孟子曰: “天下有道, 小德役大德, 小賢役大賢; 天下無道, 小役大, 弱役强. 斯二者天也. 順天者存, 逆天者亡. 제경공(齊景公)은 당시 제나라라는 대국의 군주였다. 그런데 제나라 사람의 입장에서는 야만인들로 보였던 오나라의 왕 합려【부차(夫差)의 아버지】로부터 딸을 시집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경공은 이와 같이 말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그들이 우리 명령을 듣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없다. 그런데 그들의 명령조차 듣지 않는다면 이것은 국교를 단절하는 것이 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사랑하는 딸을 오나라로 시집보냈다【沃案: 이 이야기는 『설원(說苑)』 「권모(權謀)」편에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다. 당대의 설화전승의 정확성을 규탐할 수 있다】. 齊景公曰: ‘旣不能令, 又不受命, 是絶物也.’ 涕出而女於吳. 대국의 군주도 이렇게 유연하게 순천(順天)하였는데, 지금은 소국이 대국을 스승처럼 받들면서, 그 나쁜 문화는 다 받아들이면서도 대국의 명령을 받는 것은 수치스럽게 생각한다면, 이것은 마치 제자가 스승으로부터 명령을 받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과 하등의 다를 바가 없다. 만약에 그러한 것을 진정코 수치스럽게 여긴다면, 대국을 스승처럼 받들면서 그 나쁜 문화를 받아들이지 말고 아예 문왕의 왕도정치를 하루속히 배우는 것만 같지 못하다. 문왕의 인정을 스승으로 삼는다면 대국은 5년, 소국은 7년이면, 기필코 천하에 정치를 베풀 수 있는 왕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今也小國師大國而恥受命焉, 是猶弟子而恥受命於先師也. 如恥之, 莫若師文王. 師文王, 大國五年, 小國七年, 必爲政於天下矣. 『시』【대아 「문왕」】는 노래한다: ‘상나라의 자손들아! 그대들은 억(億)【당시 ‘억’은 ‘10만’의 의미였다】을 넘는 대국의 찬란한 문화를 전승하였지만, 상제가 이미 주나라에 천명을 건넨지라, 주나라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대들이 주나라에 복종한 것은 천명이 항상 그대 곁에만 있어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의 전승자 은나라의 선비들은 아름답고 총명한지라, 주나라의 수도 호경(鎬京)【섬서성 장안(長安)시】의 강신제에서 울창주를 부으면서 주나라 신하의 도리를 다하는도다!’ 『詩』云: ‘商之孫子, 其麗不億. 上帝旣命, 侯于周服. 侯服于周, 天命靡常. 殷士膚敏, 祼將于京.’ 공자 또한 말했다: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 많은 사람을 거느리는 것만 가지고 인자(仁者)에게 대적할 수 없다【沃案: 해석의 여지가 많으나 전후 맥락상 나는 이렇게 번역하였다】. 대저 한 나라의 임금이 인정을 실천하기를 좋아하기만 한다면 그는 천하무적(天下無敵)이다.’ 지금 천하무적이기를 갈망하면서 인정을 실천하려고 하질 않으니, 이것은 여름 뙤약볕에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데 냉수목욕으로 몸을 식히는 것을 싫어하는 것과도 같다. 본능을 거부하는 어리석은 대책이다. 『시』【대아 「상유(桑柔)」】는 노래한다: ‘누가 몸이 열에 달아올라 고통스러운데, 냇가로 가 몸을 식히지 않으리오?’” 孔子曰: ‘仁不可爲衆也. 夫國君好仁, 天下無敵.’ 今也欲無敵於天下而不以仁, 是猶執熱而不以濯也. 『詩』云: 誰能執熱, 逝不以濯?” |
나는 『맹자』를 번역함에 있어 뜻이 통하지 않는 곳은 전후맥락을 살피어 의미를 소통시키는 세세한 작업을 첨가하였지만, 원문 그대로 우리말화되어 있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풀지 않는다. ‘순천자존(順天者 存), 역천자망(逆天者亡)’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동네집 개도 다 알아들을 흔한 말인데 그 출전이 바로 이 장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단장취의하여 순천과 역천을 ‘자연에 순응한다’는 추상적 명제의 맥락에서 잘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 맹자의 ‘순천(順天)’이라는 것은【우리나라 전라남도의 지명도 여기서 왔다. 1310년, 고려 충선왕 2년에 승주목(昇州牧)에서 순천부가 되었으니 『맹자』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이후이다】 소국이 대국에게 지배를 받고 명령을 받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추세라는 식의 국제역학의 살벌한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와 같은 소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매우 기분나쁜 말이며, 또 우리나라의 친미우익분자들에게는 쌍수 들고 환영할 명제이다. 유도(有道)이건 무도(無道)이건 대가 소를 힘으로 혹은 덕으로 지배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소가 대를 거스르는 역천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이 강요하는 대로 FTA를 받아들이는 것이 순천이며, 제나라 경공이 울면서 원치 않는 곳에 딸을 시집보내는 슬기로움이라는 것이다.
맹자의 사상이 과연 여기서 끝날 것인가? 맹자는 전국시대의 사람이다. 아주 냉철한 리얼리스트이다. 따라서 약자가 강자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리얼리즘의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무리한 역천(逆天)은 망국(亡國)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이러한 ‘순천’이 수치스럽다고 생각된다면 그 수치를 극복하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순천’은 현실적 전략일 뿐이다. 따라서 순천을 극복하는 것은 역천의 무모한 행위가 아니라, 반드시 인정(仁政)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는 당대의 풍전등화와 같은 많은 소국들의 운명을 보호해주려는 것이다.
‘자유무역’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자유무역이 자유무역으로 끝나질 않고, 대국이 소국에게 자유무역의 조건을 자국에 유리하게 지속시키기 위하여 소국 자체내의 경제질서와 법질서를 파탄으로 휘몰아간다는 데 있다. 이러한 간섭은 막아야 하는 것이다. 맹자는 이러한 간섭을 막을 수 있는 길은 하루속히 인정을 실천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순천’의 쇼를 하면서 속으로는 인정을 실천하기를 7년만 한다면 곧 천하를 통일하고 대국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한 ‘7년’이라는 햇수는 오늘날 생각해봐도 매우 현실적인 대안이다. 정녕코 이 나라 조선에는 7년 동안만이라도 인정을 베풀고 전 국민의 호응을 얻어 일치단결 국권을 지킬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올 수 없는 것일까? 란(亂)이 깊어졌으니 치(治)가 도래할 만도 하지 않은가! 깨어나라! 한얼아!
2a-7을 참고할 것.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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