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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임금이 어진 선비를 만나보는 방법
7a-8.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옛 현왕(賢王)【여기 ‘현왕(賢王)’이라는 표현이 쓰였는데 중국고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표현이다. 그만큼 여기 맹자는 ‘고지현왕(古之賢王)’과 ‘고지현사(古之賢士)’를 대비시켜 가면서 독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맹자』에서는 ‘현자(賢者)’가 가장 많이 쓰였다. 그밖으로는 ‘현군(賢君)’[3a-3, 3a-4], ‘현인(賢人)’[2a-1, 5b-7] 등이 있으나, ‘현왕-현사’의 표현은 여기밖에는 없다. 현사(賢士) 못지않은 현명한 왕(王)이라는 뜻이다. 더구나 ‘왕’이라는 것을 쓴 것을 보면 맹자 생애의 말년의 표현일 것이다. 당대의 모든 제후가 칭왕했기 때문이다】은 호선(好善)하였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권세는 잊어버리고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현사(賢士)만을 우대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현사의 입장에서도 현왕과 같은 삶의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사들은 도의를 즐기고 숭상하며 타인의 어떠한 권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7a-8. 孟子曰: “古之賢王好善而忘勢, 古之賢士何獨不然? 樂其道而忘人之勢. 그러므로 왕공(王公)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모든 예를 갖추고 마음속 경의(敬義)를 다하지 아니 하면【‘치경진례(致敬盡禮)’는 6b-14에 나오는 ‘치경이유례(致敬以有禮)’와 같은 표현】, 가끔씩이라도 그들을 만날 길이 없었다. 한번 생각해보라! 만나는 것도 이렇게 가끔씩의 상견조차 어려웠는데 하물며 어떻게 그들을 충복의 신하로 만들 수 있었겠는가!” 故王公不致敬盡禮, 則不得亟見之. 見且由不得亟, 而況得而臣之乎?” |
맹자는 죽음을 앞두고 더욱더 ‘현사(賢士)’의 지위를 높여 놓아야만 인류의 앞날이 있다고 자각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현왕(賢王)을 높이면서 현사를 극도로 존숭하고 있다. 사는 특정한 지위나 봉록이나 혈연에 구애되지 않는 자유로운 지식인이다. 이 지식인들에 대한 존숭이 없는 사회는 생명력이 없는 사회라고 맹자는 단언한다.
오늘 내가 지금 이 낙송암(駱松菴) 골방에 쑤셔박혀 이토록 외로운 붓을 옮기고 있으면서도 한국사회에서 존경받고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맹자 같은 선성(先聖)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만 가능한 것이다. 맹자는 외치고 있다: 이 시대의 왕공(王公)들이여! 니깟 놈들이 어찌 나를 감히 신하로 삼을 수 있단 말이냐!
비슷한 주제가 5b-3의 ‘감문우(敢問友)’에 나왔고, 5b-7에도 맥을 같이하는 강력한 담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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